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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

좋은 아내 - 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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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9가이드
댓글 0건 조회 68,192회 작성일 20-03-30 16:06

본문

결코 퇴색되지 않는 기억...


"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요?" 


정신을 차리니, 아내가 고개를 들어 제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오늘 당신, 어딘가 이상해요. 금방 멍해지고."

"...더위를 먹었나 봐." 


그렇습니다. 분명히 이것은 더위에서 오는 마음의 미혹일 겁니다.

어쨌든 벌써 여름이 가까워졌습니다. 


"지금, 행복해?" 

"갑자기, 왜요?" 

"그냥... 물어보고 싶어져서." 


까만 눈동자를 크게 뜨고 아내는 잠시 저의 의도를 가늠해 보는 듯 했지만, 진지한 얼굴로 "행복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정말...언제까지나 이대로 이런 날들이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그 목소리는 정말 그렇게 바라면서도 결코 그 희망이 이뤄지지 않을 거란 걸 아는 것처럼 공허하게 들려서, 저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아내는... 그때의 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지금까지 몇번이고 생각했던 그 의문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그날 이후, 저희 두 사람 사이에 일본에서 있었던 일을 입에 담은 적은 없었습니다. 

그것은 저희 둘 사이의 암묵적인 금기였습니다. 


제 마음이 아내를 배신했던 일과 아내의 몸이 저를 배신했던 일.....


그 모든 것을 덮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세하면서 저희 부부는 이제서야 가까스로 안정을 얻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겉보기만의 안정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제 마음 속에서 그때의 일이 언제까지고 사라지지 않고 굴러 다니는 것처럼, 아내도 잊어버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결코 그 일을 언급하진 않습니다. 밤에 아내를 안으면서 가끔 미쳐 버릴 정도로 저는 그 때의 일을 의식합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아내의 귓가에 입을 가져가 속삭이고 싶어집니다. 아직 기억하고 있어?...라고 물어보고 싶습니다.

그때의 일을... 그 열락의 순간을... 그리고... 그 남자를... 


저물어 가는 해와 반대로 네온사인이 여기저기 반짝거리기 시작한 거리의 인파를 헤치며, 그날 저녁 저는 약속장소인 

콜라주에 도착했습니다. 콜라주는 예전에 자주 이용하던 클럽이었지만, 최근엔 거의 가지 않고 있었습니다. 

빌딩 지하에 위치한 클럽의 심해를 본 따 만든 듯한 인테리어를 오랫만에 쳐다보면서 저는 걸음을 옮겨 만나기로 약속한 

남자가 앉아 있는 테이블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오랜만이다."


그 남자 춘식이는 잘 울리는 바리톤의 목소리로 말하며 싱긋 웃어보였습니다.


"아아, 일년만이군."

"우선 주문부터 해라." 


저에게 메뉴판을 밀어 주면서, 춘식이는 마시고 있던 유리잔에 다시 입을 가져갔습니다.

춘식이라는 다소 촌스러운 이름을 가진 이 커다란 몸집의 남자는 초등학교 때부터의 제 오랜 친구였습니다. 

제 친구들 중에서도 가장 오래 친분을 유지해 온 사이로, 어릴 때부터의 악우였습니다. 


언제 어떠한 경우에도 진담인지 농담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곤란한 말만 하는 이 녀석은 처음 만났던 초등학생 시절부터 

깡과 특유의 독기로 또래 남자애들의 리더 역할을 해 왔습니다. 

전 이 놈처럼 대담하고 안하무인인 사내는 아직 본 적이 없습니다. 

그것이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어둠의 세계에 들어선 녀석이 조폭세계에서 잘 나가는 이유일 것입니다.


사람을 깔보는 듯한 오만한 눈빛, 조롱하는 듯한 언사로 자주 문제를 일으키면서도 흥하고 코웃음만 치며 전혀 동요하는 

기색이 없는 녀석은 그러나 나름 독특한 카리스마를 갖고 있었고, 저 자신도 모범생이었던 저와는 반대인 그런 녀석의 

자유분방함에 쭉 매력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녀석과는 서로 어릴때부터 이런저런 추억을 쌓으며 맺어진 인연이었기에, 춘식이가 세간의 인식상 나쁜 놈인데도 제 

주변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가끔 연락하며 녀석과의 친분을 유지해 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일 년 전 그 날까지는....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다." 


춘식이가 피자 조각을 집어들며 전혀 진심이 담기지 않은 말투로 말했습니다.


"너도."

"제수씨는 잘 지내고 있어?" 

"...응." 


역시 춘식이가 제수씨라고 제 아내를 언급하는 것을 듣자 마음의 동요를 억누르지 못하는 저 자신을 느꼈습니다. 

그런 기미를 눈치챘는지, 춘식이는 놀리는 듯한 미소를 머금고 오만한 눈으로 저를 쳐다봤습니다.

그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습니다. 


"...뭐야, 아직도 신경 쓰고 있는 거냐?"

"...당연한 일 아냐?" 


남의 마음을 알아채는데 노련한 춘식이를 속이긴 힘들어서, 저는 쏘아붙이는 듯한 말투로 대답했습니다.


"삐치지 마라, 애도 아니고. 그 때 일은 네가 먼저 말을 꺼냈던 거잖아?"

"그 얘긴 그만 하자." 

"그 얘기를 하고 싶어서 만나자고 한 건데." 


춘식이가 태연하게 받아쳤습니다.


"요 일년간 바빠서 좀처럼 너한테 연락할 시간이 없었다."

"흠, 나와 만나기가 껄끄러웠던 건 아니고?" 

"내가 왜 그래야 하지?" 


그때 웨이터가 요리가 담긴 접시를 가져와 저희의 대화는 잠시 중단되었습니다.

웨이터가 떠난 뒤, 제 빈 잔에 위스키를 따라주면서 춘식이가 번쩍이는 매서운 눈으로 저를 응시했습니다. 


"난, 오히려 네쪽에서 먼저 연락해 올 거라고 생각했지."

"내가 왜?" 

"그 놀이가 한 번으로 끝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거든." 

"......" 

"그 때는 너의 기호에 맞추느라, 내 맘대로 하지도 못하고, 나름대로 노력해 줬었는데.. 네 소망을 멋지게 이루어 주려고." 


춘식이가 거기서 씩 웃었습니다.


"그리고 제수씨 쪽도 꽤 만족시켜 줬다고 생각했는데."


지난 일년 간 겨우 막아놓은 마음의 틈새를 다시 한번 예리한 칼날이 찔러 오는 것을 저는 느꼈습니다. 


"분명히 곧 연락이 와서 다음 약속을 잡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야."


저는 말없이 손에 든 술잔을 비웠습니다. 그리고, 간신히 입을 열었습니다.


"너에겐 그저 놀이였겠지만, 우리 부부한테는 심각한 문제였어."

"이제와서 뭐라는 거야, 네가 먼저 꺼낸 얘기 아니었던가?" 

"그건 그렇지만..." 

"우유부단하긴." 


춘식이는 경멸스럽다는 듯이 코를 벌름거렸습니다.


"결혼이라는 건 사회생활을 편하고 건강하게 보내고 있다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형식에 불과할 뿐, 그 실체는 옛날부터 

변함없이 남자와 여자가 함께 산다는 것 뿐이야. 더욱이 너희에겐 아이도 없잖아. 즐길 수 있을 때 즐기는 게 이득 아냐?"


"결혼한 적도 없는 주제에 아는 척하기는."

"아니까 결혼하지 않는거야. 뭐, 그런 일이야 어쨌든, 제수씨 쪽은 그때의 놀이에 대해 뭐라고 말하든? 그것이 궁금한데?" 

"현수는..." 


지난 여름의 그 날. 아내가 다른 남자에게 안기는 걸 보고 싶다는 저의 망상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실현시킨 것은 춘식이의 힘이었습니다. 

춘식이는 교묘한 말로 아내를 속이고 유혹하고 조종해서 제 눈앞에서 그와 몸을 섞는 것을 아내가 허락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내는 정말로 춘식이에게 안겼던 것입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그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연기였다고 아내는 말했습니다. 

저에게 복수할 작정으로... 이것도 춘식이가 먼저 아내를 꼬실려고, 불어넣은 말입니다만... 

아내는 춘식이에게 안기는 것을 허락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도중에서 연기는 연기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아내의 거짓말은 쾌락의 찬가로 바뀌었고, 아내의 남편인 저에 대한 배신에 대한 두려움은 기쁨의 경련으로 바뀌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춘식이와 몸을 섞으면서 아내는 진심으로 느껴 버렸던 것입니다.

그것은 다음날 돌아오던 기차 안에서, 아내가 스스로 고백해 왔습니다. 

아내의 고백을 듣지 않았어도, 모든 것을 지켜 보고 있던 저로서도 잘 알 수 있었던 사실이었습니다. 

그렇게 이성을 잃은 아내의 모습을 본 것은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저에게 고백을 마치고 아내는 울었습니다. 무서워요.라고 말하며 울었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어떻게 되는 건지, 어떻게 되고 말것인지, 그게 불안해 견딜 수가 없어요.... 그녀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 불안에 어떻게 대답해 줘야 하는지, 저는 알 수 없었습니다. 

단지, 울고 있는 아내를 달래려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영원한 동행의 맹세를 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달리던 기차 안에서 아내의 떨리는 어깨를 감싸 안았던 그 여름의 아침 이후, 아내는 그 일에 대해서 입을 다물었고, 

저도 입을 다물어 저희들의 소중한 부부의 일상을 지켜왔던 것입니다. 


"현수는 아무 말도 안 해. 아마 지금도 두려워서 그럴거야. 

일본에서의 일때문에 나와의 생활이 무너지지 않을까 생각해서 말이야." 


"...너는 어때?"

"응?" 


무심코 반문하자 춘식이가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비스듬히 내려다보 듯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너도 두려운 거냐?"

"그건... 그럴지도. 현수를 잃어버린다는 건 두려운 일이니까." 

"왜 단순한 놀이에 무너지느니 잃어버린다느니 그런 일만 생각하는거야?" 

"너한텐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보통 사람이면 다 그래." 

"그렇지만 너도 그 때는 즐겼잖아?" 

"......" 

"나에게 안기는 제수씨의 모습을 보고, 넌 엄청 흥분했었지." 

"그건... " 

"이제 와서 말끝을 흐리지 마." 


녀석의 집요한 추궁에 전 두손을 들었습니다.


"알았어, 그래. 분명히 평소보다 훨씬 흥분을 느꼈어. 그렇지만, 즐거웠다고 하는 거완 좀 달라."

"다를 거 없어. 뭐, 어쨌든 좋아. 그것만은 확인하고 싶었으니까." 


수수께끼같은 알 수 없는 의미의 말을 중얼거리고, 춘식이는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였습니다.


저녁 열 시쯤 춘식이와 헤어져서 저는 집으로 향했습니다. 

전철 안에서 흔들리면서 저는 언제부턴가 생각에 빠져, 춘식이와 나눴던 대화를 반추하고 있었습니다. 


너도 그때는 즐겼었잖아? 

춘식이의 질문은 또다른 저 자신이 그동안 마음 속에서 수십번 반문했던 것이었습니다. 


아니야! 

아내와의 생활을 무사히 계속하기 위해, 그녀를 더 이상 상처 입히지 않기 위해. 제 이성은 그 말을 필사적으로 부정했습니다. 


하지만... 

제 머리에 새겨진 그 때의 기억은 제 이성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 일년간 서서히 열기를 높여 가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오늘밤 춘식이와 나눈 대화는 그런 외면해오던 진실을 끄집어내어 정면으로 제 면전에 들이대는 것이었습니다. 

내릴 역에 곧 도착한다는 것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울리고 저는 고개를 들었습니다.

손잡이를 잡고 있던 제 손바닥엔 언제 부턴가 축축하게 땀이 배어있었습니다.


"물 드세요." 


아내가 내민 컵을 "고마워."하고 말하며 받았습니다. 조용히 물을 마시는 저를 보며 아내는 제 앞 소파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오랫만이네요. 당신이 이렇게 술 드시고 귀가하신 것이."

"아아, 그랬었나? ...그게, 옛날 친구를 만나서 말야." 


말하면서 저는 아내의 눈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막 목욕을 마친 아내는 평소에는 목 뒤로 하나로 단정히 묶고 있던 머리를 어깨까지 풀어 늘어트리고 있었습니다. 

물기를 머금고 요염하게 빛나는 검은 머리결에, 가는 목에서 가슴까지 아내의 하얀 피부가 눈부시게 비칩니다. 

저도 아내도 조용한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서 집에 있을 때에는 제대로 TV도 보지 않았지만, 오늘 밤 만큼은 그 고요함이 

불편하게 느껴져서 저는 소파에서 일어나 선반 위 오디오를 작동시켰습니다. 


"아, 이 노래..."


이윽고 흘러나온 곡을 듣고 아내는 눈을 반짝이면서 제 쪽으로 몸을 돌렸습니다. 

Simon & Garfunkle의 히트곡, The Sound of Silence는 저희 두 사람에게는 작은 추억이 있는 노래였습니다. 

이 곡을 테마곡으로 사용한 영화 졸업이 저희들이 부부가 되어 영화관에 가서 본 최초의 영화였던 것입니다.


"그리워지네요... 겨우 몇 년 전의 일이지만."

"응...그건 그렇네. 아, 그래도 역시 그립다라고 말하는 것은 좋지 않은 것같아." 

"갑자기 왜요?" 

"아니, 나도 현수도 젊으니까, 아직 과거를 그리워해서 좋을 나이는 아니잖아. 

그러다간 금방 늙어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 버린다고." 


평소엔 하지않던, 저희 부부사이에 잘 생기지 않고 있던 아이를 연상시키는 말이었습니다.


"...역시 당신 취하신 것 같아요."

"그럴지도 모르지." 


저도, 제 자신도 무엇을 말하고 싶어서 이런 말을 지껄이고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저는 비틀비틀 걸어가 이번엔 소파, 아내의 옆에 앉았습니다.


"술 냄새 나요."하고 곤란한 듯이 웃으며 아내는 제 어깨에 살며시 머리를 기댔습니다.

어느샌가 The Sound of Silence가 끝나고 Mrs. Robinson의 경쾌한 멜로디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올 여름은 어디 갈까?" 


그렇게 말하며 저는 살짝 옆에 있는 아내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아내는 어느새 눈을 감고 제 말을 듣지 못한 듯, 조용히 음악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잠시 뒤 "어디든 좋아요. 아무데도 가지 않고 집에서 조용히 지내도 좋고요..." 불쑥 중얼거리듯 아내가 말했습니다. 


"...아니, 너는 항상 집에만 있었으니까, 이번 휴가 때는 기분전환도 할겸 우리 어디 놀러가자."


저는 아까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던, 품 속에 넣어 두었던 종이를 꺼냈습니다.


"여기에... 가지 않을래?"


그것은 춘식이가 소개해 준 펜션... 시크릿하우스의 팜플렛이었습니다.

시크릿하우스는 경상남도의 다랭이 마을 가까이에 있는, 남해바다를 바라보는 언덕 위에 세워진 새로 건축한 펜션이었는데, 

펜션 앞의 모래사장에서 해수욕도 할 수 있고 언덕 위 숲에서 산책도 할 수 있다고 팜플렛엔 쓰여 있었습니다. 

얼마 전까진 어떤 사업가의 소유였는데, 춘식이 조직이 그 사업가를 협박해 돈 한푼 안들이고 거의 강탈하 듯 빼앗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현재는 그 곳이 개장 전이었기에 머무는 손님이 아무도 없다며, 춘식이는 너희부부 마음대로 즐길 수 있다고 강조했었습니다. 

오래된 친구인 나와 아내에 대한 선물이라며 말했습니다.

여름휴가가 시작되고 바로 다음날, 저희부부는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남해행 버스를 타고 가천마을에서 내려, 그곳에서 다시 

버스로 목적지인 홍현리의 시크릿하우스에 도착했습니다. 

푸른 하늘이 아름다운, 맑은 날의 일이었습니다. 


"너, 경남 홍현리라고 가 본 적 있냐? 


갑자기 춘식이가 물어온 것은 지난 번 일년만의 재회 때였습니다. 


"아니, 없는데."

"그래, 그럼, 이번에 한번 안 가 볼래? 실은 올 여름 휴가때 거기가서 쉬려고 했었는데, 아무래도 일때문에 몸을 빼기가 

힘들어져서." 


그렇게 말하면서, 춘식이는 양복 안주머니에서 시크릿하우스의 팜플렛을 꺼냈습니다.


"시크릿하우스라? 좋은 곳인 것같긴 한데 조금 비싼데? 뭐야, 아직 개장도 안했잖아."

"어, 여기 비싸. 그렇지만, 회장님께서 특별히 사용권을 주셔서 말이야. 우리 조직 소유니 개장도 상관없고, 이것을 가져가면 

아주 싸게 묵을 수 있을거야. 넌 내 절친 아니냐, 선물이야. 만약, 네가 제수씨와 간다면, 사용권을 줄께." 


"너는?"


"난 괜찮아. 어차피 그 사용권 유효기간도 개장하기 전인 다음 달까지고, 내가 이용할 기회는 없을 것 같으니까. 

만약, 너희 부부가 간다면, 이 펜션, 지금 개장 안해서 아무도 없으니, 방도 마음대로 골라잡아 호젓하게 둘이서 휴가를 

보낼 수 있을 거야. 기간은 4박 5일로 되어있고."


"넌 지윤씨와 갈 생각이었던 거냐?"

"글쎄." 


춘식이는 의심쩍게 웃으면서, 공중에 담배연기를 뿜어냈습니다.

마을에서 내려 십오분 정도 걸어올라가 도착한 시크릿하우스는 팜플렛에 소개된 대로, 멋진 인테리어로 장식된 현대식 

이층건물이었습니다. 

마침 와 있던 관리인에게 체크인을 마친 저희부부는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깨끗이 정돈된 이층의 이인실 방에 짐을 푼 후, 

밖을 둘러볼 겸 산책을 나갔습니다. 

아직 한낮이라 여름의 햇살이 뜨거웠지만, 불어오는 시원한 바닷가 바람과 상쇄되어 상쾌한 기분이 되었습니다. 


"이십대 초의 아가씨같은데."


제 팔짱을 끼고 걷는, 그녀로서는 드물게 짧은 소매의 물빛 원피스라는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아내를 놀리자...


"어서 가요."


조금 화난 척 말하며, 아내는 살짝 옆으로 몸을 돌려 부끄럼을 감췄습니다.

펜션을 나온 저희 부부는 언덕을 가로질러 천천히 걸어 내려가, 잔잔한 파도가 치고있는 M자형의 해변가 모래사장에 발을 

디뎠습니다. 

시원하게 불고 있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남해의 푸른 물결이 일렁이는 것을 보면서 저희는 모래밭 위를 걸었습니다. 


"어머."


돌연, 아내가 탄성을 질렀습니다. 

그녀의 시선이 향한 모래사장에는, 몇십여 명의 수영복 차림의 사람들이 해수욕을 즐기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여기에서 해수욕도 할 수 있었네요, 저는 몰랐는데."

"그러게 말야. 우리도, 내일이라도 수영하러 올까?" 

"그렇지만, 수영복을 가져오지 않아서..." 

"구하면 되지." 

"그래도..." 


말끝을 흐리는 걸 보니 아내는 수영을 할 줄 모르거나, 아니면 수영복 차림이 되는 것을 싫어하는 것같았습니다. 

아내의 성격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후자인 것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처럼 놀러 온 거니, 너도 조금은 자유롭게 즐기는 편이 좋아. 내일은 꼭 바닷물에 들어갔다 오자고."


결정하듯 말하고 저는 다시 걷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잠자코 따라 왔습니다만,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모래사장을 빠져 나와 노천카페에서 조금 쉰 뒤, 저희 부부는 근처의 요트를 타고 바다로 나가보기로 했습니다. 

요트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시원한 바닷바람이 강하게 불어 저희 부부의 머리칼과 옷을 펄럭이게 만들었고, 요트가 빠르게

지나가는 바다 위론 포말의 흔적이 짙게 일었습니다. 


저와 아내는 흔들리며 달려나가는 요트 뒷편에 서서 조금 전에 걸었던 모래사장들과 육지의 정경들을 이번엔 해상으로부터 

구경하였습니다.

해는 천천히 저물어 갔고, 바다 위 살랑살랑 부는 바람의 냄새에도 벌써 저녁의 기운이 듬뿍 그 속에 담겨있는 듯 했습니다. 

짧은 삼십여분 정도의 바다여행을 마치고, 저와 아내는 선착장에 정박한 요트에서 내려 시크릿하우스를 향해 걸어갔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곳이네요."


중얼거리듯 아내가 말했습니다.


"와서 기분 좋지?"


제가 묻자, 아내는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제 팔 사이에 손을 넣어 팔짱을 껴왔습니다. 

따뜻한 아내의 체온이 기분좋게 전해져 왔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어느새, 수 시간 전에 나왔던 시크릿하우스의 현관이 보였습니다. 

세련된 조각무늬 문양의 그 문을 열고 저희 부부가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였습니다. 


정확히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현관문이 열리며, 본 적이 있는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던 것입니다. 

놀라 굳은 저희 부부의 모습을 보고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가볍게 손을 들어 아는 척을 하며, 거만한 웃음을 띄워 보이는 

그 남자는... 춘식이였습니다.


전혀 뜻밖의 춘식이의 등장에 놀란 저는 다음 순간, 저도 모르게 아내 쪽을 보았습니다.

아내가 춘식이와 다시 만나는 것은 일년 전 그 날 이후 처음일 것입니다. 

다시는 만나는 일이 없어야...라고 아내가 생각하고 있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된다고 생각한 남자를 지금 이런 

장소에서 갑자기 만나게 된 아내. 아내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사라지는 게 제 눈에 뚜렷이 보였습니다. 

섬뜩하고 싸늘한 기운이 제 마음 속에서 피어났습니다. 


"이거 다들 왜 이래? 귀신이라도 본 듯한 얼굴을 하고."


춘식이는 입술 끝을 살짝 올려 녀석 특유의 조롱끼 어린 미소를 지으며, 거리낌 없는 발걸음으로 저희 부부에게 다가왔습니다.

저희 두 사람의 동요를 아는지 모르는지... 아니, 타인의 감정 변화에 민감한 이 녀석은 아마 모든 것을 다 알면서도 이런 

천연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제수씨, 그 때가 언제더라? 하여튼, 또 뵙네요. 잘 지내셨죠?" 


천천히 다가온 춘식이가 조롱하는 듯한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손가락으로 자신의 입술을 매만지며 아내 쪽을 향해 말했습니다.


"아마, 그 때 이후... 거의 일년이 되는 건가요? ...어때요? 제 말이 맞죠?"


아내는 입을 다문 채였습니다. 넋이 나간 듯한 얼굴에, 아내의 가는 손가락이 잘게 떨리고 있는 것이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네가 왜 여기에?"


겨우 쥐어짜낸 제 목소리가 마치 다른 사람의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어? 아, 그게... 예정했던 일이 상대편 사정으로 갑자기 연기되서 당분간 놀게 됐거든, 너에게 준 사용권도 여분이 있었고... 

요즘 좀 번거로운 일들이 많아 피곤해서, 조용한 곳에서 쉬어 볼까하고 말야. 그냥 무작정 혼자 내려왔지. 지금 막 도착했다."


술술 나오는 녀석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어쨌든 춘식이는 동요하는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 그럼, 나도 이 곳을 한번 둘러 보고 오도록 할까?" 


춘식이는 저희 둘에게 일부러 보라는 듯, 크게 기지개를 켠 뒤 저와 아내를 차례로 쳐다보았습니다.


"그럼, 나중에 다시 보자."


그런 말을 남기고, 춘식이는 이내 가버렸습니다. 저는 그저 멀어지는 녀석의 등을 바보처럼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습니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아내는 혼자서 현관 쪽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현수야!"


작은 목소리로 불러보았지만, 아내는 저의 말을 못 들은 듯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저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묵고있는 방으로 들어가는 도중, 저는 다시 방을 나오는 아내와 마주쳤습니다.


"잠깐 바람 좀 쐬고 올게요."


제 눈을 피하면서 아내가 말하더니, 제가 뭐라고 대꾸하기도 전에 서둘러 계단을 내려가 버렸습니다.

하릴없이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다시 한숨을 내쉰 저는 할 수 없이 힘없는 발걸음으로 방으로 향했습니다. 


아내는 충격을 받았던 것일까? 아니면 화가 난 것일까? 저는 아마 그 양쪽 다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곳으로의 여행과 이 펜션에 숙박하는 것이 원래 춘식이의 제안이었다는 것을 전 아내에게 숨기고 있었습니다. 

지난 일년 동안, 춘식이의 이름 그 자체가 저희 부부 사이에서는 금지어 비슷한 것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고급스러운 펜션에서의 저희 부부, 단 둘만의 달콤한 휴가. 아무것도 문제될 건 없다...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아까 춘식이의 출현을 목격한 아내는 순식간에 사정을 깨달았던 것...이라기 보다는 오해한 게 틀림없었습니다.

제 의도와는 다르게, 작년 여름과 똑같은 상황이 되어 버렸으니까요. 

아내를 속여 춘식이에게 그 몸을 맡기려고 모의했던, 그 현기증 나던 시간.... 

이번에도 그때의 상황과 아주 흡사했습니다. 아내가 오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오해에 불과합니다. 전 오늘 여기에 춘식이가 나타나리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춘식이가 팜플렛을 내밀었을 때, 제 마음 속 깊은 곳에 불연듯 떠올랐던, 춘식이의 의도에 대한 어두운 예감을 또 

다른 제 자신이 일부러 외면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저 녀석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요? 다시 아내를 안으려?

다시 제가 그것에 동의를 하리라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요? 녀석은 저를 바보로 보고 있는 게 틀림없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맛보고 싶은 그 강렬한, 금기를 어길 때의 흥분은... 전 바보일지도 모릅니다.


바깥 테라스로 나가 저 아래 펼쳐진 해변가를 바라보면서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저는 곰곰이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뜨겁게 내리쬐는 햇살 속에서 따뜻해져 가는 몸과 호응이라도 하듯이 제 마음 속도 서서히 뜨거워져 가고 있는 

것같았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담배 몇 대를 연거푸 피운 후 방으로 들어가니, 어느새 돌아와 샤워를 했는지, 가운으로 갈아입은 아내가 창가 근처에 서서 

밖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이미 해는 거의 져서 창 너머로 바라다보이는 잔잔한 바다는 선명한 석양빛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이 방에도 그 석양 빛이 비쳐 들어와 아내의 옆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저는 잠자코 창가로 다가가 아내의 등 뒤에 섰습니다. 아내는 여전히 그 얼굴을 창 밖으로 향한 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가운의 옷깃 사이로 엿보이는 아내의 가는 목덜미가 묘할 정도로 색기있게 보였습니다. 

저는 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현수야... 아까의 일 말인데." 

"듣고 싶지 않아요." 


아내는 쌀쌀맞게 말했습니다. 


"설명을 들어야 무슨 일인지 알 거 아냐."


조용하지만 단호한 느낌을 주는 아내의 목소리에 약간 기가 죽었지만 저는 해명을 계속했습니다.

마침내 아내는 몸을 돌려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석양의 바다를 배후에 두고 쑥 고개를 들어 저를 똑바로 응시하는 아내의 얼굴은 차가웠지만 맑은 눈동자만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습니다. 


"어떤 변명을 할 생각인가요?"


평소의 순종적인 분위기와는 다른 아내의 모습에 놀라면서도, 저는 지금까지의 경위를 간략하게 말하고, 춘식이가 이 펜션에 

온 것은 제 의사가 아니었다는 것을 설명했습니다. 아내는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었습니다. 

제 말이 끝나자 아내는 고개를 숙여 바닥을 보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윽고 불쑥 "그렇다면 그 사람은 왜 여기에...?"라고 말했습니다. 순종적인 아내는 아마도 남편인 제 말을, 납득이 안되더라도 어떻게든 믿고 싶었던 것같았습니다.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을 알면서, 왜 일부러..."

"우리가 있는 걸 알고 있으니까 왔는지도 모르지." 


제 말에 아내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건 무슨 뜻이죠?"


아까와는 달리 화가 풀린 듯, 상냥한 빛을 띄운 눈동자가 저를 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잠시 잠자코 그런 아내의 얼굴을 말없이 바라보았습니다. 


"...현수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어?"


잠시 후, 저는 입을 열었습니다.


"무엇을요?"

"춘식이를... 그리고, 일년 전의 그 일을." 


순간, 아내는 깜짝 놀라서 숨을 삼켰습니다.


"알고 있어. 지금까지 그 일을 언급하지 않는 것이 우리 사이의 약속이었지. 하지만."


하지만... 오늘 여기서 춘식이와 만나고 저희들의 과거가 망령처럼 되살아나는 것을 느끼면서, 그 일을 외면하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한 일이 되었습니다. 아니... 진실은 그렇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저도, 그리고, 아마 아내도 그 기억을 잊은 적은 없기 때문입니다. 

요 일년간 저와 아내의 조용한 생활 속엔 그 때의 일이 항상 밑에 깔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지금도 말입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제 마음을 읽었는지 아내는 고개를 숙이고, 겹친 두 손을 불안하게 비비고 있었습니다. 

덥다... 냉방이 잘 된 방에 있으면서도 문득 저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머릿속은 멍하니 안개가 껴있는 듯, 창 밖의 바다를 물들이고 있는 노을의 주홍빛이 제 머리 안쪽까지 물들이며 침투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넋을 잃게 하는... 그 노을의 주홍빛... 그 주홍빛을 등 뒤에 두고 아내는 외간남자 위에 걸터 앉아서...

덥다... 눈 앞에 있는 아내의, 우아한 선을 그리고 있는 어깨의 섬세함이... 가운 자락 밑으로 뻗어나와 있는 두 개의 하얀 

종아리가 옷깃 사이로 들여다 보이는 가슴 골 사이의 어슴푸레한 그늘이 그 때의 제 눈에는, 왜일까 오싹할 만큼 요염하게 

비쳤던 것입니다.

그리고... 정신이 들었을 때는, 저는 아내에게 다가가 그 몸을 끌어안고 있었습니다.

갑작스런 일에 놀란 아내. 그 입술을 빨면서 저는 강제로 그녀의 몸을 바닥에 깔려 있는 융단 위에 쓰러트렸습니다. 


"싫어요!"


저항하는 아내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제 손을 아내의 가운 옷 자락 속으로 집어 넣었습니다.

곧 백설같은 새하얀 허벅지가 드러나, 그 눈부심에 저는 한층 더 거칠어졌습니다. 

방 바닥 융단 위에 눕혀진 아내는 말없이 저를 올려다 보고 있었습니다. 

그 물기 젖은 순한 눈동자에 제 가슴은 쿵쿵 뒤흔들렸습니다. 


"춘식이에게 안겼을 때 기억나?" 


오른팔로 아내를 억누르고 왼손으로 그 부드러운 몸을 애무하면서 언제부턴가 저는 그렇게 속삭이고 있었습니다. 

아내의 표정이 얼어붙는 것이 분명하게 보였습니다. 


"그때, 현수는 엄청나게 느끼고 있었는데."

"그만." 


가냘픈 목소리가 아내의 입에서 흘러나왔습니다.


"그런 현수는 본 적이 없었어."


속삭이면서 저는 왼손을 아내의 브래지어 밑에 넣어 탄력있는 젖가슴을 움켜쥐고, 엄지와 집게 손가락으로 젖꼭지를 꼭 

집었습니다.


"아아..."


아내는 애절하게 눈썹을 찡그렸고, 제 팔을 잡고 있던 아내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갔습니다.


"그때는 밝아서, 현수의 표정이 변하는 게 아주 잘 보였어."


무의식적으로 아내의 젖꼭지를 잡고 있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아파요..."

"처음에는 뒤에서였지. 현수를 엎드리게하고, 춘식이가 뒤에서 했어." 


저는 왼손을 아내의 가슴에서 떼어, 이번에는 하체로 손을 뻗어 음부를 덮고있는 자그마한 얇은 천을 끌어내렸습니다. 

매끄러운 배의 아래쪽, 사타구니의 윤기있게 빛나는 까만 수풀지대가 숨김없이 드러났습니다. 

아내는 이제 작은 저항도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녀의 허벅지와 하얀 정강이만이 가끔 경련하듯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습니다.


"현수는 느끼고 있었어. 진짜로 느끼고 있는 것같았어. 춘식이의 자지가 그렇게 좋았어? 

내가 여지껏 본 적이 없었던 얼굴로, 그런 움직임으로 허리를 흔들고 있었지. 

그렇게 하지 않음 견딜 수 없는 것처럼, 미친듯이 신음 소리를 지르면서."


"여보, 제발..."


간신히 쥐어짜낸 듯한 아내의 목소리에는 이미 울음이 섞여 있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울고 있는 아내의 호소를 무시하고, 드러난 어두운 덤불, 그 안쪽에 숨겨져 있는 꽃잎 속에 손가락을 집어 

넣었습니다. 그 익숙한 질의 감촉.

무심코 숨을 꿀꺽 삼킬 정도로 이미 아내의 그 곳은 흘러 넘치고 있었습니다. 


"...젖어 있네?" 


제 짧은 한마디의 말에, 마치 유죄판결을 받은 것처럼 비통함이 섞인 아내의 울음 소리가 한층 더 높아졌습니다.

그 목소리가... 신호가 되었습니다. 제 의식은 그 순간을 경계로 완전히 날아가버렸습니다.

그것은 무언가에 홀린 듯한 미친듯한 시간이었습니다. 정신이 들자, 저는 아내 속에다 사정을 마친 후였습니다.

제 손에는 아까 잡아뜯은 아내의 팬티가 쥐어져 있었습니다. 

머리카락도, 가운도 흐트러진 모습으로, 제 밑에 깔려 있는 아내. 넋이 나간 듯한 아내의 표정을 바라보는 제 얼굴도 역시 

넋이 나가 있었을 것입니다. 

해는 저물어, 멀리 보이는 희미하게 남아있는 노을빛만이 방 안으로 들어와 저와 아내의 몸을 조금씩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여보... 무거워요." 


아내를 올라탄 채 망연자실해 있던 저는 몸 밑에서 들려온 가냘픈 목소리에 간신히 이성을 되찾았습니다. 

서둘러 아내 위에서 일어나 옆의 융단 위에 털썩 앉았습니다. 

아내는 아직 몸을 움직일 수 없는지, 위를 보고 누운 채 손만 움직여 벌려진 가운의 옷자락을 바로 했지만, 그 정도의 

움직임도 힘겨워 보였습니다. 거의 강간처럼 아내를 거칠게 범한 것에 저 자신도 충격을 받고 있었습니다. 

아내에게 뭔가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적당한 말을 찾지 못했고, 그대로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창 밖은 이미 어둠이 지배하는 밤의 세계가 되어 있었습니다. 

갑자기 아내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습니다. 

어색한 듯이 제 눈을 피한 채 일어나는 그녀의 흐트러진 머리결을 보다가, 저 역시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외면해 버렸습니다. 


"미안하다..."

"아니요..." 


겨우 입에서 나온 제 목소리에 아내는 가운 앞자락을 눌러 잡곤 짧게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일어나 "좀 씻고 올게요."라고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는, 느린 발걸음으로 방에 딸려있는 욕실로 사라졌습니다.

저는 깊이 한숨을 내쉬고 어두운 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잠시 후 아내가 욕실에서 나왔습니다. 샤워를 해서 그런지 아까까지 창백했던 안색은 꽤 혈색이 돌아와 있었습니다. 


"벌써 식사시간이 지났는데... 당신도 샤워를 하세요."

"응.. 그럴게." 


긴장한 듯한 아내의 목소리에 대답하고 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펜션의 식당에서 주문시킨 저녁을 먹는 동안에도 저와 아내 사이에는 계속 어색한 공기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원래라면 즐거워야 할 여행을 망쳐 버린 것도 그렇지만, 무리해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제 가슴을 더욱 더 아프게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돌아오던 중, 현관으로 춘식이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볼 일이 있으니, 넌 먼저 가 있어."


아내에게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뭔가 말하고 싶은 듯 힐끔 저를 보았지만, 결국 "알았어요."라고만 대답하고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저는 한숨을 내쉬고, 춘식이쪽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밖에서 저녁을 먹고 왔다는 춘식이의 제안으로 저는 그의 방으로 들어섰습니다. 

짐작대로 녀석은 역시 이층, 저희 부부의 방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짐을 풀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야? 그렇게 굳은 얼굴을 하고."


방에 들어서자 그렇게 말하면서 춘식이는 창가의 의자에 털썩 앉아, 건방지게 다리를 꼬았습니다.


"젠장, 전부 너 때문이잖아."


춘식이가 건넨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저는 아이처럼 욕을 했습니다.


"무슨 소린지 원. 제수씨와 부부 싸움이라도 한 거야?"


단순한 싸움이라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저는 마음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너는 여기에 왜 온 거냐?"


춘식이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저는 약간의 분노를 담아 아까부터 품고 있던 의문을 그에게 들이댔습니다.


"무슨 소리야? 원래 내가 소개해 준 펜션이잖아. ...그건 어쨌든, 이유는 아까 말했잖아. 

예정했던 일이 상대편의 사정으로 연기되었다고."


"그걸 나더러 믿으라는 거냐?"


제 말에 춘식이는 "쳇" 코웃음을 치며, 그 이상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그렇고, 너야말로 나에게 무슨 일이지? 뭔가 용건이 있으니, 정색을 하고 이야기하자고 한 거 아냐?"


저는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춘식이에게 이야기할까 한순간 망설였지만, 마음을 정하지 못한 채 말 없이 담배를 피웠습니다. 

이야기고 뭐고 저 자신조차도 불과 몇시간 전에 일어났던 그 일을 아직 정리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폭풍같이 몰아닥친 그 흥분을...

춘식이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에 든 지포라이터를 달그락 달그락 만지작거리면서, 태연한 척 하며 제 모습을 관찰하는 

듯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저기."


잠시 후 제가 먼저 그런 춘식이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너에게 묻고 싶은 일이 있는데."


춘식이는 케이스에서 꺼낸 담배를 입에 물면서 계속하라는 듯이 턱을 끄덕였습니다.


"너는... 현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지?"

"전하고 똑같아. 분명하게 말해서 내가 좋아하는 타입이야. 아까 오랜만에 보고 다시 한번 그런 생각이 들었어."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춘식이가 눈을 가늘게 뜨고 저를 정면으로 쏘아봤습니다.

저의 망설임을 이미 파악한 듯, 녀석의 입술은 뒤틀린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나완 속궁합도 잘 맞고, 조이는 맛이 끝내줬지. 섹스 할 때 내는 신음소리도 최고였고." 


노골적으로 저를 조롱하고, 도발하려는 말투였습니다. 


"제수씨, 요즘도 그런 소리를 내냐? ...어때? 너랑 할 때도 제수씨가 그렇게 미친년처럼 몸부림 치냐? 궁금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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