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들의 교향곡 - 79부 > 야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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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

모자들의 교향곡 - 79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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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9가이드
댓글 0건 조회 22회 작성일 25-11-22 17:22

본문

피아노 학원에서의 일이 있은지 며칠후 태수는 신문배달을 마치고 오다가 책방앞에서 서성거리는 유진을 발견했다. 안그래도
그 이후의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걱정이 되고 궁금해서 얼른 그녀에게로 달려갔다.
 

"누나............................................"


그를 본 유진은 초조한 얼굴로 그의 팔을 붙잡고 다급히 구석진 곳으로 끌고 갔다.


"무슨일이 있어요?... 책방에 안들어가고 왜 그러고 서있는거에요?.............."


그러자 유진은 나지막한 소리로 속삭였다.


"그 선배가 여기까지 따라왔어..........."

"아직까지 그래요?.........................."

"응... 네가 말한대로 했는데도 계속 따라다녀.........."


그녀의 얼굴에는 겁에 질린 기색이 역력했다.


"그사람 지금 어디 있어요?................"

"저쪽에........................................."


유진이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자 반대편에서 숨어 몰래 보고있는 그남자가 보였다. 이러다간 큰일이 나겠다싶어 유진을 보며
말했다.
 

"제가 가서 알아듣게 말을 해볼테니... 누나는 책방에 들어가 있으세요.........."

"무슨말을 하려고?..........................."

"뭐라도 말해야지요... 누나가 말을 해도 따라다닌다는데... 이대로 두면 계속 그럴거잖아요........."

"싸우지는 않을거지?........................"

"왜 싸워요?... 그냥 말만 하고 올게요..."

"조심해... 괜히 나때문에 다치기라도 하면 안되잖아........."

"걱정마세요....................................."

"미안해... 너한테 이런문제까지 부탁해서......................."

"별말을 다해요... 어서 들어가세요... 곧 얘기 끝나고 들어갈게요................."


유진은 아주 걱정스럽게 쳐다보다가 이윽고 고개를 끄덕이고 책방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태수는 그 남자가 숨어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긴장과 두려움으로 가슴이 두근거렸고 유진을 괴롭히는 남자때문에 화도 났다. 남자는 그가 다가오는것을 보고서
멈짓거리다가 달아날려고 
했다.
 

"잠깐 얘기 좀 합시다"


태수가 차분한 소리로 그를 부르자 남자는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 남자의 얼굴에서는 아주 당혹스러운 기색이
보였다. 그걸 보고 
용기를 얻은 태수는 다가가서 남자앞에 당당하게 섰다.
 

"왜 자꾸 유진이를 따라다니는 겁니까?........................."

"....................................................."

"싫다는 사람을 계속 쫓아다니며 괴롭혀도 되는겁니까?..."


다그치는 태수의 눈을 피하던 남자는 우물쭈물거리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잊어버릴려고 해도 자꾸 유진이가 생각나서.................."

"그렇다고 당신에게 관심이 없다는 사람을 괴롭히면 안되죠... 어서 단념하시고 다른 사람이나 만나보세요.........."


남자는 고개를 떨구며 긴 한숨을 쉬더니 조용한 소리로 물었다.


"당신은 유진이를 정말로 사랑합니까?.........................."


그 소리에 태수는 적잖이 당황했다. 하지만 남자를 단념시키기 위해서 확실하게 유진의 애인행세를 하기로 했다.
 

"사랑합니다...................................."


"난... 당신보다 그녀를 더 사랑합니다... 그녀를 사모하게 된것도 1년이 넘었고요... 그녀를 행복하게 해줄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나뿐입니다... 
그러니 당신이 양보하시오............"


남자가 애타는 얼굴로 말을 하자 태수는 그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당신의 과거를 들었읍니다... 사랑한다니요?... 유진이를 당신의 수많은 여자중의 하나로 만들 생각입니까?... 이렇게 싫다는
 사람을 
따라다니는걸 보니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고 소유욕입니다... 왜 당신의 만족때문에 한여자를 괴롭힙니까?..."
 

그러자 남자는 입을 벌리고 멍하니 쳐다보았다.


"여기서 유진이를 다시는 괴롭히지 않겠다는 말을 들어야 하겠읍니다................"


"난... 그럴수는 없소... 유진이는 이제껏 만났던... 여자들과는 다릅니다... 그녀만 사랑할거란 말이요... 유진이도 언젠가는
 내 정성을 알아주고 
기필코 나에게 올겁니다..................."
 

[도저히 말이 안통하는 사람이군]

따지듯이 말하던 남자를 분노가 서린 눈길로 노려보던 태수는 차갑게 말을 내뱉었다.
 

"마지막으로 경고하겠읍니다... 유진이를 단념하세요... 앞으로 또 이런일이 일어난다면... 경찰에 신고하고 학교에 대자보를
 붙히겠소... 물론 
당신의 화려한 과거경력까지 말입니다... 그러면... 당신이 아무리 잡아뗀다고 하더라도 학교를 다니기가
 힘들게 될겁니다........................................"
 

그말을 듣자 남자는 얼굴빛이 하얗게 변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태수는 틈을 주지않고 남자의 팔을 잡으며 다시한번 다그쳤다.
 

"유진이를 다시는 괴롭히지 않는다고 어서 약속을 해요!..........."

"야... 약속 하겠소... 다시는 그러지를 않겠소........................."

"그말을 믿어도 되겠읍니까?........................."

"매... 맹세 합니다......................................"

그제서야 팔을 놓아주자 남자는 뒤도 안돌아보고 도망갔다. 그걸보고 긴장이 풀어진 태수는 벽을 붙잡고 가쁜 숨을 쉬었다.
얼굴을 만져보니 이마에는 땀까지 베어있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어디서 그런 말을 할 용기가 나왔는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나마 남자가 
자신의 이런 모습을 못본게 천만다행으로 여겼다.

[이렇게까지 말을 해놨으니... 더이상 누나를 괴롭히지 않겠지... 맹세까지 했잖아.................]

떨리는 가슴을 가까스로 진정시킨 후 다시 책방으로 향했다. 그러는 그의 마음속에는 아까 유진의 이름을 부르며 사랑한다고
말을 
했던게 몹시 걸렸다.

[이걸 알면 누나가 많이 불쾌해 하겠지?..............]

그러나 계속해서 유진의 애인 행세를 하다보니 정말로 그녀의 애인이 된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 생각에 어이가 없어서
너털웃음을 내지으며 들어가자 엄마를 도와 책방을 정리하던 유진이 얼른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제 왔니?......................................"

"네................................................."


엄마가 웃으면서 그를 맞아주고 다시 정리를 하기 시작하자 태수는 다시 유진을 바라보고 아주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아주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초조한 기색으로 있던 그녀는 그제서야 안색이 밝아지면서 태수와 같은 미소로 답례했다. 집으로
가면서 혜영은 태수의 얼굴을 엿보면서 걷고 있었다. 태수는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눈치였다.
 

"태수야.........................................."

"네?.............................................."


태수가 깜짝 놀란듯 쳐다보자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뭘 그렇게 생각해?.........................."

"아무것도 아니에요........................."

"유진이한테 무슨일이 있니?............."

"네?............................................."


그가 두 눈을 번쩍 뜨며 바라보자 혜영은 인상을 자연스럽게 하며 입을 열었다.


"아까 네가 들어오기전에 뭔가 초조해 하는것 같더라... 최근에 그런 모습이 자주 보였었는데... 오늘은 좀 심한것 같았어......"

"누나에게 무슨일이 있는가 보죠........"


아들의 대답을 들던 그녀에게는 불현 듯 책방에서 헤어질때 뭔가 알수 없는 유진의 눈길이 태수에게서 떠나가지를 않았던게
기억났다.
 

"네가 들어왔을때는 안정을 찾던거 같던데 정말 아는게 없니?... 그 애하고 친해지다보니 걱정이 되서 그래..........."


태수는 그녀의 얼굴을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다가 유진의 애인행세를 했던것만 빼고는 모든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런일이 있었어?............................"

"네................................................."

"그래서 애가 그렇게 불안하게 보였구나........................."

"누나가 말은 안하지만 속으로는 많이 놀랐을거에요........."

"큰일날뻔 했다... 더군다나 주위에 아무도 없으니 말도 못하고 얼마나 겁이 났었겠니?... 여기서 끝나야 할텐데......."

"제가 누나에게 무슨일이 있으면 책방에 가라고 했으니까... 엄마는 아무 내색하시지 마시고 편안히 대해주세요......."

"걱정말아... 안그래도 몸도 안좋은것 같던데..................."


유진의 생각을 하던 혜영은 문득 수많은 남자들중에서 왜 태수가 그녀를 도와줬는지가 의아했고 또한 그가 그런식으로 일을
처리했다는게 
신기했다.
 

"그 남자가 대학생이었다면서 무섭지는 않았니?.............."

"당연히 무서웠죠............................."

"그런데 어떻게 그런식으로 일을 잘 처리할수가 있었어?..."

"저도 모르겠어요... 그냥 생각나는대로 말이 나왔거든요... 아마 누나가 걱정이 되다보니 그랬나봐요.........."

"유진이가 많이 걱정됐니?................."


"그럼요... 엄마와 선규엄마를 제외하고... 저한테 그렇게까지 잘해주는 사람은 누나뿐이잖아요... 곤경에 처했을때... 당연히
 도와줘야죠..................................."
 

당연한 듯이 대답하는 태수를 보고 혜영은 아들의 착한 마음씨에 흐뭇함을 느끼면서도 가슴속에 왠지모를 허전하고 착잡한
심정이 들기도 
했다. 선규의 해명을 듣고 명숙은 처음에는 안심이 되었으나 날이 갈수록 의문이 증폭되어 갔다. 아무래도
그의 말이 개운치가 않게 여겨졌다.

그녀의 머리속에서는 예전에 선규가 울면서 말했던 저 마음속에는 영원히 그녀밖에 없다는 말이나 추긍할때 했던 그녀만을
사랑한다는 
말이 점점 수상쩍게 느껴졌다. 더군다나 잠자리에서 그가 그녀를 만질때의 느낌이 다르다는것도 마음에 계속
걸렸다. 선규는 그 이후에 
그녀에게 지나칠정도로 너무나 잘하고 있었다.
 

[꼭 바람핀 남편이 아내에게 선심을 베푸는거 같네.............................]

어처구니없는 생각에 웃음을 지었으나 그래도 뭔가가 이상했다.

 

[선규의 말을 들어보니... 여자문제가 있는거 같애... 더군다나 종업원이 음식을 놓다가 묻었다지만 그래도... 그 분자국은
 이상하잖아... 얼굴을 
그렇게 가까이 댈 이유가 없는데... 그 레스토랑이라는 곳을 한번 가볼까?................]

그런생각을 하자 옛날에 악몽같았던 남편과의 일들이 떠 올라서 
머리를 세차게 내저었다.
 

[선규가 절대 그럴리없어... 그 사람과는 달라야지... 그래도 왜 이렇게 불길한 느낌이 드는거지?.................]

그러다가 선규가 여자를 만났었을까봐 
질투심이 났었던게 기억났다. 그녀도 그런자신이 놀랍기만 했었다. 더군다나 선규는
어떻게 그걸 눈치챘는지 그녀에게 물어봤었을때는 
너무나 부끄러워서 말이 안나올 정도였다. 남편에게 질투를 느끼는거야
당연하지만 아들에게 질투를 느낀다는거는 왠지 이상하고 
창피스러웠다.

[나도 주책이지... 왜 그런 마음이 들었을까?... 그냥 이렇게 살다가 선규가 크면 짝을 지어 보내버리면 되는데...........]
 

의자에 앉아서 한숨을 쉬던 명숙은 일어나서 약국에 걸려있는 전신거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거울속에 비쳐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 생각에 잠겼다.

[선규가 나로는 만족을 못하나?... 대학에 들어가기전까지는 교제같은걸 하면 안되는데.................]

자신의 몸매를 살펴보던 
명숙은 별안간 문 소리가 나자 아주 급히 자세를 바로하고 웃음을 지으며 손님을 맞았다. 일요일에
피아노 학원을 갔던 태수는 도착하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유진에게 황급히 물었다.
 

"어떻게 됐어요... 누나?... 그 사람이 아직까지 쫓아다녀요?........................."


그의 초조한 얼굴을 보며 유진은 신기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때 네가 그 선배와 얘기를 한 이후로 한번도 본적이 없어........................."

"잘 됐네요... 이제는 그사람도 포기했나봐요... 다행이에요.........................."

"도대체 그때 무슨말을 한거니?... 궁금했었어..........................................."


뚫어지게 쳐다보는 그녀를 보고 아주 쑥스럽게 웃던 태수는 유진을 사랑한다는 말을 제외하고는 전부 얘기해주었다. 그러자
유진은 두 눈을 
크게 뜨며 감탄했다.
 

"그런게 있었구나... 내가 왜 대자보를 생각못했지?... 아무튼 너 정말 대단하다... 고마워.........."

"뭘요... 어쨋든 누나에게 아무일이 없어서 안심이에요....................."

"어서 들어가자... 이번주에 시험이 있으니 오늘이 마지막이잖아........"


고개를 끄덕인 태수는 유진과 방에 들어가서 연습을 시작했다. 하지만 오늘이 그녀와 같이 앉아 피아노를 치는 마지막날이라
생각하니 
어쩐지 섭섭하고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피아노를 연주하는것도 즐거웠으나 책방과는 다른 분위기 속에서
유진과 단둘이 앉아 
틀릴때마다 교정해주는 그녀의 따스한 손길을 왠지 계속 느끼고 싶었다.

그녀와 함께 피아노 앞에 앉으면 마치 엄마 옆에 있는것처럼 
마음이 아주 편하기도 하고 설레이기도 하였다. 왜 그런 느낌이
나는지는 몰랐으나 어쨋든 할수만 있다면 이런 시간을 중단하고 싶지가 않았다. 
연습을 마치고 그녀와 함께 학원을 나오던
태수는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시험이 끝나도 가끔와서 누나와 피아노를 쳐도 되요?..............."

"피아노에 재미붙혔니?...................."

"네.............................................."


왠지모르게 유진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수가 없어서 태수는 고개를 숙이고 겸연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는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피아노 치고싶으면 언제든지 말해... 내가 시간내줄게..............."

"고마워요.., 누나... 계속 폐만 끼치네요.................."

"그게 어떻게 폐니?... 대신 시험 잘 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아주머니 얼굴을 뵐 면목이 없잖아.........."

"걱정마세요... 누나가 가르쳐줬는데... 반드시 잘 할게요............"

"내가 너무 부담을 주는거 같네.............................."


조용히 웃으며 태수와 나란히 걸어가던 유진은 앞쪽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이번에 옆에 남자가 있으면 좋다는걸 깨달았어........"

"그게 무슨 소리에요?.........................................."


그러자 유진은 알수없는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 선배일 말이야... 네가 옆에 없었으면 정말 난감했었을거야............"

"별로 한것도 없는데 뭘 그래요?............................"


하지만 유진은 고개를 내저으며 나지막한 소리로 말을 계속 했다.


"아니야... 남자가 옆에 있으면... 든든하고 안심이 된다는 소리를 들었을땐 그말에 공감이 가지 않았었거든... 하지만 지금은
 그 말뜻을 
어느정도 알거 같애............................"


그말을 듣고 태수는 어이가 없다는 웃음을 내지었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그리고 저는 그런말을 듣기에는 아직 어려요... 남자라니요?..........."

"아주머니께서 너를 어린애로 생각하시니?............."


그말에 태수는 걸음을 멈추고 그를 응시하고 있는 유진을 마구 바라보았다. 그녀의 무표정인 얼굴에서는 아무것도 읽을수가
없었다. 상당한 
어색함을 느낀 태수는 긴장감마저 도는 침묵을 깨기 위해서 일부러 말도 안된다는듯이 소리를 내어 웃었다.
 

"자식인데 당연히 엄마는 저를 어린애로 생각하시겠죠... 모든 부모들이 다 그러시잖아요?..................."


한참동안 그를 살펴보던 유진도 곧 표정을 부드럽게 바꾸고 고개를 끄덕이며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네말이 맞아... 내가 괜한 말을 한거 같구나... 어서 가자..............."


태수는 행동과 표정을 되도록 자연스럽게 하며 유진과 걸었으나 은연중에 가슴 한구석에서는 아주 조그마한 경계심이 싹트고
있었다. 
일요일에 오라는 마담의 말을 그냥 무시하고 선규는 선생님집으로 가고 있었다. 혹시 마담이 그의 집으로 찾아오지는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있기는 했으나 그때 선생님의 남편과 있는걸 본거때문에 화도 나고해서 그녀에게 반항을 하고 싶었다.

더군다나 개학을 한 이후로 
선생님 집을 찾아가본지도 오래되었고 지난주 내내 선생님이 불쌍하게 보여서 자꾸 엄마같다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래서 오늘도 남편이 
집에 없으면 작곡을 배우면서 몇시간이나마 선생님의 말동무가 되어줄려고 어제
찾아가도 되냐고 물어봤었다.

그동안 학교에서 선생님의 
안색에서는 아주 별다른 차이점을 볼수가 없었고 그녀는 평소와 다름없이 그를 대해주곤 했었다.
대문에서 초인종을 누르니 스피커에서는 
뜻 밖에도 혁재의 어린 음성이 나왔다.
 

"누구세요?....................................."

"선규형이야..................................."


문이 열려지자 선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들어갔다. 한번도 아이들이 문을 열어주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이 어디 나가셨나? 그래도 그렇지. 아이들만 집에 있게하면 어떡하라고.....]

집안을 들어서자 아이들은 그에게로 뛰어왔다. 지난 
여름에 그들과 자주 놀아줘서 선생님의 아이들은 그를 잘 따랐다. 선규는
아이들을 한 팔에 하나씩 안으면서 반갑게 말했다.
 

"오래간만이다... 그동안 잘 있었어?....................."

"응................................................"

"그런데... 엄마는 어디 가시고 너희들만 있니?......."

"엄마 아퍼......................................"

"뭐?.............................................." 


혁재의 말에 선규는 두눈을 크게 떴다.


"엄마 어디 계시니?.........................."

"방안에........................................."


아이들을 놓고 안방으로 달려가던 선규는 거실을 지나가다 선생님의 가족사진을 보게 되었다. 그러자 선생님의 남편이 눈에
들어왔다.
 

[맞구나........................................]

마담과 같이있었던 남자가 선생님 남편이 맞다는것을 알았어도 마음 한구석에는 자신이 틀리기를 바랬었다. 그러나 자신의
눈이 
맞다는것을 확인하자 깊은 한숨이 나왔다. 방안을 들어가보니 선생님은 침대 위에서 이불을 턱밑까지 덮고 자고있었다.
선생님의 안방에 
들어와 보기는 처음이었다. 방안은 그녀의 인상답게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열이 있나 그녀의 이마를 짚어볼려고 가까이 다가갔던 
선규는 경악을 했다. 선생님은 식은땀을 비오듯이 흘리고 끙끙거리는
작은 신음소리까지 내고 있었다.

[감기에 걸리셨나?... 어제까지는 
멀쩡하셨는데......................]

창백한 얼굴을 짚어보니 뜨거웠다. 놀란 선규는 옆에서 조용히 서있는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언제부터 아프셨니?....................................."

"몰라... 엄마가 아침에 밥 차려주고 잤어.........."

"그럼... 아침부터 그러신거란 말이야?............."


그러자 가만히 있던 희재가 입을 열었다.


"엄마는 맨날 이래........................................"

"매일?......................................................."


그말을 듣고 선규의 가슴에서는 불안감이 들었다.

[병이 있으신거 아니야?... 그런거라면 옆에 누가 있어야 하는데.....................]


"아빠는 오늘도 회사에 나가셨니?.................."

".............................................................."


아이들이 고개를 숙이고 대답을 하지않자 선규는 이상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왜 그래?... 무슨일이 있었어?....................."


그러자 희재가 시무룩한 얼굴을 들며 말했다.


"어제 엄마와 아빠가 싸웠어........................"

"............................................................"


선규는 가슴이 철렁해져서 혁재를 돌아보았다.


"무슨일이 있었니?... 그리고 아빠는 어디 계셔?............"

"아빠는 엄마와 싸우고 어제 나갔어............................"

"그럼... 그 이후로 안돌아오셨어?................"

"응........................................................"


불길함이 엄습해온 선규는 아무말없이 잠들어 있는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선생님이 아셨나?..................................]


"아빠회사 전화번호 가지고 있니?.............."


아무래도 아픈 선생님과 아이들만 나뒀다가는 안되겠다 싶어서 물어보자 혁재는 전화번호 수첩을 찾아가지고 왔다. 거실에
나가 수첩에서 
전화번호가 찾고 전화를 걸어보니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전화기를 내려놓고 잠시 생각에 잠기던 선규는 다시
전화를 들어 약국으로 
전화했다.
 

"엄마... 나야.........................................."


그러자 전화기에서는 뜻밖이다는 엄마의 음성이 들려왔다.


"왠일이니?... 네가 밖에서 전화를 다하고..."

"선생님이 편찮으셔..............................."

"뭐?..................................................."


선규가 증상을 얘기하자 엄마는 선생님집으로 오겠다고 했다.


"됐어... 집하고는 먼 거린데... 엄마는 약국을 봐야 하잖아... 몸살이라면... 나혼자 약국가서 약을 지어오면 되니까 처방이나
 말해줘.............................................."


"네가 혼자 할수 있겠어?........................"

"아휴... 내가 약사 아들인데 그것도 못할까..........."


엄마가 얘기하는 처방전을 쓰는데 문득 그녀가 궁금한 투로 물었다.


"그런데 선생님 남편은 계시지 않니?... 오늘은 일요일이잖아.........."

"회사일때문에 일요일에도 바쁘시데....................."

"그렇구나............................................"


조용히 말하는 엄마의 어조에는 어딘가 모르게 동정이 담겨져 있었다.


"엄마... 아무래도 아이들만 있어서 선생님이 일어나신 후에 가야할거 같애.........."

"그래야겠다... 선생님 간호 잘 해드려... 너한테 잘 해주시는 분이잖니?..............."

"걱정마.............................................."

"그리고 늦으면 꼭 전화해야 한다............"

"알았어... 그럼 끊을게.........................."


선규는 웃으면서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날 엄마에게 추궁을 받은 이후로 그는 조금도 늦지않고 칼같이 집에 들어갔었다.
 

[아직까지 걱정이 되나보지?..................]

그러면서 약국으로 가려고 일어나다가 문득 앞에 처량한 모습으로 서있는 아이들을 보게 되었다.
 

"너희들 점심은 먹었니?........................."


아이들이 고개를 내졌자 선규는 얼른 부엌으로 가보았다. 밥통안에는 밥이 있었고 냉장고 안에는 음식물들이 들어있었으나
밥을 차린적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몰랐다.

[이럴때 태수같았으면 차려줄수 있는데. 부엌일을 해봤어야지]

지갑을 꺼내 돈이 충분히 있나를 
확인하고 그를 물끄러미 보고있는 아이들에게 물었다.
 

"뭐를 먹고싶니?..................................."

"......................................................."

"괜찮아... 형이 사줄게.........................."

"......................................................"

"피자 먹을래?...................................."


그러자 서로를 마주보던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선규는 미소를 짓고는 혁재의 손을 잡으면서 부드러운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혁재야... 형이 나가서 엄마약과 피자를 사올거야..... 그러니까... 그동안 형이나 아빠외에는 절대 문을 열어주면 안된다.....
 엄마도 모르는 
사람에게는 문열어주지 말라고 그랬지?...................."


혁재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에는 희재에게 말했다.


"내가 없는동안 희재는 오빠말을 잘 듣고있어... 그래줄수 있지?.........."


희재도 고개를 끄덕이자 선규는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일어섰다. 그러나 아무래도 아이들만 남겨두고 가기는
안되겠다싶어 
다시 돌아섰다.
 

"옷 입어라... 같이 나가서 피자 먹고오자"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아이들은 부리나케 방으로 뛰어갔다. 그러한 그들의 모습을 보며 웃던 선규는 나가있는 동안 선생님이
깰지도 
몰라 메모를 썼다. 아이들에게 피자를 먹이고 돌아왔어도 선생님은 여전히 앓아 누워있었다. 배가 불러서 그런지
아이들이 제방으로 가서 뛰어놀자 선규는 
수건에 물을 적셔 가지고와서 선생님얼굴에 흐르는 땀을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

예전에는 몰랐었는데 유심히 바라보니 선생님은 곱게 
생긴 얼굴이었다. 그리고는 안스러운 생각이 들어 저도모르게 그녀의
얼굴을 살며시 어루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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