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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

착한 사랑 - 3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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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9가이드
댓글 0건 조회 35,508회 작성일 20-12-08 16:25

본문

그대로 남자를 놔준 민기는 땅에 떨어진 칼을 들고는 어깨를 부여잡고 있는 남자 앞에서 서툰 솜씨로 묘기를 부리다 말고는 피식 웃으며 칼집에 칼날을 넣었고, 주저앉아 있는 남자 앞에 무릎을 굽혀 똑바로 시선을 맞춘다.


" 이..이 새끼..너..넌 뒈졌어....으윽.." 

" 무리하지 마라.. 아무리 별거 아닌 거 같아도.. 팔 빠진 거라서 좀 많이 아플 거다..."

" 이..새까!.. 죽여!!"

" 참나.. 이 자식들은 툭하면 죽여달래... 내가 저승사자로 보이냐?...."

" 이...이...."

" 곱깝게 듣지 말고.. 잘 새겨들어.... 칼을 뽑았으면 너무 크게 휘두르지 말고.. 노린 곳에 정확히 꽂을 각오로...
 팔에 흔들림을 최대한 줄이란 말이다.....그리고 이게 뭔 장난감이냐.. 칼은 절대 손잡이에 심이 박혀 있는 걸로 들고
 다니란 말이다.. 지 칼에 손가락 잘려봐야 제대로 된 도구 챙기면서 후회하게 된다.. 왜 조폭들이 사시미를 선호하는지
 아직도 모르겠냐? 사시미란게 얇고 길기도 해서 내장을 제대로 후빌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칼등이 없어도 칼날 끝나는
 부분에 턱이 있어서 힘을 줘도 걸려서 안 다친단 말이다 이 어벙한 새끼들아.... 괜히 휘두르기만 해봐야..
 너희가 좋아하는 폼도 안 나는 게 이런 칼이다.. 그리고.. 당연히 각오부터 하고 칼을 뽑으란 말이야... 칼을 빼들고 덤비는
 순간.. 당연히 정당방위에 좆도 모르는 너네 같은 새끼들은 살인미수라고 해도 4~5년은 그냥 학교에 처박혀 있어야 된다..
 재수 없게 잘 못 찔러서 뒈지기라도 하면.. 특수폭력에 가중처벌까지 최소한이 무기야... 그걸 알면서도 칼질 계속 할래?"


" 무..뭐라는데?!"

" ..............하긴.. 네 나이 땐 어른들 말 들을 놈들이 아니지.....빨리 병원이나 가봐라....."

" 야!! 이 씹새야!"

" 이게 근데 꼬박꼬박 욕이야!! 확!!"


발을 들어 밟으려던 민기는 아리를 보곤 다시 발을 거두게 된다. 잠시 아리의 존재를 잊고 새파랗게 어린것들의 칼질에 너무 많은 말을 하게 된 민기는 그제야 두 명을 부축하며 골목에서 내보내듯 같이 걸어 나가기 시작하는데 뒤 쫓아 오던 아리가
그 모습을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기에 결국 민기는 그리 멀지 않은 민이파의 단골 병원까지 그들을 데려가게 된다.


" 진짜... 깡패구나.." 

" 어허!~.. 나 손 털었다니까....그리고.. 이건 정당방위라고.. 너도 봤잖아...."

" .....말로 돌려보내면 되지..."

" 야!.. 저것들이 말로 한다고 들어먹겠냐? 그럼 이 세상에 울 같은 조폭 새끼 하나도 안 생겨!!"

" 흠~.. 깡패라고 자기 입으로 인정하네.."

" ........"

" ...아야....씨.. 무릎 까졌다.."

" 괘..괜찮아?"

" ....오빠."

" 응?"

" 근데 정말 깡패 그만 둔거에요?"

" 맞다니까!!"

" 그런데.. 아까 그걸 훈계라고 한 거예요?"

" ,...무..뭐?"

" 특수폭력이 어떻고.. 가중처벌인가??? 그리고 휘두르긴 뭘 휘둘러요.. 참 좋은 거 가르치던데요!!"

" 그,.그거야.. "

" 진짜 정신 개조를 하던가 해야지.."

" ....넌 안 놀랐고?"

" ......안 놀라긴요.. 무서웠죠.."

" 소리라도 지르지.."

" 오빠가 금방 나올 줄 알았지..누가 그렇게 늦게 나올 줄 알았나..."

" 참나.....그래 미안하다."


어느새 집에 도착한 둘은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게 된다. 민기에겐 일상 다반사격인 사건이었지만 아리에겐
너무나 충격적인 그리고 민기를 다시 보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방금 전 일어났었기에 쿵쾅거리는 가슴을 애써 숨기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볼을 어루만지게 된다. 영화처럼 멋진 모습의 남자가 자신의 오빠란 사실에 들떠있던 아리였지만,
이내 그런 생각이 너무나 어수룩한 혼자만의 망상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추리닝으로 완전히 탈의한 아리와 달리 민기는 양복 상의만을 벗고 주방으로 향해 쌀을 씻기 시작한다. 물소리에 서둘러
거실로 나온 아리는 그런 민기의 행동을 저지하며 자신이 쌀을 씻으려 손을 내 젖다가 민기의 어깨 바로 아래팔을 보게 되고 놀라게 된다. 하얀 와이셔츠에 길게 난 세로의 갈라진 틈에 선명하게 묻어나고 있는 빨간색의 핏자국에 입만 뻥긋거리며
손으로 부여잡는다.


" 아야!!.. 아파....얘가 왜 이래....어!....." 

" 피..피...."

" ...이 새끼들을 더 밟아 놔야지 안 되겠네.."

" 가만히 있어봐요!!"

" ....."

" 구..구급상자.. 어디 있어요?"

" 응? 구급상자라면.. 분명 수지가 저기 아래에서 꺼냈었는데..."

" ...."


서둘러 찬장 아래를 뒤지던 아리는 구급상자를 꺼내들고 민기의 팔을 잡아끌어 거실로 향하게 된다. 와이셔츠의 소매를
위로 올리려다 뜻대로 안되자 민기의 단추부터 풀기 시작한 아리였다. 
피로 젖어 들어간 와이셔츠의 모습대로 살이 벌어진
모습에 아리는 더 당황하며 소독약으로 솜에 묻혀 찍어내는 응급 처치법이 아닌 냅다 부어 버렸다.


" 아악!!... 아..아프다!! 그거 뭐야?!" 

" ..예?? 이..이거요?"

" 아따... 뭐가 이렇게 쓰라려..."

" 이거 소독약....이 아니네요.."

" 뭐? 그럼 뭔데?"

" vineg..a.r......"

" 비너..뭐? 그게 뭐야... 으윽... 뭐가 이렇게 쓰라려???!!"

" .....식초...."

" 시..식초?? 으~~~~"

" 자..잠깐만요.. 영어사전 찾아볼게요...분명..식초가 맞는데.. 왜 이게 구급..."

" 아악!.. 아..안되겠다.. 우..우선 씻자.. 진짜 아프다고!!"

" 잠깐만요.. 소독약일....거에요.....확인해 볼게요."

" 뭔 확인...놔둬.. 우선 씻을 거야!!"

" 오..오빠!!"


고통을 참지 못하고 그대로 욕실로 뛰어간 민기는 샤워기에 물을 틀고는 팔을 들이밀었다. 그런데도 좀처럼 가시지 않는
고통에 차라리 느낌조차 없었던 칼빵의 아픔을 그리워하며 한참동안을 샤워기 꼭지로 팔을 씻어내게 된다. 그나마 겨우
가신 고통에 물을 잠그고 나온 민기의 팔은 이제는 벌겋게 붇기까지 보여주기 시작했다.
 


" 참나.. 갑자기 식초를 왜 붇는 건데?!!" 

" ..소..소독용 알코올인 줄 알았죠.. 괘..괜찮아요?"

" 넌 이게 괜찮아 보이냐?"

" .....엄살은.. 칼도 안 무서워하면서.. 그.....그정도....로......"

" .....왜? 말까지 더듬어?"

" 오빠.. 병원가자.. 안되겠다."

" 먼 병원이야.. 됐어.. 거기 빨간약이나 찾아봐.."

" ...안되는데.."

" 에휴..."


답답해하던 민기가 결국 혼자 구급약통을 뒤져 빨간약을 꺼내 직접 상처에 붓는데 이 고통도 만만치 않은지 들고 있던 약통을
너무 세게 쥐어 바닥에 빨간약이 튀어 방울을 그리게 된다. 산성인 식초를 상처에 직접 붓는 행동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그리고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도 처음 깨닫게 된 민기는 입술을 깨물며 화풀이도 하지 못한 채 가만히 감았던 눈을 떠서
vinegar라고 쓰여 있는 하얀색의 통을 뚫어져라 노려보기 시작했다.
 


" 참나.. 식초가 여기 왜 들어있데.." 

" ..."

" 사람 헷갈리게.. 괜히 더 다치면 어떻게 하라고.. 이런걸 구급약통에 왜 집어넣어 놔요!....."

" ..."

" 마..많이 아파요?"

" ..그럼.. 안 아프겠냐?"

" ..............죄송해요."

" 네가 왜 죄송해.. 여기 넣어둔 수지가 문제지.."

" 수지 언니가 넣어 놨어요?"

" 그 년이!.... 에휴.. 하여튼 말도 안 되는 민간요법은 어디서 듣고 와서...."

" ......왜 여기다 넣어놨어요?"

" 그 년한테 물어봐.. 옛날에 무좀이 어쩌구 저쩌구 할 때 어디서 그 미제 식초가 좋다고 듣고 얻어와가지고....
 뭐야! 그럼 이거 유통기한도 한 참 지난 거잖아!"


" ......다행이다."

" 무..뭐? 다행??"

" 이거 산도가.... 오래 되서 다 날아갔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큰일 날 뻔 했어요..."

" ....."

" 다시 좀 봐요.. 상처....."

" ....왜?"

" 이거.. 기포 아니에요?"

" ......."

" 진짜 병원가요.. 예?!"

" ..됐어.. 이딴 걸로 안 죽어.."

" 지금 죽는 게 문제에요?! 살까지 타들어간거 같은데...."

" ...괜찮다니까.!!"

" ....."


괜한 신경질로 아리에게 큰 소리를 지른 민기로 입을 다물게 된 아리였고, 잠시 동안의 침묵에 어울리지 않게 미안함을
느끼게 된다. 
고집을 꺾을 민기가 아닌걸 알고 있던 아리였기에 아무 말 없이 옆에 무릎 꿇고 앉아 상처에 다시 한 번 흰색
소독가루를 묻히고는 붕대를 감아주기 시작한다. 상처를 몇 번이고 확인하며 민기가 혹시나 아파하는 건 아닌지 눈치를
연신 살피는 아리였기에 고개를 숙인 채 민기가 멋쩍게 사과를 한다.


" 소리쳐서 미안해...." 

" 괜찮아요...."

" ....."

" 오빠..."

" ...응?"

" 다시는 쌈하지 마세요."

" ...."

" 오늘 같은 일 생겨도.. 꼭 도망가요..아셨죠?!"

" 도망? 널 놔두고?"

" 저야.. 소리 지르면 되죠.. 저 목소리 무지 크잖아요....아마 건물에 있던 사람들 다 나올걸요."

" ..."

" 그러니까.. 칼 들고 막 무섭게 덤비는 사람 있으면 무조건 도망가요.. 괜히 또 다치지 말고요."

" 이건 실수야.. 사실 조금 까진 정도라고.. 팔 같은건 칼 들어와도 안 죽어..."

" 치~.. 누가 죽는데요.. 아프니까 그렇지...."

" ....밥 먹으면 낫는다니까.."

" 그러니까요.. 왜 밥 먹을 때까지 아파요.. 눈 한번 딱 감고 참으면 이렇게 아프지도 않는데.."

" ...."

" 에휴.. 계속 피난다...."

" ...괜찮아.. 그나저나 배고프지? 내가 금방 밥 지어줄게."

" 됐거든요!.. 집에 여자가 있는데 무슨 밥을 해요?.. 그러다가 고추 떨어져요..."

" 무..뭐?!"

" 큭큭.. 울 엄마가 옛날에 아빠한테 맨날 그랬어요. 가만히 티비나 보세요. 제가 금방 밥 차려드릴게요.."

" ..."


붕대를 질끈 묶고는 종종걸음으로 주방으로 향하는 아리의 뒷모습을 지켜보게 된다. 이런 감정을 느끼면 안 되는데 자신의
상처를 정말로 안타까워 해주는 여자가 옆에 있어주니 괜히 더 꾀병을 부리고 싶어지는 자신의 감정을 애써 참으며 입을
다물고 아리의 말대로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하게 된다. 아리의 모습을 계속 보고 있게 된다면 공주처럼 여왕 마마처럼
모시고 싶어져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밥상까지 차릴 거 같다는 생각에 시선을 겨우 고정하고 앉아 있는다.


얼마가 지났는지 주방에서 맛있는 냄새가 민기의 코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면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민기였기에 점심에 먹은
자장면을 거의 반이나 남겼었고, 생각지도 않은 한 따까리를 하게 된 민기는 어느 때보다도 허기를 느끼게 된다. 아리가 옆에
있어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지는 모르겠지만, 코를 자극하는 냄새는 그런 민기를 일어나게 만들었고 곧 요리를 하고 있는
아리의 옆을 서성이며 하고 있는 찌게와 무침들을 훔쳐보게 만들었다.


" 그..건 뭐야?" 

" 이건 오뎅국이고요.. 무침 좀 할려고요.. 근데 기특하게 장은 언제 봐두셨데..."

" 기특?? 참나... 음~~ 내..냄새는 좋네.."

" 기대하시라!! 아리표 오뎅탕국!!! 깜짝 놀랄걸요."

" ....배고프다.. 아직 멀었어?"

" 그러니까 왜 자장면을 남기래요?"

" ....알았고.. 아직 멀었냐고..."

" 다 됐어요.. 앉아 계세요,"


다시 거실에 앉은 민기 앞에 곧 잘 차려진 5첩 밥상이 대령한다. 감자조림과 시금치 볶음 거기에 햄볶음과 이름 모를 산나물
까지 그러나 무엇보다 아리가 자랑한 메인 요리인 오뎅탕국의 냄새가 민기의 허기진 식욕을 자극하며 서둘러 숟가락을 들게
한다. 
당연히 오뎅탕부터 한 숟가락 퍼 입으로 가져간 민기는 맛을 보고는 깜짝 놀라게 된다. 생각지도 않은 깊은 맛에 몇
숟가락이나 연거푸 들이키고는 아리를 감탄이 서린 눈으로 쳐다보게 된다.


" 큭큭~.. 맛있죠?" 

" ...와!.. 이거 진짜 대박이다.."

" 어흠!~~ 제가 이래봬도 한 요리 한다니까요."

" 이거 언제 배웠냐?"

" 참나.. 또 잊어 먹었어.... 엘르에서 아줌마가 직접 전수해준 오뎅탕이잖아요!"

" 아!~~ 맞다.. 하긴 엘르 오뎅탕이 유명하지.."

" 제가 끓여서 더 맛나는 거예요!"

" 크크.. 그래.. 그렇다고 하자.. 흠~.. 이런 건 언제 했냐..."

" 저 솜씨 좋다니까요!"

" ........."


말을 끝내며 밥과 함께 먹은 시금치를 몇 번 씹더니 방금 전과는 전혀 다르게 급속도로 민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심상치 않은 민기의 표정에 아리가 당황하며 손으로 시금치를 집어 들어 입에 넣는데, 아리도 얼마 먹지 못하고 그대로
뱉어내게 된다.


" 이..이건 실수예요... 이..게 왜 이러지.. 분명히 간을........안 봤구나..." 

" ....."

" 다..다른 건 괜찮아요.. 이 감자조림도...........우..우웩~"

" ...."

" 자..잠깐만요.."


상에 올려져 있던 5첩의 반찬들이 어느새 2첩으로 줄어든 채 오뎅탕과 김치만이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아리가 하나씩 맛을 보고는 헛구역질까지 하고는 상 아래로 황급히 숨겨놓고 고개를 숙인 채 벌 받는 아이처럼 시무룩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 하..하하...하.... 괘..괜찮네.. 오뎅탕 하나면 됐지 뭘 더 바라냐.. 이거 진짜 맛있네.." 

" ......."

" 괜찮다니까.."

" 오늘 왜 이러지.. 나 원래 요리 잘하는데..."

" 누가 뭐래? 사람은 실수를 해야 인간미 넘친다고 하더라..뭘 그런 거 자기고 그래.. 넌 안 먹어?"

" ......"

" 맛있어.. 괜찮으니까 같이 먹자."

" 죄송해요..."

" 자꾸 그러면 진짜 화낸다.. 나.. 너 없을 땐 라면 하나도 제대로 못 먹고 살았어.... 깡패....짓 하면서.. 사람 패고 돈 벌고..
 나 같은 놈이 무슨 따뜻한 밥을 먹을 자격이 있겠냐는 생각도 들었고.. 귀찮기도 했고... 그렇게 혼자 틀어박혀 있다가
 배고프면 물 끓여서 컵라면만 먹는 게 일상이었다고.. 이 정도면 나한테는 임금님 밥상보다 더 따뜻하고 맛있는 거야..."


" ,...."

" 진짜라니까.. 저기 아직도 쌓여있는 컵라면 보면 모르겠냐? 그러니까.."

" ......오빠.."

" 응?"

" 그런 생각하지 마세요."

" 뭐? 무슨 생각?"

" 나도 있는데.. 왜 오빠가 자격이 없어요.. 깡패니까 쌈한 건데.. 안 맞으려고 쌈한 거잖아요.. 자격 같은 게 어딨어요..."

" ...."

" 아!~~ 내가 끓였지만.. 진짜 맛있네.. 언능 드세요.."

" ....그래."


밥을 다 먹고 아리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민기는 다시 텔레비전을 틀어 뉴스를 보게 된다. 달그락 거리는 설거지 소리가
이렇게 편안함을 느끼게 만드는지 미처 느끼지 못했기에 등에 쿠션을 기대고는 머리를 벽에 댄 채 자신도 모르게 잠이 서서히 들게 된 민기였다. 긴장의 끈이 풀리게 되자 거의 새벽에서야 잠을 이루던 민기의 생활패턴도 조금씩 바뀌게 된다.
아니 아리의 살림 소리에 그 패턴이란 것이 깨지기 시작했다.


가만히 누워 잠에 빠져든 민기는 얼마나 지났는지 여전히 환한 거실에서 무엇인가 물체의 압박에 의해 눈을 뜨게 된다.

자신을 조이며 압박하는 평소 악몽으로 치부하려던 민기였지만, 그 조임의 근본 자체가 달랐고 포근했기에 눈을 뜨고
확인하는데 언제 옆에 누운 건지 아리가 자신을 쿠션 삼아 끌어안고 세근 대며 자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민기가 조금 몸을 움직이려 하자 여지없이 다시 조이는 아리의 행동에 결국 다시 머리를 기댄 채 아리의 숨소리를 조용히
감상하듯 눈을 감고 아리의 포근함을 느끼며 잠을 청한다. 
딱딱한 맨 바닥인데도 침대에서 보다도 더 깊은 잠을 잘 수 있던
민기였고, 꿈도 꾸지 않은 얼마만의 깊은 수면인지 기억도 못한 채 아리의 세근되는 숨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에 빠져든
아이처럼 곧 깊은 잠에 빠져든다.


" 어!...어디가?" 

" 깼어요?"

" 지금 몇시야?"

" 11시요.."

" 벌써?...아..아고..."

" 무슨 사람이 깨워도 안 일어난데.."

" ....."

" 밥 차려 놨으니까 꼭 드세요!"

" 어..어디 가는데?"

" 저요? 비밀요!"

" 비밀??"


'쿵쿵쿵!!'

서둘러 나가는 아리의 뒷모습에 붙잡지도 못한 민기는 맨바닥에서 꼬박 10시간이나 누워있었기에, 아픈 허리를 잡고는
일어나 욕실로 향한다. 
볼일을 보고 세수를 하려는데 어느새 갈았는지 어제의 핏방울이 묻어 있던 붕대는 새것으로 바뀌어
있는 모습을 민기에게 보여줬고, 예전이라면 생각조차 못 할 어처구니없는 방심으로 붕대까지 아리가 갈았는데도 깨지 못한
자신이 황당하게 느껴진다. 
세수를 하고 나온 민기는 핸드폰을 꺼내 동민에게 전화를 걸게 된다.


[일어나셨습니까 형님.] 

" 무슨 일 있냐?"

[그냥 일 하고 있습니다.]

" 일??"

[이제 민이파는 해산된 거 아니겠습니까.. 그럼 밥벌이라도 해야지 말입니다...]

" .....그래서? 무슨 일?"

[보자.....불륜 조사가 3건 들어왔고 말입니다... 음~... 가출한 년 찾아달라는게 한건이고....아! 이게 큰데 말입니다..
 무슨 캐피탈인데 뒷조사 좀 해달라는..]


" 참나.. 완전히 흥신소 직원 다 됐구나..."

[저희 원래 흥신소 사무실인데 말입니다.]

" ....참나."

[크크크.. 오늘은 출근 하십니까 형님?]

" 그래야겠지.. 다른 일은 없고? 혹시 철민형님한테 연락온건 없냐?"

[예?? 아!! 그렇지 않아도 여기 오셨다가 갔셨습니다.]

" 형님이?? 왜 전화 안했어?!!!"

[큰형님이 직접 전화 하셨던데 말입니다..]

" 뭐? 나한테?"

[그게.. 형님은 분명 전화 안 받으실 거라고... 아리 학상한테 전화하시던 거 같던데..."

" 뭐 이새꺄?!!! 그걸 왜 지금 말해?!!"

[그냥 지나가다가 들리신 거라고.....비서하고 한명만 대동하시고 들리셔서 별일 아닌 거 같았는데..말입니다..]

" 이 미친새꺄!!. 그래서? 아리랑 뭐라고 통화했는데?"

[예?? 점심 같이 먹자고.... 혹시 형님하고 같이 약속 잡으신 거 아니십니까?]

" 뭔 소리야?!!"

[이상하다... 사무실로 오라고 하시는 거 같던데.. 전 당연히 형님이 옆에 계시니까....]

" 끊어!! 넌 갔다 와서 뒈진 줄 알아!"

[혀..형님....]


민기는 서둘러 와이셔츠와 상의를 걸치고 택시를 잡으러 거리로 뛰어 나가게 된다. 철민이 아무 이유 없이 자신의 흥신소에 들릴 사람도 아니었고, 거기에 자신이 아닌 아리와 통화한 철민의 행동에 조바심을 느끼며 택시를 타려고 손을 흔들게 된다. 철민이라면 분명 흥신소 앞에 차를 대기 시켜놓고 아리를 마중하게 했을 거라는 생각에 더 서둘러 택시를 잡으려는데 하필
빈 택시가 오늘따라 보이질 않았고, 발만 동동 굴리던 민기는 결국 짱개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 튀어오라고 지시하게 된다.


거리 때문에 결국 10여분이 지나고 나서야 짱개가 운전하는 자동차에 오르게 된 민기였다. 오늘따라 유난히 없는 빈 택시로 짜증을 부리며 짱개에게 철민의 사무실로 직행하도록 지시한다.


" 안녕하셨습니까." 

" 큰형님은?"

" 예??"

" 큰형님 계시지?!!"

" 안 계시는데 말입니다..."

" 뭐?!!! 어디 가셨는데?!!"

" .....댁으로 가신다고."

" 형..형수님은?"

" .....모르셨습니까?"

" 이 새끼가! 내가 알면 너한테 왜 물어보냐!! 형수님도 집에 계셔?"

" .....지인분들하고 온양온천에......"

" 뭐?!!"

" 혀..형님!!?


철민의 비서와 대화를 한 민기는 더 당황하며 철민의 사무실에서 뛰어 나와 이번엔 철민의 집으로 향하게 된다.
민기의 표정에 짱개도 차를 급하게 운전하게 되었고, 총알 택시보다도 더 빠르게 철민의 집에 도착한 민기는 다짜고짜 벨부터 누르게 된다.


" 누구세요?" 

" ...저..접니다.. 고기민입니다."

" ...어쩐 일이십니까.."

" 회장님 좀 뵈려고 왔습니다."

" 일반인이 만나실 분이 아니십니다 저희 회장님은요."

" 이..일반인??"

" 돌아가세요."

" 야!! 문 열어 새끼야!! 형님 계시지!!"

" ..기민형님은 이제 한식구도 아니신데 이렇게 느닷없이 찾아오시면 실례지 말입니다.."

" 너 말라깽이지!! 이 새끼가 죽어볼래?!!"

" .....죄송합니다. 큰형님께서 고기민이라는 분은 없는 걸로 치라고 하셔서 말입니다..."

" 야!!! 야!!!!"


황당한 대우에 민기는 결국 짱개가 주차시켜놓은 차를 발판삼아 담을 넘게 된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현관에 서 있던 남자가 민기에게 다가오는데 당장이라도 후려갈길 눈빛의 민기에 겁을 먹고 발을 빼는 모양새를 했기에 아무 저지 없이 현관문을
열고 뛰어 들어갈 수 있던 민기는 곧 보인 말라깽이라고 불린 남자에게 소리를 지르게 된다.
 


" 너 이 씹새야!" 

" 기..기민형님!!"

" 큰형님 어디 계셔!! 어디 계시냐고!!"

" 혀..형님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 무..뭐?!! 이게 맞아봐야...!!"

" 위..위층에 계십니다.. 그런데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 ......아무."

" 예.. 지금 아리....."

" ......... "


대화가 끝나기도 전에 민기는 구둣발로 계단을 뛰어 올라간다. 분명 이층의 DVD방에 아리와 함께 있을 철민이었기에 불길한 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른 채 쏜살같이 뛰어 올라간 민기는 곧 남자의 흐느끼는 소리에 얼음처럼 굳어져 방문 앞에 서 있게 된다. 


" 으~~..그..그렇지~~ 으...어..어린게 보통이 아니네..~~ 그..그렇지 조..조금 더 위쪽으로...더 세게 흔들어 보라고..." 


1초? 2초 동안의 망설임도 길게 느껴졌던 민기는 철민의 목소리를 듣고는 거의 문이 박살나도록 걷어차고 들어가게 된다. 


"아리야!!" 

" 어...." 


다시 몸이 굳어진 민기였다. DVD방의 커다란 눕이식 소파에 철민이 누워있고, 그 위에 아리가 올라탄 모습은 전혀 예상도
못한 민기였기에 몸이 굳어진 채 이내 철민을 무섭게 노려보기 시작했다. 
이게 목숨을 내놓을 하극상이란 것도 모른 채 그런 철민에게 처음으로 살기를 드러낸 채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쥐게 된다.


" 오빠??" 

" 으~~.. 아리 학상 계속하라고.. 하다 말고 뭐하노..."

" 예?? 아!.. 예.."

" 으~~ 왔냐??"


그런데 배를 위로 향하고 있어야할 철민이 고개를 숙인 채 엉덩이를 위로 하고 있다는 걸 그제야 확인할 수 있었다. 


" 크크크크크... 몇 분 걸렸냐?" 

" ....24분 지났어요."

" 낄낄낄.... 내가 이겼제.. 30분 안에 온다니까 저 놈아는..."

" 치~... 소원이 뭐에요?."

" 크크크크.."

" 아..아리야? 혀..회장님..??" 

" 형님은.. 에라이 이 후뢰자슥아.. 여자 때문에 아부지 방을 박차고 들어와??" 

" ......"

" 이거 내기에서 이기고도 찝찝하네...그려...."

" 이..이게....무슨...."

" 크크크.. 와따.. 진짜 안마 잘하네 아리학상.."

" 것보라니까요!.. 제가 이래봬도 엘르 이모한테 얼마나 많이 해드렸는데요.. 비싼 돈 주고 안마의자 살 필요 없다니까..."

" 그라네...우와~~~..근데 그랄 라면 아리 학생이 일주일에 한번은 와야 하는데 괜찮겠노?"

" 그럼요! 다른 분도 아니고 기민오빠 아!빠!신데!!..."

" 크크크"


멀뚱히 둘의 대화에 머리가 새하얘진 민기는 할 말도 잊은 채 완전 동상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제야 자신이 무슨 일을
벌였는지 이 뒷감당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전혀 생각 못하고 놀란 표정으로 둘만 바라보게 된다.


" 그만 혀.. 울 아리학상 팔 아프겠네.." 

" 괜찮은데.."

" 너무 시원해서 10년은 젊어진 거 같네.. 그만하고 아래층에 좀 내려갔다 와라.. 구비서가 아리학생 준다고 요리해 놨을 겨."

" 헤헤헤.. 용돈 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오빤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 신발도 안 벗고 들어와요?"


" 으..응???나???"

" 오빠도 빨리 내려와요. 여기 요리사도 따로 있데요."

" 크크크크크크크크" 

" ....."


아리가 내려가자 잠시 후 방안은 삭막하게 변해간다. 아직도 멍하니 서있는 민기를 바로 앉은 철민이 무섭게 노려보기 시작
했고, 그 모습에 민기는 자신의 실수를 원망하며 너무도 섣부른 행동에 후회를 하게 되지만, 이건 그런 후회로 끝날 일이 아니
었기에 철민의 처우만 바라게 된 민기였다.


" 이걸 어쩐다냐...아무리 이제는 가족이 아니라도.. 이건 분명한 하극상 아니냐?" 

" ....죄송합니다. 형님..."

" 죄송은.. 참 좋은 아이야....네가 그렇게 목을 매는 것도 이해가 간단 말이야.."

" ...."

" 마사지도.. 진짜 시원하게 잘하고...."

" ......"

" 그런데.. 넌 이제 그런 버릇 고쳐야 안 쓰겄냐? 이제 민간인인데 그 주먹부터 쥐는 버릇 말이야.."

" ..형님.. 이게 도대체..."

" 아리 학생 말이야.. 같이 지낸다면서?"

" ...예."

" 둘이 배꼽 맞췄냐?"

" 예???"

" 둘이 사귀냐고!?"

" 아리는 제 동생...........동생입니다.. 동생한테 미친 짓하는 놈으로 절 보셨습니까?"

" 이제 대들기까지 하네.. 이 싸가지 없는 놈이.."

" ....죄송합니다."

" 허~~.. 너 그렇게 좋냐?"

" ...."

" 아리가 그렇게 좋냐고!! 이렇게 물불 안 가리고 지 모시던 형님한테 쳐들어올 정도로 아리 좋아하냔 말이다!"

" .....죄송합니다."

" 이 새끼가.. 또 대답 안하냐?!"

" ...예.. 좋아합니다."

" ....근데 말이야.. 내가 조사란 걸 쬐까 했거든... 솔직히 네 놈 한테 조사를 안 시키니까.. 이제 나왔지 뭐냐 그 결과가.."

" ..."

" 본명 권아리.. 부모는 다 돌아가셨고.. 외동딸이라서 혼자 고생은 다 한 아이더라.. 그런데.. 참 웃기지..
 그 권효만이라는 아리 아빠가 네 작은 아버지란 사실이 말이다.."


" .....그런 걸 왜.. 조사를 시키셨습니까?."

" 네가 아리 일에 보통 신경을 쓰는 모습이 아니던데 말이다.. 궁금한 게 형님이란 위치 아니냐.. 아끼는 아우 일에 말이야.."

" ...."

" 사촌사이라........"

" ......"

" 그런데 네가 하는 행동 보면.. 꼭 사촌동생을 대하는 사촌 오빠가 아니란 말이다..
 요즘 네 행동도 극단적으로 치우치는 경향도 있고 말이야... 칼날도 무뎌진 거 같단 말이다 이놈아.."


" ...죄송합니다."

" 어차피 떠난 놈이니 이런 얘기까진 할 필요 없지만... 내가 남자라면 말이다.... 잡설은 됐고, 너 아리 붙잡아라..."

" ...죄송...예??"

" 아리 붙잡으라고!.."

" ...그런 거 아닙니다.. 조사하신대로 아리는 제 사촌동생이라고요...."

" 말투도 변하는구나..."

" ..예?"

" 내가 널 처음 봤을 때 말이다.. 내 어릴 적 생각이 난다고 했었던 거 기억 나냐?"

" 예..형님."

" 내가 이 생활하면서 단 한 가지 후회되는 게 뭔 줄 알고? 지금 마누라가 듣게 되면 칼들고 내 배때기를 쑤셔 넣겠지만
 말이지.. 나도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다는 거 아니냐.."


" ..혀..형님이 말입니까?"

" 그럼 나도 그 로만스란걸로 잠도 설치고 이 천하의 윤철민이 벌벌기면서 꽃 선물까지 하던 시절.. 근데 이 새끼가..."

" ..죄송합니다."

" 그때 그 여대생을 붙잡았다면 말이지.. 아마 지금의 윤철민은 없었을 거란 말이지.. 남들처럼 보통의 일을 하면서 말이다.."


철민이 옛날을 회상하는지 눈을 감고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한복의 없는 주머니에서 무의식적으로 담배를 찾아 더듬기
시작했다. 
민기가 담배를 하나 담뱃갑에서 빼내 그런 철민의 앞에 두 손 모아 들이민다. 철민은 인기척에 눈을 떠선 담배를
입에 물었고, 다시 눈을 감고 민기가 붙여주는 담배를 깊게 빨아들인다.


" 으~~.. 이건 뭔 똥쓰레기 맛이냐... 뭐야 이거 88이잖아.. 너 아직도 이런 거 피냐?" 

" ..."

" 후~~.. 지랑 똑같은 담배만 피워냐..."

" ..."

" 하여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아리 붙잡으라고."

" 아리는 제 사촌 동생입니다 형님.. 좋은 놈한테 시집 보낼 때까지만... 제가 지킬 아이 입니다."

" 미친놈.. 너 아리 만나고 얼마나 변했는지 모르지?! 내가 널 왜 밀어냈는지 알겄냐? 아니.. 이제야 밀어낼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알겠냐고.. 너란 새낀 말이야 항상 날 이선 칼날 같은 놈이라서 나라도 거둬들여야겠다고.. 이 새끼 풀어놓으면
 단순히 살인자로 세상 하직할 놈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이 새끼야!!"


" ...."

" 그런데.. 사실 그냥 내 뒤나 이어서 최고의 살인자로 키워야 하는 건 아닌지 이 내가 친히 걱정을 하는 와중에...
 아리 학생이 나타났다는 거 아니냐...."

" 예??"

" 동민이가 연신 웃더라.. 아리 나타나고 나서 사람 새끼를 형님으로 모시는 거 같다고 말이야.. 넌 어떻게 했기에 동민이가
 그런 말을 하냐?!"


" ..이 새끼...."

" 야!!! 이놈아!!!"

" ..."

" 아리 때문에 변한 지금이라면... 평범한 놈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 같아서... 어차피 쌍판대기 다 알려진 네 놈이 더 이상
 발 들일 곳도 없잔냐는 내 생각이다 이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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