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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

착한 사랑 - 34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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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9가이드
댓글 0건 조회 36,098회 작성일 20-12-09 15:50

본문

막상 일자리를 찾게 된 민기는 많은 난간에 부딪히게 된다. 

흥신소 일은 이미 동민에게 넘긴 상태였기에 마냥 집에서 놀 수만은 없다는 생각에 이전의 인연과는 거리를 두기 위해 좀
먼 곳으로 일자리를 알아보게 된 민기였지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교도소 출신에 고등학교 중퇴인 민기에게
할 수 있는 건 공장이나 노가다정도가 다였고, 그것도 막상 찾아갔을 때 미숙한 손놀림에 하루도 채우지 못하고 쫓겨나게
된다. 민기의 여전한 살기어린 눈빛을 혼을 내던 윗사람이 보고 쫓아내는 것이 태반이었지만 말이다.

흥신소에 악영향만 없다면 정말 흥신소에서 소장 노릇이나 하고 싶다는 생각을 몇 번이고 하며 답답한 마음에 벼룩신문을
뒤지게 된다.


사실 민기는 수영장을 다녀온 후 필사적이 되어버렸다.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돈이야 사치라는 걸 아니 쓸 곳조차
없었고, 또 고만에게 받은 돈을 흥신소 동생들에게 다 물려줬는데도 1/3이나 돌려보낸 동민의 행동으로 민기에겐 부족함
없이 넘쳤지만, 
아직도 이틀 전 수영장의 그날을 생각하면 아리를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던 민기였기에 하루라도 빨리
아리에게 떳떳한 사회인으로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었다. 
꼭 그날 만난 상기라는 대학생 때문만은 아니었다.


등에 한가득 그림을 담고 있던 민기였기에 수영장 안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놀 수만은 없었다.

무의식적으로 수영장 큰 풀의 구석으로 등을 기대며 소극적으로 아리와 놀던 민기의 행동에 곧 볼을 잔뜩 부풀린 아리가
강제로 민기의 손을 잡고 이끌어 풀장 중앙으로 이동한다. 
아리의 모습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남자들의 시선을 한눈에 받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민기만 없었다면 아마도 많은 남자들의 대시를 받았을 게 분명했지만, 민기의 등에 수놓아져있는 여대
불상의 모습은 일반인조차 뒷걸음질을 치게 만들 정도로 낯선 모습이었고, 평일 한낮인데도 꽤 많던 사람들의 모습이 어느새 풀 한가운데엔 아리와 민기만이 남게 되었다.


그러나 아리가 너무도 즐기며 즐거워했기에 민기도 곧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잊은 채 잠수하며 아리의 발목을 잡고 물을
먹이는 등 장난을 즐기기 시작했다.


" 아저씨!! 아저씨!" 


그렇게 놀던 두 사람에게 풀장 밖에서 검은색 티를 입고 호루라기를 목에 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신나게 놀던 두
사람은 생각지도 않은 지명에 자신들인 줄도 모르고 한동안 더 장난을 치게 되었지만 호루라기까지 불기 시작한 남자의
행동에 민기와 아리가 장난을 그만두게 된다. 
손짓으로 나오라는 명령을 하는 체격 좋은 남자의 말에 '역시..'라는 생각을
하며 민기가 아리의 손을 이끌고 풀장의 가장자리로 가게 된다.


" 손님 죄송한데요.. 여긴 회원제 클럽이라서요.. 그리고 수영장 한가운데서 노시면 어떻게 합니까.. 남들 수영에 방해 되게.." 

" .. 죄송합니다."

" 왜요??" 

" 예??" 


일반인이 상대였기에 고개 숙여 사과를 하게 되는 민기였는데, 엉뚱하게 아리의 퉁명스러운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게 된다. 


" 아까 보니까 저기에 남자들하고 여자들이 막 공 가지고 놀던데 저희는 왜 안 돼요?" 

" ....그..그거야.."

" 다시 가요 오빠.."

" 손님... 그 분들은 회원이시고요.."

" 그럼 회원이 아니니까 중앙에서 놀면 안 된다고요? 제대로 수영하는 사람들은 저쪽 깊은 레이스용 풀장에서 하잖아요."

" ....."

" 별걸 다 트집 잡아..가요 오빠!!"

" 아..아리야.. 그냥 여기서 놀자.."

" ....왜요?!"

" 손님.. 저희 클럽은 고급스러운 상위 5%의 회원 분들을 위해 특별히 헬스트레이닝. 골프장. 수영장을 운영중입니다..
 그런데 이런 문신이나 한 양아...손님이 물을 흐리시면.."
 


" 여보세요!!"

" ..예?.."

" 지금 그거 사람 차별하는 언행이란 거 아세요?"

" ....그게 아니고요.. 원래 이 수영장이.."

" 그러니까! 여기 고급스러운 곳인 거 충분이 알겠다고요! 근데요! 등에 문신 있다고 놀지 말라는 법 없잖아요!..
 우리 오빠도 충분히 고급스러운 남자거든요!!"


" 아..아리야...알겠습니다.. 저희 그만 나갈게요."

" 이거 놔요!! 아저씨! 여기 다 수영복만 입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몸땡이에 금칠했어요? 누군 황금 똥 싸는 귀한
 사람이라서 중앙에서 놀 수 있고, 누군 구릿내 나는..읍읍!! 읍~~!"
 


" 죄송합니다.. 가자 아리야.. 내가 맛있는 거.. 악!!!!!!"


갑자기 민기의 손을 꽉 깨문 아리이기에 어쩔 수 없이 손을 놓게 된다. 씩씩대며 자신의 입을 틀어막은 민기를 매섭게 아리가 노려보더니 그 노려봄을 다시 풀장 밖에 있는 안전요원으로 향해 눈을 돌린다. 이런 아리의 당당한 행동에 안전요원인 남자가 오히려 당황하게 된다. 사실 안전요원이라고 해도 민기에게 쉽게 말을 걸 수 있을 정도의 남자는 없었을 것이고, 많은 경계와 돌발 상황을 준비하며 제지를 하려 했던 안전요원은 생각지도 못한 아리의 말에 더 당황하게 된다.


" 이 남자가 누군지 아세요?! 단지 등에 그림 그려져 있다고, 그런 걸로 사람 겉모습만 보고 판다하면 나중에 큰일 나요!
 그런 것도 모르세요?!!"
 

" ......"

" 그리고! 이 그림이 물에 베어나기라도 한대요?!! 왜 풀 중앙에서 못 놀게 하는데요!!"


쩌렁쩌렁 수영장을 울리는 아리의 목소리에 민기보다도 더 뻘게진 얼굴로 안전요원이 안절부절 못하고 서 있게 된다. 

민기가 느끼기에도 아리의 말투가 너무나 당당했기에 이런 남자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고, 그런 마음에 계속해서 아리의 팔을 잡고 밖으로 나가려는 듯 이끌어보지만, 요지부동으로 꿈쩍도 하지 않는 아리였다. 어디서 이런 힘이 나는 건지 결국 그런 아리의 행동에 점잖게 양복을 차려입은 두 명의 남자와 함께 조금은 계급이 높아 보이는 연륜 있어 보이는 남자가 수영장 안으로 발을 들이게 된다.


어느새 풀장 밖으로 나오게 된 두 명이었지만, 여전히 아리의 행동은 한 치 부끄럼도 없이 달랑 비키니 하나 입고 당당하게
서 있었기에 도리어 민기가 뒤에서 머뭇거리게 된다.


" 죄송합니다.. 저희 직원이 실례를 범했습니다..." 

" ...그럼 놀아도 되요?"

" 예.. 당연히 즐기셔도 됩니다.."

" 그럼 아저씨 얼굴 봐서 용서해 드릴게요.."

" ..감사합니다.. 저기 그런데.."

" ...예?"

" VIP초대권으로 이용을 하셨던데.. 혹시 어느 분 소개로....아니.. 저 분이 뭘 하시는지.. 알 수 있을까 해서요?"

" 그건 왜요?"

" 아!.. 별다른 뜻은 없습니다.. 단지 고객 확보 차원에서.. 저희 클럽은 고객님들의 회원 동의하에 신상정보를 수집해서
 보다 좋은 서비스로 환대해 드리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 ...음~"


머리가 지끈거리는 민기는 사실 지금 상황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다. 이미 손을 턴 민기였고, 혹여나 이 일로 인해 철민형님에게 누가 되는 건 아닌지 온갖 변명과 함께 연극이라도 해야 할 거 같은 생각에 머리를 굴려보지만, 등짝에 커다란 문신까지 한 채 발가벗고 있는 민기의 형태를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조차 갈피를 못 잡았기에 연신 입만 뻥긋거리게 된다.


" 제 오빠요!.." 

" 예...예??"

" 오빠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오빠에요. 일반인이고요!!!" 

" 이..일반인이라시면.."

" 비록 지금은 큰 일을 하려고 준비중이지만.. 확실한건 착한 사람이라고요! 등에 있는 그림가지고 사람 기분 나쁘게 하지
 말란 말이에요."

" ......죄송합니다.. 그럼 즐거운 시간 보내십시오."


민기가 황당한 눈빛으로 아리를 바라보지만, 착한사람이라는 단어로 모든 상황을 종료해버린 아리는 너무도 당당히 다시
수영장의 놀던 풀로 발을 드리게 된다. 
이렇게 쉽게 물러날 사람들이 아닐 거라는 생각에 민기는 연신 고개를 돌려 무리지어 있는 남자들을 훔쳐보게 되는데, 그 연륜 있어 보이는 남자가 뭐라고 지시를 내리는 듯 보이더니 이내 사라져버린 직원들이었고, 그 후 안전요원조차 별다른 제지 없이 그냥 멀뚱히 아리와 민기를 바라볼 뿐이었다.


나중에서야 그 VIP초대권이 100장 한정이라는 것과 시리얼 넘버마다 발급된 사람의 신원이 다 파악되어진다는 걸 알 수
있었고, 철민의 일행이라는 걸 미리 알고 있던 책임자의 조치란 것까지도 알게 된 민기였지만, 아리의 이런 행동에 알고
나서도 어처구니없어 한건 어쩔 수 없었다.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아리란 생각을 하며 놀기에 제대로 전념하지 못하는 민기였는데, 아리가 남자들이 던지고
놀던 공을 빌려와선 풀장 한가운데로 이동을 했고, 내게 빨리 오라는 손짓을 보낸다. 그런데 공을 빌려준 남자 일행이 자신들에게 손짓하는 아린 줄 알고는 머뭇거리다 말고 아리에게 향하는 모습을 민기에게 보여준다. 
민기를 기다리던 아리에게 몰려든 세 명의 남자들은 부잣집 아들들이라는 걸 말해주듯 자신감은 충만했고, 행동에 거리낌이 없었다. 먼저 아리에게 장난을
치며 너무도 스스럼없이 대하기 시작한다.


무섭게 그 남자들을 노려보기 시작한 민기였지만, 연신 빨리 오라는 손짓을 보내는 아리였기에 결국 한 무리가 되어 물놀이를 하게 된다. 연회비가 얼마나 되는지도 모를 비싼 휘트니스 수영장 한복판에서 처음엔 민기를 무서워하던 남자들이었지만,
아리의 포옹력은 민기의 문신조차도 잊게 만들어 버렸다. 아리의 외모도 한몫했겠지만, 민기에게 대하는 미소는 다른 남자들을 질투하게 만들며 연신 장난치며 민기와도 함께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물놀이에 금세 배가 고파진 아리는 혼자 물 밖으로 나가 두리번거리는데, 물 속에 있던 민기가 그런 아리를 쫓아 물가를 나간다.


" 왜?" 

" 배고파요."

" 또???"

" ...."

" 넌 뱃속에 거지새끼가 들어 있냐? 그렇게 먹고 또 배고파?"

" ..씨~~!!!"

" 크크.. 뭐 먹을래?"


" 형님!!"


많이 듣던 존칭이지만 그 목소리 톤 자체가 틀렸기에 민기를 고개 돌리게 만들었다. 방금 전까지 같이 놀던 남자들이 민기를 쫓아 풀에서 나와 민기를 형님이라고 부른다. 정확히 말해 아리를 부른 것이였다. 


" 뭐하세요?" 

" 으..응?? 나?"

" 그럼 형님이 여기 또 있겠습니까?"


어디서 본건 있는지 그중 계속해서 말을 거는 말투가 민기에게 낯설지 않았기에 오히려 당황하게 된다. 


" 근데.. 아가씨 이름도 몰랐네.. 이름이 뭐에요?" 

" 저요?"

" 예."

" 아리요. 권아리요."

" 아~~ 아리씨.. 역시 아리아리하다고 했더니.."

" 예?? 그건 무슨 말이에요?"

" 몰라요? 백기완아라는 사람이 한 말인데.. 그분이 화이팅 대신에 '아리아리'라고 한국말로 외치자고 말씀하신 거죠?"

" ......"

" 하하하하하하.. 모르셨구나."


아리조차 처음 듣는 말이었지만, 썩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정치색이란 어색한 단어에 백기완이 누군지도 모르는 아리였지만 아리아리가 파이팅이란 단어로 쓰인다는 것이 기분 좋았다. 그러나 너무 들이대는 이 남자가 민기는 아리와 반대로 경계하게 된다. 민기보다 작은 체구였지만 문신하나 없는 깨끗한 육체만으로도 민기가 한수 접고 들어간다는 깡패다운 생각을 하며
그 남자를 빤히 노려보게 된다.
 


" 아! 형님 전 구상기입니다. 좀 이름이 어렵죠.." 

" ...예.. 전 권.. 고기민이라고 합니다."

" 혹시 정말 그쪽분이세요?"

" 예??"

" 지금 다시 보니까.. 이거 장난이 아닌데요.."

" ..."


거리낌 없는 그의 말투는 민기를 불편하게 만들기 시작한다. 자신감 충만한 미소를 보이며 능청스럽게 악수를 청하는 이런
남자는 민기가 꺼리는 부류였다. 분명 돈의 위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런 부류는 사람을 부리는데 익숙했고, 소유욕 또
한 남달랐기에 포기란 단어를 각인시키는 대에는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했던 경험으로 아예 거리를 두는 것이 민기에게
나중에 골치 아픈 일을 막을 거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 그럼 재밌게 놀았습니다.. 아리야 뭐 먹을래?" 

" 음~.. 핫바 먹어요!"

 "..핫바?"

" 옙!!... "

" 그거 디게 맛있어요. 학교 매점에 없어서 못 파는데.."

" 그런 게 여기 있을까?"


" 핫바가 뭐죠?"


민기가 인사를 했는데도 자리를 떠나지 않은 상기는 둘의 대화에 대뜸 끼어든다. 


" 핫바를 몰라요?" 

" 뜨거운 막대기가 뭔데요?"

" 뜨거운 막대기??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 ...." 

" 좀.. 말이 그런가??" 

" 그게 뭐에요?! 큭큭~...있잖아요.. 소시지같이 고기에 막대기 꽂아 놓은 거."

" BBQ?? 아닌가??"

" 음.. 어떻게 보면 비슷하긴 하겠네.. 기분이다! 공 빌려줬으니까 제가 사드릴께요!.. 가요!"

" 오~~ 좋죠."

" 오빠! 뭐해요??"

" 으..응?? 그래...." 


많이 놀아본 민기와는 달리 아리의 눈높이에 맞는 대화로 어느새 둘은 친한 친구처럼 대화를 나누며 당연히 고급스러운
클럽제 수영장에서 팔지 않는 핫바를 찾게 된다. 결국 수영을 마치고 길가로 나온 세 명이었다. 그 상기란 남자는 친구들도
버리고 아리를 따라 나섰고, 백화점 근처에서 찾질 못하자 뭐가 그리 속상한지 쀼루퉁한 아리의 표정에 민기는 그만 집으로 가자고 얘길 꺼내지만, 상기가 잠시 기다리라는 말을 하고는 다시 백화점으로 들어가 버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로가에 외제 스포츠카가 멈춰서더니 클락션을 눌러 민기와 아리의 시선을 끈다. 


" 타세요!" 

" ....." 

" 와!.. 멋있다!"

" 먼저 형님부터 타세요. 이게 문이 두 짝밖에 안돼서 타기가 좀 힘들어요." 

 "...."

" ..제가 뒤에 탈게요 오빠.. 오빠가 앞에 타세요."

" .."


아리가 열린 조수석으로 먼저 올라타선 뒤로 향했고, 결국 민기가 조수석에 앉자 허탈한 웃음을 짓는 상기였다. 


" 백수라고 들었는데.. 지금 취직 준비하시는 거예요?" 

" ..예?......예."

" 요즘 힘들죠? IMF지난지도 얼마 안돼서.. 많이 힘들다고 하던데..."

" 그렇죠 뭐.."

" 그런데.. 아리 친 오빠세요?"

" ....아니요."

" 역시!.. 좋아하는 오빠라고 하더니.."


아까 수영장에 쩌렁쩌렁 울리던 아리의 말을 다 듣고 있던 상기였는지 넉살좋게 민기에게 말을 건넨다. 


" 연배도 저보다 많으신 거 같은데 말 놓으세요. 저 이제 22살입니다." 

" ...아닙니다.. 제가 좀 낮을 가려서요."

" 하하하.. 제가 불편해서 그래요."

" ....."

" 그런데 아리씨는 몇 살이에요? 21살? 22살?"

" 예~~에?? 제가 그렇게 많아 보여요??" 

" ....그럼요?"

" 흠~~ 실망인데.... 뭐.. 성숙해 보이는 것도 나름 괜찮지만.... 그래도 아직 20대도 아닌데.."

" ..그럼 19살?????"

" 옙!! 이번에 수능 봤어요."

" 와!~~~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 ....왜요? 왜 웃어요?"

" 아니.. 내 촉도 다 했나 해서."

" 촉이요?"

" 이래봬도 여자 보는 눈은 정확하다고 생각했는데... 대학생이나 뭐..그런 건 줄 알았지.."

" 치~~.. 근데 갑자기 왜 반말이에요?"

" 하하하하하하하하하..아! 시장에 다 왔다."


차는 어느새 백화점에서 시장으로 이동해 도로가에 아무렇게나 주차를 해버렸다. 


" 이거.. 딱지 때는 거 아닌가요?" 

" 예?? 하하하하하.. 상관없어요."

" 아니.. 그러다가 견인 당하면.."

" 견인 못해요.. 흠집이라도 나면 1년 봉급 다 때려 박을 텐데.. 함부로 견인 못해요."

" ......"

" 가자 아리야." 

" 예??...."


역시 민기가 대하기 거북한 부류였다. 먼저 나간 상기의 뒤를 결국 둘은 쫓아가게 된다. 그러나 시장에 들어가자 정작
주춤거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상기였다. 많은 사람들과 좁은 골목으로 이뤄진 시장의 길목에서 더 이상 나가지 못하고
두리번거린다.


" 왜요?" 

" 사람 진짜 많구나...."

" 시장 처음 와요?"

" .....응."

" 예에???"

" 참나.. 곱게 자랐네.. 시장을 처음 와? 그럼 반찬은 뭘 먹는데.. 하긴 차 보니까 순 백화점이나 그런데서 사먹었겠지..." 

" ..하하하.. 그러게요.. 세상 헛살았네요......"

" ...."


" 뭐 세상에는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있는 거죠.. 오빠는 그런 걸로 면박을 주냐.."

" 내..가 언제 면박을 줬냐?!"

" 치~~ 또 성질내.. 가요!"

" 하하.. 그럼 아리씨가 안내 좀 해주세요." 


뭐가 그리 신이 났는지 사람들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들어간 아리의 뒤를 쫓아가기도 버거운 두 남자는 결국 아리가 안내한 분식 포장마차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말로 핫바를 처음 보는지 상기는 아리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기
시작한다. 민기도 아무렇지 않게 먹기 시작하는데 상기의 시선은 핫바가 들어있던 작은 온열기를 쳐다보고는 창살로 되어
있는 받침에 묻어있는 소수들을 보며 인상을 찡그리게 된다.


" 이거.. 혹시 유통기한 지난 거 아니야?" 

" 예에~~~???"

" 아니.. 저기 온장고 같은 거보니까...."

" 풋~..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 ......왜.. 웃어?"

" 진짜 넘 모르신다.."

" ...."

" 이런 건 원래 하루에 다 못 팔면 다음날에도 파는 거예요!. 그리고 오래 될수록 숙성된 그윽한 향과~~
 그거 뭐냐.. 음~~~ 담백한 맛??"

" 담백한 맛?"

" 먹어봐요!.. 이거 진짜 맛있다고요."

" .."


" 놔 둬.. 먹기 싫다는 사람한테 권하는 것도 실례야."

" 누가 싫다고 했습니까.. 그냥 그렇다는 거지.. 그런데 아리야."

" 응??"


익숙하게 아리를 아리라고 부르는 상기의 모습에 민기가 핫바의 나무까지 씹은 채 거북스럽게 상기를 쳐다보는데, 아리는
대수롭지 않게 핫바를 한가득 입에 물고는 고개를 들어 민기가 좋아하는 '응'이라는 대답을 하며 상기를 바라본다.
 


" 진짜 귀엽다." 

" ....."

" 너 말이야. 여기 오빠 말고, 혹시 남자 친구 있어?"

" ..."


아리도 당황하게 된다. 아무리 아리에게 흑심을 품은 많은 남자들이 있었지만 이렇게 민기 앞에서 대놓고 대시하는 남자는
상기가 처음이었기에 아리는 불편해하는 민기의 눈치를 살피며 바라보게 된다.
 


" ..왜요?" 

" 수능 봤으면? 공부는 잘 했니?"

" 그건 왜요?"

" 영어는 좀 해?"

" .....진짜 이상하네.. 왜 그런걸 다 물어봐요?"

" 그냥.."


" 진짜 이상하내.. 무슨 심리하는 것도 아니고... 꼬치꼬치 물어본데."

" 형님은.. 아리랑 무슨 사이세요?"

" ....나?"

" 예. 제가 보기엔 꼭 절 못마땅해 보시는 거 같아서요."

" ,,,,,," 


아리도 상기의 질문에 무슨 기대를 하는지 민기를 빤히 바라보게 된다. 


" 무슨 사이긴 무슨 사이야... 삼촌이지.." 

" 예??"

" 사..삼촌이라고..아니.. 오빠라고..."

" ...뭡니까? 삼촌이에요? 오빠에요?"

" ........몰라!."

" ..............." 


아리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 ...아리야 혹시 핸드폰 있니?"

" ...예?"

" 핸드폰? 있어?"

" ...있어요."

" 줘봐."

" ...."


아리가 핸드폰을 꺼내 상기에게 건네자 번호를 찍고는 통화버튼을 누른다. 그러자 상기의 청바지 주머니에서 벨소리가
들려왔다.
 


" 우리 친구하자." 

" 친구요?"

" 응. 친구하자고."

" ...좋아요."

" 진짜? 하하하하하하.. 쿨해서 좋네. 역시 X세대는 다르긴 다르구나."

" ....전 누구처럼 우유부단하지 않거든요."

" 뭐?"

" 아니.. 혼잣말 이었어요..."

" ......" 


싫다는 대도 굳이 민기의 집 근처까지 데려다준 상기였다. 기분이 좋지 않은 민기였기에 좋지 않은 표정으로 집으로 향하는데 그보다 더 뽀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아리가 그런 민기를 밀치며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황당함에 양복상의를 대충 벗어
던진 민기는 거실에 드러눕듯 벽에 기대곤 텔레비전을 틀어 무표정으로 시선을 고정한다. 아리는 아리대로 들어오자마자
손을 씻고는 주방으로 향해선 거칠게 칼질을 하기 시작한다.

그 소리가 귀에 거슬린 민기는 막 화를 내려는 듯 몸을 일으키는데 딱 그때 들려온 벨소리에 시선을 옮기게 된다. 


" 누구세요?" 

" 나야."

" 수지 언니??"

" 그래 문 열어."

" 와!~.. 언니 밥 먹었어요?"

" 아니.. 방금 일어났어."

" 넌 왜 왔냐?" 

" 뭐?!!"

" ...."


매섭게 노려보는 수지의 눈빛에 민기는 꼬리를 내리게 된다. 


" 내가 못 올 곳 왔냐?" 

" ...."

" 아리야 이거.. 맞지?"

" ...아! 고마워요 언니. 나중에 가져다 주셔도 되는데.."

" 학생이 이게 전부인데.. 어차피 나 출근하다가 들린 거야."


수지가 아리에게 작은 가방을 하나 건넨다. 그날 급하게 민기의 집으로 옮기던 도중 정작 학교 책가방을 놓고 온 아리였고,
그걸 굳이 껄끄러운 다음날 전해주러 온 수지였다. 
가뜩이나 신경이 곤두선 민기였지만 지은 죄가 많은 듯 수지에겐 화조차 낼 수 없었기에 조용히 거실에 다시 자리 잡고 앉는다.


" 지금 밥하는 거야? 나 먹고 갈까?" 

" 그럼요! 그런걸 왜 물어보세요."

" 먹다 죽을지도 몰라.." 

"오빠!!!" 

" ...그건 또 무슨 소리야?"

" 쳇~!.. 제가 요리 못한다고... 구박하는 거예요."

" 구박??....."

" 예.."

" 참나...."


거실로 향한 수지는 냅다 반쯤 누워있는 민기의 허벅지를 발로 걷어차 버렸다. 소리도 못 내고 끙끙대는 민기의 옆에 앉은
아리는 민기를 노려보며 입을 연다.
 


" 아주.. 작정했구나...." 

" ,,,뭘?"

" 왜? 아주 신혼살림을 차리지 그러냐?!"

" ...무슨 소리래."

" 나 오늘부터 여기서 지낼 거야. 작은 방 비워 둬."

" 무..뭐?? 그건 뭔 소리냐?"

" 너 그러다가 사고 칠게 뻔해서.. 도저히 안 되겠다고! 퇴근하고 여기로 올 테니까 저쪽 방 치워 놔!"

" 무슨 소리야? 갑자기 그러면.."

" 뭐? 너 혹시 정말로 그럴 생각하고 있었어?"

" 누..누가?!!"

" ........그럼 됐네.. 그리고 일자린 구했냐?"

" 말 돌리지 말고......."

" 웃기지 마시라고.. 하여튼 그런 줄 알고.."

" 참나.. 지 멋대로야...."

" 왜? 난 그럼 안 돼?"

" ...."

" 그건 그렇고.. 정말 일자리 구했냐고.. 동민씨가 걱정하던데.."

" ..동민인 언제 또 만났냐?"

" 아침에 엘르에 잠깐 들렸었는데.. 동민씨 출근하더라.. 아침 일찍.."

"......"

"그래서? 전화하면 죽인다고 했다며? 동민씨한테 흥신소 제대로 운영하라고 해놓곤.. 책임감이 없는 놈도 아니고..
 얘기라도 좀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설명하기도 그렇던데.."


" ..동민이라면 나만큼 동생들 챙길 거야....."

" 남은 식구들은? 숨어 사는 오빠들도 많잖아..."

" 그 놈들이야 다 지들 밥벌이 따로 하는데 뭐... 흥신소 일이라면.. 나보다 동민이가 더 잘 할테고..."

" ..에고... 무슨 고집이 그리...."

" 됐다... 다시 한 번 생각해봐.. 이 좁은 집에서 세 명이 사는게 얼마나 힘들겠는지..."

"  예?? 수지 언니 여기서 지낼 거예요?" 

" 응!.. 안 돼?"

" 안되긴요!! 수지 언니가 있으면 저야 좋죠!"

" 그럼 됐네.. 됐지?!!"

" ...." 

" 와~~ 이거 아리가 다 한 거야?"

" 옙!! 맛보세요! 이번엔 간도 다 봤어요."

" 보기엔 그럴싸한데.. 음!~~......................................"

" ....왜요?"

" ............."


수지의 얼굴을 보게 된 민기는 조심스럽게 자리를 피하게 된다. 


" 맛... 없어요?" 

" 아니.. 맛이........"

" 예??"

" 이게 무슨 맛인지.. 맛을 모르겠는데.. "

" ...난 괜찮던데... "

" ... 보자..혹시 소금 안 넣었니?"

" 간장 넣었어요."

" ..얼마나?"

" 조금요.."

" 내가 간 다시 할게.. 이건 소금으로 조금만 더 간하면 맛있어."

" ...."

" 그래도 짠 것보단 싱거운 게 다행이지.."


" 여긴 왜 왔어요?"

" 기다려봐.. 올 사람 있어..."

" 누구요?"

" ...."


잠을 자고 일어난 아리에게 아침부터 재촉을 해 끌고 나온 민기였다. 차를 타고 이동한 둘은 지금 아리가 살던 집 아래에 문을 닫은 호프집에 먼지를 털고 앉게 되었다. 아리가 오고 싶지 않은 장소란 걸 알고 있었지만, 가장 자연스러운 장**는 생각에
눈치 빠른 아리에게 들키지 않기 위한 민기의 작은 술수였다.


" ....혹시.. 그 아저씨 만나러 온 거예요?" 

" ....."

" 저 싫어요...."

" 괜찮아."

" 뭐가 괜찮아요.. 저 만나기 싫어요..."

" 계속 피할 순 없잖아.. 진작부터 만나게 해달라고 했었는데..차라리 빨리 맞는 매가 덜 아프다고 하잖아.."

" ...."

" 왔다..."


문이 열렸고, 많은 고생을 했는지 만해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핼쑥해진 몰골로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온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 며칠 지난 만해였지만 민기의 지시가 없었기에 흥신소에서 잡일로 하루하루를 보내며 눈칫밥을 먹고 지냈다.
흥신소를 들락거리는 대다수의 민이파 조직원들이 평균연령이 어렸지만 그때의 끔찍한 기억을 떠올리며 만해는 자신의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며 민기가 부르기만을 기다리는데 아침 일찍 흥신소로 걸려온 한통의 전화로 짱개와 한기에게
이끌려 도착한 곳을 확인하고서야 아리를 만나게 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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