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 이야기 - 15편 > 야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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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

아르바이트 이야기 - 1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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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9가이드
댓글 0건 조회 21,554회 작성일 23-02-14 18:43

본문

다음날 월요일에 아침 일찍 수희에게 전화했다.
 

"지금 내 차 갖고 누나한테 갈께요... 준비하고 기다리세요.........." 

"언제 와?..........."

"지금 출발하니까... 안막히면 20분 정도?................"
 

차를 주차장에 세워두고 수희에게 올라갔다. 수희는 문을 열어주고, 집 안으로 들어서는 나에게 안겨온다. 우리는 미친 듯이
서로의 입술을 찾았다.
 

"자기 엄청 나빠..........." 

"왜?... 어제 연락 안해서 삐진거야?..........."

"삐진 것은 아니지만............"

"주말에 나 진짜 바빴다... 학교, 일, 집, 차, 후배들........."

"어머머... 그랬어?... 난 또 그것도 모르고 어디서 술마시는 줄 알고..........."

"누나는 나를 완전 술주정뱅이로 취급하는거야?..........."

"절대 아니야... 오해하지 마.........."

"이제 나가자... 출근해야지.........."
 

나는 수희를 차에 태워서 회사로 갔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같이 차에서 내려서 들어가는데 수희는 내게 팔짱을 낀다.
내 팔을 바짝 당겨서 가슴을 지긋이 누른다. 우리 뒤에서 또 요란하다.
 

"어머머... 이제 쟤들은 아예 출근을 같이하네?............" 

"그럼.. 혹시 어제 밤에?... 아니면 주말을 통재로?............"
 

목소리로 보면 분명 조애린, 곽은숙 그리고 나혜지이다. 수다로 보면 최고로 완벽한 트리플이다. 최수희가 이 말을 듣고
발끈해서 걸음을 멈추고 뒤로 돌아선다. 
나도 돌아서서 내가 먼저 인사를 했다. 그러나 수희는 톡 쏘는 말을 한다.
 

"누나들 안녕... 좋은 아침입니다........." 

"언니... 어제 밤에 아니면 주말에 우리가 뭘 어쨌는데요?..........."

"아니... 뭐..........."

"우리 카플하거든요?... 아침에 막내가 우리 아파트에 와서 나를 태우고 왔는데.. 밤 역사가 왜 나온대요?.........."

"그래... 그건 혜지 네가 엄청 오바한거야............"

"그니까 왜 월요일 아침부터 눈앞에서 알짱거려서 천불을 나게 하느냐고........"

"하이고오... 막내야.. 노친네들 도저히 안되겠다.. 우리 뒤따라가자........"

"아니... 수희씨.. 뭐라고?... 노친네?............"

"언니보고 안그랬거든요.........."

"나.. 멀고 또 누구?........."

"누군 누구야?... 노친네지.. 안그래요 어르신?.. 하하하.............."

"어이구우... 미쳐 돌아버리겠네........"

"그건 언니 혼자 알아서 해요......."

"거기... 이제 그 정도에서 고만해요............"

"막내야... 우리도 그 카플에 끼워주면 안되겠니?........."

"수희 누나가 찬성하면요... 하하..........."

"저것 봐... 저것들 아무래도 이상해.............."

"맞아요... 우리 막내랑 나랑 이상해요... 그것도 아주 엄청 많이요... 하하................"
 

우리는 사무실에 들어가서 외근 일지를 들고 바로 외근을 나섰다. 수희와 나는 아침에 카플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
아침마다 지하철 역에서 만나서 같이 출근하기로 했다. 
마포대교가 시도때도 없이 너무 자주 막히기 때문이다. 외근 다니는
것도 폼은 안나지만 회사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저녁때 들어가서 외근일지를 반납하고 퇴근 준비를 하는데 강과장이 나를
부른다.
 

"이거 고용계약서인데... 싸인 해요.........."

"읽어보지 않아도 되겠죠?........."

"한부 복사해서 집에 가져가서 읽어요... 우리도 다 똑같은 계약서로 일하거든... 막내도 안심해도 돼........."
 

나는 계약서에 싸인을 해서 강과장에게 주었다. 박은희대리는 미리 준비해둔 오렌지쥬스를 돌렸다. 나와 6인방은 함께 건배
했다.
 

"우리 막내... 내일은 놀고.. 모레 수요일부터는 더 이상 알바생이 아니야... 정규직으로 올라선 것.. 진심으로 축하해......."
 

6인방은 내가 정규직으로 바뀐 것을 손뼉치며 축하해주었다. 나혜지가 말했다.
 

"과장님... 우리 회식은 언제 해요?........." 

"회식?... 지난 금요일에 했는데... 또 해?......."

"막내야... 안되겠다... 너랑 나랑 우리 둘이 나이트 함 땡기자........"

"누나... 제가 요새는 쪼끔 바쁜데............"

"안바쁠 때 가면 되지... 하하........."

"나혜지씨... 내가 먼저 막내 데리고 가보고... 막내 매너가 어떤지 말해줄께요... 하하........"

"그걸 필요까지 없어요... 막내 정도는 내 손에서 해결할 수 있거든요... 하하........."

"막내는 지난 금요일 회식이 좋기는 했니?... 혹시.. 나이트로는 안쏠려?......."
"누나... 회식이건, 나이트건, 또 다시 스타킹을 목에 걸고, 팬티를 머리에 뒤집어 쓸 생각을 하면 아찔한데요?........"
"가슴에 브라도 했었거든?........." 

"숨도 막히고... 심장도 벌렁거리지?... 하하.........."

"뭔가도 딱딱하고 커다랗게 될껄?... 하하하.........."

"아오... 막내 저 탱탱한 엉덩이를 확 터뜨려버리려고 했는데............"
 

"누나... 성희롱인데요?........."

"가서 신고햇!..........."

"네?............."

"나도 네가 내 가슴이랑 엉덩이 만지고.. 막대기로 자꾸 찔렀다고 신고하면 되거든... 누가 더 크게 당할까?........."
"내가 언제?......." 

"필요없어... 우리 같이 노래방에 가서 술마신 것은 맞잖아?... 그거면 다 돼... 하하........."

"몰랐을꺼다..........."

"무서운 세상이네요.............."

"남자가 하는 신고보다 여자가 하는 신고가 훨씬 더 잘 먹혀들어가요... 워낙 많은 남자들이 그러니까........."
 

"남자가 여자한테 당했다고 신고하면?.. 경찰은 남자 말을 믿으려고 하지를 않아... 여자는 조신한 척 하면서 절대 그런 적
 없다고 딱 잡아떼면 대부분 오케이야... 
정황상 남자는 술취해서 잘 모르니까 헛소리를 늘어놓는 것이 뻔하잖아?... 여자가
 남자를 성희롱 했다고 하면 그 말을 누가 믿냐?... 하하하............."
 

나와 최수희는 퇴근해서 나는 최수희를 집에 태워다주었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최수희는 나에게 올라가자고 했지만 나는
다음 알바 때문에 가야한다면서 서둘러 집으로 왔다. 
내 책상에서는 지혜가 혼자 앉아서 공부하는 중이다. 그런데 옷을
보니까 평상복 차림이다. 
아무래도 지혜가 오늘 학교에 가지 않은 것 같다.
 

"왜... 결석했어?.........." 

"대체휴일..........."

"그게 갑자기 왜 그런데?............"

"징검다리 휴일이라나 뭐라나... 오늘 쉬고... 대신 방학을 하루 줄인대............."

"경식이는?..........."

"경식이도 나랑 같이 하루 종일 여기서 공부하고... 이제 막 친구들이랑 PC방 갔어.............."

"그런데 왜 어제 그 말 안했어?........."

"글쎄?..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거든?... 그런 말 할 정신도 없었잖아... 헤헤............"

"괜히 서둘러서 왔네.........."

"흥... 안그랬으면 또 어떤 여자랑 밥먹고 술마시고 했겠지?............."

"그건 아니고... 천천히 올 수도 있었다고... 급하게 온다고 약간 밟았거든............"

"그럼... 시간 있으니까 이따가 나랑 드라이브 가면 안될까?............."

"이따가는 밤인데?.........."

"뭐 어때?... 하루 종일 이러고 있으니까.. 너무 답답해............."

"간만에 공부 쫌 하려니까 온 몸이 거부하냐?... 하하................"

"그으래애... 가자 응?............"

"가도 되는데, 나 눈좀 붙이고. 어제 잠을 설쳐서 엄청 피곤하거든."

"알았어... 가서 자... 여신께서 재워줘?.........."

"안그러면 고맙지... 너 그러면 오던 잠도 도망가겠다.............."
 

나는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을 했다. 나는 씻고 바로 침대로 갔다. 눕자마자 지혜가 소리없이 쏙 들어왔다. 지혜는 내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오빠... 잘 자요... 내 꿈 꾸고... 알았지?.................."
 

지혜는 내 입술에 키스를 하고 나갔다. 너무 힘주어 하는 바람에 내 입술이 터지는 줄 알았다. 그래도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잠들 수 있었다. 
키스때문일까? 조금 자다보면 지혜가 또 내 입술을 빨면서 잠을 깨우겠지. 내가 한참을 자고있는데 정말
내 입술이 빨리고있다. 
비몽사몽간에 하는 생각에 지혜겠지? 그런데 그녀의 혀가 내 입술을 핥는다. 그 혀가 내 입 안으로
밀고 들어와서 내 입을 채운다. 
내 혀를 데리고 나가서 빨고있다. 지혜가 이 정도 까지는 아니었는데 그럼 아이린일까?
 

눈을 뜨면 간단히 알 수 있는데 그러기 싫다. 눈을 뜨는 순간 이 상황이 끝나버릴 것 같아서이다. 누군가의 손이 배에 있는
이불을 들춘다. 
나의 이녀석은 잠에서 깨어났다고 해서 아침인 줄 알고 있나보다. 빳빳하게 서서 텐트기둥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있다. 
이불을 들춘 손이 와서 그 녀석을 옷 위에서 잡는다. 나도 모르게 그리로 힘이 불끈 들어간다. 한번이 아니고
여러번 
그 손은 잠시 멈칫 하다가 다시 약간 힘을 주어 감싼다. 그런데 그녀의 손이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고 아래위로 아주
천천히 움직인다. 
이 녀석은 마음놓고 껄떡댄다. 잡혀있어서 행복을 느끼는 것일까? 그야말로 행복한 구속이다.
 

이대로 잠에서 깨어나고싶지 않다. 손은 바지를 열고 갇혀있는 그 녀석을 해방시킨다. 아까 샤워하고 팬티를 입지 않았는데
들통나버렸다. 
그 따뜻한 손가락이 기둥을 차분히 감아서 쥐어오는 느낌이란 한동안 이상한 애들이랑 관계를 하지 않은 탓에
이런 느낌도 오랜 만이다. 
이 녀석이 어느새 위험수위에 도달한다. 이제는 참고 있을 수 없을 정도로 급해졌다. 더 이상 꾸물
대다가는 대형사고를 칠 것 같다. 
나는 눈을 감은 채로 벌떡 일어나버린다.
 

"헛!..........." 

"앗!....................."
 

그녀가 놀라는 것을 약간이라도 줄여주기 위해 내가 먼저 놀라는 척 연기를 한다. 나는 거의 빛의 속도로 화장실을 향하여
달린다. 
어둠 속에서 그녀도 엄청 놀라서 뒤로 물러섰을 것이다. 화장실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한 나는 나 혼자의 힘으로 나의
위기를 시원스럽게 극복한다. 
내 생각에 그녀는 분명 아이린이었다. 뒷처리를 하고 재빨리 침실로 간다. 아무도 없다.
거실과 주방 어디에도 개미새X 한마리도 없다. 배란다 쪽을 내다보아도 아무도 없다. 옷방에도 없다. 지혜는 공부한다더니
어디갔지? 
아이린은 어느 새 사라졌지? 내 전화기가 울리는 것을 무시하고 다시 욕실로 간다. 샤워하고 외출복으로 갈아
입는다. 
그런데 거실에 지혜가 와있다.
 

"엄마가 밥먹으러 내려오래..........." 

"엄마가?... 너는 왜 공부하다가 사라졌어?............."

"엄마가 아까 와서 나를 데리고 내려갔어..........."

"너도 엄마랑 같이 밥했니?..........."

"아니... 밥은 엄마가 하고... 우리 둘이 그 동안 하지 못했던 이런 저런 얘기 좀 했어..........."

"그럼... 엄마는 계속 네 방에만 있었어?.............."

"화장실에도 안가고 지금까지 나랑 껌딱지처럼 붙어있었는데?........"
 

그럼 도대체 누구였어? 나 말고도 도어락 비밀번호를 알고있는 사람은 네사람 뿐이다. 지혜, 경식, 아이린 그리고 우리 엄마
말이 안된다. 경식이가 와서 나한테 그런 몰상식한 짓을 했을 리는 없다. 또 경식이는 지금 PC방에서 게임중일 것이다.
그것은 분명 여자였다. 그녀는 분명 아이린이었다. 나는 아이린의 키스와 지혜의 키스 정도는 구별할 수 있다. 아이린의
입술과 지혜의 입술도 당연히 구별할 수 있다. 
잠결이라서 잘못 보았다는 말이 안통한다. 나는 눈만 감고있었을 뿐 잠에서
절반 정도는 깨어있었다. 
말 그대로 비몽사몽에 있었다.
 

그런데 그 시간에 아이린은 지혜하고 같이 있었다고 한다. 누구였지? 허깨비였나? 그럴 정도로 내 몸이 허해졌나? 나는
어리둥절해서 서 있다. 
지혜가 와서 내 팔을 잡아끈다. 그런데 지혜의 두 뺨에 왜 이렇게 붉은 빛이 돋아있지? 나는 지혜의
손에 이끌려 현관에서 신발을 신었다. 
지혜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열정적으로 내 입술을 빨아댄다. 분명 이런 입술 키스는
아니었다. 
우리는 지혜의 방으로 내려갔다.
 

"너는 거기 올라갔다 내려오는데 30분이나 걸리니?..........." 

"오빠가 샤워하러 가는 바람에... 내 전화기도 여기에 두고 갔고............"
 

식탁에 앉았는데 지혜가 자꾸 내 눈길을 피한다.
 

"경식이는 저녁 안먹어요?........." 

"9시까지는 게임만 하고... 저녁은 그 다음에 생각해보겠대요... 하하..........."

"지혜야... 지금이 몇시지?..........."

"8시 다돼가요.........."


나는 아이린에게 물었지만 지혜 대신에 아이린이 대답했다. 내가 완전 잘 못 본것 같다. 그럼 저 쪼끄만게? 더 한심한 것은
나다. 
아직 두 사람의 키스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다니 나는 두 사람의 입술을 유심히 쳐다본다. 그래도 모르겠다. 식사
후에 우리는 여의도로 산책을 나갔다. 
지난 번에 아이린과 같이 왔던 곳이다.
 

"가까이 살면서도 오늘 처음으로 와보네... 엄마도 처음이지?........." 

"응?.. 으으응... 아닐껄?..........."

"엄마는 와봤었구나... 지금은 그 때보다 훨씬 좋아졌나?............"

"글쎄... 기억이............."
 

아이린과 지혜는 내 뒤에서 무슨 얘기를 열심히 하면서 소근거린다. 나는 그 쪽으로는 신경을 끄고 조깅복차림으로 운동중인
여자들의 빵빵한 몸매를 감상한다. 
괜찮다싶은 여자가 지나가면 넋을 잃을 정도이다.
 

"오빠... 안그래?................"
 

뭐라고 하는 것 같은데 나는 대답을 할 수 없다.
 

"이.. 오빠 뭐야아?........." 

"아마 조깅복녀 구경하느라고 정신이 팔려있나봐............."

"맞다... 그럴 것 같다... 그런데 엄마는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전에 왔을 때도.............."
"엄마가 오빠랑 전에 여기 와봤다고?.........." 

"아니... 다른 남자랑..........."

"뭐야?.. 엄마!.. 엄마 지금 타락한거야?.. 어떤 남자랑 이런 데를 왔다는 거야?..........."

"조용히 해... 지나가는 사람들 다 듣잖아..........."

"지금 그게 왜 문제냐고... 빨랑 말 안해?.. 언넘이었어?..........."

"그놈이었어... 이제 됐지?.. 하하........."

"하아... 엄마 지인짜... 완전 구제불능이다..........."

"내가 생각해도 그런 것 같아............"
 

나는 아이린을 차로 아파트 앞에까지 데려다 주고 돌아왔다. 나와 지혜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으로 올라갔다. 한 층
올라가고 키스 
또 한 층 올라가고 또 키스 이렇게 우리는 7층 내 방에까지 왔다가 키스하면서 다시 5층으로 다시 내려갔다.
나는 지혜를 방에 들여보내고 내 방으로 올라왔다. 문을 열고 들어서서 거실을 바라보면서 신발을 벗는다.
 

소파 앞에 있는 탁자에 분홍색 휴대전화기가 놓여있는 것이 내 눈에 보인다. 색깔로 보아서는 분명 아이린의 전화기이다.
그러고 보니까 현관에는 아이린의 운동화도 눈에 띄었다. 그럼 아이린이 지금 여기에 와있다는 말인가? 언제 왔지? 나와
지혜가 키스하면서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사이에? 
아이린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여기 저기
다니면서 찾는 것을 포기하고 나타날 때까지 그냥 기다리기로 했다. 
아까 잠을 조금 자고 나갔지만 피곤하다. 요새는 봄을
타는지 밖에 나갔다 들어오기만 하면 피곤하다.
 

혹시 내 몸 어딘가에서 노화현상이 가속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이린을 기다리는 동안 너무 긴장되는 탓에 그냥 해보는
전혀 쓸데없는 생각이다. 
시간은 이미 자정을 향해 가고있다. 기다림은 그리움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지금의 이 기다림은
초조함이고 또 불안함이다. 
그런데 내가 아이린을 기다리는 데 왜 초조하고 불안할까? 아이린을 생각하면 벌써 부터 가슴이
두근거리며 설레인다.
 

딸깍.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고 아이린의 발소리가 난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아이린은 지금 분명 옷방에서 나온다. 그런데
왜 아이린이 내 옷방에 갔었을까? 
신경을 곤두세우고 아이린의 발소리를 듣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이린이 나에게 윙크를
하고 욕실로 들어간다. 
또 시간이 걸린다. 내가 가진 모든 촉이 곤두선다. 아이린이 혹시라도 지혜 때문에 화가 많이 난 것은
아닐까? 
밤늦게 상담한다고 내 방에 오게하고 와인을 마시도록 했다고 항의하러 온 것일까? 그렇지만 지혜가 한번 하겠다고
마음 먹은 것을 무슨 수로 막는단 말인가? 
안되면 무작정 밀어붙이는 거친 성격은 도대체 누구를 닮았을까? 아이린? 아니면
아빠? 
드디어 물 소리가 들리고 욕실 문이 열렸다. 아이린이 욕실에서 나오고 나는 아이린을 바라본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아이린은 화난 것이 아니다. 천사처럼 활짝 웃는 표정이다. 아이린은 집에서 옷을 갈아입고 왔다.
무릎 위에서 끝나는 진한 초록색의 짧은 스커트는 제법 타이트하다. 하얀 남방. 아이린은 정말 깨끗한 모습이다. 아이린이
욕실 문 앞에서 나를 불렀다.
 

"태현씨... 이리 와봐요................."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벌떡 일어서서 아이린에게 간다. 아이린은 내 팔을 잡고 옷방으로 갔다. 행어에 갈려있는
체크 무늬와 색색으로 반팔 남방이 다섯개 그리고 가디건 
또 색깔별로 면바지 다섯개도 옷걸이에 물려서 행어에 걸려있다.
여름용 옷들이다.
 

"태현씨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오늘 낮에 나 혼자 그냥 샀어........" 

"와아아... 고맙습니다.........."

"입어보고 맞지 않으면 나한테 가져와... 바꿔다줄께.........."

"그런데 옷을 왜 샀어요?........."

"그냥... 내 맘이지... 하하............"

"누나한테는 내 비쥬얼이 여엉 말이 아니었어?... 아주 꽝이었나?.............."

"절대 아니야... 자기 비쥬얼은 정말 끝내줘... 자기한테 내가 고른 옷도 입히고 싶어..........."

"그렇다고 기껏 데려다 주니까... 이 시간에 옷 배달 왔어요?........."

"겸사... 겸사... 하하.............."

아이린은 나를 전신거울 앞에 서게했다. 행어에서 윗옷과 바지를 내려다가 내 몸에 대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본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엄청 진지하다. 
아이린이 어렸을 때 바비 인형에게 옷을 입히는 그 모습이 눈에 떠오른다. 아이린이 고집스러운
한마디를 뱉는다.
 

"나.. 자기 모습을 내가 보고싶은 대로 볼꺼야........."
 

패션쇼가 끝나고 우리는 옷방을 나와서 소파로 갔다. 나는 아이린이 와인을 마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병과 잔을 가져왔다.
우리는 와인의 시큼한 맛을 즐긴다. 그런데 아이린은 적응이 쉽지 않은 듯 아직도 온몸을 떨며 진저리를 친다.
 

"자기.. 우리 지혜 어쩔 생각이야?........" 

"공부 시켜야죠............"

"공부 말고............."

"그럼... 또 뭐?............."

"자기 아기를 임신하겠대잖아..........."

"에이... 하는 말이지... 정말로 그럴까?............"

"아니야... 어제는 엄청 진지했어................."

"아무리 그래도 그것은 18살 때의 생각이고.............."

"저거 고집 보통이 아니거든... 지금 저 생각이 한동안 변하지 않을 것 같아........."

"두고 보세요... 대학에 가면... 마음에 드는 남자들이 대쉬해오니까........"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없이 자기가 그냥 내 사위해라..........."

"하하하... 누나... 웃기지 말아요... 아직 어린애를 놓고 어른이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그게.. 그런가?..............."
 

아이린은 할 말을 잊은 듯 잠시 조용하다. 나는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과 스푼 그리고 작은 아이스크림 접시를 갖다주었다.

"아이... 참.. 이거 지금 먹으면 찌는데.................."
 

아이린이 그렇게 말은 하지만 이미 스푼을 손에 잡았다. 아이린의 결심은 유혹에 번번이 무너지는 것 같다. 아이스크림을
접시에 덜어서 첫번재 스푼이 입안으로 들이간다. 
나는 그녀의 입안에서 녹고있을 아이스크림을 상상하며 와인을 마셨다.
 

"나는 엄마이지만 지혜만도 못하지?.. 지혜가 어제 하는 말을 들으면서.. 진짜 반성 많이했거든............."
 

"어제는 지혜한테 그동안 스트레스가 너무 많이 쌓여서.. 지혜가 어쩔줄 몰라했어.. 그렇지만 내가 볼때는 둘이 참 잘해냈어..
 지혜는 속시원히 뱉어내고... 누나는 조용히 들어주고............. "
 

"지혜한테 공부하는 것이 그렇게 힘드나?........." 

"안하다가 하려니까 그렇겠지... 그런 일이 앞으로 몇번 더 있을거야..............."

"그래요?............"

"이런 상황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하는 애들은 거기서 포기하거든... 그런데 지혜는 포기 안하잖아?... 얼마나 다행이야?......"
"자기 때문이지... 지혜가 자기한테 얼마나 고마워하는데............"
 

아이스크림 한 스푼이 아이린의 입 안으로 들어간다. 굳게 닫힌 입술 사이로 스푼이 힘들게 빠져나온다. 나도 와인 한모금을
마신다.
 

"나.. 저 PC방 이제 고만할까봐........." 

"그것 안하면 이제 뭐하려고?............"

"오늘 자기 옷사러 나가서 보니까... 옷가게를 하면 어떨까 생각이 들던데..........."

"옷가게?............"

"온라인... 오프라인으로 동시에 하면 될 것도 같은데................."

"자본이 만만치않게 들어가요... 일도 엄청 많고.........."

"그렇지?... 피팅모델이니, 배송, 반송, 환불... 골치아프겠지?........."

"그런 것 하는 사람을 알고 있으면... 그 가게에 가서 몇달 일해주고... 경험을 쌓고나서 하든가.............."

"그게 좋겠지?........."

"옷장사는 시작은 많이들 하는데... 끝까지 가는 사람들이 너무 적대요..........."

"쉬운 일이 없다니까... 지혜 말대로 자기를 사위로 들이려면 내가 무엇을 해야지?..........."

"하하하... 누나... 진짜 어이없다............."

"아니야.. 나 어제 지혜 말 듣고... 쇼크 엄청 크게 먹었어..........."

"내 생각에는 쇼크가 아니라 상처 같은데................"

"그거나 그거나... 그런데, 자기 내일은 쉬나?........"

"회사는 쉬지만... 낮에는 애들이랑 공부하고... 저녁에는 학교에 가야해............"

"자기는 공휴일도 없어?............."

"애들이 하자고 하면 해야지... 놀자고 하면 놀게 해주고................"

"지혜는 한다는 것 같던데... 경식이는 모르겠네..........."
 

나는 계속 와인을 한모금씩만 마시고 있었다. 아이린은 어느 새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스푼으로 접시의 바닥을 긁고있다.
나를 보더니 한마디 한다.
 

"과일은 다 먹었어?........" 

"아직 있을껄........."
 

아이린은 아이스크림을 들고 주방으로 갔다. 찰랑거리는 치마 아래로 주욱 뻗은 두 다리가 움직이는 것이 너무 예쁘다. 이제
보니까 지혜의 다리가 아이린의 다리를 닮은 것 같다. 
싱크대 쪽에서 탁탁 소리가 난다. 아마도 냉장고에 있는 사과를 깎아서
썰고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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