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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

섹스 게임 - 1편

페이지정보

글쓴이 19가이드 조회 14,778 조회 날짜 20-12-30 16:59
댓글 0 댓글

내용

참여일 : 7월 26일, 일요일 오후 1시.

참여 장소 : 강원도 평창군 XX리조트 실내스포츠 체육관. 

준비물 : 빨간 칩을 제외하고 따로 없음. 


민혁과 서영은 며칠 동안 서로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컴퍼니라는 곳에서 보낸 섹스게임 초대장에 눈길을
뗄 수는 없었다. 사실 민혁이 예전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초대장을 받았다면 장난으로 생각하고 무시를 했거나, 설령 진짜라
생각할지라도 욕 짓거리를 한바탕 한 후, 구깃구깃 접어 쓰레기통에 쳐 박았을 것이다. 물론, 아내인 서영이 받았다면 소름이
돋아 차마 다 읽지도 못했을 것이다.


내색은 안 했지만 또한 그 초대장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현재 그 부부의 현실이었다. 당장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현실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으니 
그렇다고 하더라도 민혁과 서영이 마음 내키는 대로 선택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컴퍼니의 제안이 사실인지도 의문스러웠지만, 설령 그게 사실이더라도 부부동반 하에 ‘섹스게임’이라니... 민혁과 서영에게
있어서 사실이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 단어는 ‘섹스’였다.


남녀 관계에 있어 섹스는 많은 것을 상상하게끔 했다. 그런데 부부가 한 팀이 되어서 정체도 모르고, 숫자도 모를 많은 부부와
게임을 해야 한다니  특히 서영은 그 문제에 대해서 상상하면 상상할수록 한 편의 악몽처럼 끔찍했다.
 

컴퍼니의 초대장을 받은 후 부질없이 시간은 흘러갔지만, 민혁은 차마 입을 열지는 못했다. 민혁은 컴퍼니의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을 생각하면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잔혹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서 당장 어떠한 방법도
없었고, 무엇보다 딸 연아의 목숨도 위협을 받았기 때문에 아버지로서 그것만은 꼭 지켜내야만 했다.
 


민혁은 민혁대로 고민을 하고 있었지만, 이건 아내인 서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실 따지고 보면 고민은 민혁 보다 서영이
더 깊을 수 밖 에 없었다. 무엇보다 서영은 여자였다. 단순히 ‘성(性)’이라는 글자 하나를 놓고 보면, 항상 피해자는 여자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컴퍼니가 제안한 섹스게임에 참여하게 될 경우 민혁도 나름 고충이 있겠지만, 아무래도 여자인
서영보다는 못할 것이 자명했다. 물론, 그것을 보는 민혁도 가슴이 찢어졌다.
 


컴퍼니의 섹스게임이라는 것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단지 ‘섹스’라는 단어 때문에 추악한 상상을 하는 것이
전부였고, 그 때문에 민혁과 서영은 많은 거부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었다. 
민혁은 스스로 그나마 나을 것이라 생각 되었다.
십 수년간 회사를 운영하면서, 소위 사회생활을 하면서 접대 등의 유흥을 많이 겪은 경험이 있었다. 물론, 민혁은 2차는
가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아내인 서영은 자신과의 결혼 10년 동안 집안일만 하며 딸을 키워 온 전형적인 한국형
주부였다. 그것이 민혁으로서는 매우 걱정이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또 딸의 안전을 위해서 민혁은 섹스게임에 참여할 수 있다고 생각도 했지만, 그로 인해 아내인 서영의
인격과 자존감이 무너지면, 이 또한 가정을 지킨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극단적으로는 차라리 청산가리를 먹고 세 가족이 동반
자살을 하는 것이 더 행복한 삶을 위한 마무리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닐 터 답답한
하루가 계속 이어지고 있을 뿐이었다.


서영은 서영대로 민혁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사실 민혁이 무슨 말을 하지 않아도 서영은 민혁의 생각을 다 알고 있었다.
10년을 함께 한 부부가 아니던가. 더구나 최근에 있어 항상 자신감이 넘치던 민혁이 무너지면서, 서영은 남편의 여리고
여린 마음까지 읽게 되었다. 그리고 민혁 몰래 눈물을 훔치고는 했다.
 


‘나 때문인 거야...’ 


서영은 남편 역시 섹스게임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고는 생각했다. 그러나 컴퍼니가 제안한 섹스게임이 진실이든 진실이
아니든, 외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치 명작이라 불리는 영화 대부에서 말론 브론도의 대사처럼 컴퍼니의 제안은
거부할 수 없는 제안 이었던 것이다. 
결국 서영은 컴퍼니가 제안한 섹스게임의 참여 하루 전에 민혁에 앞서 입을 열었다.


“여보.” 


민혁은 서글프게 들리는 서영의 부름에 당장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아내인 서영이 무슨 말을 할지, 이내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더욱 더 민혁은 서글펐고,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아찔함도 느꼈다.
 


“내가... 내가....” 


더 이상 입이 열리지 않는 민혁이었지만, 울음을 크게 삼킨 후에 고개를 돌려 아내인 서영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미안해.... 내가... 정말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 그것 밖에 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민혁이 바라보는 서영의 얼굴은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괜찮아... 난 괜찮아...” 


서영은 연신 괜찮다며, 오히려 민혁을 다독이고 있었다. 서영은 자신의 남편인 민혁을 위해서 강한 척 하고 있었지만, 민혁은
그럴수록 자괴감이 들 정도로 힘이 들었다. 그 미안함이란 세상 그 어떤 말로도 더 표현을 할 수가 없었다.
 


“정말... 괜찮아?... 차라리 솔직히 말해 줘... 이건 괜찮은 일이 아니잖아... 누가 보더라도...” 


약간은 울부짖음을 하는 민혁이었다. 본인도 컴퍼니의 제안을 뿌리칠 수 없다고 생각해 왔으나 아내 입에서 참여하자라는
말을 들으려고 하니, 그 거부감이 뼈마디 하나하나를 짓누르는 고통을 안겨주었다. 차라리 같이 죽자라는 말을 할까 잠시
고민도 했지만, 이내 곧 서영의 말에 민혁은 그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연아... 연아... 살려야 하잖아... 우리 연아는 좋은 세상에서... 살게 해야 하잖아...” 


돈 때문에 이런 지경까지 왔다. 또한 돈이 있다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돈이라는 것을 떠나서 아무리 힘들다고
자신의 딸까지 죽여야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동반자살을 생각한 민혁은 아내 서영 앞에서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서영은 여자로서의 수치심은 물론, 한 사람으로서의 인격마저 버릴 각오를 하며 민혁에게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혁은 그런
아내의 눈물 나는 각오를 들으며, 다시 한 번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
 


“그래야지... 우리 딸은... 우리 딸만큼은 상처 입어서는.... 안 되지...” 

“고마워.” 


이 상황에서 고맙다는 서영의 말은 분명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민혁에게는 아내 서영의 각오를 확인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말이었다.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는 미래, 그 모든 역경과 고난을 버티겠다는 의지였다.
 


“당신에게 미안해...” 

“그런 말 하지 마. 그동안... 자기는 많이 고생을 했잖아. 그 덕에 나랑 연아는 아무 불편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었고...
 지금의 상황 결코 당신 탓이 아니야. 주위를 둘러 봐. 다들 힘들어하는 사람 뿐 이야. 그냥... 우리가 조금 더 고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할래... 그동안 과분할 정도로 편했으니까... 그건 당신의 희생 때문이었기에 가능했고...”
 

“.....” 

“이제는 내가 조금 더 힘을 낼 거야... 우리 부부... 또 우리 딸 연아... 다시 행복해질 수 있어...” 


차분하게 말을 잇는 서영을 보며 민혁은 눈시울이 다시 붉어지고 있었다. 


“나야말로 고마워.” 


어렵사리 서영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며 민혁은 빙긋 웃어보였다. 억지로 웃는 민혁의 얼굴을 보며 서영 역시 환한 미소를
지었다. 힘들어도 웃자 그래야 전진할 수 있는 힘이 생길 것이니, 그것이야 말로 우리 부부가 가지고 있는 큰 무기이다라고
민혁은 생각했다.
 


“휴... 그건 그렇고...” 


부부의 결정은 이뤄졌다. 

이제는 좀 더 현실적인 문제를 가지고 의견을 나누어야 할 때였다. 컴퍼니가 제안한 섹스게임 참여일은 당장 내일이었다. 


“장난은 아니겠지?” 


먼저 입을 연 건 민혁이었다. 


“나도 장난이 아닐까 싶기도 했어. 솔직히 지금의 마음 한 곳에서는 차라리 장난이었으면 하는 것도 있어. 그런데 참..
 이상하게... 또 장난이라면 실망할 것 같아... 현재 우리 사정이 그렇잖아?”
 

“... 그렇긴... 하지.” 

“아까 말했듯이 나 각오는 되어 있어. 당신이 걱정하는 만큼 약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가 아니야.” 

“......” 

“그리고 당신이 날 걱정하는 만큼... 나도 당신이 걱정스러운 건 마찬가지야.” 

“그래... 마음 다 이해해. 우리 이제는 걱정이란 말 하지는 말자.” 


더 이상 걱정만 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 될 일은 아니었다. 선택했다면 이제는 그 길이 거칠고 험난한 가시길이 온갖
추잡스러움과 더러움이 있는 똥밭이든 묵묵히 전지해야 할 때였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민혁이 입을 열었고, 서영은 그의 입에 집중했다. 


“우리가 겪지 않아서 알 수는 없겠지만, 또 상상도 안 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무엇보다 더러울 것이라는 거야...” 

“생각은 했어.” 

“아니... 생각 그 이상으로... 남자들이 술안주로 군대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 보통 군대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여자는
 자신은 가보지 않은 군대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안다고 착각한단 말이야. 하지만, 현실은 그보다 더 지독하거든...
 우리가 상상을 한다고 하지만, 그 상상 밑바탕에는 어느 정도의 경험이 있어야 해. 그 경험이라는 밑바탕이 없다면
 인간으로서 상상력의 한계가 생기지. 아마 자기가 생각한 그 이상, 아니 내가 생각한 그 이상으로 더러울 거야...”
 


민혁의 말을 들은 서영은 입을 꼭 다물었고,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굳어져갔다. 민혁은 다시 한 번 가슴이 찢어지는 통증을
느꼈다. 당장 내일 섹스게임에 참여를 위해 아내 서영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마치 이건 다람쥐 챗 바퀴 도는 것처럼
암울한 이야기일 뿐이었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듯이 지나침으로 부족함만 못한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만 이야기 하는 게 좋겠어.” 

“으... 응.” 

“어차피 겪어봐야 알 일이니까...” 

“으... 응.” 

“준비물이 뭐였지?” 

“별다른 준비물은 없었어. 편지에 동봉된 빨간 칩은 반드시 챙겨야 할 것 같아.” 

“그... 빨간 칩 어디에 뒀지?” 

“자... 잠시만.” 


대화를 하던 서영이 잠시 자리에서 사라지더니, 이내 곧 오른 손에 빨간 칩 하나를 들고 민혁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빨간 칩을 민혁에게 건넸다.
 


“음... 이게 뭘까? 마치 카지노에서 쓰는 것과 비슷하단 말이야.” 

“그러게...” 


컴퍼니가 보낸 빨간 칩은 흔히 카지노 도박에서 쓰는 칩과 비슷했다. 아니 거의 같다고 해도 무방했다.
대신에 다른 점 하나는 빨간 칩 양면에는 ‘company’라는 영문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는 것이였다.
 


“반드시 가져와야 한다? 그리고 컴퍼니라는 글자? 혹시...” 

“응?” 

“일종의 참가 티켓 같은 게 아닐까?” 

“그럴까?” 


민혁의 추측에 서영이 고개를 잠시 끄덕거렸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서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참가 티켓일 수도 있겠는데...” 

“무슨 생각이 있어?” 

“돈으로도 사용되는 게 아닐까?” 

“돈?” 

“응.” 

“왜 그렇게 생각하는 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빨간 칩 하나를 보며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아내 서영을 보며 민혁은 자못 흥미롭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아내가 이렇게 어느 한 가지 일을 두고 생각하고 또 추측하는 모습을 그동안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참가 티켓 용도라면... 굳이 도박에 쓰는 칩으로 만들 필요는 없을 것 아니야?”

“아하...”


민혁은 날카로운 서영의 추측에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 뱉었다. 


“그리고 참가 티켓 용도뿐이라면, 편지로 충분하지 않을까?” 

“듣고 보니....” 


확실히 서영의 추측은 일리가 있었다. 


“그래서 생각해보면 이 빨간 칩은 게임을 위한 돈의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싶어. 분명 편지에서도 수천만원에서 수십억원의
 상금이 오간다고 했잖아. 그리고 게임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경쟁 아닌가?”
 


탁! 민혁은 서영의 말을 들으며 자신의 무릎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분명 합리적인 추측이었다. 색다른 서영의 모습을
바라보며 아주 짧지만 민혁은 그녀를 그동안 너무도 모르고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회사 일만 하느라 아내를 모르고 살아
온 자신이 잠시나마 부끄럽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리고...” 

“또 뭐?”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단순히 바라보면, 자기 말대로 카지노에서 쓰는 칩과 비슷하잖아. 그래서 그냥 돈의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었어.”

“그래... 자기 꾀에 넘어간다는 말이 있듯이... 가끔은 단순하게 바라보면 그게 정답일 때가 있지...” 

“내 말이 그럴싸 했나봐?” 

“아니, 완벽한 추측이 아닐까 싶어. 분명 이건 티겟 용도도 있겠지만, 그 게임에서 필요한 일종의 돈의 역할을 할 것 같아.
 참가비나 혹은 판돈이랄까?”
 

“... 응.” 


민혁과 서영은 그 후로도 컴퍼니가 제안 한 섹스게임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부부가 한 팀이라면 그만큼 많은 생각을
공유해서 단 한 명의 사람처럼 결정하고 행동할 필요성이 있었다.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이 있듯이 말이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는 것이 전무했기에 무언가를 심도 있게 논하고 교환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없었다. 컴퍼니에 대한 정보의 부족이 큰 약점이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소득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
하고, 그에 대한 의지를 다진 것은 큰 수확이었다. 불신의 시대에 서로 믿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은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무기 중의 무기였다.


“연아는 어떻게 하지?” 

“내일 오전 일찍 친정에 맡기고 출발하면 될 거 같아.” 

“장모님 혼자서 고생을 하시겠네.” 

“엄마한테 미안하지만... 나중에 잘 되면... 또 잘해드리면 되잖아...” 

“그래도...” 

“자기야... 너무 늦었다... 벌써 자정이 다 되가는데...” 

“그래.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지만, 잠이라도 자 둬야지.. 체력이 뒷받침 되어야 무슨 일이든 헤쳐 나가겠지.” 

“맞아. 오늘만큼은 푹 자야할 거야.” 


서영이 말을 마치고 민혁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를 침실로 이끌며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서영에게 이끌리며 민혁은
머릿속으로 모든 것을 지우기 시작했다.
 


‘더 이상 고민은 무의미하다. 일단... 자자.’ 


그러나 민혁의 뜻과 달리 깊은 잠을 자기에는 어려운 밤일 것 같다.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민혁과 서영은 밤새 거의 뜬
눈으로 지샜다. 그러나 전혀 피곤함을 느낄 수는 없었다. 사실 피곤함을 느끼기에는 현실이 그만큼 절박하고 참혹했다.


“날이 덥네...” 

“곧... 중복이잖아...” 


아침에 일어나 딸 연아를 친정에 맡기고, 강원도 평창으로 향하는 고속버스 안에서 서영은 민혁과 딱 이 한 마디만을 나눴을
뿐이다. 민혁과 서영은 한 부부였지만, 결국에는 두 사람이었다. 각자가 생각하는 것은 다를 수 있었고, 무엇보다 정체모를
컴퍼니와 마주할 것을 생각하면 긴장할 수 밖 에 없을 터... 이 긴장을 푸는 것은 결국 각자의 몫이었다.
 


‘누구의 장난이면... 어쩌지? 아니, 장난인 게 더 낫지 않을까?’ 


대화를 나누지 않았지만, 컴퍼니가 제안한 장소로 향하면서 민혁과 서영은 내심 이런 생각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참가를
할 수 밖에 없지만, 또 해야 하지만 마치 애들 장난처럼 한 날의 추억처럼 속아버렸으면 하는 심정으로 몸은 가고 있지만,
마음 속 진실은 끊임없이 컴퍼니의 제안을 거부하고 있었다.
 


- 고객님. 즐거운 여행 되셨는지요. 저희 A 고속은... - 


각자의 고민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어느새 고속버스는 평창에 도달했고, 버스터미널에 정차를 하자 민혁과 서영은
조심스럽게 버스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버스에서 내리자 도심과 달리 줄기차게 매미 울음소리가 민혁과 서영의 귀를
간질거렸고, 그들 부부를 향한 태양은 미래의 험난함을 예고하듯 용광로처럼 뜨겁게 달구기 시작했다.
 


“덥다... 정말...” 

“몇 시야?” 

“12시 가량... 1시간 정도 남았는데... 

“택시를 타는 게 좋겠어. 길도 잘 모르고... 어제 잠을 잘 자지도 못했으니...” 

“물론, 덥기도 하잖아.” 


짧은 대화를 나누면서 민혁과 서영은 억지로라도 힘을 내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택시 정류장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운이 좋네?” 


택시 승강장에 도착하자 서영이 말을 했고, 민혁은 의아스런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한 대 뿐이잖아.” 

“아하...” 


버스 터미널 승강장에 달랑 한 대의 택시만이 대기를 하고 있었다. 다른 버스 터미널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이었고, 이 모습을
보고 서영이 운이 좋다고 말한 것이었다.
 


“이것이 운이라면... 시작이 좋다고 해야 하나? 끝까지 함께 했으면 좋겠는데...”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은 민혁이 잽싸게 달려가 승강장에 홀로 대기 중인 택시를 잡았다. 몇 초 지나지 않아 서영이 도착을
했고, 민혁이 열어 놓은 뒷문을 통해 택시에 탔다.
 


“기사님. XX 리조트 실내스포츠 체육관? 그리로 가주세요.” 

“네.” 


뒤따라 택시에 탄 민혁이 목적지를 택시 기사에게 말했고, 택시는 시원스레 출발하기 시작했다. 


“이 한 여름에 리조트는 왜 가세요?” 


택시가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사가 민혁과 서영에게 질문을 했다. 여느 택시의 기사들처럼 손님과 대화를 하기
좋아하는 기사로 생각한 민혁은 약간은 뜸을 들이더니, 조심스레 대답을 했다.
 


“그야 볼일이 있으니까요.” 

“그래요? 이 한 여름에는 사람들도 없을 텐데....” 


말을 흐리는 택시기사때문인지 택시 안은 갑작스레 공기가 무거워졌다. 


“남편이 스키 장비를 다루는 일을 해요.” 


몇 초간의 정적을 깬 건 서영이었다. 서영은 고개를 오른쪽으로 살짝 돌려 남편에게 윙크를 했고, 민혁은 알아들었다는 듯
그녀의 오른손을 잡았다.
 


“그래요?” 


택시기사가 반문하듯이 대답을 했고, 그제야 민혁은 택시기사를 주의 있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구리 빛 피부로 보기 힘들만큼
새까만 피부를 가졌고, 재밌는 건 그보다 더 새까만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택시기사는 얼핏 보면 피부색
때문에 나이가 있어 보였지만, 자세히 보면 서른 살 언저리의 사내 같았다.


“얼마나 걸리나요?” 

“아? 리조트요?”

“네.”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이번에도 서영이 말을 꺼냈다 


“30분 쯤?” 

“그래요.” 


택시기사를 통해 30분이라는 시간은 들은 민혁과 서영은 아주 잠시나마 각자의 생각에 빠졌다. 30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
그렇게 고민하고 갈등을 해 온 문제에 다가설 것이고, 그것은 또한 현실이었다.
 


“세상에 참 도둑놈들 많지요?” 

“네에?” 


뜬금없는 택시기사의 말에 민혁과 서영은 자신만의 생각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거의 반사적으로 민혁이 대답을 했다. 


“IMF 있잖아요. 그거 뒤로 우리 택시들도 먹고 살고 힘들어지고....” 

“그러시겠죠.” 

“뭐... 대기업이다, 뭐다 다 줄줄이 부도를 내던데... 그래도 그 윗 놈들은 다 비자금 챙겨서 해외로 도주하고... 결국에는
 우리 같은 서민만 힘들어... 세상 참 엿 같다니까... 안 그래요?”
 

“기사님 말이 맞습니다.” 


택시기사의 ‘엿 같다’라는 말이 민혁의 가슴에 꽂혔다. 정작 본인도 IMF 사태의 최대 피해자가 아니던가. 어찌 보면, 부도를
내고 도망가는 대기업 총수처럼 그 흔한 비자금 하나 못 만든 자신이 미련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최소한의 것만 했다면
가족만은 지켰을 텐데... 그러나 그 또한 부정일 뿐 이라며 이내 곧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민혁이었다.
 


“아... 그러니까 우리도 사납금이라는게 있고...” 


말이 터진 택시기사는 그 뒤로도 한동안 혼자서 열변을 토했고, 민혁은 주로 듣기만 하였다.원래 택시를 타는 기사와 손님은
그런 관계였다.
 


“내가 어디까지 이야기 했더라... 아참... 리조트 실내체육관 갔다고 했지요?” 

“네.” 


한참을 이야기 하던 택시기사가 다시 한 번 뜬금없이 목적지에 대해 물었고, 민혁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을 했다. 


“아하... 거기라면... 다 왔는데... 3분 정도만 가면 됩니다. 

“그런가요?” 


목적지에 다 왔다는 말에 민혁과 서영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이제 정말 그곳이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다시 한 번 택시 안의 공기가 변했다. 어찌됐든, 지금껏 수다로 물론, 택시기사 홀로 말을 한 것이었지만, 한결 부드러웠던
공기가 이제는 그 택시 기사의 태도 변화로 다시 한 번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특히, 여자인 서영의 경계심은 커져만 갔다.
택시를 타는 처음부터 이상한 낌새를 느꼈던 그녀였다.
 


“무... 무슨 말씀이죠?” 


끼이익.... 


“아이쿠.” 


민혁의 물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택시는 급정거를 했고, 뒷좌석에서 안전벨트를 하지 않은 민혁과 서영은 앞좌석에 이마를
부딪쳤다.
 


“갑자기 왜 그러는 거요!” 


통증어린 이마를 매만지면서 민혁이 따지듯이 택시기사에 소리쳤다. 그러나 택시기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제는 두 분께서 가면을 쓰셔야겠습니다.” 


민혁이 눈미러를 통해 보는 택시기사는 까만 얼굴과 다른 새 햐안 치아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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