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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

착한 사랑 - 25부

페이지정보

글쓴이 19가이드 조회 6,294 조회 날짜 20-11-27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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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곧 아리가 화장실 문을 열고나오며 멍하니 자신을 쳐다보는 두 명의 남자에게 부끄러움을 느꼈는지 혀를 삐쭉 내밀고는
종종걸음으로 침대로 돌아왔다.


" 우리 아리 학생이 뭘 먹고 싶나??" 

" 음~~.. 먹고 싶은 건 무지 많은데.. 아직 배 때문에 죽만 먹으라고 했어요.."

" 죽?? 좋다 죽 먹으로 가자.. 요즘 나도 이가 시려서 딱딱한 건 못 먹는데.. 딱이구먼.."

" 참나.. 아깐 강철몸이리사면서.....아직 건재하시다면서요?"

" 내가?? 아고~~ 이제 치매까지 오나 부내...."

" 큭큭.. 진짜 기민오빠 아부지가 맞다.."

" 하하하하하하.. 아들아 뭐하냐!! 아리 학상 배고프시단다.. 빨리 모셔야지!"

" 예?? ,,,,예." 


자신도 모르게 꾸벅 인사를 하다 만 민기는 조금은 어리버리하게 아리를 챙기기 시작했다. 


" 근데... 오빠." 

" 응?"

" 정말 오빠 가족은 코미디 가족 같아요..크크.."

" ......"

" 오빠 아부지도 그렇고.. 넘 잼나셔서 아직도 배가 당겨요."

" 이..이거나 확인해 봐.."


죽집에서 철민과 헤어진 민기와 아리는 다시 병실로 돌아와 아까 챙겨왔던 봉지를 풀게 된다. 이게 뭐냐는 듯 바라보던
아리는 자신의 짐을 확인하고는 천천히 안의 물건들을 확인하며 체크하듯 꼼꼼히 살피곤 다시 봉지의 끝을 묶는다.
그런 모습을 옆에서 가만히 앉아 지켜보던 민기였고, 별로 많지도 않은 짐을 다 확인한 아리가 민기를 흘겨본다.


" 빨리도 챙겨 오셨네요.." 

" 응? 고시원비 아깝잖아.. 어차피 퇴원하자마자 우리 집에서 공부 할 텐데.."

" 피...."


" 기민씨.. 회장님이 이걸 전해주시랍니다."


갑자기 말도 없이 들어온 검은색의 양복 사내는 다짜고짜 민기에게 커다란 쇼핑백을 전해주고는 다시 정중히 인사를 하고는 나간다. 멀뚱히 나가는 남자를 쳐다보던 민기의 손에 들려 있는 쇼핑백이 궁금한지 아리가 빤히 그 쇼핑백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 그거 뭐에요?" 

" ...그..글쎄..."

" 어!.. 핸드폰이다.."

" ........"

" 어!!.. 그거 두개죠?"

" ....그러내..."


민기의 손에는 최신 폴더형 핸드폰 박스가 두개 들리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핸드폰하나 장만하라는 잔소리를 듣던 민기는
철민이 병원을 나가며 병원 앞에 있던 가게에서 개통까지 다 마친 핸드폰을 똘마니를 시켜 이들에게 전한 것이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 핸드폰 박스를 못마땅한 듯 바라보는 민기와 달리 신기한 듯 그 상자를 이리저리 살피는 아리였다.


" 하나는 아마 네 걸 거야.." 

" 예?? 제거요?"

" 그럴 거야...."

" 진짜?? 와!! 이거 최신형인데... 이건 노키아 꺼내..... 헛!.. 이건 나도 아는데.. 박지윤이 선전한 거....
 와!! 이거 저 정말 써도 되요?"


" 회장님이 딱 네 거랑 내꺼 맞춰서 제일 인기 있는 걸로 사서 보내셨나보다..."

" 울 친구들도 핸드폰 별로 없는데.. 이거 무지 비싸요...."

" ....."

" 요금도 어마어마하다던데... 받기만 해야겠다.....근데.. 정말 이거 써도 되는 거예요?"

" 요금 걱정은 안 해도 될 걸... 회장님 돈 정말 많아..."

" 근데.. 왜 아빠한테 회장님이라고 그래요?"

" ........그냥.. 버릇이야."


핸드폰이 신기한지 민기거까지 뜯어서 이리저리 만져보는 아리의 모습은 천상 고딩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사실 민기는
핸드폰을 좋아할 수 없는 물건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도 큰 불편 없이 동생들이나 다른 사람의 핸드폰을 급히
빌려쓰면 되는 생활을 했고, 지천에 깔린 게 공중전화인데 굳이 핸드폰을 살 필요도 없었던 민기였다. 아리를 만나고
핸드폰이 있으면 편하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건 민기가 소지하는 게 아닌 아리에게 하나 사주고 싶다는 생각이었지
갖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는 민기였다.


몇 년 전 갑자기 삐삐를 시작으로 선풍적인 인기몰이로 이제는 10명중에 반 이상이 핸드폰을 가지고 다니는 세상에 접어들
었지만, 민기에겐 핸드폰 자체가 족쇄처럼 보여졌기에 일부러 구매하지 않았다. 버튼을 누르면 전화를 어느 곳에서나 받아야 하는 핸드폰이라는 물건은 리모컨과 똑같이 민기에게 보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명령으로 움직이는 민기였기에 그런 감정은 더 몸에 와 닿아 텔레비전을 켜고 채널을 움직일 때 손가락 하나로 움직일 수 있는 리모컨과 텔레비전의 사이처럼 핸드폰으로 걸려온 명령대로 움직여지는 자신과 너무도 겹쳐보였기에 위에서 사라는 말에도 체질적으로 맞질 않는다는 변명으로
일괄하던 민기였다.


" 음~.. 단축번호 1번으로 오빠 핸드폰....어!~~... 여,,.여보세요?" 

" ....."

" 아저씨? 이게 뭐에요? 예??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예..잠시 만요. 오빠 바꿀게요."


아리가 민기에게 분홍색 자신의 핸드폰을 들이밀며 받으라는 듯 손을 뻗는다. 


" 여보세요?" 

[나다. 역시 젊은것이 빠르긴 빠르구나.. 벌써 전화를 걸고,]

" 이건 저한테 필요 없습니다.. 회장님.."

[누가 너보고 가지고 다니래?!! 그거 아리 번호잖냐.. 아리꺼야!]

" 제걸 말하는 겁니다."

[미친놈.. 꼬우면 버리던가.. 내가 너한테 핸드폰 보낸 게 이걸로 정확히 3개째다!! 또 없애버리면 돼지 뭔 말이 많아!!
 하긴 아리 학생하고 통화하려면 핸드폰이 편하긴 하겠지만..]


" ...회장님."

[아따. 고집하곤.. 그럼 난 이만~~그리고.. 그 두개.. 커플 요금제란 거다...낄낄낄~..]

" .,.회..회장님.."


"피~~ 내놔요! 그거 제거란 말예요!" 

" .....이런 거 받고 싶어?"

" 뭐.. 난 X세대 아닌가.. 요즘 이게 얼마나 유행인데..."

" 아리야.. 아무리..회장님이 재밌어 보여도.. 그분도 깡패야.. 더럽게 번 돈으로 이런 걸 준걸수도 있어.. 그런데 받고 싶어??"

" 오빠..."

" ......"

" 이 세상에 더러운 건 사람이지.. 돈은 더러운 게 없어요..."

" 네가 잘 몰라서 그런 건데.. 그 돈은 약한 사람들 피를 빨아서 만든 걸 수도 있어..정당하게 일해서 번게 아닐 수도 있다고.."

" 그러니까.. 나 같이 깨끗한 사람이 좋은데 써줘야죠!"

" ......뭐?"

" 나쁘게 번 돈이라면.. 그걸 물건을 팔고 받은 슈퍼 주인이나 장사하시는 분들은 전부 나쁜 돈이라고 버려야 되요?"

" ..."

" 정말.. 돈이란 게 무서워요.. 돈 없어서 죽을 수도 있고,, 돈 없어서 무시당하면서 살수도 있다는 거.. 오빠도 잘 알잖아요..."

" 너,.. 변했구나.."

" 피~~ 그럼 언제까지 꼬맹인 줄만 아셨나??"

" ....."

" 얘기했잖아요... 전 의사 될 거라고......"

" ...의사?"

" 저 황소고집인거 모르세요? 한다면 합니다요!!.. 그리고 진짜 병원 차릴 거예요.."

" 병원?"

" 보건소처럼.. 누구나 들어와서 누구나 치료 받을 수 있는... 그런 곳으로요.."

" ...."

" 그런데 아무리 머릴 굴려봐도.. 돈이 있어야 하겠더라고요... 그러니까!! 나쁜 사람 돈이건 좋은 사람 돈이건 닥치는 대로
 기부 받을 거예요..."

" 기..부??"


" 물론 치료하면서 돈도 받겠지만.. 그래도 아픈 사람한테는 우선 치료 후 지급이라는 모티로!! 그러려면 똑순이가 돼야죠..
 안 그래요?"

" .....참나... 네가? 똑순이를 한다고? 똑똑한 사람을 똑순이라고 하지 않던가?"

" 씨~~~....의미를 조금 비틀어서.. 영악한 사람이라고 해주세요.. 하여튼.. 이전의 아리가 아닙니다요!!"

" ......잘 모르겠다.."

" 누가 알아 달랬나... 쓸데없는 말하지 말고.. 일루 와 봐요.. 이것도...엇.. 이것도 단축번호 1번이 오빠 아빠로 되어있네..
 다 바꿔야지 크크크크"


" ......."

" 아!!..."


아리가 무슨 생각이 났는지 황급히 민기가 가져온 봉지를 재차 확인하기 시작한다. 그리곤 안까지 뒤지더니 민기를 귀엽게
흘겨본다.
 


" 왜?... 뭐 안 가져 왔어?" 

" .....이거... 오빠가 다 가져온 거예요?"

" 응?..응."

" ....다 봤죠?"

" 뭘?"

" ......속...옷.."

" 그럼 다 챙겨 가져오려면....당연한 걸 뭘 물어봐?"

" ..씨~."

" 야! 그딴거 줘도 안 가져! 참나... 브라는 하나도 없고...달랑 하나 있는 팬티도 애기들 것도 아니고.. 뭐가 그렇게 조마나냐.."

" .....그...래요?"

" ....."

" 흠...그렇다는 거죠?...알았어요 이제 그만 돌아가세요.."

" ...."


집에 가서 자라는 아리의 말에도 꿋꿋이 자리를 지키는 민기였다. 말이 삼인병실이었지 사실 민기의 부탁으로 병실 안에는
아리만이 쓸 수 있도록 나머지 베드 두개를 전부 아는 여자의 이름으로 채워놓은 상태였기에 병실입구엔 만실로 되어있지만 사실상 독방과도 마찬가지인 조용한 병실 안에서 아리와 민기만이 남이 있다. 
민기의 고집을 결국 꺽지 못한 아리는 조용히 문제집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민기는 익숙한 듯 너무도 편한 자세로 불펀하게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아리가 눈을 감고 있는 민기에게 말을 건다.


" 오빠.." 

" 응?"

" 저 진짜 잘래요."

" 그래? 불 꺼줄까?"

" 예... 그리고 오빠도 그러고 있지 말고 집에 들어가서 편히 주무세요.."

" 난 걱정하지 마.. 너 잠드는 거 보고 들어갈 테니까...."

" ..하여튼 고집은...."


병실 안이 소등이 되고 아리는 다시 의자에 앉는 민기를 못마땅한 듯 바라보다간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쓰곤 잠을 청하기
시작한다. 그런 아리의 모습에 피식하고 한번 웃고는 다시 눈을 감고 의자에 몸을 기대게 된 민기였다. 너무도 조용해 밖에서 간호사들이 끌고 다니는 기기들의 비걱거리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던 병실 안은 곧 아리의 세근 되는 숨소리로 부드러운
음악을 민기에게 들려주기 시작했다.
 


애당초 집에 갈 생각이 없던 민기였기에 아리가 잠이 들자 옆에 비어있는 침대로 몸을 옮겨 누워버렸다. 아리와 한시라도
빨리 집으로 들어갈 생각에 예상치 못한 긴장을 하며 어두운 천장을 이제는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 한참을 바라보며
어느새 잠이 든 민기의 귀에 옆 침대에서 아리가 누워있는 쪽에서 흐느껴 우는 소리가 나즈막히 들려오기 시작했다.

분명 아리의 목소리였다.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상체를 들어 아리를 빤히 쳐다보았다. 


" 흑~~..어..엄마.....아..아파......어..엄마...." 


흐느껴 울며 아리가 엄마를 조용히 부르기 시작했고,민기 앞에선 한 번도 내색 한적 없는 투정을 부린다. 

곧 투정이 아닌 고통이 뒤섞인 소리 없는 절규처럼 민기의 가슴을 짓누르는 소리로 전해졌기에 민기가 조용히 일어나
머리끝만 내놓고 있는 아리의 이불을 조용히 걷어본다. 
무서운 꿈을 꾸는 건지 복부에 전해지는 고통으로 본능적으로 엄마를 찾는 건지 확실한건 눈을 감은 채 깨지 않은 아리란 걸 알게 된 민기였다.


항상 밝은 척하며 자신을 돌봐준다고 하던 아리였는데 어제 자신이 편하게 잠이 들었을 시간에 오늘처럼 이런 악몽에 시달렸을 거라는 생각에 민기가 더 애처롭게 아리를 바라보게 된다. 연신 훌쩍이며 아리가 고통스러운 듯 끙끙거리기고 있었기에
민기는 조심스럽게 얼굴 앞에 놓여있는 아리의 손에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손을 포개어 잡게 된다. 
흠칫 놀란 아리가.. 

눈을 떠 민기를 바라보더니 자신이 울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는지 고개를 숙여 눈물 흘리던 얼굴을 숨기며 이불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 괜찮아?" 

" ........"

" 간호사 불러줄까?"

" ...아니요."

" 악몽 꾼 거니?....... 다시 자.. 내가 옆에 있을게.."

" ......"

" 불편하면 다시 자리로 돌아갈.."

" 오빠.."

" ...응?"

" 옆에 있어주면 안 돼요?"

" ...."

" 무섭기도..하고.... 혼자 병실에 누워있으려니까....."

" 그래.. 그럼 손잡고 여기 앉아 있을게..."

" ..."


그제야 아리가 이불속에서 눈물을 훔치고 동그란 눈만 빼꼼히 내놓은 상태로 민기를 바라본다. 간의 침대에 앉아 낮은 자세로 아리를 쳐다보며 앉아 있는 민기의 얼굴을 몇 번이고 확인하듯 감은 눈을 떠 바라보기를 반복하는 아리의 모습에 민기가 입을 연다. 


" 왜? 잠 안와?" 

" ....저.. 안아주세요."

" .....뭐?"

" 오빠.. 힘들 때... 제가 안아줬잖아요..."

" ......"

" 이번엔.. 오빠가 안아주면 안 돼요?"

" 배..배때기에.. 상처 있는데 어떻게 안아?"


아리가 기다렸다는 듯 상체를 벌떡 일으키기 시작했고,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때문인지 몸을 세우다 말고는 복부에 손을
얹고 잠시 고통스러워한다. 그런데 또 민기를 보고는 웃는다.
 


" .......윽.....헤헤..." 

" ....참나."


'팡팡!~~' 

아리가 침대의 귀퉁이로 움직여선 비어있는 자리를 손으로 내리치며 귀엽게 또 미소 짓고는 재촉을 한다. 


" 얼른요.." 

" ...뭐?"

" 여기 와서.. 누우라고요."

" ...얘..가... 미쳤어..."

" 으응~~"

" 너 환자야.. 그리고 1인 1베드 모르냐? 좁아터진 침대에서 뭔 잠을 잔다고.."

" 으응!~~~!!~~"

" 야!.. "

" ..."

" 아리야.. 너 그러다가 상처 벌어져..내가.. 칼침을 많이 맞아봐서 아는데.. 일주일동안 절대 안정해야 돼.."

" ...치~.. 거짓말쟁이.."

" ..."

" 구라쟁이.."

" ....."

" 자기 힘들 땐 안아달라고 보채고.. 나 힘들 땐.. 이런 부탁도 안 들어주고...."

" ......"

" 진짜.. 깡패가 맞네!.. 거짓말만 하고.. 화만 내고.."

" ..아..알았다!.. 그러니까.. 그 깡패 얘기 좀 그만 해라.."

" 큭큭.."


'팡~팡~'

" 알았다니까... 에휴..."


민기가 마지못해 침대의 빈자리를 차지하고 눕자 아리가 정말 많이 기다렸는지 이불을 민기에게 덮어주며 바짝 몸을 기댄다. 풍만한 가슴과 아리의 가는 팔이 민기의 몸에 밀착하듯 닿게 되었다. 좁은 침대도 이유 중 하나였지만, 사람 정에 많이 굶주린 아이처럼 아리가 너무 바짝 붙었기에 민기는 어색한 듯 몸을 옆으로 꼼지락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 쓰읍~~" 

" ......부..불편하지 않아?"

" 오빠 불편해요?"

" ...그..건 아닌데...."

" 전 편한데.."

" ......."


수술 후 피로 물들어 휴지통에 버린 브래지어라서 환자복 속에 아무것도 착용하고 있지 않은 아리였기에 민기의 팔꿈치에
부드러운 감촉의 물컹한 물체가 직접 닿아 일그러지듯 감싸기 시작했고, 하마터면 민기는 숨을 참다 질식할거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아리가 더 바짝 다가오며 얼굴을 민기의 팔을 낑낑대며 올려선 팔베개를 만들어 베어 눕는다.
 

설상가상으로 민기의 옆구리에 닿는 부드러움의 극치를 선사하는 감촉에 다시 숨을 참게 되는 민기였다. 심장은 터질 듯 요동치고 있었기에 아리가 배를 감싸 안고 있는 팔에 그 감촉이 느껴질까 두렵기까지한 민기였다.


한 숨도 못잔 민기다. 머릿속에 온통 '다마~~다마~~'라는 단어가 어지러이 돌아다니며 괴롭혔기에 끝내 잠을 못잤다.
민기의 생활환경이란 것이 말 그대로 욕정을 풀 대상이라면 상관없다는 식이었기에 남자라면 당연히 인테리어를 해서
여자를 죽여줘야 한다는 큰형님의 농담섞인 조언을 듣고 초반에 박은 구슬이었는데, 아리의 입에서 듣게 된 다마라는
단어는 전혀 예상치도 못한 충격으로 민기를 괴롭히게 되었다.


아리의 질문에 이미 잠이든 듯 코골기를 시작한 민기였고, 잠시 동안 아리의 따가운 시선을 뒤통수에 고스란히 느끼며 다시 한 번 식은땀을 흘리게 된다. 겨우 아리가 잠이 들었는지 곧 아리의 세근거리는 소리가 다시 들리자 민기는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오게 된다. 또 한 번의 수군대는 간호사들의 시선을 받으며 병원에서 겨우 빠져나오고 나서야 한숨을 돌린 민기였다.


새벽 4시의 병원 길목은 한산하다 못해 음산했다. 혼자 그 긴 내리막을 걸어오는 동안 민기는 왠지 모를 씁쓸함에 기분이
가라앉으며 군데군데 길목을 비추는 가로등의 불빛을 받으며 터벅걸음으로 내려가게 된다. 예상치 못한 긴장감이 풀리자
지나간 여자들을 머릿속에 하나하나 떠올려 보지만, 역시 기억속의 여자는 수지 외에는 뚜렷이 남는 얼굴이 없다는 것이
그 쓸쓸함을 더해간다. 술에 취해 여자를 안은 적도 있었고, 일로 인해 받은 스트레스를 풀려 여자를 안은 적도 있었다.
정이 없는 욕정의 분출구로 여자를 대했던 지난 날의 자신이 몹쓸 놈이었다는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엘르로 향하게 된다.


" 어.. 기민 사장.." 

" 안녕하세요."

" 그렇지 뭐.. 근데.. 아리는?"

" ...."

" 괜찮아?"

" ....예.."

" 다행이다... 난 또 큰일 난줄 알고..."

" 그것보다.. 수지 있어요?"

" 수지?? 지금 손님하고 있는데.. 왜? 불러줘?"

" 아니요.. 기다릴게요.. 빈 방 있죠?"

" 그럼.. 없어도 만들어야지.. "

" 사장님..."

" ,,응??"

" 고맙습니다..."

" 뭐??..."

" 이번... 아리일에 신경 써주신것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고맙다고요..."

" 허~... 내가 오래 살았나보네.. 기민사장한테 고맙다는 얘길 다 듣고.."

" ......"

" 여기 들어가 있으라고.. 수지 불러다 줄게.."

" .....예."


테이블에 앉아 담배를 입에 무는데 불을 붙이기도 전에 수지가 들어온다. 

분명 엘르 사장이 독촉이 있었던 듯 수지의 표정이 그리 밝아보이지 않아 보였다. 


" 왜?" 

" ............"

" 뭐야?!! 바쁜 사람 불러 놓고 장난쳐?"

" ....앉아."

" 이제 막나가는구나.. 그딴 계집애 좀 다쳤다고... 화풀이할 상대가 필요하냐?! 왜 여기 와서 사람 오라가라 해??"

" 그런 거 아니야...."

" ....."


화를 낼 타이밍인데, 민기가 담배에 불을 붙이며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에 가만히 지켜보던 수지가 그 옆자리에 앉아 민기의 담배를 뺏어 문다. 화를 돋구는 짓인 걸 뻔히 아는 수지였지만 도발에도 가만히 있는 민기만큼 폭풍전야의 고요한
공포를 몰고 오는 남자도 없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수지였기에 더 화를 돋구게 된다.

그런데도 민기는 가만히 담배를 하나 더 꺼내 입에 물기만 할 뿐이다.


" 너... 왜 그래?" 

" ....뭐가?"

" 또.. 사고 칠 일 있어?"

" ...."

" 누...굴...... 죽여야 돼?"

" .....씁."

" 그럼 뭔데?? 아리가 다친 게 그렇게 큰 충격이었어?"

" .... 그렇게 보여?"

" 너.. 그런 표정 짓고 있다가 사라지면..... 남은 사람은 얼마나 걱정되고 무서운지 알아?"

" ...."

" 참나.... 됐다... 이제 무슨 상관이라고..."

" ....수지야... 내가 예전에...너한테 막 대했지?"

" ........"

" 그냥....생각을 해봤더니 미안한 일만 생각이 나서.."

" 갑자기 무슨 말이야?"

" ....아리가....."

" 잠깐!!...........지금 여기 와서... 그것도 옛날 여친한테 다른 여자 얘기하는거니?"

" ......"

" ..내가 바보 같니? 아니면.. 내가 쉽게 보여?"

" 그건 또 무슨 말이냐.."

" 내가.. 너 처음 만난게 4년 전이야...기억나?.. 너 정말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만큼...
 근데 정작 옆에 있는 사람은 매일 피 말린 거..."


" ...그랬구나."

" 너 나한테.. 화내고.. 집에 있는 거 다 부시고 나가고...일주일이나 연락 안 되고.. 그러다가 또 들어와서 날......."

" ...."

" 그런데.. 지금 아리란 계집애한테는 뭐?.... 너 정말 너무한 거 아니야?"

" .....미안."

" 뭐가!! 뭐가 미안한데!.....참나.. 어이없다.. 뭐? 미안?.. 날 사람으로 보긴 했니? 지금 너 아리한테 하는 거 보면..
 난 사람 같지도 않아.. 알아?!!"

" ....."


담배를 입에서 때어내는 수지의 손이 떨리고 있다는 걸 고개 숙인 민기는 몰랐다. 항상 냉정하며 정 없는 민기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건 사실 동민보다 예전에 같이 살을 맞대고 살았던 수지 일 것이다. 그리고 근래 몇 달 동안 민기의 변한 행동에 가장 놀란 것도 동민이 아닌 수지였다.. 그만큼.. 과거 민기가 자신에게 했던 행동에 배신감을 느끼게 된 수지였다.

엘르의 넘버원이라는 자존심이 없었다면 아니, 아리가 불쌍하지 않았고 착한 아이가 아니었다면 이미 진작에 아리를 괴롭히고도 남을 수지였다.


" 그래.. 얘기 좀 들어보자.. 뭐가 미안한데?" 

" 가슴.. 아프게 했다면.. 미안하다고.. 사실... 난 아리 만나기 전엔.. 그냥 쓰레기였어.. 죽을 날 받아 놓은 놈 처럼......."

" ....."

" 사람한테 정 주는 게 가장 싫었다고... 아니.. 두려웠다고.... 칼질하고.. 칼 맞고.. 사람 패고.. 찌르고.. 그리고 언젠간..
 내가 죽어야 하니까.. 똑같이 나도 칼침을 맞을 때가 올 테니까.. 정을 주면 안된다고.....그런 생각이었는데...."


" ...진짜.. 나쁜 새끼다.. 너..."

" ...."

" 그런데? 그 새파랗게 어린년한테 정주고 나니까.. 그런 게 무섭다? 그런 게 싫다고? 지금 나한테 와서 할 소리냐! 이....."

" .......수지야.."

" 내 이름 부르지 마!! 성질 같아선.. 지금 너한테 물이라도 뿌리고 싶은 게 내 마음이야....내가 어떻게 참고 있는지 알면.."

" ..수지야 미안해..."


'파직!!!!' 


수지가 참지 못 하고 테이블에 엎어져 있던 유리잔을 민기를 향해 던졌고 그대로 벽에 부딪혀 박살이 나버린다. 그 파편이
민기의 볼에 길게 상처를 내며 피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래도 분이 안 풀리는지 민기를 매섭게 노려보며 떨리는 입술로 어렵게 말을 잇는 수지였다.


" 내...이름 부르지 말라고...." 

" ...."

" 기껏 이제 와서...나한테 그렇게 모질게 했던 걸 용서해달라는 거야? 아니면.... 나한테 지금 자랑하는 거니?
 왜? 축하라도 해 줄까?"

" ...."

" 됐다... 동민씨 와서 얘기 하더라 둘이 합친다며...이제 아리가 여기 올 일도 없고 네 재수 없는 상판도 볼일 없으니까..
 그만하자...그래.. 내가 미친년이지.. 옛정이라고 아리 챙겨준것도 미친짓이고.. 너한테 뭘 기대한....가라....
 그 어린년하고 배꼽마추면서 잘 살아보라고."

" ......"


수지가 벌떡 일어나 룸의 문으로 걸어간다. 문고리에 손을 얹는데 수지의 귀에 믿지 못할 말을 민기가 꺼낸다.


" 아리... 동생이야." 

" ..........."

" 어릴 때... 내가 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가장 가깝게 지낸 사촌동생...."

" .....뭐?"

" ......."

" ......"


조용한 엘르의 룸안에 고개 숙이고 앉아 있는 민기를 빤히 쳐다보는 수지였다. 


" 너.. 미쳤구나...." 

" ....."

" 사촌 동생?...그런데 지금 뭐하는 짓이냐...."

" ....."

" 아리는 알고?.....애 데리고 장난질 치냐?"

" 그런 거 아니야.."

" 그럼? 너 정말로..."

" ......."

" 진짜.. 미쳤구나... 돌았어... 네가 뭔 짓을 하려는.."

" 안다고!!! 그래 나 미쳤다!"

" .........."

" 그런데... 그 애 얼굴 보고 있으면 예전에... 손에 피 묻히지 않았던 그때로 돌아간 거 같은데 어쩌라고!... 내가 사람 목에
 칼 들이밀고.. 사람 배때기에 날 쑤시기 전으로... 돌아간 거 같은데.. 나대신.. 칼 침 맞았을 때... 아리가 배에 상처 입었을
 때가.. 지금까지 느꼈던 분노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걸...
 정말로 사람을 찢어 죽이고 싶은 감정이란 게 어떤 건지 알게 됐다고.."


" ......다..담배 줘봐.."

" ......"


민기가 테이블 위에 담배를 내려놓자 수지가 더 떨리는 손으로 담배에 불을 붙인다. 길게 한 모금 들이마신 수지는 어처구니없는 이 상황에 민기를 빤히 쳐다보게 된다. 자신이 알고 있던 민기는 화를 내도 진심이 없었다. 섹스를 할 때에도 진심은
없었다. 
그리고 수지가 애교를 부리고 사랑을 말을 할 때에도 그런데 지금 진심으로 자신에게 자신의 감정을 말하는 민기
였기에 더 당황스럽고 기분이 나쁜 것을 넘어 기가 찰 정도였다.


민기도 마찬가지였다. 단순히 수지에게 자신의 과거를 묻고 싶었고, 사과를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옮긴 발걸음이었는데...
수지의 반응에 자신도 모르게 속내를 들켜버린 지금 상황이 당황스럽고 창피했다.


" 나중에 얘기하자... 나 그만 갈게..." 

" ...........진짜야?"

" ....뭐가?"

" 진짜.. 아리한테...........사랑이란 걸 느끼는 거야? 사촌동생인데? 피가 섞인 사촌동생인데도??"

" ......"

" ....그걸... 아리가 알게 되면?... 너 이상한 놈 되는 거야......그거 알고 있니?"

" 알기 전에....."

" 알기전에?"

" ........"

" 뭐?"

" 그전에 아리.."

" 수지야!!...어!.. 혀..형님." 


" ..."

" ...."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온 직원으로 인해 둘의 대화가 끊어지게 된다.
화를 내려던 수지는 곧 곤란한 표정의 남자직원 얼굴에 입을 다물게 된다.
 


" 손님이.. 거의 난동을 부리기 직전인데..요.." 

" ....알았어."


" ....."

" 가라... 나중에 얘기하자.. 나도 생각 좀....하여튼 가라.."

" ...."


괜한 힘을 뺀 건 아닌지, 괜히 엘르를 찾은 듯 느끼며 민기는 힘없이 흥신소 사무실로 향하게 된다. 사무실로 간다고 기분이
풀릴 리 없었지만, 그렇다고 혼자 집에 들어가긴 더 싫은 민기였다. 항상 혼자 쓸쓸이 집으로 향한 민기였다.
아리의 가구가 들어찬 작은방을 보게 된다면 또 갈등을 할 자신이 뻔했기에 결국 흥신소로 향하게 된다.
 


흥신소의 계단을 오르는데 요란한 사이렌 불빛이 민기의 발목을 잡는다. 이미 새벽 5시가 넘어가는 시간인데 발걸음을
멈추고 입구의 구석에 몸을 숨겨 봉고차와 함께 경찰차 한대와 낯선 승용차 한대가 엘르의 입구를 막고 주차하는 모습을
보게 된 민기였다. 사전에 단속이 있을 경우 미리 연락이 오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었고, 일부러 잡혀주는 술집이 있는 것도
이 바닥에선 모르는 이 없는 규칙 중 하나였지만, 오늘은 어떠한 정보도, 그리고 엘르의 차례도 아니었다.

급습을 하듯 작전이 짜여진 대로 신속하게 엘르의 정문을 지키고 선 한명의 경찰관을 제외한 나머지들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민기는 새로 받은 휴대폰으로 동민에게 전화를 걸게 된다.


일사천리처럼 쳐들어간 경찰관들의 손에 여러 명의 남자 손님들과 엘르의 직원들이 신속하다는 단어가 어울릴 정도로 줄지어 끌려 나오기 시작했고, 전화를 받지 않는 동민이었기에 민기는 지나가는 행인인 냥 우연인 척 걸어 나가 구경을 하듯 몇 명의 사람들과 섞여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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