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시간속에 - 6편 > 야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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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

욕망의 시간속에 - 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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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9가이드
댓글 0건 조회 40,185회 작성일 22-02-12 15:29

본문

이층의 자신의 방으로 올라온 현우는 한숨을 내쉰다. 예기치 않은 충동으로 아영이과의 관계로 들떠 있던 흥분도 가라앉는다.
아영이가 은연중에 눈웃음을 보내는 것조차 상희가 눈치 챌 것 같아서 두려웠다. 이렇게 얼마나 가라앉은 분위기가 지속될지
답답할 뿐이다. 상희와의 관계가 끝난다면 집을 나가야 하는지, 아영이와의 관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현우는 안개 속을
바라보는 심정이다.


그런데 도리어 현우가 마음의 상처를 입는 일이 발생했다. 다음날도 계속되는 연휴라서 현우는 동아리 친구를 만나러 아침
식사 후에 외출을 준비한다. 거실로 나가니 주방에서 상희가 힐끔 쳐다본다. 현우는 그녀에게 친구 만나러 나간다고 말하니
시선을 외면한다. 겸연쩍은 표정으로 현관을 나오는데 아영이가 쪼르륵 따라 나오며 물었다.


“오빠! 어디가?”

“응.. 친구 만나러...”

“일찍 들어 올 거지?” 

“그래...”


무뚝뚝하게 대답을 한 현우는 집을 나섰다. 상희는 설거지를 마친 후 멍하니 서서 생각에 잠겼다. 왠지 어깨를 늘어트리고
나가는 현우의 모습이 안쓰럽다. 오후에는 가정부 할머니가 돌아 올 것이다. 집안에 있기가 무료할 것 같다. 상희는 자꾸만
은숙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그냥 은숙이 소개하는 남자를 만난들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 같다. 만나서 싫으면 그만이다.
어차피 현우는 언젠가는 결혼을 해서 떠 날 것이지만, 다른 남자를 만나서 교제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상희는 부랴부랴 외출 준비를 했다. 화장대 앞에 앉아서 나름대로 멋을 부리고 있다. 귀걸이도 걸고 오랫동안 입지 않았던
투피스를 꺼내어 걸치고 거울을 들여다본다. 왠지 억지로 꾸미는 것 같아서 플레어스커트에 블라우스를 걸친다. 상희는
백화점에서 사서 한 번도 신지 않았던 하이힐을 신고 현관을 나왔다. 아영이가 쪼르르 그녀를 쫓아 나왔다.


“엄마는 또 어디 가는데?”

“친구 만나고 올게... 너는 공부하고 있어...”

“나 혼자 집에 있으란 말이야?” 

“오후에 할머니가 오실거야...”

“뭐야!?.. 나 혼자 놔두고, 오빠도 엄마도 모두 나가버리네...”


아영이의 말을 흘려들은 상희는 주차장으로 가서 승용차를 몰고 시내로 향해 간다. 단골 커피숍에 가면 친구들이 나와 있을
것이다. 상희는 백미러를 보고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다. 남자가 보면 천하게 보이지는 않을 런지 남자를 만나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연휴의 오전 조금 늦은 시간이라 도시를 빠져나간 차량이 많은지 시내는 한산한 편이다.


그 시간에 현우는 친구들과 만나서 학교 근처의 커피숍에 있었다. 동아리 친구들 중에는 여학생도 있었다. 잡담을 나누는
친구들의 말을 듣고 있지만 현우의 머릿속에는 상희와 아영의 모습이 떠나지 않는다. 집에 있는 아영이와 바람을 쏘이러
야구장에 가고 싶었던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상희가 또 다른 오해를 할 것이 두려웠다. 잡담을 하던 친구들 중 한 찬호가
선동을 한다.


“우리 그러지 말고 덕수궁에 가볼까?”

“거기는 왜?”


다른 친구들이 의아스러운 표정을 했다. 그때 한 여학생이 현우 옆의 의자를 끌어 당겨 바짝 앉는다. 평소에 현우에게 관심을
표시하는 진경이다. 현우는 유난히 동그란 눈동자를 가진 진경을 힐끔 본다. 남자 친구들이 현우에게 미소를 짓은 진경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찬호가 큰 목소리로 좌중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밴드 동아리가 덕수궁에서 야외 공연을 한다는데, 가보자...”

“그럴까!”

“우린 친구 조각 발표하는 미술관에 갈 건데...”


다른 남자 친구들이 찬호의 말에 동의를 하며 일어섰다. 미술관을 간다는 여학생 두 명만 자리에 남았다. 현우가 자리에서
일어서니 진경이가 일어서면서 앞을 막는다. 현우의 싱긋이 웃는 모습을 보고 그녀가 말했다.


“현우씨! 우리 미술관 같이 가자...”

“음! 미안해... 다음에 갈게... 저 친구들과 할 말이 있어서...”

“피 잇! 다음에 약속 지키는 거야?”

“알았어...”


커피숍을 나온 현우는 멀리 앞서서 가고 있는 친구들을 쫓아갔다. 친구들과 함께 현우는 지하철을 타고 광화문에서 내렸다.
덕수궁까지 걷는 동안 다과점에 들려 빵으로 요기를 한다. 덕수궁으로 가는 동안 다른 캠퍼스 친구들과 같이 어울려 많은
인원이 된다. 밴드 동아리 공연을 하는 곳에는 꽤 많은 청중들이 모여 있었다.


한 시간 가량 공연을 관람하다가 현우는 주변을 돌아보려고 발걸음을 옮겼다. 중화전과 석조전을 돌아서 나오던 현우는 급히
발걸음을 멈추었다. 어? 머리가 긴 남자와 나란히 걸어오는 여자는 분명히 상희였다. 기둥 뒤에 몸을 숨기면서 현우는 자신도
모르게 흥분을 한다. 화를 내고 냉랭하게 굴었던 것이 다른 남자를 만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미영이를
상대로 자신을 오해한 것은 계획적인 것이란 말이다.


두 남녀는 무슨 말인가 열심히 대화를 하였다. 상희가 조금 앞서거나 비켜서면 남자가 바짝 다가선다. 그 광경을 보는 현우의
눈빛이 떨린다. 화도 나지만 현우는 냉정하게 생각하기로 한다. 어차피 자신과는 혈연관계라는 넘지 못할 벽이 있으니 다른
남자를 선택하려는 상희를 탓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숨어서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현우는 기둥 뒤에서 나왔다.


현우는 가까이로 다가오는 상희와 남자 앞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고개를 숙이고 오던 상희가 정면으로 시선을 옮긴다.
그리고 놀래서 발걸음을 멈춘다. 상희는 은숙이 소개하는 박 과장을 만난 것이다. 하지만 차림새나 느낌이 여자들을 많이
상대하는 바람둥이 같아 실망을 했다. 덕수궁에 산책을 하자는 말에 집에 돌아가야 답답하고 해서 남자와 같이 나온 것이다.
그런데 현우와 마주 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한 상희였다.


미영과 현우 사이를 의심하고 화가 났던 그녀였다. 도리어 현우가 오해를 할 것이라고 상희의 머릿속에 번개같이 떠오른다.
비록 현우의 행동이 괘씸하지만 적어도 자신은 오해를 받고 싶지 않은 심정이다. 마주 오던 현우가 걸음을 멈추고 뚫어지게
쳐다본다. 어쨌든 현우에게 다른 남자와 같이 있는 것을 보인 것은 상희는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같이 걷던 박 과장을
향해 상희는 정색을 했다.


“오늘 고마웠어요... 저는 이만 볼일이 있어서요...”

“아! 네... 전화번호라도 주시면.......”

“나중에 연락드릴게요... 안녕히 가세요...” 

“........!?”


부리나케 돌아선 상희는 종종 걸음을 쳤다. 그리고 힐끔 돌아보고 현우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현기증이 난다. 박 과장은
넋을 잃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상희는 덕수궁을 빠져 나와 도둑질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승용차를 몰고 집으로 향한다.
공연히 가속 페달을 밟는 다리가 떨렸다.


상희가 급히 사라지고 현우는 한동안 서서 남자의 동태를 살폈다. 멍하니 서있는 남자의 표정이 무척 씁쓸해 보인다. 현우는
여자들의 마음을 전혀 알 수 없었다. 남자들이 실제로 여성의 실상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사랑이라는 정욕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기만을 끊임없이 하고 있을 뿐이다. 남자는 언제나 여자가 자신만의 여자로 있기를 바라지만 여자는 빈틈없는 본능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현우는 갑자기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다시 친구들에게 돌아가 어울리지만 마음은 뜬구름처럼 허공에서 만 맴돈다. 어둠이
내려오고 현우는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신다. 머릿속의 혼란 을 잊으려고 연거푸 술잔을 기울인다. 상희를 탓할 수도 없다.
하지만 배반당한 것만 같고 허전함을 감출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상희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장에 들려 동태를 샀다.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지만 현우에게 미안함을 대신하고 싶다. 그러나
현우가 오해를 한다고 해도 오해를 풀어주고 싶지는 않다. 보복이라고 할까. 순간의 감정을 되돌려 주고 싶다. 밤이 이슥하여
차임벨 소리가 났으나 상희는 왜 그런지 꼼짝을 할 수가 없다. 차임벨 소리가 여러 번 울리고 아영이가 짜증을 내면서 방에서
나왔다.


“엄마는 귀가 먹었어?.. 대문 안 열어주고 뭐하고 있어?”

“.........”


대문의 잠금장치 버튼을 누른 아영이가 상희를 힐끔 쳐다보고 다시 퉁탕거리는 발걸음으로 방에 들어갔다. 현관문이 열리고
현우가 휑한 눈빛으로 들어왔다. 상희는 한마디도 안하고 소파에 앉아 있는데 가정부 할머니가 나와서 식사준비를 한다.
현우가 희죽 웃더니 할머니에게 말한다.


“할머니! 그냥 주무세요... 저, 식사하고 왔어요..."

“애구! 술도 한잔 했나보네...”

“네... 기분 좋으라고 한잔 했지요...”

“어.. 여... 씻고 올라가서 자...”


할머니는 꾸부정한 허리로 주방 옆의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주춤거리던 현우가 상희 옆에 털썩 주저앉는다. 상희는
그에게서 풍기는 술 냄새를 의식한다. 그러나 현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상희 역시 TV만 주시하고 있다. 눈은 화면을
주시하지만 상희의 신경은 현우를 향해 있다. 침묵과 함께 정적이 흐른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머리를 쓸어 올린 현우가
게슴츠레 한 눈빛으로 상희에게 말한다.


“오늘 즐거웠어요?”

“.........”

“난... 괜찮아요... 이모가 행복하다면.......”

“........”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상희를 힐끔 바라 본 현우는 크게 한 숨을 쉬고 일어섰다. 비틀거리며 이층 계단을 오르는 현우의
발자국소리가 상희의 심장을 울린다. 상희는 현우가 애틋하기도 하지만 미워하는 감정은 지울 수가 없다. TV를 끄고 방안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웠으나 상희는 이층으로 신경을 곤두세운다. d런 순간을 그녀 자신도 어떻게 해결해야하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틀 후에 상희는 자신이 얼마나 옹졸했는지 알 수 있었고,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모든 것은 여자로서
남자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마음과 욕망 때문이었다. 그녀가 현우에 대한 오해를 풀 수 있던 것은 다시 찾아온 미영을
통해서이다. 모두가 나가고 머리가 지끈거리고 아파서 누워있는데 미영이 찾아왔다. 언제나 똑같이 밝은 표정을 하고 미영이
들어왔다.
 


“언니! 저번에는 일이 바빠서 그냥 갔는데, 죄송해요...”

“그렇구나!.. 그럴 수도 있지...”

“오늘은 웬일로?”


“사실은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전학하려는데, 도와준다는 교수가 있어..... 그래서 만나고 시간을 내서 들렸지........
저번에도 정 교수 만나려고 왔던 거고.”


그렇지 않아도 벼르고 있던 상희는 단단히 마음을 단단히 한다. 그러나 막상 보조개를 들어내며 밝은 미소를 띠는 미영을
대하고 보니 무슨 말을 어떻게 물어야할지 망설여진다. 직접적으로 물어보면 도리어 자신이 의심을 받을 것 같았다. 머리를
굴리던 상희는 목소리를 갈아 앉히고 상냥하게 묻는다.


“정 교수가 남자니?”

“호호~! 아니.. 여자 교수야...”

“미영이! 너 사귀는 애인 있니?” 

“호호호~! 언니는!? 내 발등에 불도 못 끄는데 애인은 무슨.... 나한테는 사치야...”

“그러니! 지금까지 사귀던 남자도 없고?”

“그냥.. 친구들은 있지만 남자로 생각이 안 들어... 호호~! 그건 갑자기 왜 물어?”


상희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어차피 한번은 맞닥트리지 않고는 넘어 갈 일이 아니다. 현우와 인연을 끊거나 미영이와
어떤 사이가 되던지 확실한 사실을 알게 되기 전까지는 못 견딜 심정이다. 미영을 주시하는 상희의 눈썹이 떨린다.


“미영아! 너. 현우를 어떻게 생각하니?”

“현우 선배! 나한테는 그냥 사돈 사이가 아닌가?”


되묻고 있는 미영의 표정이 너무 태연하다. 상희는 공연히 더욱 화가 치민다. 두 사람이 모두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생각에서
였다. 미간을 찌푸린 상희가 도전적으로 다시 묻는다.


“그런데 사돈 사이에 그럴 수 있니? 남들이 보기에 뭐라고 하겠니?”

“언니 무슨 말이야?.. 뭘 말하는지 모르겠어...”


“넌 어떻게 처음 보는 남자에게 살랑거리고 얼굴에 입맞춤을 하니?.. 요즘 젊은 사람들은 모두 그러니? 나는 아영이가 볼까
두렵더라... 아무리 세상이 바뀐다고 해도 지킬 것은 지켜야지... 옛날 같으면 주위에 손가락질 받고 따돌림 받는다...”


“...........”


상희는 이왕 말이 나왔으니 할 말은 해야겠다고 속사포처럼 쏘아댄다. 그런데 아무 말 없이 듣고 만 있는 미영의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상희는 자신이 너무 윽박지른 것이 아니가 싶었다. 그리고 무언가 느낌이 이상하다. 그렇다고 중단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무언가 솔직한 고백을 듣고 싶은 상희였다.


“너도 생각해봐라... 나하고 아영이 여자들만 잇는 집안이야... 그런데 사돈 남자에게 그런 꼴을 보여야 하겠니?.....
오늘 네 말을 듣고 싶었는데 잘 됐구나...”


“언니! 오해야..... 내가 너무 겁 없이 행동한 것은 잘못인데, 나는 현우 선배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어..... 그냥 소탈하게
대해 주기에... 스스럼 없 대했을 뿐이야... 죄송해요...”


상희는 미영의 눈물을 보고나니 마음이 약해졌다. 그리고 자신이 오해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이 이성으로서
감정이 있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라는 것을 직감한다. 또한 젊은 남녀 간에 호기심을 가질 수도 있는 문제인데 예민했던
것이다. 상희 자신도 현우의 방을 찾아가 씻을 수 없는 실수를 한 것을 생각하니 양심이 찔린다. 그러나 상희는 윗사람으로서
자존심은 지키고 싶은 심정이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 보는데서 그런 행동을 보일 수는 없잖아...”


“죄송해..요. 언니! 캠퍼스 친구들 사이에 그런 정도는 장난으로 여기기에....... 언니 입장을 생각하지 못한 내 잘못이야...
그리고 현우 선배에게 리포트를 부탁한 것도 우연한 실수였어... 앞으로는 언니 집에 오는 것도 조심할게...”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 단지 다른 사람 입장도 생각해 달라는 거지... 내가 너무 심하게 말했나보다... 점심 식사는 했니?”

“응.......! 죄송해... 언니...” 


미영이 손수건으로 눈가에 맺힌 눈물을 찍어내며 억지 미소를 흘렸다. 상희는 공연한 오해로 미영에게 눈물을 흘리게 한 것이
안타까웠다. 상희는 순간 몸 둘 바를 모르는 심정이다. 현우가 지금 어떤 감정인지 두렵다. 잠시 현우에 대한 충격으로 그녀는
박 과장을 만나 것인데, 공교롭게도 현우가 보게 된 것이었다. 다른 남자와 데이트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현우를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럼.. 저녁이라도 먹고 가라...”

“아니, 언니! 나,... 기차 시간 때문에 내려가야 돼...”


눈물을 흘렸던 것과는 다르게 미영이가 활짝 웃으며 일어선다. 상희는 볼륨감 넘치는 미영의 자태를 느끼며 공연히 열등감이
든다. 미영을 마중하고 돌아와서 상희는 한결 마음이 가볍기도 하지만 현우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걱정스러웠다. 무언가
해야겠다고 생각한 그녀는 이층으로 올라가 현우의 방을 청소했다. 현우가 벗어 놓은 빨래를 세탁기에 집어넣어 돌리며
우왕좌왕하다가 샤워를 한다.


발가벗은 알몸으로 거울 앞에 서서 현우의 혀끝이 스치던 순간을 상상을하니 옅은 흥분을 느낀다. 사워를 하고 나와 한결
기분이 상쾌해진 상희는 콧노래를 한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영이가 상희의 밝은 표정을 보고 의아스럽게 쳐다본다. 현우와
어떤 방법으로 화해를 할지 상상을 하며 건조대에 빨래를 널어놓는다. 콧노래를 하는 상희를 바라보던 아영이가 피식 웃었다.
 

“엄마, 웬일이야... 요즘 저기압이더니 기분 좋은 일 있어?” 

“아영이 왔구나... 좋은 일은 무슨.......”


상희는 멋쩍은 미소를 흘렸다. 아영이는 엄마의 변덕스러워지는 모습을 모르겠기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집안으로 들어간다.
세탁물을 널고 있는 상희의 머릿속에는 어떻게든지 현우에게 사과의 표시를 할 방법들만 떠 올린다. 얼마 안 있으면 현우가
귀가 할 것이다. 상희는 부리나케 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에 다녀온 상희는 사들고 온 음식재료들을 식탁위에 내려놓고, 가정부 할머니를 불렀다. 주방 옆의 방문을 열고 나오던
할머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식탁위에는 고기와 생선, 채소 등 식품자료들이 그득하다. 뜻밖의 광경에 할머니는 환하게
웃으며 채소를 씻고 있는 상희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아니, 누구 생일인감?”

“아뇨! 그냥 먹고 싶어서요... 할머니 빨리 준비 해주세요...”

“저번에도 그러더니, 무슨 일이래.......” 

“너무 식구들 식사에 신경을 안 쓴 거 같아서요...”


할머니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팔을 걷고 나섰다. 상희의 입에서는 낮으막한 노래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타월을
들고 방을 나온 아영이가 김이 모락모락 나고 맛있는 음식준비를 하는 할머니와 상희가 바쁘게 움직이는 주방 안을 멀거니
바라보다가 세면장으로 들어갔다.


어둠이 내려앉을 무렵, 조금 늦은 시간에 현우는 귀가를 했다. 그를 기다리고 있던 상희가 대문의 차임벨 소리를 듣고 직접
문을 열어 주러 나간다. 대문이 열리고 현우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들어온다. 오늘따라 현우가 반갑지만 상희는 자존심을 느껴
말로는 표현할 수 없었다.


식구들이 식탁을 마주하고 앉은 현우는 식탁 위의 음식들을 보고 의아스럽게 생각했다. 식사를 하는 도중 아영이 식탁 밑으로
발을 뻗어 현우를 건드리며 장난을 걸었다. 눈치를 살피느라 상희를 쳐다보는 현우와 그녀의 시선이 마주친다. 상희의 눈빛이
자잘하게 떨린다. 그녀의 눈빛이 왠지 다르다고 느끼지만 마음이 편치 않은 현우는 무심하게 외면을 했다.


식사 후에 거실에 앉은 현우 옆에 아영이가 다가와 앉았다. 기분이 가라앉은 현우는 아영이가 미소를 짓는 모습에도 담담한
표정으로 리모컨을 집어 TV를 켠다. 아영은 무표정하게 대하는 오빠 섭섭하기만 하다. 현우에게 순결을 받치는 관계를 한
후에 아영은 더욱 남녀의 성관계에 대해 호기심을 느끼고 있었다.


아영은 처음의 육체관계가 기대했던 만큼의 희열보다는 통증을 느꼈어도 아련한 기대감이 유혹을 한다. 부끄러움과 자존심
때문이지만 아영의 관심은 오직 현우에게만 향해 있었다. 그렇다고 다시 현우의 방을 찾아 들어가기도 천하게 보일 것 같고
식구들의 시선이 두려웠다. 망설이던 아영이가 주방에서 일하는 상희와 할머니의 눈치를 살피며 현우의 귀에 대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 기분 안 좋은 일 있어?”

“아니, 별로........”

“그런데 왜, 말이 없어?... 나 심심하다고...”

“왜.......!? 그럼.. 다시 발레에 취미를 붙이지...”

“싫어... 가수 데뷔 할 거라니까... 음대나 예대에 갈 거야...” 

“그럼.. 공부를 해야지...”

“지루해서 그래... 심심한데 오빠가 말이 없으니 답답하잖아...”

“심심해서 그렇다고?”

“응!.. 나하고 놀자...”


눈가에 미소가 가득한 아영이가 입술을 쫑긋한다. 그녀의 귀여운 모습에 현우는 짓궂은 생각이 든 현우가 빙그레 웃음을
흘린다. 주방을 살핀 후 현우가 뒤로 손을 뻗쳐 아영의 둔부를 감싼다. 그녀는 스킨십을 기다린 것처럼 전혀 거부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손바닥으로 느끼는 둔부의 촉감을 느끼며 현우가 속삭이듯이 말했다.


“귀여워서 깨물어 주고 싶다...”

“피 잇! 못 됐어...”

“아영이는 건드리면 깨지는 유리구슬 같아...”

“나한테 관심도 안 주면서........”


아영은 싫지 않으면서 눈을 흘긴다. 갑자기 성적인 충동을 느낀 현우가 둔부를 더듬던 손을 그녀의 티셔츠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주방을 다시 살피며 브래지어를 밀어 올리며 젖가슴을 더듬더니 젖꼭지를 쥔다. 순간 아영이가 외마디를 질렀다.
 

“아... 앗! 못됐어... 아프단 말이야...” 

“하하하.......”


현우가 젖꼭지를 너무 세게 움켜 쥔 것이다. 아영이가 왈칵 현우를 밀어내면서 마구 주먹질을 한다.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던
상희가 그 광경을 보고 못마땅하게 쳐다본다. 할머니는 그들이 장난을 치는 줄 알고 환한 미소를 짓는다. 잠시 쳐다보던
상희가 고무장갑을 낀 채 거실로 나와 아영이에게 눈을 흘겼다.


“아영이... 너 장난만 칠거야?.. 졸업이 낼모레인데 들어가 공부하라고!”

“엄마는 왜 나만 가지고 그래!”

“너.. 나이가 한두 살도 아니고 철 좀 들어라... 어떡하려고 그러니?” 

“어이구 진짜!.. 괜히 오빠 때문에 나만 욕먹잖아...”


아영이가 씨근덕거리며 일어서서 상희와 현우를 번갈아 봤다. 그리고 현우 가슴을 몇 번 주먹으로 때리다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다. 상희와 현우의 시선이 마주친다. 멋쩍은 현우가 시치미를 떼고 이층으로 올라간다. 방으로 돌아온 현우는 상희와의
지속되는 불편한 관계가 지속되는 이유도 있지만, 아영이가 성적으로 민감해가는 모습을 보고 싶은 욕구가 꿈틀 거렸다.
 

상희는 어떻게든 현우와 둘만이 있는 공간이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몇 번 현우가 접근하려는 것을 차갑게 대해기는 했지만,
그래도 더 적극적으로 다가와 주지 않는 것이 서운하다. 설거지를 마친 할머니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니 상희는 허전허기만
하다. 공연히 아영이를 혼내서 현우도 올라가게 만든 것 만 같다.
 


거실에 혼자 앉아 있는 상희의 시선은 TV를 향해 있지만 현우가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정원의 낙엽을 떨어트리는 바람 소리가
들려와서인지 상희는 한기를 느낀다. 아니면 외로움을 느껴서인지도 모른다. 한편의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앉아 있던 상희는
현우가 있는 이층에서 아무런 변화가 없기에 실망스러워 안방으로 들어간다.


잠옷으로 갈아입은 상희는 전등불을 끄고 잠을 청하려고 침대위에 누웠다. 은은한 침대 등불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그녀는
도저히 잠이 올 것 같지 않다. 이런 시간이면 누군가의 가슴에 안기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린다. 손을 사타구니에 넣고서
움츠린다. 그녀 자신도 모르게 사타구니를 문지르며 짜릿함을 느낀다. 팬티 속으로 손가락을 넣어 보지를 마찰하니 몸이
더워지는 것을 느낀다. 벌떡 일어나 두 손으로 무릎을 껴안고 침대등불을 바라본다.


‘아! 난.. 정말 못 견디겠어...’


혼잣말을 흘린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희미한 거울 앞에서 자신을 바라본다. 흘러내린 머리카락, 흩어진 잠옷 앞자락,
또렷해지며 무언가 갈구하는 눈빛, 그녀는 방문을 열고 나선다. 까치발로 이층 층계를 오른다. 현우의 방문 앞에서 심호흡을
하고는 살며시 문을 열고 재빨리 들어갔다.


현우는 침대에 누워서 침대등불 밑에 책을 보고 있다. 상희가 들어 온 것을 느끼지 못했는지 현우는 책장만 넘긴다. 상희는
자신이 들어온 것을 현우가 반겨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벽에 기대선 상희는 한동안 현우의 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길게 늘어진 그림자와 침묵이 흘렀다. 
한숨을 내쉰 상희가 그림자처럼 그러나 빠르게 침대로 다가간다. 그리고 모로 누운
현우 등 뒤에 모포를 뒤집어쓰고 눕는다. 그때서야 현우는 화들짝하고 놀라며 들고 있던 책을 놓친다.


“누, 누구........!?”

“...........”


누군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한 현우는 일어나 앉으며 모포를 들어 올리고 내려다본다. 예상치 않게
웅크리고 있는 이모가 아닌가. 그렇게도 냉랭하던 그녀가 어째서 찾아왔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다른 남자를 만나면서도
성욕을 견디지 못하는 것인가. 갑자기 이모가 천박하게 느껴진다. 현우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이모는 자존심도 없어요?”

“미안해! 미영이가 왔었어.”


일어나 앉은 상희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옅은 미소를 지었다. 유혹하듯이 떨리는 그녀의 눈빛. 현우는 장미 향기를 느꼈다.
그렇다. 그녀만 보면 현우는 장미 향기를 느낀다. 그러나 현우는 또 미영과의 관계를 의심하는 거 같아서 역겹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미영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나한테 미영이가 무슨 상관이 있는데?”

“미영이 말을 듣고 보니 내가 오해를 했던 거야..”

“어쨌든 나는 이모가 남자 만나는 것을 탓하고 싶지 않아... 행복해지기 바랄뿐야...” 

“그게 아냐... 현우를 오해한 것은 내 잘못이야... 홧김에 친구가 소개하는 남자를 잠간 본 것뿐이라고... 그게 다야...”

“나더러 솔직 하라면서? 변명할 필요가 있나...”

“변명 아니야... 믿어 줘...”


한동안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쳐다보던 현우는 어디서부터 오해가 시작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러나 서로를 구속하고 싶은
마음은 아니었다. 현우는 허물어서는 안 되는 벽 사이의 이모에게 집착할 수도 없고, 언젠가 닥칠 더 큰 상처가 두려웠다.
상희를 바라보던 현우는 말없이 등을 지고 돌아눕는다.


침묵이 흐른다. 뒤돌아 누운 현우를 빤히 쳐다보는 상희는 이해를 해주지 못하는 그가 안타깝다. 그러나 상희 자신이 충격이
크듯이 그도 충격이 컷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따지고 들거나 화를 내는 대신에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현우의 말이 상희는
가슴에 와서 닿는다. 상희는 현우의 어깨를 잡아당긴다. 그리고 그의 가슴에 엎드렸다.


“안아 줘... 나, 지금 춥단 말이야...”

“춥다고?..”

“응.......”


내려다보는 상희의 시선과 현우의 눈빛이 마주쳤다. 상희가 미소를 지으며 흘러내린 자신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긴다.
현우는 순간 그녀가 관능적이고 요염하게 보였다. 흘러내리는 머리카락.. 눈웃음이 가득한 미소.. 자잘하게 떨리는 눈빛..
잠옷 속으로 훤히 들어나 보이는 젖가슴.. 하복부에 잇닿아 전해오는 그녀의 체온은 현우의 성욕을 달아오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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