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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

착한 사랑 - 2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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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9가이드
댓글 0건 조회 37,944회 작성일 20-11-25 16:52

본문

그리고 후회를 하며 그때 협박으로 끝낸 자신의 안일함을 되새겨 본다. 그때 끝장을 냈어야 하는데, 단번에 죽여 버리면
아리에게 복수의 기회조차 못줄 거 같아 나중을 기약하기 위해 살려둔 것이 하지만 지금까지 그 어선에 타고서 도망쳐
나온 놈이 단 한명도 없었던 사실에 오랜 감금에 어선만큼 확실한 건 없었기에 민기로선 당연한 결정이었다.


" 그래도 말입니다.. 벌써 11월인데.. 차가운 바닷물에 얼어서 빠져 죽었을 게 뻔 하다고 선장이 말하던데 말입니다..." 

" 살아 있으면??"

" ....."

" 살아서 아리 주변에서 얼쩡거리면.... 네가 대신 새우 잡이 하러 갈래?"

" ......죄송합니다 형님.."

" 한가진 새끼들은?"

" 형님이 노랭이형님한테 말씀을 잘 해주셔서 그런지.. 적극적으로 돕고 있습니다... 애들까지 풀어서 그 새끼 전에 살던
 곳하고 전에 연락하던 놈들까지 싹 조사하고 있답니다.."


" .....넌?"

" .....예?"

" 넌 뭐하냐고!!! 서해안 앞바다라도 뛰어 들어가서 시체라도 끄집어 와야 할 거 아니야!!!"

" ...죄송합니다."

" 그 새끼 몸 상태는.. 다리 동강내고,, 오른손 손가락 다 꺾어 놨는데.. 그걸 이상하게 생각 안했단 말이냐? 그 선장 새끼가?"

" 그걸.. 이용했답니다.. 조직에서 두목 여자 건들고 몸이 아작 났다고 선장한테 말했다고... 그래서 믿음이 더 같다고..."

" 이 새끼들이!!!"

" ...."

" 우선... 그 주변 병원부터 뒤져.."

" ...예?"

" 아직 2주도 안됐잖아!! 아무리 치료 해줬다고 해도 그 상처로 차가운 물속에 들어갔다 나온 새끼라면 병원부터 찾을 거
 아니야!!!"

" 아!... 예 형님!!" 


생각지도 않은 김만해의 탈주소식에 민기는 당황하게 된다. 아무리 냉철하기로 유명한 민기였지만, 아리와 관련된 사건만은 예외처럼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보는 동생들까지도 모든 일을 젖혀두고 그 일에 매달리도록 만들게 된다. 

더군다나 이 모든 아리 사건의 시초인 김만해의 일이었으니 단순히 사기꾼 한명을 대하는 민이파의 방침과는 너무도 어긋난 채 일이 커지고 말았다.


항상 사무실에 대기 시켜 놓던 잔류 인원들까지도 전부 김만해를 찾아내라며 내쫓듯 민기가 내보내고 나서야 한숨을 쉬며
조용해진 사무실 안에서 몸을 의자에 기대어 담배를 피기 시작한다. 
연달아 담배를 꺼내 피우려던 민기는 그제야 담뱃갑
안에 더 이상 담배가 없다는 걸 알고는 서랍들을 뒤져보지만, 사다 놓은 담배들도 전부 떨어진 듯 단 한 개비의 담배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몸을 일으켜 아리의 고시원이 있는 편의점까지 걸어가게 된다.


이미 담배 파는 옆집 세탁소는 문이 닫혀있었기에 아리의 상태도 파악하려는 듯 일부러 편의점까지 걸어간 민기는 잠시
고시원을 고개 들어 바라보다가 혹시나 하는 생각에 고시원의 계단을 올라 조용히 아리의 방문 앞에 숨죽여 귀를 기울여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방안에 더 바짝 귀를 들이밀던 민기는 너무 바짝 머리를 들이밀었는지 '콩'하고 작은 소리를 내며
머리로 노크를 하게 되었다.


"누..누구세요?" 


얼마 지나지 않아 아리가 자다가 놀랐는지 잠긴 목소리로 문밖에 있는 사람의 정체를 묻자, 민기는 당황하며 무의식적으로
냅다 계단을 뛰어 단숨에 고시원 입구까지 달아났고, 숨을 헐떡이며 조용히 복도에서 인기척이 들리는지 몸을 숨겨 보았다.
느껴지지 않은 인기척에 한숨을 내쉬곤 담배를 사러 편의점으로 향하게 된다. 
아리의 목소리에 부자연스러움도 없었고 안의 부스럭거리는 소리로 혼자 있다는 걸 알게 된 민기는 안도를 하며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서는 담배를 한 보루 주문을 하고는
잊었던 직원을 향해 말을 건다.


" 혹시.. 우리 아리한테 편지 썼던...?" 

" ....예??..펴,,편지 보셨어요?"

" 내가 그걸 왜 보냐....그런데 진전은 좀 있냐?"

" ......근데.. 어떤 사이세요?"

"  오빠다.. 왜?!!"

" ...형님! 아리씨가 다른 남자 친구 있다는데... 혹시 누군지 아세요?"

" ..나..남친이 있다고?"

" .......예."

" ..글쎄...... 형님하고 다니는 건 몇 번 봤긴 한데... 정말 남자친구가 있는 건지... 제 말은 듣지도 않으려고 하고..
 이젠 편의점에 오지도 않아요...."


" .....그래?"

" 예... 없죠? 남친 없죠???"

" 그..글쎄...."

" ......없는 거 같은데..."

" 아!.."

" .....예?"

" 아니.. 혹시 이 주위에 수상한 놈 있으면 여기... 전화번호로 연락 좀 해달라고.."

" 수상한 놈이요?"

" 그래!.. 요즘 그런 놈이 있으니까.. 너 알바 할 동안 보게 되면 전화부터 때려."

" ....."

" 그럼 수고하고... 아리한테 함 물어봐 주마.."

" ...가..감사합니다!"


아리에게 남친이 있다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편의점에서 나온 민기는 담배부터 뜯어 한 개비를 입에 문다. 

주머니를 뒤져 지포 라이터를 꺼내서는 막 담배에 불을 붙이려고 하는데, 갑자기 등골에 소름이 돋는 이 익숙한 느낌에
곧바로 라이터를 주먹에 꽉 쥐고는 옆구리에 꼈던 담배보루를 바닥에 떨어트리며 빠르게 몸을 돌리는 순간 팔을 올려
얼굴을 가리며 방어 자세를 취하게 된다.


민기의 가려진 시선에 긴 머리카락이 휘날리며 옆으로 스쳐지나갔고, 잔뜩 몸을 웅크린 채 번쩍이는 칼을 든 손을 떨고
있는 한 남자를 보게 된다. 
민기와 마주한 그 남자는 김만해였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분명히 만해였다.
몰골로 봤을 때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궁금할 정도로 거지몰골을 하고 서서 민기의 무섭게 노려보는 시선에 몸을 떨기
시작한 만해가 뒷걸음 질을 치기 시작했다.


" 오호라.. 이 새끼가 뒈질라고.. 여길 찾아와?!!.. 그래 소원대...로....." 


'물컹.....' 발에 느껴지는 기분 나쁜 감촉에 무섭게 만해를 노려보던 민기의 시선이 천천히 아래를 향하게 된다.

익숙한 흰 티와 처음 보는 아이보리색 파자마바지를 입고 있는 너무도 친숙한 아이가 너무나 낯선 모습으로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분명 가려진 긴 머리카락은 아리의 것이 맞는데 쓰러져 있는 모습은 더 이상 발랄한 아리가 아니었다. 흰 티가
붉게 물들기 시작한 그곳을 손으로 붙잡은 채 웅크리고 있는 아리는 숨을 헐떡이며 움찔거리고 있었다.

민기는 그런 아리를 내려다보기만 할 뿐 얼음처럼 굳어진 채 도저히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 듯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 아악!!!...." 


편의점에서 나온 남자의 비명소리에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민기가 황급히 무릎을 꿇고 아리의 머리를 부축해 세우게 된다. 


" 뭐..뭐한 거야?" 

" .......오..빠......"

" ...너.. 뭐한 거냐고!!!"

" 이상해서...창문으로 보니까.. 오빠가......노..놀래 주려고.. 나와서 숨어 있는데....갑자기 어떤 남자가......"

" 이 바보야!! 너 뭐한 거야!!!!"

" 큭~........헤..헤...... 무..무서웠는데... 모..몰라요....내가 왜 뛰어들었는지...."

" 야!! 야!!!! 정신 차려!!! 야!!!"


편의점의 남자가 119에 신고를 했고, 마침 사무실로 들어가던 짱개가 그런 민기와 아리를 발견하고는 다른 사람들에게 콜을 때려 한순간에 건장한 남자들로 복잡해진 길거리에서 구급차에 실린 아리였다. 여러 대의 차가 호위하듯 구급차를 인근 종합병원으로 안내하는 장관 아닌 장관이 펼쳐진 것을 뒤로하고 수술실의 대기실엔 민기와 동민 그리고 짱개만이 남은 채 다른
이들은 미친놈처럼 분노하며 화를 내는 민기로 인해 김만해를 잡으러 조용한 밤거리를 어스러히 어지럽히게 된다.


생각보다 짧은 1시간 반 동안 진행된 수술이었다. 다행이 목숨엔 지장이 없고 그냥 비껴들어간 칼침을 뒤로하고 이미 아리의 몸이 많이 쇠약해져있어 그게 더 걱정이라는 수술을 끝내고 나온 의사의 말을 듣고 나서야 민기는 대기 의자에 겨우 앉으며 길게 한숨을 쉬게 된다.


수술실에서 중환자실로 중환자실에서 일반실까지 옮겨지는데 꼬박 하루가 걸린 아리였고, 그 앞에서 떠날 줄 몰랐던 민기가 맨 처음 아리가 누워있는 침실로 향하게 된다. 마취약과 진통제의 영향인지 얼굴이 많이 부은 상태로 눈가엔 눈물자국이
선명한 아리의 얼굴에 민기가 입술을 깨물며 주먹을 쥐고 고개를 숙이게 된다.


" ......그러지 말아요......." 

" ...아..아리야."

" 입술.. 다 터지겠어...."

" ...응?"


아리가 부운 눈으로 민기의 입술을 바라본다. 얼마나 세게 물었는지 입술에서 피가 배어 흐르고 있다는 걸 그제야 안 민기는 양복 소매로 대충 입술을 닦고는 아리에게 바짝 다가앉는다.


" 병원이에요?" 

" .....응... 괜찮아?"

" 나.. 물 좀.."

" 깨어나고 한 시간 동안은 물마시면 안 된데..."

" .....목마른데.."

" 안된다니까....그리고 너 바보냐?!!! 사람이 칼을 들고 달려들면 소리를 지르던가!! 아니면 도망을 가야지!! 왜 뛰어들어!!!"

" .........오빠.. 물 좀 주면 안 돼? 나 목 많이 마른데.."

 "야!! 사람이 말을 하잖아!"

" .....목말라..."

" ......."


결국 민기가 생수에 빨대를 꽂아 아리의 입술사이로 빨대를 물려주며 물을 먹여준다. 힘겹게 몇 모금 마신 아리는 오히려
걱정스러운 듯 민기를 바라본다. 화를 내며 아리를 쳐다보던 민기였는데, 아리의 눈빛에 부담스러운지 시선을 내리깔며
팔에 꽂혀 있는 주사를 쳐다보게 된다.
 


" 수술하는 동안 얼마나 가슴 조렸는 줄 알아?! 쪼그만게 겁도 없이..." 

" .....또.. 쪼그맣데.."

" ....."

" 아까... 보니까... 동민 오빠... 세영 오빠 말고도 사람 디게 많던데... 다 오빠 동생들이에요?"

" ......"

" 정말... 깡패구나......"

" ....."

" 깡패는 착한깡패가 없다던데...."

" ...."

" 오빠도.. 막 힘없는 사람 협박하고 그래요?"

" 아..아니야... 난 그런 일은 안 해.."

". .... 다행이다."

" ...."

" 나.... 엄마하고 아빠가.. 꿈에 보였는데.. 꿈이 아닌 줄 알았어요.."

". .."

" 이상하게 마음이 편한 게... 꼭 칭찬해주는 거 같이.. 웃어주시는데.."

" 뭘 칭찬해!.. 뭘 잘했다고.."

" 헤~..... 내가 오빠 돌봐야 할 거 같다고 말했잖아요.."

" ......"

" 오빠.. 나 막 졸립다.. 좀만 더 자면 안 되나?"

" .....자..."


아리가 찡그린 얼굴에도 가볍게 미소를 지어주곤 곧 눈을 감는다. 아리의 배에 상처를 낸 그놈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아리의 미소는 그런 민기에게 더 화를 쌓게 만들었다. 
병실에 민기는 좀처럼 그 간이 의자를 떠날 수
없었다. 잠깐잠깐 아리가 끙끙거리며 배를 움켜쥐듯 손을 대다가도 이내 손이 닿자 더 아픈지 금세 손을 때는 행동을 반복
했기에 그럴 때마다 민기가 아리의 손을 잡아주느라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아무리 화가 나도 아리를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지자 누워있는 아리에게만 집중을 하게 된다. 이미 만해를 붙잡았다는 보고를 받은 민기였지만, 아리를 떠날 수 없었기에 창고에 처박아두고 도망 못 가게 두 다리를 분질러 놓으라는 말만 해 놨을 뿐
아리가 온전히 말을 할 수 있게 될 때까지 병실에 머물게 된다. 당장이라도 뛰어가 그 만해놈의 사지를 몸뚱아리에서 때어
버리자는 생각을 수없이 해보지만, 
꿈을 꾸는데 아리의 앳된 얼굴은 간간히 찌푸리기도 미소 짓기도 그리고 한줄기 눈물을
흘리는 모습까지 보게 된 민기는 그 죄스러움과 미안한 감정의 복받침은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다.


꼬박 하루를 더 잔 아리가 여전히 배가 아픈지 얼굴을 일그러트리곤 민기에게 말을 한다. 


" 몇 시 에요?"

" 응?"

" 나 많이 잤죠?"

" .....이틀.. 삼일 째다.. 병원에 들어온 지.."

" 휴~~.. 배가 땡기긴 한데.. 그래도 많이 안 아파요.. "

" 상처는 깊지 않은데.. 그동안 받은 스트레스가 많은거 같다고..거기에 불규칙한 식사로 인해서 몸도 많이 상한거 같다고.."

" ...."

" 힘들면 말하라고 했잖아.. 이게 뭐냐...."

" .....전 괜찮은데."

" 괜찮긴..."


환자복 아래로 아리의 가느다란 팔목을 보며 민기가 입을 다물자 부담스러운지 창피한건지 아리가 손을 이불속으로 숨기며 애써 화제를 돌리려 한다. 


" 오빠 일보러 안가세요? 저 걱정하지 말고 일 보세요.." 

" 일은......."

" .....진짜.. 깡패 맞구나.."

" ..................응."

" 영화 보면 막...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 그런 거?"

" 의리는.... 인간쓰레기들이야..."

" 치~... 내가 보기엔 착하기만 하구먼.. 오빠가 인간쓰레기면.. 그 경찰......하여튼 전혀 그렇게 안 보이는데..."

" 아리야.. 겉만 보고 사람 믿으면 안 돼.. 얼마나 무서운 세상인데..."

" 피... 오빠가 그런 말 하니까.. 좀 이상하다.."

" ....."

" 그런데.... 아저씨.. 찌르려고 했던 사람이요..."

" ............"

" 영화처럼 그 사람 막 죽이고 그럴 거예요?"

" ...주..죽이다니.."


아리가 민기의 마음을 읽고 있는 건 아닌지만 민기 스스로 몇 번이고 어떻게 만해를 죽일지 고민했던 자신의 속내를 들키
기라도 한 듯 얼굴에 확연히 감정을 드러낸다.
 


" ....무섭게 그러지 말아요." 

" ...아리 너한테 상처 입힌 놈이야..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그런건 신경 쓰지 마....우선 몸부터 추스르고.."

" 사람 죽으면.. 남은 사람은 더 힘들어요..."

" 그 새끼 걱정하는 사람 없어.."

" 안 그래요.... 분명 어디선가 잘 살고 있는지 걱정하는 사람 분명히 있을 거예요.."

" ...없다니까."

" 오빠 고아라고 했죠? 동생분들도 있겠지만............그래도 오빤... 이렇게 내가 걱정해주잖아요."

" ........"

" 생판 모르는 남이지만.. 만난지 얼마 안되었지만 제가 걱정하는데.."

" ....."

" 혼만 내주면 안 돼요?"

" ......."

" 엎드려뻗쳐 한 다음에.. 엉덩이 때리기 정도만..... 안 되요?"

" ....엉덩이는 때려도 되고?"

" ...아프게 했잖아요..저.... 제가 무슨 성인군녀인가...그래도 때찌 정도만...."

" 큭큭.. 농당 할 정도 됐으면 됐다...."

" 저 걱정하지 말라니까...."

" 그럼 나 일 좀 보고 올게.. 쉬고 있어...."

" .......일만.. 보고 와요....나쁜 짓 하지 말고..."

" .......알았어."

" 근데.. 오빠.."

" ...응?" 

" 혹시... 그... 사람이요..." 

" 그 사람?"

" 저..칼로 찌른 사람.. 오빠가 아는 사람이에요?"

" ......그건 왜?"

" 무슨 원한이 있길래... 무섭게 오빠한테 달려들었는지... 궁금해서요.."

" 나 깡패잖아.. 원래 이 바닥이 그래..."

" .........."

" 쉬고 있어.. 그만 다녀올게.."


꼬박 삼일밤낮을 세운 민기였기에 이동하는 차안에서 잠시 눈을 붙여보지만 쉽게 잠이 들지 않는다. 아리가 자신이 하는
일을 이제는 완전히 눈치 챈 것도 마음에 걸렸지만, 그것보다 자신을 향해 돌진한 그 남자가 아리의 엄마와 함께 살을 부대
끼며 살았던 그 남자인 것만은 모르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가자마자 묻어버려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아리가 어린아이 답지 않은 말과 훈계가 자꾸 머릿속에 맴돌듯 되새기게 된다. 나쁜 사람이라는 단어는 너무 친숙한 민기에게도 아리의 입을 통해 듣게 되니 썩 좋은 기분이 아니었다.


거기에 누군가가 걱정해줄거라는 얘기는 민기도 여러개의 일을 처리할때마다 느꼈던 그 사람의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긴 했지만, 정작 자신에 대해선 단 한번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리는 그런 자신을 걱정해줬고, 몸을 날려
자신의 방패가 되어 줬다. 
언제 죽어도 혼란이 없도록 사무실을 운영했고, 또한 준비까지 해둔 민기였는데 정작 자신이
죽는다면 아리가 슬퍼해줄거 같다는 생각에 고개 숙이게 된다.


차는 민이파가 소유하고 있는 몇 개의 건물 중 흥신소 사무실에서 그나마 가까운 산중턱의 공장으로 이동한다. 

낮에는 임대를 해놨기에 평범한 공장직원들이 일을 하는 이 공간은 종종 저녁에 이용되어지는 민이파의 비밀 장소중 하나다.


10월 말의 싸늘하다 못해 춥기까지 한 공장 안쪽에는 몸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는 발가벗은 남자를 둘러싼 여러
명의 남자들부터 민기의 눈에 보여졌다. 
천천히 원단들이 가득 차 있는 창고로 이용되어지고 있는 그 구석진 곳으로 민기가 발걸음을 소리 내며 움직였고, 그 소리에 남자들이 정중히 인사를 하고는 물러나 서게 된다. 그 중엔 익숙한 동민도 강철이도 있었지만, 나머지 남자들은 잘 알려지지 않은 민이파 정예 조직원들이 태반이었다.


" 키키키... 그..새끼 명도 길지.... 좋냐??!! 살아서 좋냐고!!" 


몸을 오들오들 떨면서도 민기가 다가오자 입을 놀리는 만해였다. 민기의 지시대로 어떠한 속박이나 폭력도 가해지지 않은
단순히 발가벗겨 물을 뒤집어씌운 형벌만을 당한 만해는 아직도 눈에 살기를 담고 민기를 노려볼만 한지 뚫어져라 다가오는 민기를 쳐다보고 있었다.


" 왜?!! 고년이 대신 뒈지기라도 했냐?.. 이렇게 늦게 나타났냐고..." 

" 만해씨...."

" 만해씨?? 이거 왜 이래?!! 또 찍찍 대보란 말이야!! 그리고...주..죽이려면 빨리 죽이던가.. 이게 뭐하는 짓이냐?!! 간보냐?"

" 만해씨.... 지금 내 말 잘 들으소...."

" 무..뭘?!!!"

" 우리.. 아리가..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고 살았습니다.."

" ...그...그년도 명 참 기네..."

" 다행히... 살았는데...그게 나대신 칼침 맞고... 어린년 배때기에 긴 상처까지 생기면서 앞으로 살아가야 한단 말입니다.."

" ..."


민기의 존댓말은 그 음성톤이나 말투까지도 섬뜩하게 느껴질 정도다. 민기의 버릇중 하나가 정말로 화가 날 땐 조금이라도
이성의 끈을 잡으려는 듯 존댓말로 상대를 대하는 특성으로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동민이었기에 그런 민기에게서 뿜어져 나오고 있는 살기를 애써 짓누르는 모습에 같이 가슴이 아파옴을 느끼게 된다. 
다른 이들도 동민과 마찬가지였기에 지금 
숨소리조차 조심하며 민기의 행동을 주시하게 된다. 


" 내 솔직한 심정으로는...김..만해씨의 손가락에 있는 손톱부터 다 뽑아버리고.. 마디마디마다 토막 낸 다음에...
 치료를 해주면서 아물 때쯤 또 그 짓을 해버리고 싶단 말입니다.. 점점 짧아지는 팔다리를 보면서.....인간새끼 같지도
 않은 당신이니까....개 우리에 쳐 넣어서 개들이 그 상처 핥아 먹도록 시킨 다음에... 또 아물 때 쯤 잘라버리는 식으로..
 괴로워하는 당신 얼굴을 감상하고 싶다는 게... 내 속을 조금이나마 풀리게 만들 거 같단 말이란... 말입니다......"
 


민기의 협박은 민기가 만해의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하는 말이었기에 전혀 협박처럼 들리지 않았다. 만해조차도 민기의 말이 이어질수록 머리카락이 쭈삣거렸고, 이 남자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거라고 느끼게 된다. 오른손 손가락을 이상한
모양으로 꺾어버릴때.. 민기의 표정은 한 점의 변화도 없었기에 그 끔찍했던.. 증오스럽던 민기의 얼굴을 다시 떠올려 보자
증오는 곧 공포로 바뀌게 되었다.


" 그..그냥 죽여.. 어차피 각오하고 버린 짓이다!!! 왜? 내..내가 그런 말에 거..겁이라도 먹고 빌기라도 할 거 같아?!!!!"

" 그러니까... 말하는 거 아닙니까.... 당신이 그런 협박에 안 넘어가니까... 직접 보여주기 전에... 

 고민하는 척하는 인간다운 모습을 말입니다....."


" 무..뭔 개소리야!!! 죽이라고!! 어차피 나 이제 쫑이야!! 시마이라고!!"

" 내가...아리한테..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했는데 말입니다.... 지금부터 할 짓이... 인간새끼가.. 인간의 탈을 쓰고 할 짓이
 못 된다고.... 당신이 팔다리 다 잃고.. 개처럼 기어 다니는 모습을 아리한테 보여줘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 건지.... 아니면..
 팔다리 분리해서.. 가지고 놀다가.. 몸에 붙어 있는 300만 원짜리 눈깔하고.. 400만 원짜리 그 부은 간땡이하고..
 1000만 원짜리 심장이라도 팔아서.... 아리를 행복하게 해줘야 하는 건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하는 겁니다.. "


" 무..뭘...뭘 팔아?"

" .........."

" 이..이 새꺄!!! 그냥 죽이라고!! 더럽게 입이나 놀리지 말고!!"


" 동민아.... 시간 없다고 했냐?"

" ...예.. 지금 저희 창고엔 몇 놈들이 차 있어서 말입니다...그래서 이 새낀 새우잡이에 태워 보낸 건데....죄송합니다 형님.."

" 구 선생님은..."

" 밖에 있는 차에 대기하고 계십니다..."

" 모셔라..."

" 예.. 형님.."


동민이 얼굴짓을 하자 일행 중 한명이 문을 열고 나갔고, 곧 허름한 청바지에 야구점퍼를 입고 들어오는 40대중 후반의
남자의 손에는 커다란 가방이 들려 있었다.
 


" 허~ 내 살다 살다.. 기민씨가 불러 줄지는 예상도 못했구먼..." 

" 됐습니다.. 저 새낀데... 쓸 만하겠습니까?"

" 보자!~~~"


그 야구점퍼의 남자가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만해에게 걸어가자 본능적으로 만해는 도망가려는 듯 꿈틀된다. 그러나 그런
몸짓은 옆에 서 있던 덩치 좋은 두 남자의 손에 어깨와 손을 제압당한 채 꼼짝도 못하게 되었고, 야구점퍼의 남자는 바짝
만해에게 다가가 눈꺼풀을 크게 벌리기도 하고, 가방에서 청진기를 꺼내 가슴에 대보기도 한다. 그리고는 혈압기로 혈압까지 재고는 손가락 끝에 바늘을 찔러 넣어 피를 뽑아선 간이 당뇨검사까지 만해의 바로 앞에서 한다.
 


" 무..뭐하는 거야!! 이 개새끼들아!!! 야!! 이 시발 놈아!!!!!!" 

" 근데.. 나보고 다시는 통나무 장사하면 손발 다 잘라버리라고 협박할 땐 언제고.. 짱개들하고 일할 때..
 다 깨부순 게 누군데...... 이건 뭔 일이래?"
 


" 쓸데없이 입 나불거리지 마시고... 쓸 만하겠습니까?"

" 음~~~ 내장은 다 정상이야.. 여기저기 금이가고 지방하고 혈압이 좀 높은 거 같긴 한데....뭐.열어봐야 알겠지만..
 피 다 뽑고 냉동상자에 집어넣으면 그런 건 별 상관없지 키키키키키..."

" 여기서.. 오늘 해체 가능합니까?"

" 정말??? 오늘 해야 하는 겨?"

" .....예."


" 야!!! 무..뭘.. 해체해!!! 이 새끼들아!!"

" 야들아.. 시끄럽잖냐....." 

" 이 새끼들이.. 내 몸에 손끝하나 대기만 해..다 죽....읍~!~~읍읍!!!" 

" 근데... 눈깔하고 장기들은 전부 살아 있을 때.. 적출해야 한다는 거 알고 있지?" 

" ....예."

" 여긴.. 마취기계도 없는데... 그동안 이 짓 안해서 마취제도 없다고... 그런데 어떻게 하라고?"

" 그냥 해 주십시오..."

" 뭐???? 그냥??"

" 읍읍!!!~~읍!!!!" 


"이왕이면.,. 심장하고.. 저 새끼 눈깔은 가장 늦게 빼버리세요..지 몸 뚱아리 죽기직전까지 볼 수 있게 말입니다..." 

" .....허.. 기민씨... 왜 이래..."

" 원래는.. 팔다리 다 뽑아버리고.. 그 다음에 구선생님 부르려고 했습니다...이것도 배려...란 말입니다.." 

" ...쯧쯧.. 먼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렇게 하려면 저 놈 사지 다 묶어야 돼... 안 그럼 심하게 발버둥 쳐서 장기에
 손상 간다니까..."

" ....얘들아."


"으!!....으읍!!읍!!!!!" 


남자들이 격렬하게 반항하는 만해의 팔다리를 잡아선 능지처참할 때의 모습처럼 원단이 쌓여 있는 새시들에 묶기 시작했다. 

정말 놀랍다는 듯 민기를 계속 쳐다보는 구선생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런 만해의 모습을 무섭게 노려보고 있는
민기의 모습이 살벌하게 보여서 말을 붙이지 못한 채 사지를 크게 벌린 채 묶인 만해에게 다가가서는 가방을 연다.


처음 꺼낸 건 더럽게 얼룩진 하얀색 가운이었고, 그 가운을 입은 남자는 곧 작은 날이 번뜩거리는 수술용 메스를 꺼낸다.

그 메스의 날카로운 빛 반사에 만해는 묶인 손으로도 더 격렬하게 반항을 하듯 바둥거리기 시작했지만, 굵은 밧줄은 그럴수록 만해의 손과 발을 조이며 쓸려서 피가 맺히게 만들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천천히 걸어가서 칼을 가슴의 정중앙에 가져다 된 구선생이라는 남자가 다시 민기를 쳐다보며 입을 연다. 


" 정..말 괜찮겠나?" 

" .....왜요? 솜씨가 녹슬기라도 하셨습니까?"

" 뭔 소리여.. 날 뭐로 보고 한번 몸으로 배운 건 안 잊어 먹는다니까..."

" ....."

" 그런데.. 정말 괜찮겠냐고... 사람 배 가르는 거.. 맨 정신으로는 못 볼 텐데..."

" ..괜찬습니다..그런데 정말 불쌍한 사람들한테 이 새끼의 썩은 장기라도 꼭 필요하다는 말씀 맞는 거죠?"

" ...음~~.. 그럼!! 당연하지!."


" 으응..... 읍읍!!!!"


본격적으로 배를 가르려는지 섬뜩한 두 눈에 광기어린 광채까지 뿜어내며 오랜만의 칼질에 입맛을 다시는 구선생의 모습에 만해는 고개를 크게 흔들며 움직여지지 않는 팔과 다리를 있는 힘껏 움직이려 노력하는 듯 끙끙대며 이제는 아예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천천히 지켜보던 민기가 갑자기 구선생을 불러 멈추게 한다.


" 구선생님.." 

" 응?? 왜?" 


메스의 날이 약간 스쳤을 뿐인데도 만해의 가슴 중앙엔 선명한 핏자국이 얼룩졌다. 

이제는 침까지 흘려 재갈을 적시고 눈물까지 흘리던 만해는 이미 배가 갈린 줄 아는지 고통스럽게 끙끙대는 모습을 하고
있었고, 보던 민기가 구선생의 손을 아예 멈추게 한다.


" 그러고 보니.. 유언을 안 들었습니다." 

" 뭐?? 뭔 넘의 유언?"

" 우리 같은 놈들도 마무리할 땐 유언이라도 남기게 하는데.. 이 새끼도 들어줘야죠.."

" ......먼 소린지 모르겠는데..빨리 하라고.. 시간도 없구먼.."


구 선생이 물러나자 민기가 묶여 있는 만해에게 다가가 입에 물려 있는 재갈을 빼버린다. 


" 으윽.....사..살려줘.... 사..살려주세요..." 


재갈이 풀리자 애원부터 하는 만해였다. 한가진파에서 쫓겨났고, 새우잡이배에 태워질 때만 해도 만해는 이 모든 것이
민기 때문이라고 복수를 수도 없이 다짐하며 자신의 목숨조차도 내놓고 겨울바다를 뛰어들었고, 증오와 오기로 곧바로
병원이 아닌 민기를 향해 돌진했었지만, 민기의 협박과 함께 자신에게 드리워진 메스의 날카로움을 느끼자 이내 목숨을
부지하려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동을 하게 된다.
 


" 그게.. 유언이면 곤란한데.....다른 건 없습니까?" 

" 사..살려만 주시면 모..모든지 하겠습니다... 제..제발 살려주세요.."

" 어허.. 죽이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실 땐 언제고.....다른 거 말하시란 말입니다..."

" 제..제발.. 으흑..흑....."

" 질질 짜지 말고... 없으시면 시작하겠습니다."

" 자..잠깐!!! 아..아리 보험금..보험금 타려면 제가 있어야 한다고..내가 있어야...그걸 의심없이 받아 낼 수 있단 말이야!!!!
 악!!! 자..잠깐!!!!!!"
 

"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 사..살려줘!!!! 제발!!! 사..살려주세요.."

" ......" 


울부짖는 만해의 입을 틀어막던 민기가 손을 멈춘다. 

영문도 모른 채 민기가 비키기만 기다리던 구선생이 참다못하고 민기의 옆으로 바짝 다가온다.


" 어허... 하려면 빨리 하자고... 나 잠도 자야 하는데..." 

" 잠시 만요.. 선생님..."

" ,,,,응?"


" 그럼 ....." 

" ...흑흑~~~"

" 그럼... 아리한테 무릎 꿇고 사과해... 네 모든 죄 낱낱이 밝히고... 아리 엄마.....그렇게 된 것도....
 네가 다 꾸민 짓 얘기 다 할 수 있겠냐??"


" ...다..당연하죠..모..목숨만 살려주신다면... 아리 그년....아리 학생한테 제가 했던 짓하고..
 보험금까지 다 갖다 바치겠습니다.. 사..살려주세요....으흐흑..."


"정말 마지막으로 살려줘야 하는 건.... 아리한테 맡길 테니까......네 진심을 담하서 사과하라고... 아리가 죽이자고 하면...
 여기 계신 선생한테 죽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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