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들의 교향곡 -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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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수는 다행히도 남편의 솔직함과 자상함을 물려받아서 혜영을 이해하고 아주 따뜻하게 해 주었다. 자라면서 엄마의 속을
한번도 안 썩히고 어려운 생활에도 불구하고 불평 한마디도 없었다. 오히려 태수가 엄마를 위로할 정도였다. 더군다나 엄마
혼자 고생한다고 어렸을때부터 조그만 일을 하며 돈을 벌기 시작했던 태수였다.
혜영은 그런 아들이 마냥 대견스러우며 고마웠고 또한 다른아이들처럼 편안한 생활을 못하게 해줘서 미안하기도 했다.
"됐어요... 가방 이리 주세요............................................."
엄마에게서 돈 가방을 받은 태수는 엄마와 버스를 타고 정류장에 내린 후 집으로 함께 다정하게 걸어갔다.
"시험은 다 끝났니?........................................................"
"네... 내일 하루만 가면 방학이에요.................................."
"지난 1년동안 돈 벌면서 입학시험 공부하느라고 애 썼으니 방학에는 좀 쉬도록 해라......................."
"제 걱정은 마시고... 엄마나 건강 조심하세요...................."
태수는 옆에서 걷는 엄마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살아계셨을때 엄마가 고생했던것이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기억에
남아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자신을 키우면서 힘들어 하시던 엄마에게 고맙고 안스러운 마음이 항상 들었다. 엄마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하고싶었다.
자신을 돌보아주던 엄마가 언젠가부터 자신보다 작게 느껴지기 시작했었다. 이제는 자신이 엄마를 돌보고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머니에 있던 손을 꺼내 엄마의 손을 잡았다. 차가운 엄마의 손이었지만 부드러웠다. 혜영도 아들을 보면서
손을 꽉 잡았다.
"추우시죠?.................................................................."
"꽤 쌀쌀하구나... 요즘 감기가 유행이라는데 조심하거라....."
"엄마도 조심하세요......................................................"
태수네가 사는 집은 아파트의 지하에 있었다. 태수아빠가 살아있었을때부터 살던 집이었다. 5층 아파트는 지은지 오래되어서
허름했다.
"엄마, 씻으세요... 제가 낮에 나가기전에 대충 저녁준비를 했어요... 불에 데우기만 하면 돼요................."
"알았다......................................................................"
집은 방2개와 화장실 그리고 부엌이 딸린 아주 조그만 마루가 있었다. 집이 지하에 있었기때문에 낮에도 어두웠었다. 그러나
전기세를 아낄려고 낮에는 촛불을 사용했다. 혜영은 방에 들어가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서 화장실로 갔다. 태수는 부엌에서
저녁준비를 하고있었다.
화장실에서 씻는데 태수생각이 나자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태수에게 시집가는애는 호강할거야... 저렇게 집안일도 알아서 해주고.......................]
혜영이 나오자 태수와 그녀는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선규가 방학때 우유배달을 하고 싶대요.........................."
"선규가?..................................................................."
"네... 그래서 선규엄마와 상의해보라고 했는데... 아마 못하게 하시겠죠?...................."
"그럴거다... 아들의 건강에는 민감한 사람인데... 이 날씨에 허락하겠니?...................."
"제... 생각도 그래요..................................................."
식사를 마치자 태수는 그릇들을 날랐다.
"설겆이는 내가 할테니... 너는 그만 쉬거라...................."
"아니에요... 제가 할게요............................................"
"아니다... 사내놈이 자주 부엌에 들락날락하는거는 안좋아........................................"
그말에 태수는 웃었다.
"하하... 요즘은 남녀평등시대로 되어가는데... 엄마는 아직까지 옛날 사고방식이네요....."
"내가 옛날에 태어난걸 어떡하니?... 그리고... 아들이 부엌에 있는걸 좋아하는 에미가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
"그럼... 들어갈게요..................................................."
태수는 웃으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서 얼마동안 책을 읽고있는데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태수가 일어나서 문을 열었다.
엄마가 쟁반에 귤을 들고 서있었다.
"이거 먹어라..........................................................."
"엄마도 들어오셔서 같이 잡수세요.............................."
"그럴까?................................................................"
혜영은 아들과 방바닥에 앉아서 귤껍질을 깠다.
"방은 안 춥니?......................................................."
태수는 귤을 먹으면서 대답했다.
"네... 엄마 방은 어때요?........................................."
"내 방도 따뜻해...................................................."
중간길이의 머리를 가진 혜영은 긴 검은치마와 하늘색스위터 그리고 그위에 같은색의 가운을 걸치고 있었다. 작년에 태수가
번돈으로 엄마의 생일선물로 사준 옷들이었다. 혜영은 아들과 함께 귤을 먹다가 말했다.
"태수야... 대학가서 뭘 공부할건지는 생각해봤니?... 이제 고등학교 들어가잖아... 중학교처럼 3년이 금방 지나갈거야......."
"하고싶어하는 공부가 많아서... 구체적으로 뭘 할건지는 아직 잘모르겠지만... 돈을 많이 벌어서... 엄마를 호강시켜드리고...
싶어요............................................................."
혜영은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고맙구나... 너를 믿으니 네가 뭐를 하든간에 말릴생각은 없어... 하지만... 나는 네가 의학이나 과학을 공부했으면 하구나...
세상 돌아가는 일에 말려드는 일은 하지말아라......."
태수는 엄마가 아버지얘기를 하는걸 알았다.
"아버지 때문에 그러세요?..................................."
"응... 네가 네아버지처럼 된다면 난 아마 죽을거야....................."
태수는 엄마의 손을 잡으며 위로했다.
"이제는 그러지 않아요... 군사정권도 없어지잖아요..................."
혜영은 긴 한숨을 쉬었다.
"크게 바뀔건 없을거야... 투표만 할수있는거지 우리 같은 힘 없고 평범한 사람들에게 뭐가 달라지겠니?................"
혜영은 남편이 당했던 일때문에 항상 세상을 비관적으로 보았다. 태수는 엄마가 싫어하는것은 하고싶지가 않았다.
"엄마 뜻대로 할테니... 걱정마세요........................................"
"고맙다... 태수야..............................................................."
그제서야 혜영은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귤을 다먹고 쟁반을 들며 일어섰다.
"어서 자거라... 새벽에 일어나야 하잖니?.............................."
"그럴게요... 안녕히 주무세요............................................."
"그래... 잘자라................................................................"
혜영이 나가고 태수는 엄마가 한말을 곰곰히 생각하다가 불을 끄고 잠들었다. 이튿 날은 토요일이었다. 태수는 우유 배달을
마치고 선규와 등교하기 위해서 선규의 약국으로 갔다. 때마침 선규엄마가 약국문을 열고 셔터를 올리고 있었다. 태수는 얼른
달려가서 선규엄마를 도와드리며 인사를 했다.
"아줌마... 안녕하세요?...................................................."
"그래... 잘 있었니?........................................................."
명숙은 웃으면서 반갑게 태수의 인사를 받았다. 그녀에게는 태수가 믿음직스러웠다. 태수가 너무나 자기 할 일을 똑부러지게
하고 나이에 비해서 어른처럼 행동해서 어떤때는 태수와 이야기를 나눌때 마치 같은 또래의 어른과 얘기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였다.
태수의 집안 사정과는 달리 명숙의 집안은 어느정도 여유가 있어서 아들인 선규를 힘든 일을 안시키고 응석받이로 키웠었다.
그러나 명숙에게는 아들을 삼으라면 독립적인 태수보다는 자신에게 의지하는 선규가 훨씬 나았다. 그것이 자식을 키우는
재미이고 또한 자식을 보호하는게 부모의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품에만 끼고서 키운 선규 옆에 태수가 서 있어서 안심이 되기도 했다. 다른 아이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불량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한다고 그러는데 태수가 선규의 가장 친한 친구라서 다행이었다.
"선규는 아직 준비가 안 되었어요?...................................."
"곧 나올거다... 너희엄마는 벌써 나가셨니?........................"
"네............................................................................."
태수는 추워서 팔짱을 끼고 입고있는 코트와 몸을 움추리는 선규엄마에게 대답을 했다. 태수와 그의 엄마에게는 선규엄마가
고마운 사람이었다. 그들이 아플때는 선규엄마가 가족처럼 봐 주었고 약을 지어줄때도 돈을 안받거나 싼값으로 팔았다. 또한
태수엄마가 책방에 나가있어서 시간이 날때마다 태수를 불러 함께 밥을 먹곤 하였다.
그래서 태수에게는 선규엄마가 마치 친이모처럼 느껴질때가 많았다.
"추운데 들어와서 기다려라............................................."
"고맙습니다................................................................"
따뜻한 약국으로 들어가자 선규엄마는 김이 서린 안경을 닦으며 말했다.
"너희엄마와 너는 괜찮니?... 요즘 감기가 유행이잖아........."
"괜찮아요... 감기걸린 사람들이 많이 올텐데... 아줌마도 감기옮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고맙다... 만약에 감기기운이 있거든... 엄마와 빨리 내게로 와야한다........................................."
"그럴게요.................................................................."
명숙은 빨리나오라고 선규를 부르려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태수를 쳐다보았다.
"태수야... 신문배달 힘드니?........................................"
"네?........................................................................"
뜻밖의 질문에 태수는 어리둥절했다.
"어제 선규가 너에게 그랬다며?... 함께 배달하고 싶다고................................."
"그건... 우유배달인데요............................................."
"우유배달은 새벽에 하잖아... 그래서... 덜 추운 낮에 신문배달을 하라고 했어....."
"허락하셨어요?........................................................"
"응... 너무나 하고싶어하는 눈치던데... 반대하는것도 뭐하다싶어... 그냥... 허락했어.............."
태수는 놀라서 선규엄마를 바라보기만 했다. 아들이 걱정되어서 자나깨나 노심초사하는 선규엄마가 허락을 할 줄은 꿈에도
생각못했었다. 태수는 선규가 무리라도 할까봐 마음을 바꾸게 하기 위해서 선규엄마에게 먼저 상의를 해보도록 권하였던
것이었다.
"처음에 하면 갑자기 무리가 와서 몸살이 날수도 있어요..................................."
"그렇지?... 그런데 그런거하면 선규도 너처럼 몸이 튼튼해질수 있니?................"
"그럼요... 이것도 운동인데요....................................."
아들의 건강을 걱정하는 명숙은 선규가 태수처럼 아주 튼튼하게 자라기를 바랬다. 이왕 운동삼아서 한다면 나쁠거는 없었다.
더군다나 옆에 태수가 있어주면 안심도 되었다.
"네가 다니는 보급소에 빈자리가 있니?........................"
"마침 있어요... 소장님이 사람을 구하고 있거든요........."
"그럼 네가 소장님께 잘 말씀드려서... 선규가 힘들지않게 해줄수있니?.............."
"그래볼게요.........................................................."
"고맙다... 그리고... 선규가 힘들어하면 그만두게하고 얼른 내게 알려줘............"
"걱정마세요... 선규가 잘할거에요............................"
그러는데 선규가 가방을 들고 나왔다.
"벌써... 와 있었네................................................"
"빨리 가자... 학교에 늦겠다..................................."
선규와 태수는 선규엄마에게 인사를 하고 약국을 나섰다.
"너희 엄마가 허락을 하셨다며?.............................."
"응?... 아... 배달말이야?... 허락하셨어... 우리 엄마가 그래?................."
"너희 엄마가 걱정이 많으신가 보더라....................."
"우리엄마 원래 그러는거 알잖아... 신경쓰지마... 그리고... 지금 이런거 안해보면 언제 해보냐?.............."
"신문배달하는거 쉬운일이 아니야... 잘 생각해보고 결정해..................."
"걱정하지마... 네가... 다니는 보급소에 자리가 있니?.........................."
"응.................................................................."
"그럼... 말 나온김에 오늘 학교끝나고 나를 소개시켜줘......................."
선규의 확고한 표정을 보고 태수는 더이상 말릴수가 없음을 깨달았다.
"알았어... 그럼... 이따가 같이 가자................................................"
만원버스를 타고 학교로 가는데 조금 떨어진곳에 예쁘게 생긴 여학생이 서있었다. 고등학생같아 보였다. 선규는 그녀를 몰래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그런 선규를 눈치 챈 태수는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선규가 작년부터 성을 알게되어 여자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는것을 알고있었다.
함께 길을 걸을때도 예쁘거나 섹시한 여자가 지나가면 선규는 아쉬운듯이 쳐다보곤 하였다. 태수도 성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알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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