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학생의 로망은 친구들의 엄마 - 16부 > 야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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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

남학생의 로망은 친구들의 엄마 - 16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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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9가이드
댓글 0건 조회 29,746회 작성일 22-12-18 21:19

본문

그럴 듯한 말을 듣자 영애는 의외로 진지한 눈빛을 지으며 생각에 잠기는 것 같다.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하는 얼굴 현준은
어라 이렇게만 말해도 먹혀들어간다. 이거지?? 
영애의 뜻밖의 모습을 보고 두근 두근 설레기 시작한다. 잘, 잘하면 오늘 또
기회가 오는 건가..? 
그런데 이걸 어쩌나 영애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피식 귀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역시 안돼.. 있을 수 없는 얘기야.. 잠깐 그럴듯한 말을 듣고 나도 고민했네.. 아무리 연인들이 편하게 쉬어가는 곳이라고
 해도 
들어가면 분위기 때문에 생각이 바뀔텐데.............”
 

“그... 그렇지 않아요..! 내 말은.. 거짓말이 아니라니까요 누나.... 누나를 끔찍하게 좋아하지만.. 거짓말을 막 하면서까지..
 나쁜 짓을 할 생각은 없어요.. 
말 그대로 들어가도 잠시 쉬고 나오면 되는 거죠.. 헤헤.. 에구... 나도 진땀이 나네.. 후..
 에이~ 일단 차까지 가면서 얘기하시죠........”
 

“푸하하~~ 바로 포기하다니.. 귀여워.. 그런 모습도.. 후훗.. 일단 드라이브나 좀 하고.. 편안하게 마음 먹자.. 현준아.......”
 

영애는 자연스럽게 현준의 팔짱을 꼬옥 끼며 한번 만져본 적이 있는 부드러운 가슴을 뭉클하게 그의 팔에 기대 왔다. 현준은
사랑스러운 여인의 탱탱한 가슴이 팔에 닿자 
1초 2초가 지나서 바로 교복 바지가 터질 만큼 파아앗- 꼭대기까지 발기했다.
왜 이렇게 서지..?? 소년은 두근 거리는 가슴으로 침만 꿀꺽 삼킨다. 아마 현준이 조금 전에, 영애가 고민하는 얼굴일 때
더 망설일 틈을 주지 않고 그냥 ‘생각 그만하고 그냥 가봐요’ 라고 우겼으면 또 어떻게 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영애도 순간
눈빛이 미세하게 스르르- 흔들렸던 건 사실이니까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현준은 영애의 기분 좋은 가슴을 느끼며 뭐 더 좋은
생각이 없나 열심히 머리를 굴린다.
 

“좋은 생각이 났어요... 그럼.. 천호 현대백화점 쪽으로 가죠!........” 

“그럴까?... 나쁘지 않은 생각인데.. 아직 시간은 여섯시니까.. 쇼핑하려구?...........”

“뭐.. 겸사 겸사... 우리 집도 가깝구요... 하하.........”

이렇게 해서 또 즉흥적으로 방향은 결정 현준이 사는 천호동으로 행선지를 정하고 액셀을 밟는다. 번개 같이 막히지 않는
길을 내달린 차 금방 백화점 앞에 도착했고 
주차장으로 들어서려는 찰나 현준이 영애의 오른 손을 턱 잡는다.
 

“그쪽이 아니구요.. 백화점 가자는 소리는 안했어요... 히히.......” 

“그럼... 뭐하게..?......”

“여기 근처 아무데나 일단 세우세요... 커피숍을 가던지.. 내려서 산책해요... 누나............”

“쿡쿡.. 뭐야아.. 그러면 아까 오금동에서 그렇게 해도 되는 건데.......”

“거기 좀 삭막한 동네던데.. 잘은 모르지만 하하.. 그쪽보다야 이렇게 인파가 붐비는 동네가 훨 낫지 않아요?.......”

“맞아... 그건 네 말이 맞네.. 호호호.. 나도 시끌벅적한데가 좋더라......”
 

사실 천호 3동의 사이 사이 골목길로 들어가다 보면 모텔들이 우후죽순이다. 사람 많고 밝은 초저녁의 분위기를 즐기면서
기분 좋은 산책도 하고 
저녁 바람을 맞으면서 상쾌하게 데이트를 즐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술같은 걸 마시지 않아도 대화하는
도중에 아까처럼 기회는 올 것이고 
그러면 틀림없이 오늘 다시 생각지 못한 기회를 얻을 거라 확신하는 현준이었다.
 

“저기 콩다방 있네!... 일단 들어가자... 키키킥.......” 

“엥... 먼저는 걸어다니고 싶다고 얘기하시더니.. 하하하.........”

“내가 그랬어?... 쿠쿠.. 저녁이 되니까 따듯한게 마시고 싶거든.. 가자~”

“화이트 초콜릿 모카랑... 카페 라떼 둘다 미디움으로 주세요............” 

“초콜릿 모카는 뭐지?... 사진 보니까 그게 더 땡겨요.. 헤헤.........”

“쿡쿡.. 그럼 니가 그거 마셔.. 내가 라떼 마실게~”

“그래도 돼요..? 누나 정말 착하셔... 아.. 누나 지금 흘러나오는 이 음악 제목 뭔지 혹시.. 아세요?.. 전에 우연히 들었는데..
 듣자마자.. 진짜 감동받았어요........”
 

현준은 영애가 다양한 팝음악에 대한 지식이 있다는 걸 익히 알고 있어서 이번에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물었다.
 

“이거...? 알고 있어.. 나도 좋아하는 곡이야.. 뭐더라.. 무슨 옛날 영화 음악인데.. 아..! 모베터 블루스야.. 모베터 블루스라는
 영화 사운드 트랙일걸?.. 호호... 
잔잔하게 깔리는 재즈음이 정말... 기분을 아늑하게 녹여주지... 나는 이런 음악 들으면
 어쩔 수 없나봐... 눈물이 맺혀... 
이 영화 1990년 껀데... 덴젤 워싱턴이 주연으로 나와... 흑인들이 주연이라서 느낌이
 편안하더라 오히려.. 
웨슬리 스나입스도 나올걸?..........”
 

“별 걸 다아네..?! 우와... 하나만 툭, 건드려도 잡다한 지식이 줄줄줄~~ 나오네요..?.. 덴젤 워싱턴.. 누구지.. 찾아봐야겠다..
 이름은 익숙해요.. 하하.. 
맞아.. 누나는 역시 나하고 감성이 비슷해요.. 그래서 좋아요.. 모베터 블루스.. 고마워요... 꼭
 기억하고 있어야지.. 히히... 
이런 포근하고.. 사람을 달래주는 편안한 안식의 음악이 좋아요......”

“후후.......” 

“왜... 아무 말 없이 그냥 웃어요..? 흐흐.............”

“그냥.. 신기해서.. 너처럼 나랑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 아직 한참 어리다면 어린 아이가.. 이런 옛날 노래에 진한 감동을
 받고.. 나랑 같은 감성을 지니다니..
. 좋아서.. 호호.. 반가워서 웃었어........”
 

“뭐야~ 크크... 나 이래뵈도... 어릴 때는 뮤지션이 되고 싶었다구요... 작곡하는 것도 좋아하구.......”

“어머.. 작곡도.. 할 줄 알아..?.........”

“어... 말이 헛 나왔네.. 으음... 작곡을 배운 건 아니구요.. 노래를 워낙 좋아하고 그러다보니.. 내가 스스로 음률.. 이라고
 하나.. 
그런걸 머릿속에 악상을 그려보는 걸.. 좋아해요... 가끔은.. 하하...........”

“호호호.... 그런 면이 있구나..? 작곡이라... 참 좋다.......”
 

영애는 생각했다. 이상하게 이 아이와 같이 있으면 그렇게 지난 일주일간 죄책감에 두려워하고 무서워 했던 감정들은 
녹듯이 사라지고 편안해지는 느낌이 든다. 
몸이 사뿐하게 가벼워지고 걱정과 근심도 짧은 순간이지만 머리에서 홀가분하게
떠나간다고 할까 
잠시의 마음의 피난처 도피처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준상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을 수없이 했었는데 어째서
현준을 만나기만 하면 거짓말처럼 포근한 기분이 왜 들까 
이 아이를 다시 만나서 마음을 주려고도 안했고 얼굴만 봐도
두근거리는 감정이 되살아날 게 뻔하고 무서웠다.
 

걱정을 많이 했었다. 아까 집 바로 앞에서 현준이 돌발 행동을 했을 때도 차에 태우고 오금로를 달리는 내내 침묵을 지키던
시간에도 
영애는 현준이 무섭다는 생각도 했고 역시 적당히 타이르고 돌려보내야겠어 라고 어중간한 자기 마음 속의 타협을
하며 그를 공원으로 데려간 거였다. 
진짜 그랬는데 사람 마음이 가는 곳은 도대체 종잡을 수 없는 모양이다. 함께 있으면서
따듯한 이야기를 나누고 
편안하게 웃어주는 아들 또래의 미소를 보면 예전에 자기가 좋아했던 그 기억들이 떠오르고 진솔한
감정이 피어난다.
 

그래 생각났어 내가 현준이를 처음 보자마자 좋아하게 바로 사랑을 예감할 수 밖에 없었던 진짜 이유가 영애는 희미했던
지난 날의 기억이 서서히 또렷하게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을 느낀다.

198X년 여름 짙은 색상의 깔끔한 청바지를 입은 맵시가 잘 어울린다. 긴 다리의 어여쁜 아가씨가 콧노래를 부르며 길을 걸어
간다. 
초록색 긴팔 남방에 하얀 도트 무늬 그리고 산뜻한 하얀 운동화 화사한 원색의 색감이 시각적으로 톡톡 튀는 상큼함을
발산한다. 
호리호리하고 길쭉한 이쁜 체형에 잘 어울리는 캐쥬얼한 색상이 아름답다.
 

옅은 분홍색의 헤어밴드를 단정하게 착용하고 룰루 랄라♬ 행복한 미소를 짓는 미소녀. 입을 벌려 노래하는 그 목소리가
꾀꼬리처럼 낭랑하게 울려퍼진다. 
예쁜 얼굴 만큼이나 노래하는 모습도 어찌 그리 아름다웠다.
 

[잊는다는 슬픔보다.. 잊어야 한다는 이유가.. 내겐 너무도 서글픈.. 아픔이었네... 잊어야 하는 마음을.. 가을비는 아는 듯이..
내게 찾아와.. 조용히.. 손짓을 하네..]
 

빨간색 바탕의 몸체와 하얀색 옆면의 디자인 STEREO가 고딕체로 써 있고 선홍색 노랑색 하얀색 3색의 동그란 버튼 몸체의
오른쪽에는 검은색의 타원형도 아닌 것이 
재밌게 일그러진 원형의 액정으로 테이프가 돌아가는 모습이 보인다. S전자에서
80년대 초반 일본 소니의 워크맨을 견제하기 위해 출시한 ‘마이마이’ 
80년대의 젊음을 상징하는 다소 투박하지만 정겨운
모양의 추억이 서린 카세트 
긴 이어폰 줄을 예쁜 귀에 잇고 소녀는 나긋 나긋한 목소리로 귀엽게 따라 부른다.
 

정류소의 큰 전신주에는 하얀 팻말에 투박한 빨간 글씨로 ‘얼음’이라는 글씨가 새겨져있다. 사랑스러운 음색으로 ‘그 이유가
내겐 아픔이었네’를 따라 부르던 소녀 
가만히 그 얼음 이라는 글씨를 보고 있더니 쿡쿡 웃음을 참지 못한다. 더워서 손으로
파닥 파닥 부지런하게 부채질을 하고 있는 사이 
파란 지붕에 하얀 차체의 20번 시민자율버스가 정류장으로 들어왔다.
 

‘후... 아직 여름은 여름인가봐.. 아침에는 그래도 좀 쌀쌀하더니 왜이리 덥니..’
 

아리따운 자태의 늘씬한 소녀가 깡총 버스에 올라탔다. 운 좋게도 한자리 비어있어서 얼른 쪼로록 종종 걸음으로 다가가
앉는다. 
후텁지근 그래도 창문을 여니 버스가 달릴 때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아주 상쾌하다. 두 정거장이나 갔을까 건장한
체격의 하얀 반팔 티와 통이 큰 청바지를 입은 남성이 올라 탔다. 
검정색 큰 가방을 양 어깨에 지고 빈 자리가 있나 버스 안을
둘러 보던 청년 
어라? 오른쪽 창가 뒤에서 한칸 앞자리에 앉은 소녀와 눈이 마주친다. 반가운 얼굴로 성큼 성큼 걸어오는
청년 
소녀는 귀에 꼽은 음악에 집중하느라 누가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슬그머니 웃으며 어깨를 툭툭
건드리는 남자.
 

“어?... 준구 오빠?... 왠일이예요?.............” 

“왠일은 무슨.. 하하하.. 어디가니 영애야?...........”

“호호... 버스에서 만나니까 반갑네..... 종로에 볼일 있어서 가고 있어요..... 우리 할아버지께 갖다 드릴 물건이 있어서
 전해드리러요........”

“그래?... 말 잘듣는 착한 아이네... 흐흐흐...........”

“칫... 오빤 맨날 나만 보면 어린 아이 취급하셔... 호홋.. 뒤에 짊어진 가방은 뭘 담았길래 그렇게 커요?.............”
 

“이거?... 별 것 없어... 곧 있으면 대학교 중간 고사 기간이라.. 난 도서관에 가는 길이거든... 전부 책만 들었지 뭐 하하..
 교재랑 사전같은거.. 으... 무거워 죽겠다... 사실은... 쿡........”

“킥킥킥 그랬구나... 날도 더운데 오라버니 참 열심히 하시네요... 공부.........”

“하이구~ 더운 날씨라면서 긴팔 남방만 고집하는 건 어디의 누구신가요 키킥... 너 그렇게 입으면 덥지 않니?... 옷은 아주
 이쁘고 귀엽다만...........”
 

“응응... 괜찮아요... 요즘엔 일교차도 좀 있고........” 

“크크... 그것보다는 제 아무리 더워도 패션만큼은 포기할 수 없어... 라는 고집이 아닐까 싶은데~ 하하.. 근데.. 무슨 음악을
 듣고 있어?..........”
 

준구 라는 이름의 듬직한 청년은 영애가 건네주는 이어폰 한쪽을 가만히 들어본다. 오 아주 좋아하는 이지연의 노래다. 귀가
쫑긋해지며 열심히 듣게 된다.
 

“이지연 노래구나.. 나도 아주 좋아하는데.. 이거 작년 노래 아니야?..........” 

“맞아요.. 신곡은 테이프가 없어서.. 그리고 그 이유가 내겐 아픔이었네를 워낙 좋아해요.. 가사가 맘에 들어.. 멜로디도
 따듯해서 아주 좋아하는 노래예요... 히히............”

“하하... 그래.. 네 밝은 이미지랑도 잘 어울린다... 영애야...........”

“후훗.. 듣기 좋은 말만.. 오빤 어디까지 가는거예요... 그래서?..........” 

“으음~ 세 정거장이면 내려... 학교에 가기 전에 대형 서점에 또 한번 들러야해서..........”

“복잡하구나... 바쁘게 공부하러 왔다갔다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요... 호호............”

“짜식... 그렇게 봐주니까 고맙다만... 실상은 피로에 쩔은 고학생이란다..... 흐흐..........”
 

오랜만에 서로 만났는가 보다. 잘생긴 얼굴의 건강한 청년과 소녀는 시덥잖은 농담을 주고 받으며 웃음꽃을 피운다. 그런데
대화를 하는 중에 갑자기 머리를 스치는 번개같은 아이디어 
“아..!” 뭔가 떠오른 준구가 영애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린다.
 

“있잖아... 너 혹시 괜찮으면.. 다다음주 주말쯤에 시간 좀 내줄 수 있어?..............” 

“다다음주요?... 토요일 쯤에?... 특별한 선약은 없어요... 그런데 무슨 일로? 한참이나 남은 날짜를 물어보나요?.. 쿄쿄........”
“으응.. 얘길 그냥 해도 되나 이거?.. 흐흐흐.. 내 아는 과 동기놈 세명하고 끼리끼리 4대 4로 미팅하기로 했거든 크크크.......”
“엥???... 오빠... 좀 전에 지금 시험 기간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아아... 그러니까 시험 끝나자마자 쌈빡하게 놀기로 했거든 크하하... 그때가 되면 시험 끝나고 한산해질 때야~ 영애야...
 그래~ 왜 니 생각을 못했을까??.. 니가 딱이다... 
대학생 오빠들하고 언니들 미팅하는 자린데.. 한 자리가 마침 모자라서
 내가 요새 곤란했거든?... 자리 좀 빛내주라... 하하............”
 

“그.. 그런 걸 갑자기 정하기도 그렇고.. 미팅은 전 부담스러운데.........” 

“에이... 말하는 느낌을 보니까 그래도 막 싫지는 않은거 같은데? 키키.. 괜찮아.. 짜식... 다 내가 엄선한 믿을만한 놈들만
 골랐어... 
쓸만한 녀석들이니까... 이렇게 친한 영애 너한테도 서슴없이 권하는 거 아니겠니?...........”
 

“흐음.... 글쎄요... 나이대도 나랑 안맞구요.. 별로 생각이........” 

“제발 좀..! 응..?? 너만큼 이쁘고 괜찮은 애가 없어.. 요즘은 왜 이리 이쁜 여학생들 찾기가 힘든지.. 그래~! 너만한 애가
 없어 아주 그냥 캬캬.. 니가 와주면 자리가 아주 빛이 날거야... 
영애 너 이쁜 거야 동네방네 소문 났으니까 흐하하.......

 아참... 그리구 거기 오는 여자애들도 대학생이 아니란다... 다 너 또래야............”
 

“네?... 그러면.. 대학생 오빠들하고 여고생들이랑 단체 미팅을 하는 거예욧?... 쿠쿠.........” 

“그렇다고 할 수 있지?... 흐흐.. 맞아... 이 얘기부터 했어야 됐어... 그래야 니가 좀 솔깃하고 마음을 놓지.. 하하.. 어이쿠..
 야~ 나 내려야겠다.. 
영애야!!... 일단 생각은 해봐?... 오빠가 내일 쯤에 집으로 전화할테니까.. 오키?.........”
 

“아... 뭐야..? 자기 혼자서 따다다 신나게 말해버리고.. 키키... 알았어요.. 저녁 시간에 전화하세요.......”
 

알았다는 말을 대신하며 준구는 싱긋 웃으며 영애와 정겹게 가벼운 하이파이브를 했다. 해맑게 웃으며 하얀 치아를 드러내고
손을 흔드는 청년 
부웅~ 버스가 출발하자 영애는 참고 있던 웃음을 터뜨리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미팅이라구? 너무 오랜만에 듣는 생소한 단어라.. 기분이 묘하네. 호호.. 내가 2학년에 올라오고 나서는 한 적이 없으니까..’
 

처음엔 준구의 돌발 제안에 정중하게 거절하려고 했는데 넉살 좋은 그의 사람 좋은 웃음과, 말할 때 자꾸 손과 어깨를 가만히
못 있고 
웃겨 죽겠는 제스쳐를 취하는 모습에 영애는 계속 생각나서 웃음이 터졌다. 어릴 때부터 한 동네에서 친하게 알고
지내던 준구 오빠 
주먹도 아주 잘 쓰고 동네 어린 아이들의 골목대장으로 군림해온 사람 서글 서글하게 잘 생긴 쾌남 정준구
영애보다 두 살이 많은 현재 대학교 1학년이다. 국민학교 다닐때부터 자연스럽게 친분이 있던 사이라, 오랜 시간을 알고
지낸 만큼 
여전히 푸근하고 전혀 어색하지 않게 기댈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 준구 오빠의 부탁이라서 단칼에 무
자르듯 거절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영애도 이미 어느 정도는 마음이 동한 눈치다. 아직 고등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 제대로 된 연애 한번 해본 적도 없고
그저 순진하게 들입다 책만 파고 공부하며 살았는데 이렇게 믿음직한 오빠의 도움을 받아 경험삼아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준구의 과한 몸짓과 명랑한 행동거지를 상상하며 미소를 짓고 있는 소녀 목적지인 종로 3가에 도착하자 경쾌한
걸음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오랜만에 친할아버지를 만나 뵈러 가는 날이라서 그렇지 않아도 기분이 들떠 있었는데 갑자기
만난 준구한테 미팅을 하자는 제안을 받으니 
소녀 영애의 신나는 기분이 얼굴에 드러날 정도로 행복 가득한 표정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익숙한 금은방이 보인다. 이쪽 거리로 들어오면 죄다 금은방 아니면 시계집 뿐이던데 하두 오랜만의 길이라
이마에 손을 얹고 이쪽이 맞나..? 
기억을 떠올려본다. 청바지에서 주섬 주섬 작게 구겨진 하얀 종이를 꺼낸다. 지도랍시고
그림을 대략 그려온 모양인데 좀 어설프다.
 

“끙.. 이래 갖고는 알아보기 어려운데.. 누가 그린 건지 참.. 괴발새발로도 그렸네.. 후후.. 내가 이렇게 그림 그리는 손재주가
 없다니... 그림은 어려워~ 휴우.........”
 

아버지의 기막힌 손재주를 물려 받아.. 그림 실력은 영 꽝이다. 글씨체는 참 예쁘고 여성스럽게 잘 쓰는데 자기가 생각해도
그림 실력만큼은 어째서 요 모양 요 꼴인지 이해가 안 간다. 사람마다 가진 달란트와 실력이 다르니까 뭐 좋게 생각하자
긍정적인 소녀는 쿡쿡 미소를 지우며 익숙한 골목길을 걸었다.
 

‘호오~ 작년에만 해도 여기에 한약방은 없었던 걸로 아는데... 생겼네??... 냄새 좋다.. 이런 약재 냄새 정말 좋아.. 후후...
 아... 향긋해....기분 좋아...........’
 

맛있기로 소문난 칼국수 집을 기웃거리며 잠시 출출해져 저기라도 들러 요기를 해결할까 싶은 충동이 몰려온다. 손목 시계를
보니 시간은 아직 여유가 있다. 
한 낮의 점심 시간인데도 가게 안은 그런대로 한산했다. 오후 한시 반 정도의 한가한 타임
시원한 식당 구석 의자에 앉아 구수한 된장 찌개를 시켜놓고 tv를 기웃거린다. 오늘 날짜가 그러고보니 벌써 9월 말이구나
tv에서는 거의 끝물을 향해가는 서울 올림픽 생중계를 하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시원해지는 수영 경기장의 커다란
장내가 브라운관을 가득 메운다.
 

영애는 호기심에 채널을 키다가 건장한 체격의 웃통 벗은 남정네들이 출발 선상에 서서 수영모를 가다듬는 모습에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다. 
수영 경기라 우리 나라에서 주최하는 경기라면 꼭 가서 직접 보고 싶었다. 파앙-! 총성 터지는 신호와
함께 근육질의 남자들이 풍덩 물 속으로 뛰어든다. 
시원스럽게 물살을 사각 사각 촤촤촤촤 가르며 헤엄치는 모습이 시각적
으로도 그 소리 역시도 무척 호쾌하고 근사했다.
 

‘에효.. 공부만 한답시고.. 그래도 우리 나라에서 개최하는 올림픽인데.. 아무리 공부할 때라고 해도 저런 곳은 여러번 가봐야
 하는데 말야.. 
이제 곧 있으면 올림픽도 폐막할텐데.. 몇번 가보지 못한 게 너무 아쉽다.. 히잉...’
 

그렇게 내 나라에서 열리는 영광스런 스포츠 제전의 행사를 흥미가 잔뜩 돋는 얼굴로 빤히 구경하는 귀여운 영애다. 음식이
바로 나오고 영애는 호오 호오 뜨거운 것을 식히며 
맛있게 찌개를 먹는 내내 예쁜 시선은 브라운관에서 떼지 못하고 쳐다
보았다. 
기분 좋은 식사 후 쯔라차차 기지개를 쫘아악 키고 가게를 나선다. 아까 들어왔던 골목인데 본 적 없는 영화관으로
붐비는 영화거리가 영애의 시선에 쏙 들어왔다. 
그런가하면 여전히 친근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교보문고의 모습도 정겹다.
 

불과 몇 년 사이에 개발이 빠르게 진행된 모양인지 가는 곳곳마다 놀랍도록 변모해가는 종로 3가의 모습이 생경하지만 신기
하고 재미있다. 
영애는 아까의 한약방 앞길을 다시 찾아서 지도를 보며 가는 길을 재 점검해본다.

할아버지를 만나뵌 날로부터 열흘 뒤 영애의 집 영작문 과제를 붙잡고 낑낑대며 씨름하다가 이맛살을 살짝 찌푸리더니 에이
짜증나~ 안해~ 하면서 책을 던져 놓고 
좋아하는 소설책을 탁! 들고 침대 위로 발라당 드러눕는다. 유명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사다 놓고서 아직 일부만 읽었나보다. 
좋아 오늘 머리도 지끈거리고 공부도 안되는데 요 책이나 읽으며 시간
떼워야지 
소녀 영애는 두근 거리는 맘으로 깨끗한 새 책의 책갈피를 펼친다.
 

그때 모처럼 느긋하게 뒹굴며 책 좀 몇페이지 보려 했더니 아래층에서 엄마가 큰 목소리로 전화왔다고 부른다. 누가 이 늦은
저녁 시간에 전화를 
책을 읽으려다 방해받는 게 싫어서 얼굴이 뾰루퉁해서 계단을 내려온다.
 

“얼른 좀 내려오지 않고~ 호호... 자 받아봐..........” 

“엄마... 누군데?.............”

“준구 오빠야.. 오늘 전화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는 구나?.............”

“아..... 고마워요!... 응.. 전화 바꿨어요 오빠~”

“그래... 영애야! 전화가 많이 늦었지?... 미안하다 하하하.. 시험 때문에 정신없이 바빴어......”

“호호호... 괜찮아요... 그 다음날 전화하기로 해놓고... 하루라는 말의 사전적인 정의가 10일이라는 걸... 그 때는 미처
 몰랐지만요?... 후후........”

“에이~ 정신 놓고 연락 못한 나 때문에 화가 났었구나?... 서운했나보네... 미안하다... 야... 하하... 사과할게... 뭐 아무튼
 그건 그렇고.. 
이번 주 주말인데... 전에 이야기한 미팅은 생각 좀 해봤지?...........”

“아... 맞다.. 까먹고 있었네..? 호호......”
 

“엥...?? 흐미.. 이제 와서 기억이 나면 어쩐댜... 우리끼리는 이미 아주 신나서.. 특급 미소녀 한분이 오신다고 만반의 준비를
 잔뜩 해놓고 있었구마이~~”
 

“우리끼리?.. 쿠쿠쿠 뭐야~ 김칫국을 그렇게 드시면 안되어요~ 장난이었구요.. 당연히 오라버니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지요..
 너무 소식이 뜸하길래 뿔이 좀 나던 참이었어요... 후후..........”
 

“헤헤.. 미안해.. 내가 맛있는 밥 사줄게.. 기분 풀어, 영애야.. 암튼 간에... 이번주... 아니다, 내가 오늘이 월요일이니까...
 
수요일 날 너희 학교 정문 앞으로 갈게... 어때?...........”

“여고 앞으로 오빠가 오신다구요..? 괜찮겠어요?... 여자애들만 가득한 장소에 호호.......”

“하하.. 괜찮아.. 어차피 너만 살짝 보러 갈 건데 잠깐의 쪽 팔리는 것 쯤이야.. 학교가 오후 세시반쯤에 끝나지?... 그럼 그때
 보자... 수요일 학교 정문 앞에서!.............”
 

그리고 다시 시간은 빠르게 흘러 토요일 약속한 미팅 당일이 되었다. 영애는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서둘러 옷장에
있는 옷들을 
작은 침대 위에 쫘악- 늘어 놓고 뭘 입고 가지 고민에 빠지기 시작한다. 이럴 줄 알고 어제 생각을 좀 해놓긴
했지만 
역시 이성에게 잘 보이고 싶은 옷을 고른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좋아!.. 이걸로 정했어... 오늘은 그냥 수수하게~ 지극히 여성스럽고 호호..... 사랑스러운 느낌 충만한 컨셉으로 가는 거야...
 영애야!... 
아.. 떨리는 걸... 휴우......”


무려 20년전의 오래된 기억을 떠올리며 옛 추억에 잠겨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잔잔한 눈웃음을 짓는 영애와 현준은 그런
영애의 사랑스러운 얼굴을 보고 정말 
눈 부시게 아름답다. 그 생각 하나뿐이다. 잠깐 타임 캡슐을 타고 머릿속으로 시간
이동을 다녀오는 사이 
화장실을 다녀와 다시 영애의 앞에 앉은 현준은 아까부터 예쁜 누나가 긴 상념에 잠겨 우수 어린 깊은
눈빛을 띄우는 걸 보고 
무언가 생각할 일이 있는가보네 하고서 눈치껏 차만 홀짝이고 있다. 그러다가 영애가 현준의 기색을
보고 미안해서 방긋 웃으며 말을 건넸다.
 

“호호. 현준아, 내가 아무런 말도 없이 조용해져서.. 좀 서운했지?... 미안해.. 너하고 음악 이야기를 하니까... 자연스럽게..
 음악에 관련한 옛날 추억이 생각이 났어..........”

“아니에요... 괜찮아요... 저는... 하하.. 누나가 생각에 빠져 있는 그 예쁜 모습도 좋아요... 어떤 얼굴을 해도.. 어느 각도에서
 봐도 정말 완벽하고 이쁜 얼굴이거든요......”
 

“우리 현준이가 아주 립 서비스 솜씨만큼은 탁월하구나.. 후후........” 

“어~ 진짜라니까~ 누나는 내가 외모 칭찬해주면 잘 믿지 못하나봐... 하하하............”

“호호.. 아니야.. 고맙기도 하고.. 내가 부끄러워서 그러지 얘... 히힛.. 차.. 다 마셨니?...........”

“네.. 이제 시간도 어느 정도 지났고.. 우리 슬슬 일어날까요?...............”
“벌써..? 애매한 시간인데.. 지금이.. 어! 언제 이렇게 시간이 갔담?... 8시 10분이 넘었어...........”

“그럴만 해요... 아까 우리가 여기 들어올때가 이미 여섯시 사십분이었으니까... 누나랑 나랑 재밌게 얘기하다보니까 시간
 간줄도 몰랐네요... 크크..............”

“그러네?... 마음 맞는 사람이랑 같이 있으니까.. 한시간 반이 훌쩍~ 가버린 것도 몰랐나봐.. 호호.........”
 

영애의 말은 사실이다. 서로의 나이 차이와 세대 간의 벽을 뛰어 넘어서 영애는 현준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 나눠 볼수록
희안하게도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처럼 여러 가지로 정서가 비슷하고 생각하는 가치관의 공통점이 아주 많다는 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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