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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

착한 사랑 - 18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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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9가이드
댓글 0건 조회 42,233회 작성일 20-11-18 16:44

본문

생각지도 못한 지금 상황에 자신의 판단이 옳은 것인지 역시 끌리는 대로 아리 곁에서 아리를 지켜주고 도와줘야 하는 건지
아직도 고민을 하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천장에 아리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자신이 굳이 나설 필요가 있을까? 라는 

회피성 고민도 해보지만, 역시 조직 내 서열 다툼이 이런 피까지 보게 된 현 상황에선 어쩔 수 없는 상황이고 현실이라는 

생각을 하며 4시가 다 되었는지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에 몸을 일으켜 세우게 된다.


" 감사합니다 사장님..." 

" 됐어... 아리 학생이 이렇게 부탁하는데 안 들어줄 수 있나..."

" ....정말 감사합니다.."


민기가 없어진지 삼일도 채 지나지 않은 날 아리가 엘르사장에게 몇 번이고 허리를 굽히며 눈물을 참고 있다. 

손에는 봉투를 들고, 다시 한 번 인사를 하고는 그대로 엘르를 나가는데 밖에 있던 짱개가 그런 아리를 보곤 말을 한다.


" 어..어디가?" 

" 아!..자..잠깐.."

" 엄마한테 가니?"

" .......예?."

" 그때.. 엘르에 온 아줌마한테 얘기 들을 때 같이 있었잖아.."

" ....."

" 그건? 돈이야?"

" ..예.. 사장님이 가불해 주셨어요."

" 가불? 얼마나? 돈 필요하면 나한테 말하지....나..나도 돈은 좀 있는데.."

" .....괜찮아요..신경 안 써주셔도... 저도 모아둔 돈이 있어서 합치면 되요.."

" ......지금 가는 거지? 같이 가자."

" 예?? 아니에요.. 혼자갈 수 있어요."

" 괜찮아.. 그 큰돈을 가지고 어딜 혼자 다녀!! 같이 가자."

" ......그럼... 고시원에 좀 들렸다가 가요 오빠.."

" 그래..."


" 여기요.. 병원비는 다 못 구했는데요.. 우선 이거라도 좀 받아주세요.." 

" 카드 없으세요?"

" ..예?? 카..카드요?"

" 지금 현금은 다 정산 해놨는데..."

" 어..언니.. 죄송해요.. 제가 학생이라서.. 카드 같은 건.."

" 지금 시간에 현금 가져오는 사람이 어딨......에휴...그냥 주세요..."


응급실 야간 카운터에서 납부하라는 경비의 말에 아리는 황급히 응급실 쪽으로 향하게 되었고, 대기하고 있던 간호사에게
돈이 든 두꺼운 봉투를 내밀며 오히려 죄송스러워 하게 된다. 
낮에 아리는 용기를 내어 방과 후 병원으로 찾아왔다. 그러나
그 용기를 무색하게 아리의 엄마는 다시 중환자실로 옮겨진 채 면회도 되지 않는 상황이란 걸 알게 되었고, 아리를 만난 

간호사는 다짜고짜 입원비와 치료비부터 말을 꺼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종합병원은 어디나 그렇듯 이곳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아무리 목숨이 소중해도 우선 입치료비가 정산이 되질 않는다면
그 어떤 치료행위도 행해지지 않는 하물며 첫날은 병실이 없다며 무조건 특실로 향하게 만드는 어처구니없는 상술을 부려
환자를 봉으로 만드는 
아리의 엄마도 첫날과 둘째 날은 80만 원짜리 특실에서 그리고 지금은 하루 70만원 정도의 치료비가 들어가는 중환자실에 머문 채 아리에겐 어떠한 상황인지도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고 돈부터 얘길 하는 어른들의 말에 현실의 냉혹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 어린 아리였다.


하지만 그 어른들의 횡포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아이가 아리였다. 빽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아니면 병원의 복도에 드러누워 사람 목숨부터 살리라고 배째라는 식으로 행동하기엔 너무 착하고 여린 아리였기에 곧바로 고시원에 들려 돈부터 꺼내 금액을 확인하고는 턱도 없이 모자라는 입치료비에 결국 자신이 일하고 있는 엘르로 향해 가불까지 하게 된다. 그래도 2/3도 못 채우는 병원비를 무작정 들고 간호사에게 내밀며 왠지 모를 수치심까지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런 감정도 자신의
입장에선 사치라고 여기게 된 아리였다.


" 돈이 모자란대요.." 

" 우선 그걸로 안 될까요?.. 나머지는... 금방 구해 올게요.."

" 보호자는.. 안 오세요?"

" ...."

" 이런 건 학생이 할 게 아닌데.."

" 제가 보호자에요.. 저 그분 딸이에요.."

" ...아버지는요?"

" ...돌아가셨어요."

" ............나머지라고 해도 300이나 되는데.. 가져온 건 어떻게 구했는지 모르겠지만.. 학생이 300만원을 어떻게.."

"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러니까.. 계속 치료해주세요.. 방관만 하지 말고!! 치료해 주세요..."

" ....그건.. 의사 선생님들이 하시는 거지.. 여기서 그런다고 해결 안 돼요...."


곱게 말이라도 해주지 않는 너무도 사무적인 어투로 자신을 대하는 여자에게 아리는 서운함을 느끼게 되지만, 그러고 보니
이 여자는 간호복도 아닌 스튜어디스 같은 복장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아리였다.


" 지금... 면회 시간 다가오는데... 보고 가시려면 빨리 가보세요.." 

" 예?? 며..면회 안 된다고 하던데요."

" 시간이 정해져있어요.. 오후엔 7시부터 30분까지고요."

" 그..럼 볼 수 있는 거예요?"

" 예.. 보호자라고 말씀하시고.. 여기 면회자 카드 드릴게요..."

" ...감사합니다..."

" 그리고... 여긴 일반 병원하고 달리.. 빨리 잔금 치러야 치료도 시작해요....지금처럼 어쩔 수 없는 연명치료라면 모를까....."

" ......여..연명치료요?"

" 원래.. 방사선 치료하고 항암제 치료도 같이 들어가야 하는데... 아마 지금은 연명치료만 하고 있는걸꺼예요.."

" ......"


카운터의 여자가 가르쳐준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답답한 가슴을 손으로 쥐어짜듯 몇 번을 두드리며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리가 흐느껴 울게 된다. 아리에겐 이 상황 자체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아무리 용돈을 찔러준 엄마였지만, 결국 자신을
쫓아낸 사람 또한 엄마였다. 남자가 좋다고 자신을 쫓아낸 엄마였고, 선뜻 그 아저씨란 사람에게 아버지의 목숨 값으로 

받아낸 돈으로 가게까지 차려준 그런 엄마가 왜 병원비조차 없이 쓸쓸하게 혼자 아팠고, 이곳에 혼자 누워있는지조차.. 

엘르에 직접 찾아온 옆집 아주마가 아니었다면 그 연명치료란것만 받다가 이대로 죽었을지 모를 엄마에게 화가 났다.


그런 복잡함에 흐느끼며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린지도 모른 채 아리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그 모습에 이미 중환자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짱개가 아무 말도 없이 버튼을 누르며 엘리베이터를 잡아 준다. 아리는 그냥 중환자실로 들어가 엄마의 얼굴만 보고 오면 되는 줄 알았다. 머리에 모자와 녹색의 멸균복까지 거기에 신발에 헝겊더미까지 씌우고 나서야 엄마의 얼굴을 볼 수 있었던 아리는 이 거추장스러운 옷의 불편함을 느낄 새도 없이 엄마가 누워있는 침대의 가장자리에서 더 이상 다가가질 못한 채 서 있게 된다.


불과 2개월만인데 너무도 달라져 있는 엄마의 모습에 할 말을 잃게 된다.

원망이나 분노를 엄마에게 털어놓고 싶었던 아리였다. 자신이 왜 이 고생을 했는지 엄마에게 따져 묻고 싶었던 아리였는데,

그런 엄마의 입을 덮고 있는 투명한 마스크는 연신 뿌여지며 힘겨운 숨소리를 들려줬고, 세 개나 달려있는 링거액들과 그 

주사 바늘 끝이 달려 있는 마른 엄마의 팔은 아리조차 기가 막히게 만들었다. 눈물조차 흐르지 않는다.

드라마에서 조차 못 봤던 낯선 풍경에 아리가 멍하니 서있는데 손끝에 이상한 기계를 단 엄마의 팔이 천천히 들리더니 아리

에게 뻗듯 내밀기 시작한다. 아리는 그 모습에 천천히 엄마의 곁으로 걸어간다.

가뜩이나 마스크로 가려진 입으로 떨리는 아리의 음성이 작게 중환자실에 깔리듯 들리기 시작한다.


" 밥은... 먹었어?" 


엄마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 ........먹기는... ............많이 아파?" 

" .......아...니..."


힘겹게 마이크 속에서 중얼거리는 엄마의 모습에 결국 한줄기 눈물이 아리의 눈에서 흘러 마스크를 적신다. 

한참을 가만히 서로를 바라보는 아리와 엄마다. 힘겹게 아리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꺼풀은 연신 감겼지만,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고만 있는데 다시 힘겹게 아리의 엄마가 입을 연다.


" ....왜 왔어.." 

" ......"

" ....넌.... 밥은 먹..었.어?"

" ...먹었어! 지금 몇 신데..."

" ..그래."

" ..고..소하지.. .. 지 자식 버리고.. 천벌.. 받은 거지..뭐.."

" 그래 고소해!..넘 고소해서.. 말도 안 나오네.."

" ........"

" 이게 뭐야....엄마 진짜 바보야?"

" ......."


아리가 화를 내려다 침대를 붙잡은 손에 힘을 주며 꾹 참는다. 

터질 것 같은 가슴에 울분이 터질 것 같아서 입술을 깨물며 말을 잇지 못하곤 고개를 숙인다. 


" 나 갈래.. 면회시간 다 되서.. 나가봐야 돼..." 

" ......아..리야."

" ...왜?"

" ...내.일..도 올,,거지?....."

" .....알았어!.. 알바가기 전에 들릴 테니까 몸이나 잘 추스려...... 진짜 엄만 바보냐!! 속상하게 이게 뭐야..."

" ......."

" 이게.. 뭐냐고... 남자 만나서 잘 산다고 나까지 쫓아냈으면.. 잘 살아야지.. 속상하게 이게 뭐야...."

" ......"

" 진짜.. 차라리 잘 살기라도 하지... 엄마 바보냐고..."

" ...미..안.해 아리..야."

" 미안하면 다야?!! 난.. 엄만 행복한 줄 알고 맨날 욕만 했는데...."

" ...아리야.. 고..생 많.았..지...."

" 그래!!.. 엄마가 버리고 나서 혼자 무서운 고시원에서 잠자면서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다....그.러..니...까.. 

 빨리 나.아..서.. 나한테 다 갚아주란 말이야.."


" ....그..래.. 엄..마..가 정말 미.안.해."

" ...................나..갈래.. 진짜 시간 다 됐어.."

" 아..리야.."

" 뭐?"

" 내일... 올거..지..."

" 알았다니까...."


아리는 더 이상 눈물을 참지 못하겠는지 면회시간을 핑계로 대며 무심하게 몸을 돌려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다시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중환자실을 나오게 된다. 얼굴을 돌려 엄마의 얼굴을 한 번 더 보고 싶었지만, 볼 수 없었다. 

아니 만약 엄마의 얼굴을 다시 본다면 이대로 주저앉을 거 같았기에 아리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며 중환자실에서 

나온다. 탈의실에 들어가 모자를 벗고,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지도 않은 채 잘 풀어지지 않는 멸균복을 조이고 있는 끈을 

떨리는 손으로 풀려 노력해보지만, 결국 짜증을 부리며 그 끈의 끝을 잡고 화를 내기 시작했다. 

생전하지도 않던 어색한 욕을 끈에게 하며 짜증과 화를 참지 못하던 아리는 그대로 주저앉아 소리 내어 울기 시작한다.


" 이게.. 왜 안 풀려.. 짜증나게....왜 안풀리냐고......" 

" 바보!! 천치!!! 못났어!! 진짜 못났어!! 뭐하는 거야... 사람 속은 있는 대로 다 뒤집어 놓고..."

" 저한테 관심 있어요?" 

" 오호라~~ 이제서야 그걸 알아주시나...."

" 강구씨 깡패잖아요."

" ...예??"

" 저번에 얘기 못 들으셨어요? 기민씨가.. 저보고 냄비라고 하는 거?..같은 깡패로서 도의에 어긋나는 행동 아니세요?."

" 하하하하하하하하.. 제가 그렇게 눈치 없는 놈으로 보이십니까?"

" ...."

" 아니. 어느 사내놈이 지 애인이 이억말리 떨어진 곳에 것도 혼자 모텔에서 생활하는데 찾아오지도 않는단 말입니까?!!!"

" ..그거야 기민씨가 워낙 바쁜...."

" 참나.. 절 너무 호락호락하게 보시는 거 같은데... 전화통화도 한통 안하는 애인이 세상천지에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소.."

" ....그래서? 대놓고 대시를 하시는 거다?!"

" 이제 모델하우스도 거의 끝났고.. 어차피 디자인 마무리는 건물 올리고 나서 할 테니까.. 지금 아니면 미라씨한테 얼굴 

 도장 찍을 기회도 없을 거 같은데.. 아닌가?"


" 참나.. 죄다 깡패들은 왜 그래요? 매너 없고.. 자기 생각만 하고?"

" 하하하하하하하하.. 내가 말입니다.. 솔직히 여자를 좀 많이 아는데.. 이런 나쁜 남자한테 끌리는 게 또 여자란 말이죠."

" 근데.. 어쩌죠? 전 연상엔 관심 없는데...."

" ...허~"

" 몇 살이세요? 딱보니 서른일곱? 아홉?"

" 이거 왜 이러십니까!.. 아직 서른여섯입니다!"

" 여섯이나 일곱이나..."

" 저 아직 언니들이 막 따라다니고 그럽니다.. 덩치가 산만하지만 그래도 산만한 값도 하고... 얼굴도 스스로 얘기하긴 

 뭐하지만.. 이정도면 훈남 아니겠습니까?"


" 우웩!!.. 훈남 다 죽었네.."

" 예??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 됐거든요... 저 조폭이라면 아주 진절머리가 나요.."

" 자꾸 깡패, 조폭 그러시는데.. 전 말입니다 엄연히 사업장도 있고.. 거기에 법인입니다..그리고 집도 있고.. 차도 있고... 

 돈도 잘 벌고.. 그럼 최고의 신랑감 아닙니까?"


" 신랑?? 와!~~ 너무 앞서신다..."

" 바쁜 세상 아닙니까.."


의도적인 접근에 거의 매일 현장에 찾아오는 강구의 모습은 어느새 미라와 이런 농담까지 주고받는 사이가 되어버리게 된다. 

미라도 처음과는 달리 그런 강구의 모습에 경계를 줄이며 가끔 현장에서만의 저녁식사는 허락을 해주며 강구를 멀리하지 

않게 되었고, 이제는 아예 도시락까지 사와 현장 사무실에 자리 잡고 기다리는 강구였다.


" 그런데... 기민씨랑은 어떻게 알게 된 사이신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쪽이랑은 어울릴 거 같으면서도 은근히 부조 합인데..." 

" 제가 어울려요?"

" 뭐.. 서글서글한 성격도 그렇고.. 남자들 부리는 거 보면.."

" 크크... 하긴.. 공사판 현장소장 3년이면 머스마가 다 된다고 했는데.. 이 짓을 벌써 5년 넘게 했으니...."

" 그래서 기민씨랑은??"

" 음~~ 제가 기민씨 차를 제 차로 받았죠.. 뭐.. 사무실에 쳐들어가기도 했고..."

" 예?? 쳐들어가요?"

" 사연이 길어요.. 단순히 합의금을 빨리 받았으면 이렇게 우연찮게 일도 못했겠지만..."

" 아니... 미라씨가 차를 받았는데.. 합의금을 받아요?"

" 그러게요.."

" 그럼 요즘은 연락 안하십니까?"

" 예?? 연락은 무슨.... 하긴 여기 오고 나서 한 번도 연락하지 않으니까.. 궁금하기도 하내요.."

" 궁금하면 안 되는데...."

" .....정말 저한테 관심 있어요?"

" 그럼 관심도 없는데.. 이렇게 매일 찾아옵니까?"

" 아니... 이해가 안가는게.. 강구씨 정도면 강구씨 말대로 널린 게 여자일 텐데.. 더군다나 하는 일도.."

" 크크.. 그런데 말입니다.. 이쪽 놈들은 꼭 여자를 구하려면 일반인부터 찾는 습성이 있습니다.."

" 스..습성이요?"

" 볼거 못볼거 다 봤다 아닙니까.. 여자란 동물을.....그러니까 더더군다나 그런 거죠.."

" 참나.. 뭐야... 즐길 건 다 즐기고 결혼은 정숙하고 순진한 년 찾는다는 거잖아.."

" 예??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 됐거든요!! 딴 데 가서 알아보세요."

" 전 그런 놈 아닙니다..."

" 그럼 말해봐요.. 지금까지 안은 여자가 열손가락 안에 꼽혀요?"

" ..........하나..둘..셋....넷...다섯...... 열하나.. 열입곱.....스물..둘.."

" 참나.. 진짜 어이없다..."

" 크크크..."

" 원래 대장부한테 여자가 꼬이는 법입니다!.."

" 대장부는...."

" 허~~.. 이거 이래뵈도 기민씨가 인정한 남잡니다.. 자존심 상하지만.. 기민씨하고 주먹 맞대보니 대단한 걸 인정한 

 남자로서 영광이죠.."


" ...기민씨가.. 대단해요?"

" 당연하죠.. 저희 회장님까지 기민씨한테 홀딱 반하셨는데... 좀 질투도 나는데요.."

" ...흠~~...거기에 영계고.."

" 이..것 보세요!!"

" 큭큭.. 그래서 저보고 어쩌라고요?"

" 예?? 아니.. 그냥.. 만나보자는 거지 뭐...."

" 바쁜 세상이라면서요. 그럼 모텔부터 가보죠."

" ...예??"

" 속궁합 맞는지 확인부터 하고.. 엔조이 할지.. 사귈지 결정해보자고요."

" ...허 참.... 너무 화끈하신데.. 이거 예상 못한 전갠데....."

" 그러면 음.. 말던가..."

" 아..아닙니다!! 고맙게 먹어드리죠!!!"

" 먹어??.. 누가 먹히는 진.. 가봐야 알죠.."

" 와!~~~ 이거 이미지가... 잘못 건딘거 같다는 생각이 막 드는데...."

" 그럼? 저한테 현모양처 같은 뭐 그런 여잘 바란 거예요? 공사장에서 남자들 막 부리는 저한테?"

"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 정말 싫음 말던가!!"

" ....."


짱개가 사무실 문을 열었을 땐 이미 아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열려 있는 민기의 방문을 확인한 짱개는 황급히 달려가게 되었고, 그제서야 민기가 중국 출장 중이란 걸 다시 생각해내게 된다. 민기의 방에 있는 소파엔 자다 봉변을 당한 놈처럼 

깜딩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소파에 어정쩡하게 기대어 아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 너..넌 뭐야?" 

" .....사장님이세요?"

" ..뭐?? 사장? 사장을 왜 찾는데?!"

" ......아저씬 누구세요?"

" 그러는 넌 누군데?"

" 권..아리요..."

" ....아리? 아!!.. 옆에 엘르에서.....그래 내가 사장인데..왜? 날 왜 찾아 왔냐?"

" 정말.. 아저씨가 사장이세요?"

" 이게 미쳤나!!"

" ........"


아리가 눈에 잔뜩 눈물을 머금고는 한참을 깜딩이를 바라본다. 깜딩이를 한참 쳐다보더니 그대로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곤
다시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아리의 모든 것이 무너지는 순간처럼 눈물을 겨우 머금던 아리의 얼굴은 이미 붉어지다 못해 

새하얘졌다. 아무리 인상이 변했다고는 해도, 흥신소 사무실에서 사장실이라고 적힌 표지판이 붙어 있는 방안에서 누워 

잠을 자고 있던 깜딩이 아리의 오빠로 보여질리 없었다. 오빠라고 하기엔 혼혈인 깜딩의 얼굴은 너무도 이국적이고 무섭기

까지 했기에 오빠가 아니란 걸 단번에 알게 된 아리는 그대로 흥신소를 나와 엘르로 향하게 된다.


깜딩을 노려보는 짱개를 향해 어깨를 들썩이며 자신의 행동이 잘한거 아니냐는 듯 팔까지 올린 깜딩을 향해 짱개가 차마 

자신보다 나이 많은 깜딩을 어쩌진 못한 채 한숨을 쉬곤 다시 엘르로 뛰어가게 된다.

아리가 그새 주방으로 들어가 감자를 까고 있었기에 조용히 다가가 옆에 앉는 짱개다. 


" 갑자기.. 흥신소는 왜 갔어?" 

" .........."

" 그때 말했던....오...빠 확인한 거야?"

" ....병신 같죠?"

" ..뭐?..."

" 지 오빠도... 못 찾고..."

" ....그게 왜 병신 같아."

" 정작 확인도 안 해본 오빠한테..뻔뻔하게 돈 빌려달라고...그러려고 갔어요.."

" ...."

" 차라리.. 일찍 갈 걸.. 괜히 혼자서 상상하고.. 이럴 줄 알았으면........"

" ...."

" 정말 나.. 바보 같죠?"

" 그게 왜 바보 같냐?..힘들 때 자기한테 벽이 되 줄 사람 찾는 건데...."

" ....엄마가... 혼자 누워 있는 거 보니까........... 정말 저 엄마 원망 많이 했었는데...."

" ...."

" 나 버리고 남자 좋다고 쫓아내놓고선...... 정작 바보처럼 왜 혼자 누워 있는 건데... 차라리 그 남자하고 같이 있었으면 

 이렇게 속상하지나 않지..."


" ..아리야.. 나도 어리지만.. 인생이란 게 꼬이려면 막 꼬인다고 하더라..."

" 바보... 병신.. 차라리 못 된 엄마로 계속 잘 살던가...이게 뭐야....."


눈물이 떨어져 빨간 대야에 잔상을 남기며 원을 그린다. 


" 아리야.. 내가 도와준다니까...나 모아둔 돈이 제법 많아.. 이렇게 보여도 한 사람 살릴만한 돈은 충분히 있다니까.." 

" ......."

" 참나.. 너 내가 기민형님 따까리처럼 보일 테지만.. 사실... 내가 돈 더 많아.. 볼래? 통장 보여줘?!!"

" 오빠.. 오빤 왜 저한테 잘해주세요?"

" ...뭐?"

" 여기서.. 일하면서 느낀 게 뭔지 아세요?"

" ........느끼다니?"

" 언니들이 저 많이 귀여워해줘요.."

" .."

" 그러면서.. 저한테 세상사는 얘기도 많이 해줬고요..."

" ..그게 무슨 말이야.."

" 세상엔.. 공짜란 게 없데요.. 여기서 화려하게 일해도.. 전부 빛갚느라 내일 걱정하면서 잠든다고.. 남자들이 여기 오는 

 목적이 단순히 술 마시려고 오는 곳이 아니란 거.. 저도 안다고요."


"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내가 여기 오는 놈들하고 똑같아 보여?"

" 정말.. 달라요?"

" 당연하지.. 내가 그 딴 놈들하고.........."

" 제 몸 노리고.. 접근하는 남자들이 생길거래요.."

" 누..누가 그래?!!!"

" 언니들이요..."

" 이 년들이!!"

" 오빤... 정말 제 몸 때문에 그런 거 아니에요? 얼마나 안다고 큰돈을 빌려준다고 해요?... 절 살려고 그러는 거 아니에요?"

" 야!! 권아리!!! 날 뭘로 보는 건데!!! 내가 아무리 따까리 노릇한다고!! 지금 날 인간쓰레기로 보는 거야?!!! 

 아픈 엄마 때문에 안절부절 못하는 여자한테 지금이 기회라고 몸 팔라고 말하는 쓰레기로 보여?!!!"


" ....."

" 그래!! 너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자존심 챙기고 싶으면 챙기고 살아!! 난 뭐 땅 파서 돈 모았는지 알아!!!!!"

" ....."

" 왜?!!! 그렇게 날 노려보면 어쩔 건데!!"

" ......."


'주루루룩' 


급기야 들고 있던 칼을 바닥에 던져버리고 일어서선 자신을 여자나 밝히는 놈으로 만든 아리에게 화를 내기 시작한 짱개는
자신을 똑바로 올려다보는 아리의 큰 눈동자에서 예고 없이 흘러내린 눈물에 할 말을 잃게 된다. 
흐르는 눈물도 무시하 듯
눈도 깜빡이지 않던 아리는 짱개가 당황한 듯 주춤거리자 그제야 손으로 자신의 눈물을 훔치며 다시 감자를 까기 시작한다.


" 넌 맨날 감자만 까냐!! 지금도 감자를 까고 싶어?!!" 

" 포테이토는 안주의 기본이에요.."

" ...무..뭐?!!" 

" 매일.. 감자가 얼마나 많이 들어가는데요...울 엘르는.. 뻥튀기 대신 감자튀김을 내 놓는데요..."

" ...."

" .....미안해요."

" ...."

" 오빠들이.. 그런 사람들 아니란 거.. 너무 잘 아는데... 솔직히 너무 힘들어요....."

" .....아리야."

" 나.. 고시원에 살면서.. 고생하면서.... 그래도 희망 잃지 않은 건... 여기서 일하면서 대학 등록금 모아서 대학가자고.. 

 정말 잘 되서 엄마한테 보여주자고...... 근데.. 엄마가 아프고.. 돈이란 게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 되니까.. 막 화가나.."


아리가 속내를 드러내며 자신도 모르게 여전히 눈물을 흘리며 반말을 한다. 그러나 짱개는 아리가 지금 존댓말을 하는지.. 

반말을 하는지 알아채지도 못하고 아리가 울먹이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찢어지기 시작했다. 이건 여자를 바라보는 시선도사랑을 느끼는 감정도 아니었다. 단지 불쌍한 민기가 왜 아리를 이렇게 위하는지 아끼는지 조금은 이해하며 짱개가 겨우 

눈물을 참는다.


아리만큼은 이런 더러운 세상에 물들지 않길 바라는 민기의 마음을 조금 이해할 수 있는 것 같았기에 어떻게든 아리를 

설득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짱개다.


" 돈이 무서워... 얼마나 무서운데.. 그래서 나.. 돈을 모으면서 쓰질 못했어....얼마가 필요한진 모르겠는데... 

 그거 내가 줄 수 있게 허락해 줄 수 없겠니?" 


" ...전 오빠한테 해줄 수 있는 게 몸밖엔 없는데요.."

" 아리야!! 왜... 그런 말을 하는데.... 내가 정말 너한테 흑심 있어서 그런 거 같아?"

" ......병원 언니가요. 사람 목숨 구하려면 돈 가져오라고 했어요.. 그 목숨 살리는데.. 오빠 돈 쓰고 제가 해 줄 수 있는 건....."

" 알았으니까!!! 우선 돈부터 받아!! 그리고 네 몸을 취하던 갖던 할 테니까!! 그럼 된 거지?!!!"

" ......"

" 앞으로 내꺼야!! 넌 내거니까!! 돈부터 받고!!"


'빡!!!!!!!!!!!!!!!!!!!!!!!!!!!' 


" 악!! 어떤 새끼가!!!!!.............혀..형님...." 

" 뭐?! 이 시발놈아!! 아리가 네 거라고?!!!"

" 혀..형님 그게 아니고..악!!! 악!!!!"

" 기..기민 아저씨...." 

" 이 시발 놈아!! 이 새끼가!! 아리 몸을 갖는다고?!!!!" 

" 왜..왜 이러세요!!!" 

" 아리 넌 가만히 있어!!." 

" 아저씨!!!!!!!!!!"


빽! 하고 소리를 지르는 아리의 목소리에 민기가 밞고 있던 짱개에게서 발을 멈추게 된다. 


" 아저씨가 뭔데!! 왜 울 세영오빨 때려요!!" 

" ...무..뭐?"

" 왜 때리냐고요!!!"

" 아..아리야... 이 새끼.."

" 왜 욕해요!"

" ....그게 아니고.."

" 아따.. 형님은 다녀오자마자 엘르요.. 참나.. ‘아리아리’ 하더니.. 엇!!.. 아..리 학생....어?? 짱개는 왜 그러고 있냐.." 


아리가 주저앉아 울기 시작한다. 주방에 막 들어오던 동민은 그런 아리의 모습과 민기가 밟고 있는 짱개의 모습을 확인하곤 어리둥절해 하며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한다. 엮여봐야 좋을 일 없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 동민의 동물과도 같은
행동이었다.


" 어디 갔다 왔어요?" 

" 응?? 추..출장..."

" 무슨 보디가드가 출장까지 다녀와요?"

" 나 바빠..."

" 세영 오빠가 그런 말한 건.. 제가 억지 부려서 그런 거예요.."


겨우 울음을 멈춘 아리는 지금 민기와 단둘이 주방 뒷마당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짐들에 아무렇게나 기대어 앉아 있다.

대충 오해가 풀리긴 했지만 그래도 화가 덜 풀렸는지 민기가 얼굴에 그림자를 그리고 있었기에 오히려 아리가 변명을 했다. 


" 울 엄마가.. 많이 아프셔서....세영 오빠가 도와주려고 그런 거예요...그만 화 풀어요.." 

" 누가.. 화를 냈다고.."

" 후~~~ 이상하게 아저씨 보니까.. 마음이 놓인다..."

" 그...그래??"

" 정말 답답했는데......"

" ...벼..병원비는??"

" ... 세영 오빠가.. 빌려주신데요."

" 내가 줄게.."

" ....."

" 내가 준다고!! 저 새끼 돈 받지 말고 내 돈 받으라고!!"

" 깜짝이야..."

" 아 씨...... 내 돈은 돈이 아니냐?! 저 새끼한테는 몸까지 받치면서 돈 빌리고!! 내 돈은?!!!!"

" 왜 이래요?!! 누가 몸을 받친다고!"

" 그랬잖아!! 짱개이 새끼가 자기 거라고!!"

" 말이 그렇다는 거지!! 제가 거부하니까 답답한 마음에 세영 오빠가 그런 거지!! 누가 몸을 받쳐요!!"

" 아!! 씨발!!! 그러니까 내가 준다고!!"

" 왜 욕을 해요?!"

" 답답하니까!!.. 넌 맹꽁이냐?! 바보야?! 돈 필요하다며.. 근데 왜 내 돈은 안 받는다는 건데?!!"

" ..."

" 준다잖아!! 내가 더럽게 벌었어도.. 내 돈이 구려서 그래?!! 정말 내 돈은 돈도 아니냐?!! 준다잖아!!"

" 그럼 줘요!!"

" 그래 준다고!!"

" ........."

" ......"

" ..................................큭큭..."

" .........."

" 아..씨~~.. 웃으면 안 되는데... 울 엄마 저렇게 아픈데.. 아저씨 때문에 웃잖아.."

" ......미안.."

" 왜.. 자꾸 사람을 웃겨요.. 웃을 기운도 없는데...."

" ...."

" .. 엄마는 저렇게.. 아파도 내 얼굴 한 번 더 보고 싶다고.. 내일 꼭 오라고 했는데..."

" ...........가면 되지.."

" 가기가 무섭단 말예요...엄마 얼굴 보고 있으면..울거 같아서....나 우는 거 보면 엄마 울 텐데...그럼 또 슬퍼지고..."

" 고칠 수 있을 거야....."

" ....얼마나 사실지 모른데.... 시한부라고.. 들어봤어요? 그거래요..치료를 받아도 길어야 한 달이고... "

" ...."

" 삼일동안... 울기만 했더니... 이제 눈물도 안 나와....근데.. 배가 고프고.. 똥두 싼다... 나 이기적이죠..."

" 그게 왜 이기적이야.. 사람은 원래 그런 건데.."

" 그니까요.... 사람은 원래 그런 건데..... 엄마는 혼자 중환자실에 누워서 의식이 왔다 갔다 하면서....저렇게 있는데... 

 난 밥 먹고.. 웃고.....정말 나쁜년인가봐..."


" 왜 그렇게 말하니....아리가 얼마나 착한데... 나 같으면 그런 엄마 아프다고 울지도 않을 거야.."

" 또!!... 울 오빠 나쁘게 말하더니.. 이번엔 엄마까지..."

" ...."

" 에휴... 꼭 좋다가 말아..."

" 아리야.. 우선 엄마 병부터 고치고....나중에 생각하자.."

" 수술도 못한데요.."

" ....."

" 참.. 애꿎다....."

" 못하는 게 어딨어....내가 아는 사람이 정말 많잖아...동생들만 세워놔도 지구 한 바퀴야..."

" .....저 괜찮아요.. 그렇게 농담 안 해주셔도...."


" 아...아리 학생!!!" 

" 어..아줌마..." 

" 빨리.. 빨리 가봐.."

" 예??"


아리가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는데, 뒷마당의 문을 열고 다급히 낯선 아줌마가 아리를 부른다.

항상 불길한 예감은 적중한 민기였는데 지금처럼 자신의 예감을 증오한 적이 없었던 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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