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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

착한 사랑 - 46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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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9가이드
댓글 0건 조회 37,520회 작성일 20-12-23 17:47

본문

“ 이제 들어오나?”
“ ....안자고 뭐해요?”
“ ....”

내 질문에 질문으로 답을 한 아내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날 대놓고 무시하며 안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렇게 집을 나가 민기란 놈과 격렬한 섹스를 치룬 후 친정으로 다시 돌아갈 줄 알았던 아내였는데 뻔뻔하게도 나보고 나가라는
말대로 집으로 돌아왔다.


쉽사리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난 집에 들어와 양주도 아닌 소주를 마시며 거실에 앉아 멍하니 잠도 못 이뤘고 ,새벽에 들려온
현관 문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에 침침한 눈을 고쳐 뜨며 시선을 옮기게 된다. 
허리를 약간 숙이며 무릎을 굽혀 하이힐을 벗고
있던 아내는 거실에 앉아 있는 나의 모습에 놀란 듯 아주 잠깐 시선을 마주치고는 이내 무시하며 안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아내의 칵테일 드레스와 손에 들고 있는 숄만이 내가 고수 부지에서 봤던 그 장면이 현실임을 말해주며 새삼 비참했던 기분을
일깨워준다. 
당장이라도 아내를 쫓아 안방으로 뛰어 들어가 ‘이렇게 늦게까지 뭘 하고 왔냐고, 무슨 짓을 했냐’고 따지고 싶은
충동을 겨우 억누르며 잔이 아닌 병째 벌컥거리며 소주를 비우기 시작했다. 
그건 이제 와서 아내에게 화를 내기도 웃긴 상황이란
걸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내가 아내에게 뭐라고 화를 내야 할지 잘 몰랐기 때문이고 아무리 양심에 털이 난 나라고 해도 아내에게
그것도 이 모든 계획을 주도한 게 나 였으니 누굴 원망할 수 있냐는 생각에 묵묵히 술병을 비우고만 있게 된다.


아니다.. 난 술에 취해 지금 기분이 침울해 졌을 뿐이다. 내겐 아내보다 소중한 김소이란 여자가 존재했고, 그녀는 아내보다도 더 아름답고 섹시하며 센스까지 겸비한 집구석에서 가정 살림만 해 온 아내와는 전혀 다른 여자로서, 그런 완벽한 김팀장이라는
여자가 날 기다리고 있다. 
내가 아내의 불륜에 비참해 할 필요도 침울해할 이유도 없었다.
단지 살아온 정 때문에 잠시 마음이 흔들렸을 뿐 그게 전부일 것이다.

아무리 아내가 고수 부지에서 내게 보여준 적 없는 전혀 다른 모습을 그렸고, 그것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고 해도 말이다.
난 서둘러 작은 방으로 들어가 아까 정신이 팔려 받지도 않은 김팀장의 번호를 찾아 재발신을 누른다. 그러나 새벽 4시란 시간에
전화를 받을 리 없는 김소이 팀장이었기에 난 핸드폰 너머로 통화 연결음만을 한참동안 듣다 전화를 끊게 된다.


도저히 이대로 잠을 이룰 수 없는 정신상태에 누군가와 대화를 해야만 했다.
술이 취해서이기도 했지만, 김소이 팀장이란 여자에게 우리의 관계를 확인 받고 싶은 충동을 억누를 수 없는 아주 간단한 원초적
본능이었다.


[....누구냐?]
“ ...”
[한 번만 더 장난 전화질 하면 대한민국 끝이라고 해도 어떻게든 찾아내서 한강에 거꾸로 메달아 버린다...]
“ 접니다....”
[...누구?]
“ 오..강진 팀장입니다.”
[아~.. 이 시간에 어쩐 일로.. 혹시 그 일이라면 걱정하지 마십쇼.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 잘.....”

김소이와 통화를 못 한 난 다른 사람도 아닌 민기에게 전화를 걸게 된다. 내가 왜 방금 전 아내와 불륜을 저지른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단순히 누군가와 얘길 나누고 싶다는 충동에서 한 행동은 절대 아니었다는 건 확실했다.

민기란 남자의 잠긴 목소리가 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오자 몇 시간 전의 장면과 오버랩 되듯 머릿속에 아내와 민기의 모습이
생생한 잔상처럼 다시 그려지며 날 괴롭힌다.

 

나무 뒤에 숨어 김소이와 통화 중이었다는 것도 잊은 채 온 신경을 벤치위에 있는 아내와 민기에게 집중하고 있을 때 아내의
뜨거운 숨결과 들썩거리는 어깨의 미묘한 움직임까지도 전부 보이는 듯 한 착각 속에 빠져 한참을 눈도 때지 못하고 있을 때 난
분명 아내의 미묘하게 움직이는 어깨의 들썩임이 민기로 인한 것이 아닌 아내의 팔이 움직여 들썩거리는 것임을 알게 된다.


최대한 숨 죽여 둘에게 들키지 않고 더 가까이 갈 필요가 있었다. 거리만큼이나 내 시력의 한계를 느꼈고, 둘의 움직임을 확실히
확인할 필요성에 난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로 결심을 굳히며 실행에 옮긴다. 
어디까지나 불륜 현장을 확실히 확인하기 위한
이유라고 스스로에 변명하며 아까 있던 잔디밭이 아닌 편의점의 불빛과 가까워 내 그림자가 둘을 향하는 그곳으로 가장 평범한
걸음을 그리며 천천히 걸어가 차량 진입 방지 돌 턱에 앉아 담배를 입에 물었다.


여기라면 아내의 대각선 사선 자리로 아내가 일부러 시선을 돌린다 해도 등 뒤의 조명에 의해 내 실루엣만 보일 뿐 누군지 감별
하기 힘들 거란 생각을 했고, 역시나 여자의 시야각이 좁다는 속설이 맞는 듯 아내는 내 존재조차 모르는 듯 고개를 약간 숙인
모습 그대로 민기에게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민기조차 그런 아내에게 정성을 다하는 지 힐끗 날 한 번 확인하고는 곧 아내에게 속삭이듯 얘길 한다. 잘 알아듣진 못했지만,
분명 내 존재에 대한 이방인의 출몰을 알리려는 말투인 듯 했다. 아내가 고개조차 돌리지 않는 모습에 내가 이방인 일 뿐 자신의
남편인 줄은 꿈에도 모르는 듯 보였다. 
그러나 내 등장에 아내가 손을 다시 덥고 있는 양복 속으로 황급히 거두는 것 이었다.
분명 민기의 사타구니 위에 놓여 있었던 아내의 손이라 짐작하고 있던 난 묘한 질투감에 한강을 바라보는 얼굴 방향과는 달리
시선만을 옆으로 옮겨 둘의 모습 하나하나에 집중한다.


“ 많이 떨리나?”
“ ......네.”
“ 이런 경험 처음이지?”
“ ...........네.”
“ 지금이라도 일어서면 집까지 바래다줄게.”
“ 아...니에요.”

아내가 첫 음을 크게 했다가 이내 쑥스러움을 보이며 작게 말꼬리를 흐린다. 아내란 여자가 이렇게 섹을 밝히는 여자였는지
기억을 되짚어 본다. 분명 아니었다. 처제와의 대화로 아내도 여자로 섹스란 것에 호기심이 있어 보이긴 했지만, 이렇게 밝히는
여자는 절대 아니었다. 분명 그럴 거라고 생각했고,
같이 살아온 십년이란 시간동안 그건 내가 가장 잘 아는 부분이었다.

“ 그 나이에 안 맞게 경험이 적군..”
“ 또 나이 얘기.... 그리고 나이가 좀 많다고 꼭 경험이 풍부해야 되나요?”
“ 보통은 그렇지 않나? 결혼하기 전에 경험도 있을 테고,, 결혼 한 기간이 꽤 지났으면 당연히..”
“ 삼년동안 각방을 썼으니 결코 많은 건 아니겠죠.”
“ 삼년?”
“ .....네.”
“ 남편하고 삼년동안 단 한 번도 몸을 섞지 않았다고? 혹시 섹스리스란 건가?”
“ 예??.. 섹스..리스는 어느 정도 지난 부부들이 권태기 같은 걸로 겪게 되는 거 아닌가요?”
“ ...그런가? 그 쪽으로는 문외한이라서..”
“ 우리 부부는.. 남편의 지위와 저희 집의 능력으로 결합된..그러니까 계약과도 같은 결혼 생활로 시작 됐어요. 처음엔 좋기도
 했다고 해야 하나?... 단지 신혼이라는 설레임하고.. 음~... 새로운 경험이라고?”

 

“ 남편이 첫 남잔가?”
“ ......네.”
“ 삼년동안 다른 남자에게 안겨 본적도 없었고?”
“ .....”
“ 혹시.. 자위는 자주 하나?”
“ 네!??...아..아니요.”
“ 그럼 욕구는? 당신도 사람이고 여자일 텐데.. 성욕이란 게 안 당긴다고?”
“ 그다지...... 별로 기분 좋은 적도 없었고...”
“ .....”
“ ...왜요? 제가 역시 이상한 거죠?”
“ 아니. 최소한 내 손길에 흥분하고 젖은 몸 상태로는 정상이던데.”
“ .....”
“ 오히려 잘 느끼는 편 같기도 하고.”
“ 그..만해요. 창피하게 그런 걸 대놓고 말을 해요...”
“ 창피하다... 방금 전까지 느끼던 표정과는 달리 아직 제대로 맛도 모르는군..”
“ ..맛을 모르다뇨?”
“ 당신 남편도 바보라는 말이다.”
“ .....그게 무슨.”
“ 됐고. 남자 물건은 빨아 봤나?”
“ ...물건이라뇨?”
“ ....”
“ .....!!?”

민기가 벤치의 등받이에 올려놨던 두 팔 중 오른 손만을 살짝 들어 손가락으로 자신의 사타구니를 가리켰다.
아내가 그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민기의 사타구니를 내려다보곤 곧 민기의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당황스러움과 불쾌한 듯 한
느낌으로 민기를 바라보는 시선일 거라고 난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미친놈 아무리 아내가 나로 인해 자포자기인 상태라고 해도 물어볼게 따로 있지 불과 일주일 만에 그것도 자신을 깡패라 소개할
정도로 위험한 남자의 말을 쉽사리 들을 아내가 아니었다. 아니.. 민기란 저 멍청한 남자가 지금 있는 장소가 벽이라고는 하나
없는 한강의 산책로인 걸 알고는 있는지 궁금해지기까지 했다.


민기란 남자에게 이미 많이 넘어간 상태일지라도 아직 이 방면엔 면역력조차 없는 아내에게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는 민기의
섣부른 행동이 지금까지의 노력을 모두 망칠 거라는 내 예감이 맞을 거란 건 불 보듯 뻔해보였다. 
김소이 팀장과의 계획도 잊은
채 잠시 다행이라는 안도감을 느끼며 아니 밤일을 벌이더라도 차라리 내가 볼 수 없는 곳에서 일을 벌이라는 생각을 하며 이제
일어나 집으로 가자고 할 아내의 모습을 기대하게 된다. 

 

“ 빨...면.. 기분이 많이... 좋아요?”

턱까지 숨이 막혀 온다. 아내가 조심스럽게 꺼낸 말에 민기보다도 내가 더 크게 놀라 하마터면 사례가 걸린 놈처럼 기침까지
할 뻔했다. 뭘 마신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난 아내의 말이 끝나는 동시에 무의식적으로 아내를 대놓고 쳐다보게 된다.
다행히 민기를 바라보는 아내의 시선에 뒤통수만을 쳐다보게 되어 시선의 마주침은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아내의 수줍은 듯
눈을 깔고 조심스럽게 얘기하는 얼굴 표정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 당연히 기분 좋지. 직접 하는 것만큼 좋기도 하고..”
“ ....”
“ 내가 빨아줘도 똑같이 느낄 걸.”
“ 어디...를.. 요? 여..여기요?”
“ 응. 그럼 어디를 빨겠나?? 물론 입술, 목덜미,, 가슴이고 뭐고 여자의 몸이라면 전부 빨아 먹는 걸 난 좋아하긴 하지만..”
“ ...저질.”
“ ...큭큭.”
“ 변태.. 어떻게 그런 말을 대놓고 할 수 있어요?”
“ 뭐가?”
“ 그럼 부인 되시는 분 말고도.. 다른 여자한테도 막 그런다는 말이에요?”
“ ...그럼? 아내하고만 즐기란 법 있나?”
“ .......”

아내가 민기의 저질스러운 농담을 탓하고 있다는 게 아닌걸 알게 되자 기가 막혔다. 난 아내가 이런 행위에 대해서 욕을 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아내의 말투는 그런 저질스러운 농담을 경멸하는 것이 아닌 질투란 감정이 담겨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빨아 줄래?”
“ ...네?”
“ 웃챠~”

민기가 손을 올려 아내의 어깨를 잡고는 기대듯 잡아당긴다.
민기의 허벅지 위에 쓰러지듯 엎드린 아내의 모습에 난 일순간 엉덩이를 들썩이다 말게 된다.

남들이 본다면 술에 취한 여자가 남자의 허벅지 위에 머리를 기대고 양복 상의를 머리끝까지 덮고 잠이 들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잠시 후 미세하게 들썩이기 시작한 민기의 양복 상의의 움직임에도 난 그럴 거라는 말도 안 되는 기대와도 같은 생각을 하며
허리를 숙여 훤히 드러난 아내의 모여진 허벅지를 노려보게 된다.


모르는 사람은 지나가다 팬티까지 보일정도로 허리를 숙인 아내의 하반신에 시선을 뺏겨 정신을 못 차렸겠지만, 내 시선에
보이는 아내의 허벅지보다 아주 조금씩 들썩이기 시작한 아내를 덮고 있는 민기의 양복 재킷과 그리고 다시 벤치 등받이에
양팔을 벌려 기대고는 고개를 뒤로 젖혀 하반신에 느껴지는 감촉을 음미하듯 지그시 감기 시작한 민기란 남자의 표정만이 온통
들어차게 된다.


지금이 2시가 가까워진 새벽이 아니었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갔을 공공장소인 이 산책로에서 섹스라고는 김팀장이라는
여자를 만나기 이전의 나 만큼이나 젬병이라 생각했던 아내가 다른 남자의 자지를 빨고 있다는 모습은 결코 일이 잘 되고
있다는 위로 따위로 넘기기에는 너무 큰 충격으로 내게 다가왔다.

민기가 벌린 팔의 손을 조금씩 움켜쥐기 시작했고, 젖힌 얼굴의 미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 후~... 일어나 봐.”
“ .....”
“ 웃차..”

‘쓰~윽~~’
민기가 아내를 강제로 일으켰다. 허리를 곧게 펴고 앉은 아내가 맨 처음 한 행동은 팔을 올려 자신의 입을 닦는 행위였다.
난 더럽다는 생각에 욕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던 걸 겨우 억누르게 된다.


“ 시..싫었어요?”
“ 아니...”
“ 그럼.. 왜?”
“ 정말 처음이라고?”
“ ...네?..예.”
“ 정말로?”
“ 그렇게.....이..상했어요?”
“ 아니. 도저히 못 참겠다..”

민기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말을 하곤 뭔가를 찾는지 고개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일어나 아내의 손을 잡아 이끌고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양복 재킷을 떨어트릴 뻔 한 걸 겨우 손에 쥔 아내가 개처럼 끌려가게 된 곳은 냄새나고 지저분한 간의 화장실이었다.

둘이 함께 여자 화장실로 몸을 숨겼을때 나도 서둘러 화장실로 가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는 다시 숨죽여 벽에 바짝 기대게 된다.
높은 간이 화장실의 작은 창문이라 안이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귀에 온 정신을 집중하며 
뭘 할지는 뻔했지만, 하필 이런 더러운
장소여야만 하는지 민기란 남자가 생각보다 훨씬 더 최저라는 생각을 하며 이런 남자에게 끌리는 아내의 모습에 이해를
할 수 없었고, 이해하기도 싫었다. 
그리고.. 내가 왜 이렇게 아내에게 집착하듯 이곳까지 따라왔는지도 이해가 가질 않았다.

“ 자..잠깐만요.. 여..여기서??”
“ 못 참겠다고.”
“ 아..아무리 그래도.. 여...기서는..”
“ 장소가 중요한가?”
“ 네??”
“ 쪽~~~”
“ 후흡~~”

쿵쾅거리는 벽의 진동 소리와 바로 창문 너머에서 들리는 말소리로 변기가 있는 이곳에서 아내는 칵테일 드레스를 입고 민기와
키스를 나누기 시작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 쿵쾅거림과 질퍽거리는 혀가 교차하는 소리의 크기만큼이나 그 격렬함이 얼마나 큰지 짐작하게 하는 둘의 행위에 숨소리가
멎는 듯한 고통을 느끼게 된 나였다.


“ 이..이런 자세로는 아..안되..요.. 안..... 들어...헉!!!”
“ 남편은 작은가 보군.”
“ 아~~자..잠시만~~”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수가 없었다. 흔들리는 간이 화장실의 얇은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아내의 간혈적인 신음소리에 떨리는 내
몸과는 반대로 심하게 고동치던 심장이 멎을 것만 같은 충격에 식은땀까지 흘리게 된 난 결국 도망치듯 주차장으로 뛰어갔다.

운전을 어떻게 했는지, 어떻게 현관문의 비밀번호를 땄는지도 기억나질 않았고, 느껴지는 심한 갈증과 목마름에 1L짜리 생수
한통을 단번에 비워버린 난 도저히 맨 정신으론 버틸 수 없을 거란 생각에 술부터 찾게 된다. 이렇게 충격을 받을 거란 건 전혀
예상 못했기에 더 그랬다. 
그런데 아무리 술을 마셔도 취하질 않는다.

[오팀장님??]
“ .....”
[여보세요. 오강진 팀장님!!]
“ 네..네??? 죄.죄송합니다.”

핸드폰을 귀에 대고 아까 있었던 일을 회상하듯 생각에 깊게 잠겨 있던 난 짜증 섞인 민기의 목소리에 겨우 정신줄을 잡게 된다.

[급한 일이십니까? 지금 시간이..]
“ 급한..건 아닙니다.”
[그럼 나중에 통화 하시죠.]
“ 잠..잠깐만요.”
[.....]
“ 다른 게 아니고.. 말씀드렸던 건에 대해서 부..탁 좀 드릴게 있어서요.”

횡설수설이었지만, 우선 뱉어내고 본다.

[걱정하지 마십쇼. 김팀장이 뭐라 했건 확실히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아내 되시는 분하고 벌써 접촉이 있었고, 진행도 상당이 된
 상태고요. 그냥 신경 끄시고 김팀장과 지금처럼 놀아나시면 됩니다.]

“ 누가 놀아...났다고...”
[아닙니까? 이 시간에 확인 전화를 할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건 알겠는데요. 아무리 그래도 이건 실례죠.]
“ ...죄송합니다.”
[전 한 번 맺은 약속은 어떻게든 지키는 놈입니다. 일종의 계약이라고 생각하고 계약이란 건 잉크로 칠했든 피로 맹세를 했든
 깨서도 어겨서도 안 된다고 생각 하는 놈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잠 좀 잡시다!]

“ 그..그게 아니고요...”
[아!~ 이 양반이 진짜!! 그럼 뭘 더 원하는데요!?]
“ 그..그러니까....너..너무 격렬하지 않게... 그러니까.... 제 말은.. 아내가 아프다고 얘길 하거나... 거부를 한다면 말입니다..
 그 선에서.. 그만..”


내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도 모르고 횡설수설하게 된다. 입에서 맴돌며 튀어나오지 않는 부정하고 싶은 핵심에 나조차도
답답해 했고, 말까지 더듬게 된다. 
어차피 아내와 난 이미 건너서는 안 될 강까지 건넌 상태였고, 더 이상 쓸어 담을 수도 없는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런대도 난 무슨 미련이라도 남은 놈처럼 전화를 쉽사리 끊을 수가 없었다.


[지금 무슨 말을 하시는지 좀 헷갈리네요. 꼭 그만두라는 말씀 같은데..]
“ 아닙니다. 그게 아니고.. 아내가 조금이라도 상처를 덜 받게.....”
[덜 받게 하라뇨? 어차피 막장 드라마 찍고 있는 거 아닙니까? 김소이 년이랑 대놓고 즐기려고 아내 약점 잡으려는 당신 계획에
 장단까지 맞춰주고 있는데.. 뭘 어쩌라고요?]

“ ......”
[거칠게 하든 부드럽게 하던 제 스타일대로 밀어 붙이면 되는 거고, 결과만 좋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 좋은..결과라는게.....”
[이 보쇼!]
“ ..네??”
[지금 저랑 장난치자는 겁니까? 뭡니까!? 내가 만만해 보여요? 한가해 보이냐고!]
“ 아.아닙니다... 그냥 하던 대로... 해주세요. 아내 약점을 확실히 잡을 수 있게.. 사..진이라도 찍어서 증거라도 남겨주시면 더
 감사하고요.”

[....]
“ 미..민기씨?”
[사진까지 찍을 필요 없습니다. 제가 알아서 한다고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 ..............네. 감..사합니다.”
[뚜~~뚜~~~~~~~]

끊어진 핸드폰의 종결음을 한참 더 듣고 있던 난 도대체 내가 왜 민기란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민기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전화를 건 것인지 민기에게서 무슨 말을 듣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는지에 대해 생각하던 난 결국
한잠도 이루지 못하고 출근을 하게 된다. 통화중 마지막에 비굴하게 민기란 남자에게 사진이란 얘길 꺼낸 내 자신에게 느낀
엄청난 창피함에 되풀이되며 머릿속에 자꾸 생각이 나서 더 그랬다.

 

아내는 어제의 격렬했던 행위에 대한 결과를 고스란히 내게 보여주듯 양복을 입는 동안에도 세상모르고 잠에 취해 코까지 골며
침대에 누워 있었다. 
눈을 감아 또렷하게 보이는 검은색 아이 쉐도우와 더 길어 보이는 속눈썹, 어제 했던 화장들과 헝클어지긴
했지만, 아직도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민기에게 잘 보이기 위해 미용실까지 가서 어젯밤에 한 해어스타일로 어제 훔쳐봤던
도저히 믿기 싫었던 모든 것이 사실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출근을 하고도 좀처럼 일을 못하고 있던 내게 김소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약에 수면제가 들었는지 전화가 온지도 몰르고 잠만 잤어요. 피곤했나...]
“ ....응.”
[오늘 저 퇴원하는데. 우리 만나요. 정말 만나고 싶었어요. 가장 먼저 오팀장님이 생각나서..]
“ 퇴원 해?”
[네. 이제 퇴원해도 된대요.]
“ 내가 데리러 갈게. 어느 병원이야?”
[아니에요. 제가 당신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회사 앞으로 갈게요.]
“ 응. 알았어.”

‘그래.. 소이랑 만나기가 힘들어서 내가 엉뚱한 망상과 괜한 죄의식에 사로잡혔던 거야. 아내 따위에게...“

“휴~.. 이제 살겠어요.”

거의 한달 반이라는 시간동안 못 본 소이의 얼굴은 걱정했던 것 보다 훨신 괜찮아 보였다. 군더더기가 없는 몸매였기에 빠질
살도 없어 더 그래 보였겠지만, 오늘 만나러 온 소이의 모습은 특유의 차도녀 같은 스타일이 아닌 평온함을 보여주는 미녀를
연출한 모습으로 얇은 흰색 나시티에 조금은 큰 와이셔츠 같은 하늘색 블라우스와 그 아래에 긴 치마를 입고 있었다.
주름이 있다면 월남 치마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회색빛이 감도는 긴 치마는 소이란 여자의 평소 이미지와는 다른 부드럽고
따뜻해 보이는 치마였다.


“ ...왜요?”
“ 아니.. 항상 정장스타일만 입고 다니는 모습만 봤는데..”
“ 이상한가요?”
“ 아니야.”
“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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