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들의 행진곡 - 57편 > 야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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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

모자들의 행진곡 - 57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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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9가이드
댓글 0건 조회 26,153회 작성일 22-05-10 17:29

본문

아까는 경황이 없어서 정신이 없었던 명숙은 약국문을 닫고 부엌에서 차를 끓이다가 진정을 하게되자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국민학교
저학년까지는 학교선생님들이 가정방문을 하는것을 들어봤어도 고등학교 선생님이 그런다는것은 한번도 들어보지를 못했었다. 그녀가
학교를 다닐때도 마찬가지였었다. 선생님이 선규에게 각별한 관심을 가져준다는 뜻이기도 해서 기분은 좋았으나 그래도 뭔가가 석연치
않았다. 아무래도 선규가 선생님의 집을 자주 찾아가서 저렇게 챙겨주나보다하고 이해할려고 했지만 방에 들어와서 얘기를 하다보니
아들을 보는 그녀의 눈길도 예사롭지가 않았다. 그것은 스승이 제자를 바라보는 눈길이 아니었다.

여자의 직감으로  자꾸만 그이상의 알수없는 애정어린 눈길로 느껴졌다. [선규와 이런 관계를 갖고 있다보니 내가 잘못 보는건가?...]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고 자신을 탓하면서도 계속해서 신경이 쓰였다. 힘이 없어 보이는 선규는 그런 그녀와 선생님을 희미한 눈으로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 선규에게 잘 해주신다는 말을 들었는데 찾아가서 감사하다는 말씀도 못드려서 죄송하기만 합니다"

"아닙니다... 마땅히 제가 해야 할일을 하는건데요... 선규가 그동안 잘해주어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선규가 선생님댁을 자주 찾아갔는데 귀찮게 해드린거는 아닌가 하네요"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선규가 음악에 재능이 있어서 음악교사로서 가르쳐주는게 즐겁고 보람이 있어요... 그러니 괘념하지 마세요"
 

그말을 들은 명숙은 문득 선규와 선생님이 그녀의 집에서 단둘이 어떻게 있었는지가 궁금해졌다. 느낌으로는 둘이 상당히 친한 사이인것
같았다. 선생님의 얼굴을 주의깊게 살펴보았으나 가끔가다 선규를 애정어린 시선으로 쳐다보는것외에는 별다른 이상한 점을 찾아볼수가
없었다. 잠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선생님은 찻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 가봐야 하겠습니다... 제가 어머님의 시간을 뺏는것 같네요"

"여기서 저녁을 드시고 가시지요"

"말씀만으로도 감사하지만 이왕 여기까지 온김에 태수어머님께도 인사를 드리고 갈려고요... 그리고 선규도 쉬어야지요"
 

태수네도 간다는 말에 명숙은 품고있던 알수없는 의심을 지우고 선규에게 원망스러움이 들었다.
[제자들을 챙겨주는 정이 많은 사람인가 보구나... 하여튼 선규때문에 점점 이상하게 되가네... 그런 쓸데없는 생각이나 하고] 선생님은
인자한 얼굴로 몸을 일으키는 선규를 만류하며 말했다.
 

"일어날거 없고 몸조리 잘 해라... 다 낫고 나중에 시간있으면 우리집에 한번 찾아오고"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몸이 좋아지면 연락드리고 찾아가 뵐게요"
 

선규의 인사를 받은 선생님은 잔잔한 미소로 답하고는 명숙과 방을 나왔다. 그리고는 밖으로 배웅나오는 명숙에게 물었다.
 

"혼자서 자식을 키우시기가 많이 힘드시죠?"

"네?"

"선규와 태수가 어머님들을 걱정하는 말들을 몇번 들었어요"
 

뜻밖의 질문을 듣고 어리둥절하던 명숙은 그말을 듣고 겸연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자식을 키우는거는 누구에게나 힘들죠... 선생님도 자식들이 둘씩이나 있으시다고 들었는데 저보다 더 힘드시겠어요"

"선규가 어머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아주 남다른거 같애요... 태수도 그렇고. 요즘세상에 자식들이 그렇게 자기어머니를 생각하는거는
드문데 그런걸 보면 두분 모두 훌륭한 어머님들이신거 같네요"

"과찬이십니다... 다른 부모들처럼 할려고 하는데 애가 잘 해주니 그저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이렇게 좋으신 선생님을
만나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고요"
 

그리고는 정중히 인사를 나눈 명숙은 더이상 밖으로 나오지 말라며 만류하고는 길건너 태수네로 가는 선생님의 뒷모습을 아파트안으로
사라질때까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설겆이를 하던 태수는 초인종 소리를 듣고 문을 열다가 선생님을 보고 깜짝 놀랬다.
 

"선생님께서 왠일이세요?"

"선규네집에 갔다가 마침 너도 옆에 살길래 어머님께 인사도 드릴겸해서 들린거야"
 

그러는 선생님은 태수의 두손에 끼워져 있는 고무장갑들을 보고 웃었다.
 

"저녁은 먹었니?"

"네... 어서 들어오세요"
 

태수의 안내로 선생님이 들어오는데 방에서 누가 온 소리를 들은 혜영이 나오다가 기겁을 했다.
 

"서..선생님 아니세요?"

"그동안 별고 없으셨는지요?.. 연락도 못드리고 이렇게 찾아뵈서 죄송합니다"
 

뜻밖의 방문으로 놀란 혜영이 아무말도 못하고 그저 허리만 숙이며 인사를 나누자 태수가 옆에서 말했다.
 

"선규문병 가셨다가 들리셨데요"

"그렇다고 저희집까지 찾아주시니....."
 

황송해진 혜영이 선생님이 주는 쥬스상자를 두손으로 받을려고 하자 태수가 얼른 받았다. 그래서 그녀는 급히 방석을 꺼내 정중히 권했다.
 

"누추하지만 여기에 앉으시지요"

"제가 불쑥 찾아와서 폐를 끼치는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폐라니요? 선생님께서 이렇게 태수에게 신경을 써주시니 그저 감사할 뿐이죠"
 

그러자 옆에서 태수가 입을 열었다.
 

"선생님, 져녁은 드셨어요?"

"집에가서 먹을테니까 신경쓰지 마라"

"그럼 커피라도 내올까요?"

"선규집에서 마시고 왔어"
 

태수와 선생님의 대화를 멍하게 듣던 혜영은 그제서야 태수의 손에 고무장갑이 끼워져 있는것을 발견하고 황급히 벗겼다. 자식의 선생님
앞에서 설겆이를 시킨다는게 몹시 민망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준비할테니 넌 어서 선생님옆에 앉거라"

"저는 정말 괜찮습니다... 어머님께서도 앉으시지요"
 

그말을 듣고 웃고있는 선생님옆에 조심스럽게 앉으며 입을 열었다.
 

"제..제가 할일이 좀 있어서 태수에게 설겆이를 시켰습니다"

"어머님을 돕는게 보기 좋네요"

"엄마가 하지 말라시는걸 제가 그냥 하고 있었던 거에요"
 

태수의 말에 혜영은 입을 벌리며 쳐다보았고 선생님은 그저 미소만 짓고 있었다. 아들에게 나무라는듯한 눈짓을 준 혜영은 다시 자세를
바로하고 공손하게 물었다.
 

"과일이라도 드시는게 어떠실련지....."

"아닙니다... 그냥 어머님께 인사를 드리고 태수가 어떻게 사나 궁금해서 들린거니까 마음쓰지지 마세요"

"그래도 어려운 걸음을 해주셨는데 대접을 안해드리는거는....."

"정말로 괜찮습니다... 이러시면 제가 죄송스러워집니다"
 

선생님의 간곡한 만류에 할수없이 자리에 앉아있기만 하는 혜영은 놀란 가슴이 계속 뛰고 있었다. 태수의 선생님이 집을 찾아오는것은
처음있는 일이라서 뭘 어떻게 대접해야 좋을지 도무지 알수가 없었다. 
[내가 이렇게 놀라는데 명숙이도 많이 놀랐었겠구나...]
그러는데 선생님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선규네집과 바로옆에 있어서 찾아오기가 참 편하네요"

"제가 그동안 자주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이렇게 선생님을 오시게해서 송구스럽습니다"

"저보다 더 바쁘실텐데 응당 제가 찾아빕는게 도리죠"

"선규는 좀 어떻습니까?"

"열이 많이 내려서 이제는 괜찮아진거 같애요"
 

저번처럼 명숙이 옆에 없고 혼자 선생님앞에 앉아있는것이 어려워서 혜영은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를 몰랐다. 더군다나 지난번 촌지의
일이 떠올라서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느낌이었다.
 

"저, 지난번에 선생님께 드린것은....."
 

그러자 선생님은 태수를 살피면서 재빨리 혜영의 말을 끊었다.
 

"주신 책은 감사하게 잘 읽었습니다... 어머님께서도 제가 드린 책이 마음에 드셨는지요?"

"예... 선생님의 깊으신 마음에 감사했습니다"
 

당황한 나머지 생각없이 태수앞에서 촌지얘기를 꺼낼뻔 한 자신을 자책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부드러운 표정으로 태수와 그녀를 번갈아
보더니 말했다.
 

"혼자서 많이 힘드실텐데 태수가 옆에 있어서 든든하시겠어요"
 

그순간 혜영의 볼이 빨개지면서 급히 대답했다.
 

"태수만 바라보고 사는데 다행히 애가 잘 해주니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개를 약간 숙이고 조용히 말하는 그녀옆에서 태수는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얼마동안 얘기를 나눈 선생님은 정중히 인사를 한다음 집을
나갔다. 태수와 밖에까지 나가 배웅하고 돌아온 혜영은 현관문을 잠그고 깊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옆에서 싱글벙글 거리고
있는 태수를 쳐다보았다.
 

"넌 뭐가 그렇게 즐겁니?"

"엄마가 마치 선생님을 대하는 학생같아 귀여워서요"
 

그소리에 그녀는 혀를 차며 웃었다.
 

"난 네선생님들만 보면 왜 이렇게 어려워 하는지를 모르겠다"

"엄마가 죄지은것도 없는데 왜 그러세요? 편안하게 생각하세요"
 

그러나 마루로 들어오는 혜영은 아직도 두근거리는 가슴을 잡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특히 지금의 네담임선생님은 빈틈없이 보여서 너무 어렵다... 너는 매일 선생님을 보면서 아무렇지도 않니?"

"첫인상이 그러신데 알고보면 공정하고 자상하신 분이세요"

"아무튼 갑자기 선생님이 찾아오셔서 심장마비가 걸리는줄 알았다... 선규엄마도 많이 놀랬을거야"
 

그리고는 방으로 들어가다가 다시 돌아서더니 따지듯이 말했다.
 

"참... 앞으로 절대 설겆이 하지마라... 선생님앞에서 얼마나 민망했는줄 아니?"

"엄마를 도와드리는건데 어때요?"

"그래도 내가 있는데 네가 부엌일을 하는걸 남에게 보이기는 싫어"

"요즘은 남자들도 부엌일을 하니까 하나도 이상한건 아니에요"

"그거야 결혼한 사람들의 말이지... 엄마가 아들을 부엌일하게 내버려 두는걸 세상사람들이 알면 아마 못된 에미라 할거다"
 

그러자 태수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다가와서는 그녀를 껴안았다.
 

"엄마만 편하게 있으실수만 있다면 세상사람들이 뭐라 하든 전 상관안해요... 그리고 엄마는 제아내나 다름없잖아요"
 

그말에 얼굴이 새빨개진 혜영에게 태수는 고개를 숙이며 깊은 키스를 했다.


며칠후에 감기가 다 나은 선규는 집에만 있기가 너무 답답해서 엄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을 만나러 외출했다. 오랜만에 밖으로
나와보니 갑갑했던 속이 뚫려서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친구들과 헤어지고 성탄절이 얼마 안남아서 그런지 캐롤송들이 울러퍼지는
거리를 걷던 선규는 버스정류장으로 오다가 문득 신문판매대에 진열되어 있는 복권들이 눈에 들어왔다. 수학여행을 다녀온후로 복권을
보거나 도박을 생각하면 겁이 났던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판매대로 갔다.
 

[그거야 어쩌다 온 운이었는데 또 그런 일이 일어나겠어? 보통때도 복권을 사도 아무일이 없었잖아] 자신이 지나치게 신경을 쓴다싶어
그냥 이런 마음을 지워버릴겸 복권 몇장을 샀다. 구석진 곳으로 가서 그것들을 긁어보았으나 5백원도 당첨되지가 않았다.
[그러면 그렇지.. 역시 내가 쓸데없는 생각을 한 거였어..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날수 있나?] 마음이 홀가분해진 그는 마지막 한장을 긁다가
그만 심장이 멎는줄 알았다. 자신이 잘못 본줄로 알고 눈을 비비며 몇번이고 확인해 보았으나 틀림없는 5백만원이었다. 겁이 덜컹 난
선규는 누가 볼까봐 급히 복권을 지갑에 넣었다. 너무나 어마어마한 액수여서 판매대에 있는 아줌마에게 확인할려고 물어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한참동안 멍하니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던 그는 이윽고 발걸음을 옮겨 버스에 올라탔다.
 

저녁을 하고있던 명숙은 선규가 언제 돌아오나해서 계속 시계로 눈이 가고 있었다. 감기가 다 나았다고 하지만 그래도 찬바람을 맞고
재발하지는 않을까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렇게 나가지말라고 했는데 기어이 나가고.. 말안듣는거는 저아빠를 꼭 빼닮았어]
더군다나 안그래도 마른 아이가 그동안 몸무게도 많이 빠져서 원기를 회복해 줄려고 좋은걸 사다 먹여봤으나 워낙 입맛이 까다로운
선규가 안먹겠다고 떼를 써서 매일 그를 설득하느라 기운이 빠질 지경이다. 지금도 하는 음식을 어떻게 먹일까 고민하고 있는데 현관에서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선규가 하얗게 된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은 명숙은 얼른 달려가서 아들의
이마를 짚어보았다.
 

"또 아픈거니? 그러게 나가지 말라고 했잖아"
 

그러나 열은 없었고 그는 아무말없이 지갑에서 복권 한장을 꺼내 내밀었다.
 

"또 복권을 샀어? 돈 아깝게 이런걸 왜 사?"
 

미간을 약간 찌푸리며 복권을 살펴보던 명숙은 두눈이 커다랗게 떠지며 숨이 막혀졌다.
 

"이..이거 지..진짜니?"
 

너무나도 놀래서 말을 하기도 힘들었다. 선규가 조용히 그저 고개만 끄덕이자 그처럼 얼굴이 하얗게 변한 그녀는 겨우 입을 다시 열었다.
 

"네..네가 사..산거야?"
 

선규가 또다시 고개를 끄덕이자 두다리에 힘이 빠져 간신히 의자에 앉고는 그녀옆에 함께 앉는 아들과 복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어..어떻게 이..이런일이?"
 

중얼거리는 그녀에게는 지난번에 선규가 복권에서 돈을 땄던 일이 기억나며 그때 그가 운이 좋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동안 이런 일이 또 있었니?"
 

선규가 수학여행때의 일을 얘기해주자 명숙은 경악으로 그를 바라만 볼 뿐이었다. 이제는 아들이 예사롭게 보이지를 않아서 겁도 나고
신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이런 일로 지나치게 운에 의존하지는 않을까해서 걱정도 들었다.
 

"네가 단지 운이 좋아서 어쩌다 이런 일이 생기는거니까 너무 운에 연연하지마... 이런 일이 생기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어"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계속 이런 일이 일어나니까 너무 이상해... 마치 나에게 신들린것 같기도 하고... 적은 액수라면 그냥
넘어갈수 있겠지만 이런거는 흔한 일이 아니잖아"
 

혼란해 하는 선규의 얼굴을 보자 명숙은 그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잘들어, 선규야... 이런 운이 생기는건 좋은 일이지만 그이상으로는 절대 생각하지마... 운에 의존하다가 망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줄
아니? 운은 좋다가도 나빠질수 있는거야.. 그러니 사람은 노력을 해야돼.. 다시는 이런거 사지마.. 도박도 하지말고... 약속할수 있지?"
"응"
 

선규의 대답을 듣고 안도를 한 그녀는 다시 복권을 보며 중얼거렸다.
 

"근데 너무나 많은 액수다... 이걸 어떡하면 좋지?"

"엄마가 사고싶은거 있어?"

"아니... 이걸가지고 네이름으로 적금을 드는게 어떻겠니?"
 

잠시 식탁을 내려보며 생각에 잠겨있던 선규는 이윽고 머리를 들며 대답했다.
 

"그러지말고 내가 하자는데로 해줄래?"

"뭔데?"

"엄마명의로 내가 말해주는 채권을 사... 난 아직 어리니까 엄마이름으로 사는게 뒤에 하자도 없고 좋을거 같애"

"채권?"

"응... 2년짜리내의 단기채권으로... 주식보다는 안전해서 괜찮아... 잘 되면 나중에 대학교 등록금으로 쓸수 있잖아"
 

뜻밖의 말에 명숙은 선규의 진지한 얼굴을 살펴보았다.
 

"나는 채권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데 넌 잘 알어?"

"그동안 신문도 보고 책도 읽고해서 어느정도 알아..... 어차피 공짜로 생긴 돈인데 잃더라도 그렇게 아깝지는 않을거 아니야.... 그냥 증권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나 경험해보고 싶어서 그래"
"어느회사걸 살건지는 아니?" 

"생각해 놓은게 있어"

"그럼 네말대로 할게"
 

자신있게 말하는 선규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던 명숙은 다시 복권을 바라보다가 장난기어린 표정을 지었다.
 

"요즘은 실명제인걸 알지? 내이름으로 하면 네가 뭐라 우겨도 내돈이 되는건데 그래도 날 믿을수 있겠어?"
 

그러자 선규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빙스레 미소지었다.
 

"내가 이세상에서 믿는 사람은 엄마밖에 없어... 그리고 내거는 다 엄마거니까 엄마가 가지고 싶으면 마음대로 해"
 

그말을 듣고 명숙은 너무나도 흐뭇해서 그의 얼굴을 쓰다듬다가 입맞춤을 해주었다. 그러다가 가스레인지위에서 끓고있는 냄비에서
냄새가 풍기자 행복하게 웃고있던 선규는 별안간 오만상을 찌푸렸다.
 

"또 이상한거 하는거지?"

"네가 감기때문에 몸이 많이 허해져서 하는거야... 몸에 좋은거니까 제발 아무소리말고 먹어"

"싫다는데 왜 자꾸 그래? 안먹어, 안먹어!"
 

방금전까지 어른스럽게 말하던 선규가 어린애처럼 투정을 부리며 방으로 후다닥 들어가자 명숙은 땅이 꺼질듯한 한숨을 쉬며 식탁위에
놓여있는 복권을 주머니에 넣고 부엌으로 갔다.
 

성탄절이 지난 바로 다음날은 일요일이었다. 유진과 며칠전에 약속을 해서 태수는 피아노학원으로 갔다. 그가 도착하자 마침 유진은
열쇠로 문을 열려던 참이었다.
 

"누나는 언제나 먼저 와 있네요... 그래서 오늘은 저도 약속시간보다 일찍 온건데....."

"성탄절은 잘 보냈니?"
 

유진이 웃으면서 묻자 태수는 전날 엄마와 섹스했던것이 떠올라서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책방에 갔다가 집에 있었어요... 누나는요?"

"난 어제 친구만나서 돌아다녔어... 너나 나나 성탄절에 애인없이 지냈다니 불쌍하다"
 

조용히 미소지으며 문을 열고 들어가려던 그녀는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겸연쩍게 웃고있는 태수를 바라보았다.
 

"우리 영화보러 갈래?"

"영화요?"

"응... 어제가 성탄절이었고 기분도 그런데 방안에서 피아노만 치고있기는 그렇잖아"
 

태수가 얼른 대답을 못하고 망설이자 유진은 그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살피며 물었다.
 

"오늘 일찍 돌아가야 하니?"

"그런건 아니고요..... 그럼 그렇게 해요"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하자 유진은 매우 기뻐하며 문을 다시 걸어잠그고 그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그들이 간 극장에는 연휴라서
그런지 사람들로 무척 붐볐다. 그곳에는 몇편의 영화들이 상영하고 있었는데 "필라델피아"라는 영화만이 유일하게 매진이 안되서 그걸
선택했다. 태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유진이 표를 산다음 그들은 극장안에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태수에게는 극장에 온게 중학교때
친구들과 왔던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동안 워낙 바쁘게 생활하다보니 시간이 나지를 않았는데 오래간만에 와보니 극장안에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즐거웠다. 그러다가 불현듯
엄마생각이 나서 기분이 우울해졌다. 엄마를 책방에 놔두고 자신혼자만 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가진다는게 몹시 미안했다.
[엄마와 언제 극장에 함께 와본지 기억도 않나는구나. 같이 왔었으면 좋았을텐데. 시간이 나지를 않으니.....] 그러나 착잡한 심정을 애써
감추고 유진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이윽고 극장안의 조명들이 꺼지며 영화가 시작되었다. 톰 행크스와 덴젤 워싱턴이 주연한 영화는
동성연애자이며 법률회사에서 일하는 한변호사가 에이즈를 걸렸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억울하게 해고당하자 병이 깊어 죽음직전까지
이르면서도 부당한 처사를 재판에 소송하는 내용이었다. 에이즈환자라도 보통 사람들처럼 인권이 있다는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배우들의 연기와 내용에 흥미를 느낀 태수는 영화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그도 에이즈환자에 대해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주인공에게
동정이 갔고 그가 죽음을 눈앞에 두면서까지 왜 그렇게 인권투쟁에 대해 집착을 하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주인공이 말했던 "난 법을
사랑하고, 법을 알며, 법을 잘 다룹니다. 내가 법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흔하지는 않지만 정의실현에 기여할때죠. 그느낌은 너무도
감동적입니다"라는 대사는 몹시 공감이 되어 태수의 가슴속깊히 와닿았다. 매우 수척해진 주인공이 병석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은
그에게 아버지를 연상하게 했다.

비록 직업도 다르고 에이즈로 세상을 떠난거는 아니지만 주인공과 아버지가 많이 비슷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아버지
옆에서 엄마가 저런걸 모두 지켜봤었을거라는 생각을 하니 예전보다 더욱 불쌍하게 여겨졌다. 가족과 친구들이 모인 장례식에서 주인공의
어렸을적의 천진난만하고 해맑았던 모습들이 나오는 텔레비젼의 화면을 보여주며 흘러나오는 음악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정도로
뇌리속에 깊숙히 들어왔다. 영화의 흐름에 고조되고 감정이 뭉클해진 태수는 그순간 유진이 그의 손을 잡자 옆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화면에 고정되어 있는데 얼굴표정은 어두워서 잘 읽을수가 없었다. 고개를 돌린 그는 영화를 보며 놓지않는듯이
꼬옥 잡고있는 그녀손의 따듯하고 포근한 감촉을 느꼈다. 영화가 끝나고 내부가 환해지자 유진과 함께 일어다던 태수는 그녀의 눈시울이
약간 붉어져 있는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아무말없이 따라나와 바깥에 이르자 그녀는 영화간판을 한번 쳐다보더니 조용한 어조로 물었다.
 

"영화 재미있었니?"

"네... 누나덕분에 정말 좋은 영화를 봤어요"
 

눈시울만 제외하고 차분한 얼굴로 있는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공이 너무나 이해가 되더라"

"저도 그랬어요"
 

잠시 알수없는 표정으로 쳐다보던 그녀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젠 그만 가봐야하지? 아주머니께서 기다리실거 아니야"

"네... 그래야 할거 같아요"

"고맙다, 태수야"

"뭐가요?"

"나도 네덕분에 이런 좋은 영화를 볼수 있었잖아"

"제가 오히려 고맙죠"
 

희미한 미소를 짓는 그녀는 잘가라는 인사를 하고 떠났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태수에게 언제부터인가부터 유진이 헤어질때마다
그에게 뭔가 무슨말을 하려다 그만둔다는 느낌이 들고 있었다.
 

이틀후에 기타를 들고 선생님집으로 향하고 있는 선규는 가끔가다 찾아오는 크고 황당한 운을 생각하고 있었다. 5백만원을 딴 이후
엄마의 말을 듣고 그냥 잊어버릴려고 했었지만 계속해서 마음에 걸렸다. 운을 믿고 요행을 바라는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는걸 그도 잘 알고
있었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돈이 걸린 일이 아니더라도 그에게 일어나는 몇가지 일들이 운으로 느껴졌다. 엄마와 선생님과 성관계를
맺은것도 그랬고 마담과의 일이 잘 넘어간것도 그랬다.
 

[그런것들도 다 운이 있어야 하는거지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그럴수가 있었겠어?] 또한 지난번 선생님이 집에 문병왔었을때도 그랬다.
만약에 그가 평소처럼 엄마침대위에 누워있었다면 선생님이 이상하게 여겼었을텐데 그날은 때마침 신기하게도 그의 방에 누워있었다.
그걸 생각하면 아찔하기만 했다.
 

[그때 정말로 엄마방에 있었다면 엄마도 몹시 당황했었을거야. 어떻게 용하게도 내방에서 잤냐? 이게 다 운때문이 아니겠어?]
선생님집에 도착하자 그녀는 반갑게 맞아주었다. 아이들은 외갓집에 가서 집에는 그녀밖에 없었다.
 

"이제 감기는 완전히 나았니?"

"네... 몸무게가 좀 빠졌지만 그거빼고는 다 나았어요. 저번에 찾아와 주신거 다시한번 감사드려요"

"아무탈없이 다 나았다니 내가 고맙다... 얼마나 걱정했었는데"
 

그말에 선규는 미소를 지었다. 누군가가 그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면 왠지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선생님도 함께 안도의 미소를 짓더니
마실것을 내와서 그와 잠시 얘기를 나눴다. 엄마를 생각해서라도 그녀와 다시는 성관계를 가지면 안된다고 다짐했던 그는 선생님남편과의
일이 어떻게 되어가나 궁금해서 그녀의 얼굴을 살펴보았으나 별다른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는 피아노를 치는 선생님옆에 앉아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하는 선규는 마음이 평온해 지는것을 느꼈다.

혼자서 연주할때도 그랬지만 선생님과 함께 하면 평온해 지는것뿐만 아니라 즐겁기도 했다. 중간중간마다 그녀의 설명을 들어가며 몇곡을
연주했는데 어느 한곡이 끝나자 선생님은 무슨말이나 다른 곡을 연주할 생각은 않하고 건반위에 놓여있는 두손을 조용히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다. 선규도 뭔가 선생님의 감정에 변화가 왔다는걸 감지하고 아무말없이 앉아있는데 그녀가 침묵을 깨며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모든게 다 끝났어"
 

말뜻을 짐작한 선규는 기타를 내려놓고 선생님옆에 앉았다. 목소리와는 달리 그녀의 표정은 외롭고 착잡하게 보였다.
 

"기분이 어떠세요?"

"잘 모르겠어... 홀가분하기도 하고 뭔가 아쉽기도 하고 그래"
 

이혼을 안해봐서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래도 옆에서 엄마를 봐와서 동정이 갔고 그녀의 기분을 약간이나마 이해할수 있을것 같았다.
 

"이미 끝난 일이니까 다 잊어버리시고 힘내세요... 아이들도 생각하셔야 하잖아요"

"처음에는 모든게 끝나면 속이 시원할줄 알았는데 기분이 왜 이런지를 모르겠다"
 

측은한 느낌이 들어 선규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냥 지나가는 시련이라 생각하세요.. 선생님의 앞날은 아직 많이 남아있으니까 그걸 생각하시고요.. 선생님은 분명히 이겨내실거에요..
아이들도 옆에서 도와줄거고요"
 

그러자 선생님은 고개를 들고 선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넌 항상 나에게 위로와 힘을 주는구나"
 

그러더니 그에게 살포시 안겨왔다. 선규는 그런 그녀의 행동에 당황했으나 지금은 그녀에게 위로와 안정이 필요하다는게 인식되어 그도
그녀를 안아주며 부드럽게 등을 쓰다듬었다. 이러고 있다가 그녀가 진정되면 포옹을 풀 생각이었으나 그의 목덜이메 얼굴을 묻고있던
선생님은 고개를 살짝 들더니 그의 입술에다가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불안감이 오기 시작했던 선규는 어찌할바를 몰랐다. 마담같았으면 밀어서 떼어놓았겠지만 선생님에게는 도저히 그럴수가
없었다. 또다시 이성을 상실하면 어떡하나하며 갈팡질팡하는데 그녀가 몸을 더욱 바짝 밀착시키면서 그의 뒷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자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녀에게서 나오는 느낌은 너무나도 엄마와 흡사했고 뭉클한 육체는 그의 온몸으로 전달되어 왔다. 선규의
두손은 어느사이 선생님의 몸을 자연스럽게 애무하고 있었다.

그의 손이 지나갈때마다 그녀는 그를 애타게 갈망하듯이 안고있는 팔들을 점점 조였다. 서로의 몸과 입을 정신없이 찾으며 한참동안의
시간이 흐른다음 그들은 간신히 입을 떼었다. 이제는 모든 갈등이 사라지고 성욕으로 휩싸인 선규는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는 선생님과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옷을 모두 벗었다. 그런다음 끌어안은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들어올려 피아노 건반위에 앉혔다. 그러자 그녀의
히프에 눌린 피아노에서는 고음과 저음이 썩인 음들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두다리사이에 서있는 선규가 아무말없이 거칠게 숨쉬며
알몸으로 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서있자 입술에서 조금씩 경련을 일으키는 선생님은 다리로 그의 허리를 감싸며 끌어당기더니 다시 그의
입술을 찾았다. 옷을 모두 벗고 있으니 약간의 쌀쌀함이 들었으나 그녀의 나체에 밀착되자 따스한 체온이 느껴졌다.

손을 내려 그녀의 허리밑을 잡으니 키스를 하고 있는 선생님은 휘감고 있는 두다리를 조금씩 벌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선규는 본능적으로
성기를 그녀의 은밀한 곳으로 밀어넣었다. 어느때와 다름없이 약간 촉촉히 젖어있는 질안으로 완전히 삽입하자 입을 떼고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은 선생님의 입에서는 조그만 신음이 새어나왔다.
 

"허억........ 아.........."
 

서서히 속도를 높히며 왕복운동을 하는 선규는 그녀의 육체를 소중하게 어루만져 주었고 선생님도 그의 몸에서 애무하는 손들을 멈출줄
몰랐다. 그가 움직일때마다 들썩거리는 그녀의 엉덩이로 인해 피아노에서는 각기다른 음들이 계속해서 울러퍼졌다.
 

"하악..... 하악...... 아흑....... 아........ 선규야........."
 

신음하는 선생님의 입에서 그의 이름이 나오자 선규는 이제껏 그녀에게서 느껴보지 못했던 강렬한 애틋함이 들어 땀이 배고있는 그녀의
성숙한 육체를 힘껏 끌어안고 있는 힘을 다해 허리를 움직였다. 성기가 침범하고 있는 그녀의 꽃잎도 이제는 흥건히 젖어있는지 움직일때
마다 철퍼덕하는 소리가 나왔다.
 

"허엉...... 아....... 하악......... 아..........."
 

고개를 뒤로 젖히고 피아노소리와 함께 헐떡거리고 있던 선생님은 어느순간 팔과 다리에 힘이 잔뜩 들어가며 온몸을 바르르 떨었다.
본능적으로 그녀가 오르가즘을 맞고 있다는걸 감지한 선규는 그녀의 가느다란 목선을 더듬고 있던 입술을 옮겨 그녀에게 깊숙한 키스를
했다. 그순간 그녀의 몸에서는 더욱 커다란 경련이 오며 그의 성기를 감싸고 있던 질벽이 조여오자 선규도 정액을 분출했다.
 

"읍!...... 읍!............"

"읍!....... 음..........."
 

그녀의 오르가즘은 오래동안 유지되었다. 여자에게서 그러한 모습을 보지못했던 선규는 그저 속으로 놀라고 있을 따름이었다. 마침내
그녀의 몸이 조금씩 진정되어 가자 선규는 입맞춤을 하던 입을 떼고 젖어있는 그녀의 입술을 부드럽게 빨면서 거친 호흡을 몰아쉬었다.
오르가즘이 끝난 선생님은 다시 손들을 움직여 그를 사랑스럽게 어루만져 주었다. 땀으로 덮혀있는 서로의 알몸들을 부둥켜 안고서
한참동안 그러고 있던 그들은 심신이 완전히 진정되자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어두웠던 안색은 사라지고 행복한 표정이면서도 미안함과 수줍움이 들어있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있는 선규는 그순간만큼은 죄책감이나
후회가 전혀 들지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선생님에게 위안을 줬다는거에 대해 만족과 기쁨이 들었고 또한 그녀에게서 엄마같은 깊은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하여 행복감도 들었다. 그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자 함께 미소짓던 선생님은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변하더니 별안간 그를 끌어안고 있던 팔과 다리를 풀며 입을 열었다.
 

"어서 방에 들어가자... 이러다가 또 감기 걸리겠다"
 

그말에 얼른 성기를 빼자 질에서는 하얀 정액이 흘러내렸다. 급히 휴지로 꽃잎을 막은 선생님은 그의 손을 잡고 방으로 데려갔다.
 

침대위에 선규를 눕히고 이불을 덮어준다음 새휴지를 꺼내 성기를 닦아줄려고 하자 그는 급히 선생님의 손목을 붙잡았다.
 

"제가 할게요"

"내가 해주고 싶어서 그래"
 

수줍은듯이 조용히 말하는 그녀를 보고서 선규는 마지못해 잡고있던 손을 놓았다. 엄마이외에는 아무도 이렇게 해준적이 없어서 그의
성기를 정성껏 닦아주는 선생님을 그저 놀란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는 그녀는 평소처럼 이불로 나체를 살며시 가리고 있었으나
예전보다는 그앞에서 벌거벗고 있다는것을 그렇게 부끄러워 하는것 같지가 않아하는 눈치였다. 성기를 다 닦아주고 휴지를 버린 그녀는
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긴 후 선규를 가슴품 안에 안았다. 한동안 봉긋이 솟아오른 그녀의 젖가슴에서 두근거리는 심장소리를 듣고있는데
고요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고맙고 미안해"
 

고개를 들어보니 선생님은 수줍은 기색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는 그녀에게 편안함과 따듯함을 느낀 선규는 그녀의 볼을 어루만지며
입가에 잔잔한 웃음을 띄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선생님이 저에게 해주신게 더 많잖아요... 이제는 기분이 한결 나아지셨어요?"

"응"

"아까 말씀드린대로 하루빨리 잊어버리시고 힘내세요... 선생님은 나약한 분이 아니시잖아요"
 

그러자 그녀는 다시 그의 머리를 끌어안으며 이마에 가벼운 입맞춤을 해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육체에 안겨 안락함을 느끼는데 선생님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상해"

"뭐가요?"

"애아빠와 있으면 별로 안그랬는데 너와 있으면 행복함을 느껴"

"저는 선생님보다 어린데도요?"

"그러니까 이상하다는 말이지"
 

그소리에 선규는 꿈꾸고 있는듯한 선생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방금전 그녀가 오르가즘을 맞았었다는걸 상기하던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
 

"그거할때도 좋으세요?"

"응.. 애아빠하고는 신혼초에 좋았었는데 그이후로 권태감을 일찍 가졌는지 별로였었어.. 그런데 너와 할때는 그때보다도 더 좋은거 같애"
 

그말을 듣고 선규는 처음에 그녀가 그냥 듣기좋으라고 한 말인줄로 알았으나 그녀의 얼굴을 보고 진심이라는걸 깨닫자 상당히 놀랐다.
예전에 마담도 그에게 이와 비슷한 말을 한적이 있었다. 선규에게 성경험이 지난 1년동안에 엄마와 한게 대부분이었고 마담과 선생님과의
몇번이 전부였다. 연애는 물론 한번도 해본적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여자를 행복하게 해주는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경험이 많고 풍부한 마담과 선생님이 그렇게 느낀다는게 도무지 이해가 안되었다.
 

[왜 그럴까? 특별히 뭘 한것도 없는데. 엄마도 나에게 이런 말을 한적이 있었나?]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런 기억이 없었고 엄마가 그와의
섹스에 만족해 한적도 없었다. 정작 그에게 이런 마음을 가질 사람은 엄마이어야 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느낀다고 생각하니 왠지
기분이 씁쓸했다. 그러다가 문득 마담이 했던 말이 떠올라서 잠시 주저하던 선규는 그의 상반신을 감고있는 선생님의 하얀 팔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선생님은 저에게 모성본능을 느끼세요?"
 

잠시동안 말이 없던 선생님은 나지막한 소리로 물었다.
 

"그여자가 너에게 그런 말을 하던?"

"네"
 

선규는 순간적으로 흠짓 놀라서 솔직하게 대답했다. 남편을 뺏어간 여자의 얘기가 나와 선생님의 기분이 다시 안좋아질까봐 내심 걱정이
들었으나 그녀는 그의 머리카닥들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상냥한 어조로 말했다.
 

"그여자가 사람보는 눈은 있는가 보구나... 나도 너에게 그런걸 느껴"

"제가 아주 어리게 보인다는 말씀이세요?"

"모성본능이라는건 자기자식한테 가지고 있는 마음이야... 하지만 또다른 뜻은 어리게 보인다는게 아니라 나이에 상관없이 남자를 감싸고
포용해주고 싶은 감정이야... 원래부터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여자가 있고 모성본능을 느끼게 해주는 남자도 있어"

"그럼 선생님은 모성본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세요?"

"아니... 애들한테나 가졌을뿐 애아빠나 다른 사람한테는 그런걸 한번도 느껴본적이 없었거든... 그런데 너한테는 모성본능이 느껴지네"
 

선규는 고개를 들어 이해가 안된다는 눈으로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왜요?"

"확실히는 모르겠어.. 단지 네가 작은 바람에라도 날아갈듯한 연약함과 왠지모를 쓸쓸함이 느껴져... 저번에 문병갔었을때도 나도모르게
네어머님대신 내가 옆에서 너를 돌봐주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
 

알수없는 표정으로 있던 선규는 다시 고개를 밑으로 내렸다.
 

"내가 그런말을 해서 기분나쁘니?"

"아니요... 어렸을때부터 누군가가 저를 걱정해주면 기분이 좋았어요... 이상하죠?"

"아마 네가 외롭게 자라서 그런걸거야... 나도 결혼한 이후로 외로움을 타며 살아서 네가 위로를 해주면 기분이 좋거든"
 

그말에 선규는 잔잔하게 웃으며 몸을 돌리고는 선생님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그녀도 웃으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때 너와 태수네집을 가보니까 둘다 집안환경은 같으면서도 차이가 보이더라"

"무슨 차이요?"

"두어머님들 모두 자식들의 눈치를 보시는데 네어머님은 너를 보호하고 태수어머님은 태수에게 보호받는 인상을 받았어"
 

그러자 선규의 입에서는 피식하는 웃음소리가 나왔다.
 

"정확히 보신거에요. 태수만큼 자기엄마를 끔찍히 생각하는 자식이 없죠... 그애는 나라에서 효자상을 줘야 하는 애에요"

"너도 네어머님을 많이 생각하잖아"

"....."
 

그녀의 말에 선규는 시선을 피하며 어두운 기색을 지어보이자 선생님도 착잡한 어조로 말했다.
 

"너희집에 가기전에 네어머님 뵐 낯이 없어서 굉장히 망설였었어... 그래도 네가 너무 걱정이 되서 찾아갔었는데 네어머님 대하기가 몹시
민망하더라"
 

그리고는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린 그녀를 선규는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잘못이 있다면야 나에게 있는거지 마음고생 하시고있는 선생님이 무슨 잘못이 있으시겠어?] 그대신 죄의식으로 괴로워하는 선생님의
얼굴을 살며시 돌려 그의 눈앞에 고정시킨다음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다.
 

"제가 하고싶어서 이런거니까 선생님이 죄책감을 가지실 필요는 없어요"
 

그녀가 아무말없이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자 선규는 깊숙한 키스를 해준다음 그녀의 젖가슴으로 내려갔다.
 

신정이 지나고 혜영은 저녁에 태수와 함께 집으로 가고 있었다. 새해가 되고보니 아들과 부부처럼 살게 된지가 벌써 1년이 되었다는게
생각되어 감회가 새로웠다. 태수아빠가 세상을 떠난 이후로 외로움을 전혀 느껴보지 않았던 한해였다. 좁은 길가에서 옆에서 나란히
걷고있는 태수를 보니 그도 자신처럼 이와 같은 생각을 하는지가 궁금했다.
 

"태수야"

"네?"

"우리가 이렇게 된지 벌써 1년이 됐어"
 

그말을 듣고 태수는 미소를 지었다.
 

"저도 그생각을 했었어요... 지난 1년은 어느해보다 시간이 빨리 지나간것 같애요"

"그렇지? 나도 그렇거든"

"행복하세요?"

"응... 너는?"

"제마음 잘 아시잖아요"
 

그리고는 태수가 그녀의 손을 잡자 혜영은 꿈에 젖듯이 몽롱해진 눈으로 그를 올려다 보았다. 지난 1년동안 아들의 키는 더 훌쩍 커져서
이제는 그의 얼굴을 볼려면 고개를 하늘보듯이 들어올려야 했다. 그런 그를 보니 마음이 몹시나 뿌듯해져서 입가에 행복한 미소를 띄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러면서 그의 손안에 쥐어져있는 손을 놓고 위로 올려 그의 근육있는 팔을 잡았다. 그러자 여전히 미소를 머금고있는
태수는 걸음을 멈추고 그윽한 눈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그리고는 주위를 두리번 거리더니 그녀를 데리고 급히 어둑한 구석으로 갔다.
담장을 등에 진 혜영은 놀란 눈으로 바로앞에 서있는 태수를 쳐다보았다.
 

"갑자기 길가에서 왜 이래?"

"지나가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혜영이 급히 사방을 살펴보았으나 태수말대로 아무도 없었고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그들이 있는곳은 어두웠고 조금 멀리 떨어진곳에
전봇대 한개만이 있을뿐이었다. 태수가 별안간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자 혜영은 기겁을 했다.
 

"아..안돼... 밖에서 이러면....."

"지금 엄마와 키스하고 싶어서 그래요"

"....."
 

안된다고 말을 할려고 했지만 입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심하게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그의 간절한 얼굴을 계속 바라보고 있자 태수는
고개를 숙이며 입술을 포개었다. 그의 얼굴이 다가오는걸 보고 혜영은 급히 아들의 품안에서 빠져나올려고 했지만 입안에서 혀들이
겹쳐지자 몸을 지탱하고 있던 힘을 잃으며 그를 붙잡았다. 마음한구석에는 누구에게 들킬까하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아들에게 안겨있는
행복감을 이겨내지 못했다.

떨리는 두손으로 태수의 잠바를 움켜잡고 희미해진 의식으로 시간이 흐르는지도 모르며 그러고 있는데 이윽고 그가 입을 떼자 아쉬움과
허전함이 몰려와 다리를 휘청거렸다. 태수가 얼른 그녀를 잡아주자 혜영은 여전히 그에게 안겨있는 상태로 가뿐 숨을 쉬며 물었다.
 

"아..아무도 안봤지?"

"네"

"누..누가 오기전에 빠..빨리 집에 가자"
 

태수의 부축을 받으며 정신을 간신히 차린 그녀는 주위에 누가 없나 다시한번 확인한뒤 집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었다. 하지만 얼굴은
여전히 화끈거려 태수도 똑바로 쳐다볼수가 없었다. 남편하고도 밖에서 이런 낯뜨거운 짓을 해본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그걸 아들과
했다고 생각하니 당혹스럽고 가슴이 몹시나 뛰었다.
 

"아..앞으로 다시는 그러지마... 누가 보면 큰일나"

"알았어요"
 

태수가 웃으면서 대답하자 혜영도 너털웃음을 내지었다. 하지만 기분은 내심 좋았다. 이런 길가에서 아들이 키스를 해주니 왠지모를
짜릿함이 들었고 또한 그가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게 다시한번 가슴속깊히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발소리이외에는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적막을 들으며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은것이 천만다행이라 생각되어 안도하고 있었지만 그녀나 태수도 저멀리
전봇대뒤에서 누가 놀란눈으로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는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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